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화 용자의 무덤 (3)
-뿌슝빠슝삐슝♩♪♬ [사상 최초!]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 생중계를 하는 방송국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고 있는 LGB게임전문방송국의 앵커이자 라디오 진행자이자 공식 뎀 홍보대사인 홍영화.
그녀는 지금 잔뜩 흥분한 어조로 캠 앞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는 전 세계 최초로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한 용자를 밀착 취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동시 중계되고 있는 이 채널은 당연히 엄청난 수의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시청률, 홍영화는 들뜬 기색을 감출 생각도 없이 훤히 드러낸다.
[용자의 무덤은 명실상부 뎀 세계관 최고 난이도의 던전이죠? 지금까지 이 던전에 도전했던 존재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홍영화는 용자의 무덤이 어떤 던전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겉에서 보면 아주 높은 검은색 탑! 내부의 공간은 무한대! 탑 내부는 총 108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 별로 랜덤 보스가 출현합니다! 1층부터 15층 까지는 위험등급 C랭크의 몬스터가, 16층부터 30층까지는 위험등급 C+랭크의 몬스터가, 31층부터 45층까지는 위험등급 B랭크의 몬스터가, 46층부터 60층까지는 위험등급 B+랭크의 몬스터가, 61층부터 75층까지는 위험등급 A랭크의 몬스터가, 76층부터 90층까지는 위험등급 A+랭크의 몬스터가, 91층부터 107층까지는 위험등급 S랭크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식이죠! 대부분의 층에서는 랜덤 몬스터가 출몰하지만 일부 층에서는 몇몇 특정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고정 출현한다고 합니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당연히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느냐로 게이머들 간에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
누구는 단신으로, 누구는 여럿이 공격대를 모아서 각각 더 상위의 층에 도전하는 것이 열혈 게이머들의 지상과제.
[여러분들이 익히 하는 통합 세계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씨가 로열 레이드 공격대의 도움을 받아서야 간신히 이룩한 경지가 바로 마의 ‘99층’, 일명 ‘더블 넘버링’이라고 불리는 층인데요. 현재까지는 이 층이 현세 게이머들이 힘을 합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100’층 부터는 ‘트리플 넘버링’이라고 불리는 구간으로 현재까지 아무도 도달한 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고요.]
그런 마당에 108층까지 스트레이트로, 그것도 단신으로 도전하겠다는 존재가 등장했으니 전 세계 게이머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오늘 용자의 무덤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용자의 정체는 누구냐? ……바로바로 고인물 씨입니다!]
고인물.
한국 아마추어 랭킹 1위. 공식 랭킹 불명. 프로리그 전적 없음.
그러나 세계 통합 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사용하는 ‘엑스칼리버’의 원주인이자 튜더의 존경을 받는 자.
그리고 모두가 아는, 2차 대격변을 막아 낸 전쟁영웅.
홍영화는 다시 한번 말했다.
[대단한 게이머가 대단한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2차 대격변의 전쟁영웅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게이머가 무려 고정 S+등급의 몬스터가 군림하고 있는 108층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용자의 무덤은 밸런스 패치 이후로 몬스터를 죽여도 경험치 외에는 아무런 특전도 얻을 수 없게끔 수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용자들이 순수하게 자신의 강함을 시험해 보고자 이곳을 찾는다.
자신의 피지컬과 용맹, 실력을 증명하기에 이곳만큼 적절한 공간이 또 없으리라.
그것을 감안했는지 메인스트림과 GM은 이곳 용자의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망과 사망 패널티에 대해서는 꽤나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 자신의 한계까지 쥐어짜 상위의 경지에 도전해 보라는 뜻이다.
즉, 이곳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는 이야기.
2차 대격변을 주도함으로써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고인물이라는 존재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게이머라면 누구나 이 방송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홍영화, 아니 LGB는 아주 로또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
그걸 아는 홍영화는 콧김을 내뿜으며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참고로 이 방송은 저희 LGB에서 독점으로 생중계하고 있고 이는 고인물 님의 스트리밍 채널과 연계되어 방송됩니다! 고인물님 피셜, 방송으로 인한 수익은 전부 결식아동들에게 기부하신다고 하네요! 저희 LGB 역시도 고인물님의 뜻에 동참하기로 했구요! 그러니 모두 시선 집중! 팡팡! 얍얍!]
이윽고, 전 세계 게이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홍영화가 기대와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중계 시작합니다아아아아-!]
……그리고.
홍영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소음.
콰쾅! 퍽-
그것은 용자의 무덤에 입장하자마자 나는 소리였다.
……고인물. 이것은 내가 실시간으로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내뱉고 있는 신음 소리다.
“커헉!? 그어어어억!”
나는 피를 토해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입에서 뜨거운 핏물이 올라온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
“……크윽!”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신이 타는 듯 따가웠다.
HP 바도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위험신호! 이대로 가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츠츠츠츠츠츠……
내 앞으로 무시무시한 보스 몬스터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곳을 진정코 용자의 무덤으로 만드는 파수꾼, 죽음의 묘지기!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용자의 무덤 ‘제 1층’>
<출현 몬스터: 슬라임 퀸>
그렇다.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은 던전 1층의 보스 슬라임 퀸이었다.
<슬라임 퀸> -등급: C / 특성: 재생하는 피부
-서식지: 전 대륙
-크기: ?m.
-젤리 타입의 몬스터.
딸기맛 푸딩 같아 보이지만 먹으면 배탈이 나고 말 것이다.
딸기우유로 만든 푸딩처럼 말캉말캉한 바디, 저 소름끼치는 몸에 한번 덮쳐진다면 꼼짝없이 산성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아! 너무 무섭다!”
[……아, 이 생퀴 또 이러네.]
“네? 뭐라고요?”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도깨비불처럼 동동 떠다니는 홍영화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하지만 그 누가 알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슬라임 계열의 몬스터가 아주 귀찮다는 것을.
슬라임은 분명 너무 허약해서 유저들이 잘 잡지도 않는 몬스터이지만 뿜어내는 광역 공격의 범위만큼은 고정 S+급 몬스터인 불사조에 버금갈 정도이다.
나처럼 최대 HP가 얼마 되지 않는 가녀린 몸을 가진 사람은 까딱 방심하고 한 눈 팔았다가 그대로 사망이란 말씀.
[데프프픗!]
슬라임 퀸은 자신의 필살기인 ‘푸딩 범벅’을 시전했다.
퐁퐁퐁퐁……
사방팔방으로 날아와 떨어지는 분홍색 푸딩.
하지만 그 공격이 나에게는 고정 S+급 몬스터인 불사조의 ‘멸망주의보’만큼이나 위협적이다.
“으아아아아! 카메라 꺼! 이 자식, 승부를 내자!”
나는 깎단을 움켜쥐고 슬라임 퀸에게 달려들었다.
생사결(生死決)!
퐁퐁퐁퐁퐁……
이내, 나는 이 끈적한 핑크 점액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뼈와 살, 점액이 맞부딪치는 치열하고 끈적끈적한(?) 싸움.
서로의 육체를 찢어발기며 힘 대 힘, 생명 대 생명으로 맞부딪치는 마초적인 전투.
퐁퐁퐁퐁……
“아푸! 이렇게 입에 들어가면 지속데미지가!?”
퐁퐁퐁……
“…라고 할 줄 알았냐! 킁! 어때! 독 있는 콧물은 처음일 거다, 이 자식아!”
퐁퐁……
“이 따위 것! 먹어치워 주마! 힘을 내, 폭식 창자!”
퐁……
“거억~.”
결국 나는 그동안 성장한 스탯을 여과 없이 뽐내며 슬라임 퀸을 사납게 찢어발겼다.
무려 이빨로!
박력! 전율! 벅차오르는 고양감! 나는 성장했다!
“이겨어억……다! 만세에에궤에엑! 나의 승리다…그윽! 소리 질러어거어억어어!”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홍영화의 눈빛은 싸하다.
[……역겨워.]
“방금 뭐라고?”
[뭐가요. 역겨…엉을 딛고 일어선 모습이 아름답다구요.]
“방금 역겹다고 했잖아요.”
[…아, 걸렸네. 진짜 귀는 쓸데없이 밝아서…….]
“……지금 또 뭐라고?”
[자자! 다음 층 넘어갈 준비할게요. 체력 좀 회복하세요.]
홍영화는 잠시 고개를 돌리더니 바닥에 침을 한번 퉤 하고 뱉었다.
[…그리고 그 핑크색 젤 좀 닦으세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알몸에 핑크색 젤이 범벅되어 있으니까 기분 나빠요.]
“사나이끼리 치열하게 대결한 흔적인데 무슨 문제라도?”
[뭐가 사나이예요, 슬라임 퀸인데. 퀸.]
“퀸도 어엿한 한 사람의 사나이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도 퀸이었잖아요.”
[사나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암튼 젤 좀 닦아요! 방송 심의에 걸린다구!]
“자꾸 이 귀여운 점액질들에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슬라임은 1953년, 미국 작가인 조셉 페인 브레넌의 작품 『슬라임(Slime)』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꾸준히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아온 판타지의 단골 몬스터입니다. 결코 외설적인 존재가 아니란……”
[하, 이 사람 진짜 안 되겠네. 저기요- 이 도깨비불 모드 좀 풀어 봐요.]
“풀어 봐? 푸러……바? 앗, 혹시 장난감 플러버와 헷갈리신 건가요? 플러버란 1997년 레스 메이필드 감독,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였는데 슬라임의…….”
[그만! 그만해! 이 지긋지긋한 점액성애자야!]
“크흠, 불쾌하군요! 성애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액체괴물에 대한 말랑적 존중, 찌걱찌걱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저번에도 우리 방송금지 처분 받았단 말이얏!]
아.
그러면 안 되지.
홍영화를 놀려먹는 건 재미있는 일이지만 기껏 촬영한 방송에 방송 금지 가처분 딱지가 붙는 것은 재미없다.
나는 서둘러 망토자락을 집어 몸에 묻은 젤을 닦아 냈다.
데스나이트의 망토가 어째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뭐 아무튼. 이제 최대의 난관을 넘었으니 됐어요. 앞으로는 수월할 겁니다.”
[……하, 왜 1층이 최대의 난관인 거냐고. 아무튼 믿어 볼게요. 고고고~!]
나는 도깨비불 모드인 홍영화를 어깨 위에 올리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지금껏 아무도 발 디뎌 본 적 없던 ‘99층’의 위, 일명 ‘트리플 넘버링’ 구간.
그리고 그곳 너머, ‘불가침의 108층’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