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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69화 (769/1,000)
  • 769화 색정광(色情光) (2)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나는 게임에 접속했다.

    “이번 스테이지는 용자의 무덤이지.”

    ‘용자의 무덤’

    108번뇌(百八煩惱)를 콘셉트로 만들어진 던전이다.

    무려 108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의 던전이자 뎀 세계관의 모든 던전을 통틀어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

    각 층마다 랜덤한 보스 몬스터가 1마리씩 등장하며 그것을 격파해 가며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된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층 / 출현 몬스터의 위험등급>

    108: S+

    91~107: S

    76~90: A+

    61~75: A

    46~60: B+

    31~45: B

    16~30: C+

    01~15: C

    대격변 이후 용자의 무덤에서 드랍되는 아이템이 밸런스를 무너트린다는 이유로 이 안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호칭 특전과 아이템 특전을 주지 않게끔 조절되어서 인기가 시들해진 사냥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의 힘을 증명하고 과시하기를 원하는 용자들로 하여금 꾸준한 방문을 하도록 하는 스테디셀러 던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데 용자의 무덤을 꼭대기까지 솔로 클리어 하는 것은 아직 조금 무리고.”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용자의 무덤에 무작정 도전할 수는 없다.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 닥돌할 경우 예상 성과는 아마도…….

    ‘……107층 정도가 한계이려나.’

    결과가 어느  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세운 세계 신기록 ‘99층’, 일명 ‘더블 넘버링’의 벽쯤이야 우습게 뚫을 수 있겠지만…… 100%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면 도전할 이유가 없지.

    ‘나의 최종 목적은 108층에 살고 있는 고정 S+급 몬스터니까 말이야.’

    그 때문에 나는 오늘 이곳 북방의 설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띠링!

    <북대륙 ‘가혹한 설산’에 입장하셨습니다>

    용자의 무덤의 최정상, ‘불가침의 108층’이라 일컬어지는 구역을 클리어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휘이이잉-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끌어모아 꾹꾹 눌러 눈 벽돌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둥글게 쌓아올려 이글루를 제작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 된서리 엔트를 잡고 얻은 장작으로 모닥불을 만들어 때며,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잉-

    눈보라만 기약 없이 계속된다.

    ‘……오늘은 실패인가?’

    나는 한참을 기다리던 끝에 먼동이 터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나는 어김없이 또 북방의 설원을 찾는다.

    그렇게 새벽이 오기까지 또다시 멍하니 있다가 아무 일도 없이 떠나고, 또 그 다음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죽치고 있기를 여러 번.

    이윽고, 눈보라 속을 응시하던 내 눈이 허옇게 멀어 가기 시작했다.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희게 물드는 현상.

    “……왔다!”

    나는 이글루를 부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아아악-

    이윽고, 강렬한 화이트 아웃(white out)이 나를 덮친다.

    눈보라와 안개로 인해 시야 전체가 하얗게 멀어 버리는 현상.

    이 춥고 광활한 설원 한가운데에서 눈이 멀어 버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초당 일정 %의 체력을 깎아 내는 눈보라에 눈을 멀게 만드는 화이트 아웃까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왜 자기들에게 이런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는가 하고 절망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이야, 드디어 왔네. 화이트 아웃.”

    북방 맵을 돌아다니다 보면 약 1% 확률로 만날 수 있는 자연재해.

    시야가 장기간 멀어 버리는 것 외에는 특별히 스탯에 미치는 디버프는 없지만… 북방의 가혹한 필드에서 눈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발걸음마다 입을 쩍 벌리는 크레바스, 가혹한 서리 폭풍, 시시각각 이빨을 드러내는 몬스터들…… 거기에 맵과 자신의 상태창조차 볼 수 없으니 레이드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화이트 아웃을 만나면 눈을 질끈 감고 눈 속으로 고개를 처박는다.

    그렇게 화이트 아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이글루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로그아웃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때 움직이지.”

    나는 허옇게 멀어 버린 눈으로 설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르르릉…

    시시시시-

    츠츠츠츠!

    곳곳에서 몬스터들의 경계음이 들린다.

    그러나.

    [하잘것없는 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이를 드러내느냐.]

    […호에엥!]

    내 어깨에 앉아 어둠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오즈(와 쥬딜로페) 덕분에 내 근처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은 없었다.

    나는 천연 살충제나 다름없는 이 녀석들을 데리고 설원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틀란둠에서 레흐락의 술을 마셨을 때도 그랬지.’

    원래 맨정신, 맨눈으로는 보지 못하던 것이 상태이상에 걸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윽고.

    나는 설원의 한 외곽에서 한 마을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화이트워싱(Whitewashing)’

    언덕 위에 있는 하얀 집.

    그런 하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만들고 있는 이 마을은 흰 눈 위에 지어져 육안으로는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마저도 눈보라와 화이트아웃 현상이 동시에 일어날 때에만 필드에 잠깐 보이다가 이내 사라지는 히든 마을이기에 일반 플레이어들은 아마 이곳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나는 희게 멀어 버린 눈에 보이는 이 유일한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얼음벽 성채에 도달했을 때.

    [……멈춰라! 그 이상 다가오면 쏘겠다!]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창을 던질 것이야!]

    [누구냐!?]

    잡티 하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흰 성벽 위로 여러 개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시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흰 성벽 위로 정말 극도로 얇은 실선들이 보인다.

    그것은 NPC들의 실루엣이었다.

    백색의 성채를 지키는 경비병들마저 흰 피부, 흰 머리칼을 가졌고 흰 옷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었기에 쉽게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진짜 엄청 하얗네.”

    흑인, 황인, 백인의 문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 백인들의 피부색은 옅은 노란색과 옅은 홍색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들의 피부색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창백한 백색이다.

    보고 있노라면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느낌.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성문 좀 열어 주세요! 외지인입니다! 얼어 죽을 것 같으니 몸 좀 녹일 수 있게 해 줘요! 사랑은 열린 문!”

    그러자 성벽 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무슨 일이래?]

    [히익! 저게 뭐야! 유색인이잖아!?]

    다른 NPC들까지 몰려나와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흰 피부에 흰 머리카락, 심지어 눈동자마저도 흰 사람들.

    거기에 혹시라도 다른 색이 보일 새라 흰 천으로 온 몸을 꼼꼼하게 감싸고 있다.

    마치 이슬람 여자들이 입는 히잡, 혹은 부르카를 떠올리게 하는 복장.

    이윽고, NPC들은 내게 화살, 창, 돌을 던지며 욕하기 시작했다.

    [더러운 유색인! 저리 꺼져! 피부색은 절대적인 것이다!]

    [몸뚱이에 색깔이 있는 것을 보니 악마야! 악마의 씨앗이 틀림없어!]

    [아스모데우스의 사냥개! 쏴 죽여라!]

    백색주의(白色主義).

    그들은 오로지 흰 색이 아니면 모든 색을 다 배척하는 모양이다.

    나는 날아드는 창이나 화살, 돌, 팬티 등등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피카레스크 마스크 덕에 카르마 수치가 거의 0에 가까운데도 마치 카르마 유저 대하듯 적개심을 보이다니.

    “……역시 소문대로군.”

    몸에 흰색 외에 다른 색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접근을 불허한다는 마을의 룰.

    당연히 나는 이런 상황에 대비를 해 놨다.

    “피부색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아니, 그딴 건 아무런 문제도 안 되지.”

    나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과 창, 돌, T팬티를 피해 탭댄스를 추며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이윽고, 손에 정육면체의 하얀 상자가 잡힌다.

    -<정령들의 염색 키트> / 재료 / C

    아주 오래 전, 정령들이 악마들에게 멸종당하기 전에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BOX 속에는 정령들이 친 장난이 그대로 남아 깃들어 있다.

    …열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이것은 플레이어의 몸 색깔을 바꾸게 만들 수 있는 염색약.

    과거 나는 유다희가 설치해 놓은 염색 키트의 함정에 걸려 온 몸의 피부가 핑크색으로 물드는 대참사를 겪었었는데 지금 이게 그때와 비슷한 아이템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특정 색깔을 고를 수 있다는 정도?

    ‘그렇다면 이 염색약의 색깔이 무엇이냐!’

    나는 키트를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이 염색 키트 속에 담겨 있는 염색약은 색깔 코드 ‘##3021’의 하얀색.

    -E: 160

    -S: 0

    -L: 240

    -R: 255

    -G: 255

    -U: 255

    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절대백색’이라 불리는 완벽한 하얀색이다.

    명암비가 무려 15,000:1로서 룩덕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아이템으로 통할 정도.

    츠츠츠츠츠……

    이윽고, 내 몸의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몸의 색들이 전부 빠지고 눈보다도 흰 살결이 드러나게 되었다.

    나의 전신 굴곡을 따라 번지는 설광, 그리고 우윳빛 피부.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에 갈라진 근육 사이사이의 고랑, 보드라운 살결.

    그리고 머리털을 비롯한 모든 털들마저 죄다 한 올 한 올 흰 색이다.

    너무도 희게 변한 내 몸은 설원 위에서도 단연코 눈에 띈다.

    주변의 눈들마저 회색으로 바래 보이게 만들 정도로 블링블링하고 우아한 화이트 톤.

    심지어 드리워진 그림자조차 희게 보일 정도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화이트워싱 성채의 NPC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세상에! 저 아름다운 백색 자태라니!]

    [꺄아아악! 저 남자 좀 봐! 온 몸에 그을린 자국 하나 없어! 너무 멋져!]

    [형님! 점 어디서 빼셨어요! 진짜 섹시하십니다!]

    [어떻게 탄 흔적 하나 없으십니까! 태양을 피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오빠야! 기초화장품 뭐 써!?]

    [횽아야! 치아미백 비법 좀 전수해 줘어!]

    아까와는 180도 뒤바뀐 태도, 실로 열렬한 함성이 나를 반긴다.

    -띠링!

    <성채 경비병 ‘쿠’와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성채 경비병 ‘클락스’와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성채 경비병 ‘클랜’과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마을 처녀 ‘레이’와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마을 총각 ‘시즘’과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마을 변태 ‘네이키드’와의 호감도가 MAX 상태입니다!>

    .

    .

    단지 피부색 하나 바꿨을 뿐인데 순식간에 성채 위에 있는 모든 NPC들과의 호감도가 만땅이 되었다.

    [당장 저 하이얀 분을 안으로 고이 모셔 나빌레라!]

    [내가! 내가 문을 열어드릴 거야!]

    [살결 한번 만져 보게 해 주세요! 제발! 핥기라도…!]

    시끄럽게 들려오는 환호성.

    쩌어어어억-

    아까까지만 해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자동으로 오픈되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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