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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75화 (775/1,000)
  • 775화 색정광(色情光) (8)

    ‘날이 추운데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에요.’

    -마이클 잭슨이 자신을 유혹하는 반라의 마돈나에게 했던 말-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수도원에서 들려나오고 있는 것은 에스더의 앓는 소리였다.

    [……그, 그만. 제발 이제 그만 하거라.]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솔거의 목소리는 아직 생생하고 기운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보여 줘요! 더!]

    [으으, 이 색골(色骨) 꼬맹이! 넌 지치지도 않느냐!]

    에스더는 지쳤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명색(名色)이 색욕(色慾)의 화신인 그녀인지라 에스더는 결국 솔거의 요구에 응해 주고야 말았다.

    [젠장! 요 호색한(好色漢) 녀석!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다!]

    에스더는 가죽 자켓의 지퍼를 내리고는 등에 난 날개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솔거가 황홀하다는 듯 에스더의 날개를 어루만진다.

    [배색이 완전……! 아니 등과 날갯죽지는 보색(補色) 관계군요! 과격하면서도 그렇게 튀지 않아요! 채도가 낮기 때문인가? 와!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는 각각 파란색과 검은색인가요? 아니야! 흰색이랑 검은색? 아아! 날개가 빛을 난반사해서? 어떻게 화이트 밸런스를 이렇게 스스로 조절할 수가……! 대단해요! 이쪽에서 보면 분명 파란색과 검은색인데! 마치 ‘파란색 검은색 드레스 논쟁’이 떠올라요! 와아아아! 만져 봐도 돼요?]

    [……벌써 만지고 있지 않느냐.]

    에스더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처음에 자신의 알몸을 보고 마구 흥분하는 것 같기에 장난삼아 ‘이것 좀 만져 봐’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색… 하고 싶어요!’

    ‘호호호, 뭐? 뭘 하고 싶다고? 섹…? 안될 것도 없지. 자 해 보거라.’

    ‘오오! 저, 정말 색칠해도 되나요!?’

    ‘……으, 으응?’

    그 이후로 솔거는 에스더의 몸에서 손을 한시도 떼어 놓지 않았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마치 정교한 유리 세공물을 다루듯.

    심지어 거장의 예술품을 대하는 듯한 경외감마저 실려 있는 손길이었다.

    [와아, 정말 예뻐요.]

    [고맙다.]

    [색깔이요.]

    […….]

    한참 동안이나 에스더의 손과 손등, 팔을 지나 어깨와 가슴, 허리, 배, 다리, 그리고 다시 뿔과 날개, 꼬리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솔거.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던 끝에 그는 해맑게 웃었다.

    [당신은 정말로 색(色) 그 자체군요.]

    에스더는 솔거의 흰 미소를 보자 일순간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짜로 관장하는 색(色)은 사실 그 색(色)이 아니다만.]

    [네? 색이 색이 아니라구요?]

    [음. 아니. 그 색이 맞기는 맞는데. 조금 다른 색이랄까…….]

    색에 능통하기는 한데 뭔가 이런 느낌의 색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색이 아니라 섹…… 아, 아니다. 이만 하자꾸나.]

    에스더는 자세한 설명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솔거의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솔거는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즐거운 기색이었다.

    이윽고.

    파아앗!

    에스더가 날갯짓을 하자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바닥과 천장, 벽, 기둥을 가리지 않고 번져 간다.

    영롱한 빛의 가루들에 의해 대기마저 신비롭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에스더는 자신이 그려 놓은 색색의 무늬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솔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색이 그리도 좋으냐?]

    에스더가 묻자 솔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상의 모든 색들이 다 좋아요. 정말 너무 아름다워!]

    [후후후. 그래. 화이트워싱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너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에스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기둥에 기대어 누웠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솔거가 쪼르르 다가왔다.

    [……뭐냐?]

    에스더가 한쪽 눈썹을 까닥 움직이자 솔거는 쭈뼛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은 역시.]

    [……역시?]

    [당신의 색이에요.]

    말을 마친 솔거는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에스더의 볼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내 살포시 닿는 에스더의 뺨과 솔거의 입술.

    순간, 에스더는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해서 뭐가 닿겠느냐?]

    [엇? 아앗!? 읍!]

    갑자기 고개를 외로 꼬는 에스더의 기습에 그만 솔거의 입술과 에스더의 입술이 맞닿아 버렸다.

    그러자 솔거의 얼굴이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본 에스더는 깔깔 웃었다.

    [하하하! 허여멀건하던 녀석이 이제 제법 봐줄 만한 색을 띄게 되었구나!]

    흰 것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다.

    에스더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제, 제 얼굴색이 지금 다른 색인가요?]

    솔거가 쭈뼛거리면서도 묻는 진중한 질문에 에스더는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어진 솔거의 대답은 그녀를 더욱 더 당황시켰다.

    [그러는 에스더의 얼굴색도 평소와는 다른걸요? 지금은 마치…… 석양처럼 빠알간……]

    이 작은 소년의 눈빛은 지금까지 그녀가 만나 왔던 그 어떤 이의 눈빛보다도 강렬하고 진지하다.

    [……크흠. 흠. 아, 아니다. 내가 착각했다. 너는 여전히 허여멀건한 낯빛 그대로구나.]

    에스더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른 이의 색욕을 피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지만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지금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괜히 머쓱해진 에스더는 솔거를 향해 툴툴댔다.

    [그런데 너 집에 안 가도 되는 게냐? 벌써 며칠이 지났다.]

    [집은 싫어요. 흰색만 봐도 이제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요.]

    [지금껏 잘만 살아온 놈이 할 말은 아니로군.]

    [……그리고.]

    [그리고?]

    에스더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자 이내 솔거가 용기를 낸 듯 입을 열었다.

    [집에 가면 당신이 없잖아요.]

    그 말에 에스더는 잠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뿔끝이 아주 잠시 떨린 것 같다고 느껴진 것은 솔거의 착각일까?

    [크흠! 큼! 어린 녀석이 아주 당돌하기 그지없구나. 커서 뭐가 되려고.]

    에스더는 고개를 팩 돌리며 투덜거렸다.

    색욕을 관장한다는 주제에 꽤나 꼰대 같은 발언이었지만 솔거는 그저 헤헤 웃을 뿐이다.

    에스더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돌기둥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돌이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끈적하게 녹아내린다.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끓이는 것이 내 전문이지.]

    에스더는 액체가 된 돌을 손아귀에 넣고 조물조물거렸다.

    그리고 이내, 작은 펜던트 하나가 에스더의 손바닥 위에서 검은 빛을 내뿜었다.

    솔거는 홀린 듯 걸어가 에스더의 손 위에 있는 펜던트를 집었다.

    그러자.

    스스스스스스……

    텅 빈 펜던트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이 모여들더니 이내 그림 하나가 새겨졌다.

    그것은 바로 에스더의 초상화였다.

    [선물. 내 자화상이다. 마력이 후달려서 스몰 사이즈밖에는 못 만들지만. 집에 가서도 뭐…… 정 할 일 없을 때 가끔 내 생각도 하고 그러거라.]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흥. 사내 녀석이 이런 쬐깐한 것에 만족해하면 못 쓴다.]

    에스더의 말에 솔거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에스더 씨는 큰 그림을 좋아하시나요?]

    [암. 뭐든 클수록 좋지. 그림도, 남자도…… 아, 아니다.]

    [그림은 크면 클수록 좋은 거구나. 남자도 마찬가지인가요? 뭐가 커야 한다는 거죠?]

    [그… 그야. 마음이지. 마음의 크기. 그리고 키도!]

    [아항.]

    에스더는 솔거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손사래를 친다.

    둘 밖에 없는 수도원의 밤이 또다시 깊어 가고 있었다.

    *       *       *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손에 땀을 쥔 채 물었다.

    [SKIP] 버튼을 누르는 것 따위는 옛저녁에 잊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음, 다음 이야기를 듣는 것!

    “뭐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녀 단둘이, 야밤에, 아무도 없는 수도원에서, 그것도 색욕의 악마와! 그리고 또 뭐가 크면 좋다고?”

    빨리 말해! 빨리 말하라고!

    내 다그침을 들은 솔거 노인은 그저 배시시 웃을 뿐이다.

    [그 뒤는 없다네.]

    “거짓말 마! 없긴 뭐가 없어! 뒷이야기를 더 가져와! 아니! 더가 아니라 다 가져오란 말야!”

    [……하는 수 없군.]

    이윽고, 솔거는 색칠 도화지 가득한 골방 중앙에 앉은 채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날 밤, 나는 어른이 되었다네.]

    “조, 조금 더.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요.”

    나는 사정청취를 하는 형사처럼 펜과 수첩을 든 채 말했다.

    이윽고, 솔거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놀라웠다.

    [거기서 머물며 ■■를 ■■■하고 ■■■해서 ■■■■했다가 ■■도 하고 ■■도 하고 ■■■는 안 하고 ■■■■까지는 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하고 ■■해서 ■■했었지.]

    ……?

    ……??

    ……???

    나는 하마터면 솔거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그래, 아무리 NPC라도 상대방은 노인. 경로사상은 있어야지.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대사가 끊기는……아!”

    나는 솔거의 대사가 끊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캡슐은 홍영화를 통해 아랍에서 직구해 온 것.

    그곳은 아직 뎀 윤리위원회의 19금 필터 규제 완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지라 여전히 성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까다롭다.

    그래서 어지간한 것은 대부분 검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으음, 하긴. 뎀이 에로계 게임도 아니고. 아랍 쪽에서는 허가가 날 리 없지.”

    에로계 게임이란 공식 명칭이나 장르, 범주로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나 대부분 CERO 심사를 받은, 선정성을 이유로 D(17세 이상)등급이나 Z(18세 이상) 등급을 받은 게임을 뜻한다.

    혹은 소프륜 심사에서 ‘R-18’ 등급을 받은 게임, 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에서 M(17세 이상) 등급이나 AO(18세 이상) 등급을 받은 게임, 관련 기구나 당국의 심사를 별도로 거치지 않은 동인게임 등, 선정성이 게임의 주된 요소이고 게임을 플레이 하는 주목적이 이런 선정적 요소를 즐기는 데에 주로 치중되어 있을 때 에로계 게임이 되는 것이다.

    ‘아랍 쪽에서 뎀 속의 선정적 요소에 대한 규제가 풀리게 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은 남았지.’

    그런 고로, 아랍에서 직구해온 캡슐 모델을 쓰는 나는 솔거의 대사를 다 들을 수 없다.

    실로 원통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솔거는 씁쓸한 어조로 대사를 이어 간다.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정말로 찰나였지.]

    아무도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이해해 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축복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 후로 어른들에 의해 잡혀와 이곳에 갇혔다네. 그리고 평생을 여기에 갇혀 지냈지. 도중에 한번 몰래 탈출해서 수도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모든 게 불타 버리고 남은 잔해뿐이었어.]

    솔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스더는 어디로 갔을까? 혹시나 그 이후로 나를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무사하긴 할까? 아아, 나는 그날 이후로 그녀의 색(色)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네. 갇혀서 헤어 나올 수가 없어. 아무리 그때 그녀의 색을 재현해 보려고 해도 그저 공허할 뿐!]

    주변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색 도화지들은 그가 평생에 걸쳐 에스더를 향해 표현해 온 애정과 그리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솔거에게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다만.

    ……끼이익! 쿵!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는 그를 등지고 조용히 방을 나와 문을 닫았을 뿐이다.

    *       *       *

    이윽고, 나는 솔거의 첨탑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눈 내리는 설원에 몇 명인가의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택의 주인 모르자니우스, 그리고 그의 식솔들 옆에 서 있는 이는 늙은 하녀장 민친이다.

    모르자니우스는 내게 물었다.

    [어떤가? 솔거 삼촌을 고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솔거 씨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악마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린 사람을 무슨 수로.]

    [구제불능이야 구제불능.]

    [저 광증은 절대로 못 고치지.]

    모든 이들이 전부 다 혀를 끌끌 차는 가운데 맨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는 하녀장 민친의 표정만큼은 복잡하다.

    그리고.

    나는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솔거 씨를 고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애초에 고장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몸을 물들이고 있는 염색 키트의 효과가 다하는 것을 느끼며 화이트워싱 마을 사람들을 등졌다.

    [아앗! 저 자식! 피부색이 변하잖아!]

    [더러운 유색인! 퉷퉷! 당장 쫓아내!]

    [아아아! 지금까지 말 섞은 걸로 정신이 오염되었을 것 같아!]

    [경비병! 당장 화살을 쏘게!]

    호감도가 100에서 다시 0으로.

    그들이 태도가 또다시 180도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로 고장 난 쪽이 누구 쪽일지 한 번쯤은 되돌아보시길.”

    그것이 화이트워싱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였다.

    뭐, 보아하니 들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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