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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66화 (766/1,000)
  • 766화 별들의 전쟁 (4)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한때 기무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2018년 이후로 명칭이 바뀐 군 조직이다.

    주 업무는 군사 보안 지원, 군 방첩, 군 관련 첩보 수집 및 처리, 군 내부의 범죄 수사 등의 임무. 이 때문에 군 내부 범죄에 대해 수사권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군 간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오늘, 77사단을 방문한 이는 그 조직 중에서도 최정점에 서 있는 존재.

    군사안보지원사령관 장태경 중장.

    무려 별이 세 개다.

    마른침 삼키는 소리.

    77사단장 노열식 준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별 하나와 별 세 개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중장은 대한민국을 탈탈 털어도 34명밖에 없으며 극도로 희귀한 대장 계급을 사실상 제외한다면 국군의 최고 계급이다.

    어지간한 작전사령부급 부대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별 중의 별.

    두두두두두두-

    장태경 중장이 타고 온 헬기 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노열식 준장은 자기 전용 검은 세단이 헬기 바람에 의해 더러워지는 걸 힐끔 바라 보았다가 다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장태경 중장이 헬기에서 내린다.

    “허허허. 뭘 그렇게 다 나와 있어요.”

    그는 주위에 늘어선 간부들을 쭉 돌아보았다.

    기껏 차려입은 A급 복장들이 헬기 바람에 모두 엉망이 되었다.

    장태경 중장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명 한 명의 옷을 손으로 직접 툭툭 털어 주었다.

    물론 그의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중위 급 이하, 중사 급 이하의 간부들은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노열식 준장이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단결!”

    “어어, 그래요. 단결.”

    “겨, 경황이 없었던지라 환영 경례식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어서 병사들을 집합시켜서…….”

    “아냐. 아냐. 괜찮아요. 됐어.”

    장태경 중장은 손사래를 휘휘 치고는 인자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뒤로 귀신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민간인 감찰실장이자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인 장진혁 검사, 안보지원사령부 서열 2위 참모장인 김철현 해군소장이 보인다.

    이 3명의 위엄이 뿜어내는 압력만으로도 노열식 준장은 짓눌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쩐 일로 사령부가 통째로 왔지?’

    눈앞의 3명이 왔다는 것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통째로 방문한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이번에 새로 진급식을 완료한 장태경 중장은 원래 특전사 부대에서 장기간 복무했으며 엄청나게 깐깐하고 엄격한 원리원칙주의자라고 들었다.

    거기에 새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몸을 사리고 조심하려는 경향, 그리고 어서 빨리 실적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으니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노열식 준장은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애써 미소 지었다.

    “일단 관저로 가셔서 시원한 음료 한 잔 하시죠. 모시겠습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요. 그냥 부대나 한번 둘러보러 온 거니까.”

    장태경 중장의 말에 노열식 준장은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쌩뚱맞게 변방에 있는 이 77사단에는 왜 왔단 말인가? 진짜로 둘러보러?

    노열식 준장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장태경 중장이 말했다.

    “그나저나. 노 준장은 게임 뭐 하는 거 있어요?”

    장태경 중장이 묻는다.

    노열식 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딱히 하는 게임은 없습니다.”

    “그래요? 거 인생 재미없게 사시네.”

    “예?”

    “아닙니다. 허허허.”

    장태경 중장은 파이프를 꺼내 하나 물었다.

    그리고 선글라스 밑으로 눈빛을 빛냈다.

    “아니, 일과 시간이 끝났는데도 저기 연병장에 병사들이 있네요?”

    “아아, 애들이 워낙 활기차서요.”

    “운동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잡초 뽑는 것 아닙니까?”

    “아아, 그게 부대 미화 사업을 일종으로…… 전 장병이 하나 되어서 아름다운 부대를 만들고자…….”

    노열식 준장이 진땀을 흘리며 하는 말에 장태경 중장이 껄껄 웃었다.

    “우리 노 준장 일 열심히 하는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요.”

    “아앗. 가, 감사합니다!”

    뜻밖의 칭찬에 노열식 준장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 뒤에 있던 모든 간부들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그때.

    장태경 중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렇게 일과시간 이후에도 작업에 동원되면 병사들이 맘 편히 게임하고 놀 틈도 없겠어요.”

    “예? 아아, 아닙니다. 평소에는 캡슐방을 개방해서 병사들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이야, 77사단은 병사들 복지가 잘 되어 있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노열식 준장은 헤헤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장태경 중장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

    “혹시 그 캡슐방 내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노열식 준장이 멍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장태경 중장은 연병장에서 잡초를 뽑던 병사 하나를 부른다.

    “친구는 계급이 어떻게 되니?”

    “다, 단결! 상병 김철현! 다음 달에 병장으로 진급합니다!”

    “오. 그래그래. 군생활 거의 다 했구만. 한데 왜 쉬는 시간인데 여기서 잡초 뽑나?”

    “자, 자발적으로 부대 미화를 위해 전 중대원이 힘쓰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 그래도 그 시간에 캡슐방 가서 게임 하는게 더 좋을 텐데.”

    말을 마친 장태경 중장은 눈앞의 상병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 철현이. 평소 부대원들이 쓰는 캡슐방이 어디니?”

    그러자 김철현 상병은 고개를 돌려 막사 뒤편 후미진 곳에 있는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노열식 준장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       *       *

    장태경 중장은 캡슐방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으며 다른 간부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허허허, 자네는 게임 하나? 응? 레벨이 몇이라고? 저런, 허접이구먼~ 젊은 사람이 그렇게 레벨이 낮으면 쓰나~”

    옆에 있던 대대장들과 농담따먹기를 하던 장태경 중장은 이윽고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컴한 방 안에 듬성듬성 놓여 있는 캡슐들이 보인다.

    장태경 중장은 캡슐들을 한번 쭉 돌아보았다.

    “허허허, 그렇구만. 이 모델을 쓴단 말이지? 조금 구형이긴 해도 스펙이 괜찮지.”

    “아아, 사령관님 게임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어어, 뭐 가끔 하지. 잘 하진 못하고, 잘 하는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해~”

    장태경 중장은 캡슐들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런데 노 준장. 여기 있는 캡슐들이 다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내규 상 이 건물의 넓이에는 용적이 제한되어 있어서요.”

    말꼬리를 흐리는 노열식 준장이다.

    그런 그에게 장태경 중장이 한번 더 물었다.

    “한데 발주 물량을 보면 여기 있는 캡슐보다 원래 더 많아야 정상인데?”

    “아… 아아… 그것이. 막사를 신축할 때 넓이를 잘못 계산해서 그만 사소한 주문 미스가 났던 모양입니다. 뭐, 군 내부 문제도 아니고 외부 업자의 잘못이니…….”

    “그럼 좁아서 밖으로 빼놓았다는 캡슐들은 어디에 있나?”

    노열식 준장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아! 혹시나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따로 보급창고에 빼 두었습니다.”

    “오호 그런가? 그럼 그 모델들도 한번 구경해 보자고. 허허허- 병사들에게 줄 걸 왜 거기다 쌓아 놨어.”

    장태경 중장은 주임원사를 데리고 곧장 캡슐방을 빠져나가 옆에 있는 보급창고로 향했다.

    주임원사가 막 보급창고의 문을 열려고 할 때.

    행보관이 짐짓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노열식 준장과 눈을 맞춘다.

    “어허- 이거 자물쇠 뭔가? 군수병!”

    보급창고에 있는 묵직한 자물쇠 두 개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분 뒤, 연병장에서 잡초를 뽑던 군수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단결! 일병 박진규!”

    “어어 그래, 진규야. 보급창고 열쇠 A랑 B좀 가져와라.”

    “그, 그게……”

    행보관의 눈빛을 받은 박진규 일병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그만 잡초를 뽑다가 보급창고 열쇠를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노열식 준장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의 빛이 어린다.

    뒤에 있던 주임원사는 노열식 준장에게 윙크를 해 보였고 행보관은 그런 주임원사에게 슬쩍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괜히 사단장과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주임원사와 행보관의 눈치까지 받은 박진규 일병만 울상이 되어 몸둘 바를 모르고 있다.

    노열식 준장이 난처한 웃음을 머금고는 짐짓 아쉽다는 듯 말했다.

    “사령관님. 지금 병사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보급창고 개방이 조금 문제가 있겠습니다. 일단 관저로 가셔서 땀 좀 식히신 뒤에 열쇠를 찾고…….”

    그사이에 재빨리 밖으로 나가 모자란 캡슐들을 사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허허허- 괜찮아. 열쇠가 없으면 좀 어때.”

    너털웃음을 짓던 장태경 중장.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허리춤에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빼들었고 그 자리에서 보급창고 자물쇠를 향해 두 발을 갈겨 버렸다.

    뻥- 따앙!

    팍 튀는 불똥과 함께 자물쇠 두 개가 박살이 나 흩어졌다.

    “…….”

    전 간부들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내 장진혁 검사와 김철현 소장이 보급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장태경 중장은 껄껄 웃었다.

    “연대급 이상의 지휘관들은 이게 좋아. 실탄 휴대가 가능하니까 말이야. 아이쿠? 근데 아무데서나 막 쐈다고 뭐라고 한 소리 들으려나? 뭐, 탄약 회수는 개별적 확인도 어렵고 하니까 별일 없겠지? 응? 노 준장?”

    그 말에 노열식 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얼어붙는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저 온화한 미소 속에는 무시무시한 광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오늘 이곳 77사를 방문한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님을.

    이윽고, 군홧발로 창고를 헤집고 들어간 장태경 중장은 텅 비어 있는 창고 안을 보게 되었다.

    분명 창고의 재고 목록에는 신형 캡슐 35대, 구형 캡슐 42대가 적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윽고, 장태경 중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그와 동시에.

    싸악……

    이곳에 모인 모든 군 간부들의 군생활도 싸늘하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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