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78화 (778/1,000)
  • 778화 용자의 무덤 (5)

    ……끼익!

    문 열리는 소리.

    어지간한 힘으로는 밀리지도 않을 만큼 육중한 흑색 문이 개방되었다.

    -띠링!

    <용자의 무덤 ‘제 107번뇌층’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최후를 지키는 마지노선, 100층 이후의 트리플 넘버링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관문에 도달했다.

    회귀 전이나 후나 그 누구도 이곳을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상 최강의 S급 몬스터가 존재하는 곳, 그것을 알기에 나는 매우 조심스럽다.

    ‘데스나이트 사묘아리’와 ‘아몬 후작’을 연달아 잡고 난 뒤인지라 여벌의 심장에 공급되는 포션의 양이 많이 줄었다.

    애초에 넉넉하게 준비를 해 왔기에 아직은 오차 범위 내이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

    [우아… 되게 어둡다.]

    홍영화는 107층의 어둠에 몸을 파르르 떤다.

    도깨비불 특유의 빛으로 나름 앞을 비추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애초에 중계인은 도전자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기에 시야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조심해요. 그 앞으로 가면 칼날 튀어나오니까. 앗, 잠깐 스탑! 그 밑에 구덩이 조심. 이리로 컴컴.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조심해요, 그 앞으로 가면 칼날 튀어나오니까.”

    내가 주의를 주자 홍영화는 머쓱하게 웃는다.

    [헤헤헤, 저는 도깨비불 모드라 아무 상관……]

    ……하지만 아무 상관 없지 않을걸?

    쉬이익! 파캉!

    이윽고, 홍영화는 바로 눈알 앞까지 튀어나온 송곳들을 보고는 그 자리에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아니 시야 기준, 전방에서 바로 튀어나온다구요. 심리적 데미지는 상당할 텐데?"

    107층부터는 패턴의 복잡함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106층까지 올라오며 고착화되고 안정화된 플레이어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지금의 장치는 공포영화에서 흔히 쓰는 '점프 스케어', 갑자기 무언가가 화면 외곽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제임스 완 스타일이랄까?”

    [……히이익.]

    "가요. 빨리."

    [좀 천천히 가 주시면 안 돼요?]

    "최단 시간 주파해야죠."

    [으으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홍영화가 앞으로 조금 이동하는 순간.

    …쿠우웅!

    이번엔 목에 밧줄을 건 해골들이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다.

    [아아아아악!]

    물론 도깨비불이라 물리적 데미지는 없지만… 적어도 심리적 데미지는 상당했다.

    “예전에 화X이트데이라는 국산 공포 게임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하드 모드일 경우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기만을 반복하면 튀어나오는 귀신이 있었어요. 여기도 비슷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공포의 노리갯감만 될 뿐이에요.”

    나는 설명을 늘어놓으면서도 돌기둥과 칼날, 구덩이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닌다.

    홍영화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전에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아까 알림음에는 처음 왔다고 뜨드만?]

    “뭐, 고인물 특유의 감이랄까?”

    사실 이 모든 공은 원래 튜더의 것이다.

    회귀 전. 튜더가 이끌던 공격대 로열블러드는 이곳 107층의 보스와 장장 일주일, 딱 168시간을 싸웠다고 했다.

    그 결과는 로열블러드의 무참한 패배.

    세계 통합 랭킹 1위인 튜더를 포함해 최고의 길드, 최강의 공격대로 통하던 이 60인 중 단 한 명조차 살려 돌려보내지 않은 것이 바로 이곳 107층의 주인.

    하지만 튜더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이곳 107층의 지형 정보,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 등에 대해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자기가 아니라도 훗날 다른 재능 있는 모험가가 나타난다면 간접적으로라도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대인배적인 풍모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똑- 똑-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탑 내부의 공간이니만큼 분명 천장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었지만 너무 높고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심해어처럼 어둠 속을 천천히 부유했다.

    그리고.

    “온다.”

    짤막한 대사를 뱉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홍영화가 겁을 집어먹었다.

    [오, 오긴 뭐가 와요! 겁주지 마!]

    “놈이 나를 발견했어요.”

    [으아아- 뭔데! 뭐가 오는데요!]

    “……쉿. 지금 5미터 내외에 있네요.”

    내 말에 홍영화는 옛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친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뒤로 옮겨놓았다.

    “4미터.”

    지독한 어둠 속. 상대가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3미터.”

    아무런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

    “2미터.”

    하지만 내게는 느껴진다.

    “1미터.”

    놈이 내뿜고 있는 날숨의 온기가.

    홍영화는 입을 꼭 다물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중계인인지라 차마 눈은 못 감고 눈물만 그렁그렁한 것이 저래서 시야가 또렷하게 확보될까 걱정되는 모양새.

    이윽고.

    나는 자세를 낮췄다.

    1미터면 손을 뻗어서 닿을 거리다.

    하지만 107층의 주인은 오만한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나 같은 것은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듯.

    그리고 나는 그 오만방자함을 박살내 줄 생각이었다.

    “유세희 선수 덕 좀 보겠네요.”

    나는 어둠을 향해 고개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파아앗!

    이윽고, 내 눈에서 황금빛 섬광이 폭사되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황금광의 혈안! 시선을 마주한 이를 황금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

    A+급 몬스터 고르딕사의 필살기가 터져 나왔다.

    107층의 주인을 황금으로 굳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잠시 눈이 부시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또한 이 방의 시야를 환하게 밝힐 수도 있었다.

    내 눈에서 뻗어나간 황금빛은 주변의 어둠을 일순간 확 걷어 버리고 주변을 빛 무리로 가득 채웠다.

    이윽고, 눈앞에 107층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적나라한 모습에 홍영화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 ……!]

    너무 놀라 비명도 안 나온다.

    저런 거대한 마물이 바로 코앞까지 접근해 올 때까지 몰랐다니!

    [그르르륵……]

    107층의 주인은 빛이 낯선지 뒤로 살짝 물러난 상태이다.

    거대한 몸뚱이를 빈틈없이 휘감고 있는 칠흑의 비늘, 신화에나 등장할 법한 굵은 몸뚱이, 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꽉 차며 꼬리는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긴 몸, 시뻘건 아가리 속 군단의 창검과도 같은 이빨, 전신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독기.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사방팔방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덟 개나 되는 머리이다.

    “오랜만이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밝아진 주변 환경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107층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히드라 ‘성체(幼生體)’> -등급: S / 특성: 무한성장, 백전노장, 과식, 맹독, 고속재생, 마법 면역, 살금살금, 압궤, 만근추, 구두룡(九頭龍)

    -서식지: 거인국, 용자의 무덤 107층

    -길이: ?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신화 속의 뱀.

    성장폭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이 거대한 괴물의 정체는 바로 히드라(HYDRA).

    통합 세계랭킹 1위인 튜더와 그를 따르는 최강의 60인 공격대를 168시간에 이르는 사투 끝에 모조리 전멸시켜 버린 장본인.

    끝끝내 107층의 벽을 넘지 못한 튜더는 한 게임 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S클래스 몬스터 중에 두 번째로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후보들은 넘쳐납니다. 용옥의 고문기술자, 크라켄, 여덟 다리 대왕, 식인황제, 리치 왕, 발록, 데모고르곤, 일곱의 네임드 데스나이트, 데스웜, 아몬 후작……. 하지만 제일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히드라 하나뿐일 것입니다.’

    그때 보았던 히드라 성체의 위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쩌면 이것은 회귀자로서 맞는 첫 번째 시련일지도 모른다.

    나는 홍영화에게 손짓했다.

    “……방송 잠깐 꺼 봐요.”

    [에엣!? 왜요!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한 프레임도 놓칠 수 없는데 방송을 끄긴 왜……엌!?]

    홍영화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내가 강제로 그녀와의 접속을 끊었기 때문이다.

    -띠링!

    <스트리밍이 잠시 중지됩니다>

    <영상을 다시 송출하시려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영상 송출이 끊겼다는 알림음과 함께.

    [아아앗! 안돼애애애!]

    도깨비불 모드로 옆에 함께하던 홍영화가 자동으로 튕긴다.

    차후 내가 다시 접속을 허락하면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되겠지.

    나는 스크린 너머로 나를 보고 있을 시청자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여기서부터는 영업 비밀입니다. 그럼 히드라를 쓰러트리고 난 뒤에 다시 올게요!”

    회귀 전에도 후에도 공략된 적 없는 공전절후의 보스 몬스터.

    놈을 잡기 위해서는 고인물, 마동왕, 썩은물의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하다.

    또한 현세의 게이머들이 오롯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히드라를 공략할 수 있게, 회귀 후의 게이머들에게 던지는 숙제 정도로 남겨놓을 필요도 있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의 게이머들조차 결국에는 잡지 못했던 것이 히드라이니까.

    “내가 만약 너를 1:1로 잡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회귀 전의 세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겠지.”

    나는 지켜보는 시선들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한 뒤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과거 나의 역량은 데스나이트 칠귀타의 일인인 킹 아서를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데스나이트 킹 아서’는 S급 몬스터들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히드라에 비하면 반 수 이상은 쳐진다.

    킹 아서 레이드 이후로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거꾸러트려 온 지금, 나는 얼마나 강해져 있을 것인가?

    ‘……지지난 층에서 데스나이트 사묘아리도 잡았었지.’

    105층에서의 치열했던 사투, 분명 힘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이겨 낼 만한 수준이었다.

    사묘아리와 킹 아서의 전투력이 거의 비슷한 급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는 확실히 과거보다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그 성장폭이 S랭크 최강의 몬스터 히드라에 필적할 만한 정도인지 확인해 볼 차례다.

    “……붙자.”

    과거 나의 우상이었던 투신의 명대사와 함께.

    나는 회귀 전의 세상에서도 불가능으로 통하던 107층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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