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68화 (768/1,000)

768화 색정광(色情光) (1)

강남에 있는 한 호텔.

[영원한 세계는 없다고? 지금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해! With the collapse of the The thin red line, all that changed! Log In In In In In In! 내 손을 잡아!]

[잘 만큼 자지 않았어? 소중한 지금을 누워서 보낼 거야? 일어나 뛰자! With the collapse of the Interstellar, all that changed! Log Out Out Out Out Out Out! 내 손을 잡아!]

뎀 걸그룹 유닛 힘민체의 테마곡이 은은하게 흐르는 라운지 한켠에 작고 우아한 카페가 있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카페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카페 안을 힐끔힐끔 응시하고 있었다.

“…….”

그곳에는 이목을 확 끌 정도의 미녀 하나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다.

사슴같이 커다란 눈. 오똑한 코. 통통한 볼살.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

바로 홍영화였다.

그녀를 본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와, 대박. 홍영화 아냐?”

“진짜 예쁘다.”

“사인 해달라고 해 볼까?”

그때.

“앗! 여기야 여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오는 홍영화.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들어 반기는 이는.

“아 진짜. 선글라스라도 좀 쓰고 나오던가. 사람들 다 쳐다보게.”

고인물. 바로 나다.

*       *       *

홍영화는 나를 보며 연신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나는 표정을 구겼다.

선그라스에 마스크, 모자까지 쓰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다 홍영화 때문이다.

그녀는 주차장에 있는 내 차를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네.

“오~ 차 좋은 걸로 바꿨네.”

“500 주고 산 중고야.”

“전에 그 슈퍼카들은 다 어쩌고?”

“전부 팔아 버렸지. 이제 뭐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한창 뜨기 위해서 노력할 때나 비싼 차에 명품 옷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이미 뜨고 난 뒤에는 굳이 그렇게 노력해 가면서까지 사치 부릴 필요는 없다.

나는 차에서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를 꺼내 홍영화에게 장착시켰다.

머리가 워낙 작아서 내 모자를 거의 코까지 눌러 쓴 홍영화는 해맑게 외친다.

“와,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무슨 연예인 된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를 다 알아보나 봐. 이렇게 변장했는데도 시선이 느껴지는 거 보면.”

“그거야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게 이상해서 보는 거지. 남들 시선에 둔한 건 여전하네.”

홍영화는 현재의 나보다 4살 연상이기는 하지만 회귀 전의 나이까지 따지면 한참이나 연하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나와 마주앉은 홍영화는 옛날 이 거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와, 그때 나 완전 신입 PD였는데 말야. 내 인생을 바꿔 준 게 너인 거 알아?”

“내가 뭘.”

“네가 막 여러 플랫폼에서 ‘BJ 고인물’이라는 예명으로 뜨기 시작할 때 말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겁도 없이 너를 컨택하겠다고 막 나댔었잖아.”

“아, 확실히 그랬지.”

홍영화 같은 신입 직원이 나 같은 초 거물 스트리머를 컨택 성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주변인들이 전부 다 놀라자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그때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때는 너 같이 대단한 사람이 내 쪽지에 반응이나 보이겠어?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왜 답장 해 줬던 거야 나한테?”

“뭐, 나도 LGB 방송국의 애청자였으니까. ‘켠왕’만큼 재밌는 프로가 또 없었거든. 지금이야 메이저 돼서 눈치 좀 보지만 그때는 진짜 콘텐츠가 빠꾸 없었잖아. 재밌었지.”

“아하하하, 맞아맞아~ 그때 내가 너한테 뭐라고 보냈더라?”

“여기 그때 받았던 메일 있어.”

나는 핸드폰을 열어 홍영화에게 그녀와의 첫 메일을 보여 주었다.

<안녕하세요 스트리머님. 저는 LGB 방송국의 홍영화 사원으로 ‘켠김에 제왕까지’의 PD를 맡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고인물 님의 플레이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 이렇게 게스트 출연 의사를 여쭙게……>

그러자 홍영화는 얼굴이 빨개지며 비명을 지른다.

“꺄악! 내가 이렇게 건방진 짓을 했다니! 우리 2차 대격변의 영웅 이어진 씨에게!”

“……고만 해.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위상이 높지도 않았다고.”

“맞아. 그러고 보니 나도 많이 컸다. 그치?”

홍영화는 까치발을 들어 내 키에 견주며 자기 정수리와 내 턱 끝을 손바닥으로 샥샥 비교한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거의 달라진 게 없는 홍영화의 맹한 모습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 딱 카페 들어갔더니 빨대 입에 물고 아에이오우~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뭐 이런 사람이 미팅에 나왔지 하고.”

“아씨! 그때는 발음 꼬일까 봐 연습한 거라니까! 턱 근육 풀려고! 초면에 야무지게 보여야 할 거 아냐!”

“그때 아마 긴장해서 2시간 30분인가 일찍 왔었지 아마?”

“왜 자꾸 과거를 들춰!”

빽 소리치는 홍영화. 그녀를 보자 새삼 지나간 세월이 신기하다.

나는 그녀에게 받았던 명함을 슬쩍 꺼내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말단 사원이던 홍영화는 현재 LGB에서 가장 중요한 뎀 분야의 메인 캐스터가 되어 있다.

초대 ‘뎀걸’이라는 명예로운 호칭도 그녀와 함께하고 있었다.

‘뭐 회귀 전에도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지.’

홍영화가 사회적으로 잘 나가게 되는 것은 회귀 전이나 후나 여전하다.

‘예쁜 외모+백치미+게임에 대한 열정과 전문지식 = 초인기’

이건 뭐 거의 공식과도 같으니까.

평소엔 어리버리하다가도 게임에 관련된 내용만 나오면 엄격, 근엄, 진지, 빠삭해지는 홍영화.

그녀는 그 특유의 ‘갭 모에’ 때문에 현재 수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남자친구는 있어?”

그러자 홍영화가 화들짝 놀란다.

“……어, 어떻게 알았어!? 비밀연애인데!”

오? 있나?

내가 알기로 회귀 전의 홍영화는 게임과 일에 빠져 사느라 서른 중반 때까지 남자친구 한 번 못 사귀어 봤다고 했었는데.

이번 생에서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안도감을 박살내 버리는 홍영화의 선언이 있었다.

“소개할게! 내 남친이야!”

그녀가 내미는 핸드폰 안에는 뎀의 유명 인물인 ‘록의 3왕자 잘(JAL)’씨가 있다.

“‘록’이라는 나라의 3왕자라…… 이건 NPC잖아? 그것도 오래 전 사람이라는 설정이라 게임 내부에서도 초상화로만 존재하는.”

내가 묻자 홍영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랑 아빠가 나보고 제발 눈 좀 낮추라고. 그러니까 남친이 안 생기는 거라고 계속 그러잖아.”

“근데?”

“그래서 눈을 한 차원 낮췄지. 2D 남친을 만들었어.”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뭐… 당신 인생이지.”

“뭐야 그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은! 잘 왕자님이 얼마나 잘생겼는데! 진짜 딱 내 취향! 마이 최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나온 목적이나 빨리 밝히기로 했다.

“예쁜 사랑 하시고. 그 왜, 구해달라는 거는 구했어?”

“아! 응응! 물론이지. 내가 또 해외 직구 진짜 잘하거든.”

홍영화는 내 소매를 붙잡고 자기 차로 끌고 갔다.

그녀의 취향은 커다란 SUV, 트렁크에는 물건들이 가득 적재되어 있다.

트렁크 문을 여니 낚싯대, 낚시가방, 통발, 아이스박스, 낚시의자, 코펠 등의 캠핑도구, 대형 랜턴, 녹아서 눌러 붙은 계피맛 사탕봉지, 장화, 목장갑 등등…….

“우와, 안에 진흙 말라붙은 것 봐. 아저씨야?”

“아하하하하- 내가 차 청소를 잘 안 해서.”

홍영화는 잡동사니들을 옆으로 후두둑 후두둑 치우고는 이내 커다란 박스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게임 캡슐에 부착하는 헬멧이었다.

‘ألعاب خوذة’

아랍어로 쓰여 있는 사용설명서.

그렇다. 이것은 아랍에서 구매해 온 게임 캡슐이었다.

홍영화는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근데 왜 아랍 버전의 게임 캡슐을 사려고 하는 거야?”

“으음. 거기가 성적으로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곳이라서.”

“……엥?”

홍영화는 해소되지 않고 꼬리만 무는 의문들에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그녀의 맹한 표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고정 S+등급 몬스터를 노리고 있는 나, 그런 내 목표와 지금 이 아랍에서 직구한 게임 캡슐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홍영화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랍에서 제작한 이 캡슐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홍영화에게 물었다.

“요즘 생각하고 있는 방송 콘텐츠가 있는데 내 개인 방송 장비들로는 화질에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협조 좀 해 줄 수 있나?”

“아 당연하지! 이번에 우리 조부장님이 이사 된 거 알지? 빵빵하게 밀어 줄게. 뭐든 말만 해!”

조태오 부장이 이사직에 취임했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나 보다.

홍영화는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신뢰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드러누운 채 코만 파도 좋다고 할 것 같은 기세는 여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기획한 콘텐츠를 말해 주지.”

“응! 응! 빨리! 빨리! 하뤼업!”

나를 향해 연신 손짓하는 홍영화.

그리고 나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콘텐츠를 제시했다.

“용자의 무덤. 다시 간다.”

그 말에 홍영화의 얼굴이 흥분과 환희의 빛으로 가득 찬다.

나는 이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엔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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