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64화 (764/1,000)
  • 764화 별들의 전쟁 (2)

    <군납용>

    ……이것 봐라?

    군대에서 국군 장병들 쉴 때 쓰라고 국방비 예산으로 대량 구입한 캡슐들.

    그것들이 왜 여기 민간에 있단 말인가?

    군납품들은 세금이 붙지 않아 무척 저렴하다.

    월급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다가 소중한 2년을 국가에 헌납하는 군대 장병들을 위한 제품이니만큼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을 민간인이 몰래 싼 값에 가져다가 다른 민간인에게 팔고 그걸 또 장사 수단으로 쓴다고?

    “이런 날도둑놈 같은 것들.”

    이마에 절로 핏줄이 섰다.

    2년을 국가에 봉사하는 장병들을 위한 복지를 도둑질해다가 자기 잇속을 채우는 놈들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애초에 세금이 붙지 않아 가격이 훨씬 저렴한 군납품을 민간으로 빼돌려 판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것이니만큼 큰 중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납품들은 일반 시중에 판매가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매해서도 안 된다.

    군 관계자들이 싸게 사서 되파는 것을 막기 위해 디자인부터 다르게 해 놓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납품을 몰래 빼돌려 암시장에 팔아먹는 경우는 빈번하다.

    바로 지금 팡팡캡슐방의 경우도 비슷한 모양.

    유창 역시도 화가 나는지 내게 다른 서류들을 보여 주었다.

    꽤 많은 양의 사진 자료들과 데이터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경찰에 신고도 하고 국방부에 민원도 넣었거든요.”

    “그래?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변화가 없어?”

    “예. 답변이 오긴 왔는데…….”

    유창은 국방부의 답변을 보여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국세행정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접수하신 민원(1AA-9902-****)이 다부처 민원으로 설정됨에 따라 현 서에도 배정되어 국세청 소관사항에 대하여 검토……피신고자의 면세 군납제품 횡령과 불법 유통에 대한…… 이는 탈세제보에 관한 사랑으로 민원처리법 제21조제8호(사인간의 권리관계 또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사항)에 따라 현 부처를 통해 처리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국세청 탈세제보관리규정에 따라 별도 처리, 통지…… 별도로 업무처리 담당자가 지정되어 탈세제보 처리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앞으로도 국세행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뭐라는 거야 이거?”

    “그냥 바쁘니까 기다려라 같습니다. 실제로 아무런 조치도 없는 실정이고요.”

    유창은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민원이 안 먹히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캡슐 제조사의 전 고위간부를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혹시 팡팡캡슐방이라는 곳 아냐고.”

    “뭐라던데?”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네들은 일반유통과 군대유통에 선을 딱 그어두고 애초에 군대에 납품하는 것은 민간 시장에는 절대 풀지 않는다고.”

    “흐음. 그렇다면 제조사는 문제가 없겠고. 일단 군대로 한번 들어갔던 게 슬쩍 민간으로 풀려나온 거라면 군 간부가 문제겠네.”

    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팡팡캡슐방 찾아가서도 직접 물어봤습니다.”

    “뭐라고?”

    “군대 제품을 왜 파냐고요.”

    “그러니까 뭐래?”

    “자기들도 뭐 어디서 정당하게 사 왔다고 발뺌을 하는데, 장부 보여 달라니까 영장 가져오라던데요.”

    유창의 목에 핏대가 섰다.

    “인터넷에도 보면 캡슐 파츠들을 따로 팔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옛날에 PC방에서 컴퓨터 부품 팔았던 거랑 비슷하네.”

    “예. 그것들도 전부 싹 군납용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그 홈페이지는 신고해 봤어?”

    “예. 그런데 신고당해서 판매금지 먹으면 또 새로운 페이지 만들고, 문제없는 제품에 덤으로 얹어서 1+1행사로 팔고. 어떻게든 팔아먹더라구요. 이번에는 해외 SNS계정을 사서 거기에다도 홍보하고 판매하던데. 진짜 바퀴벌레 같은 놈들입니다.”

    “국방부 민원은?”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걱정마라. 우리도 그 문제를 안다. 차차 보완할 계획이다…… 라고 매크로 돌리던데요. 복붙 답변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이거 열 받는 일이다.

    심지어 유창은 녹취록도 가지고 있었다.

    화가 난 유창은 저번 주쯤에 팡팡캡슐방에 직접 찾아가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마침 내부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직접 현장에 나와 있던 사장은 딱 봐도 건달처럼 보이는 인간이었다나?

    “말하는 것 한번 들어보십쇼 형님, 아니 회장님.”

    유창은 주먹을 파르르 떨며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팡팡캡슐방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군납용이라고 적혀 있던 스티커요? 그거 다 뗐는데 아직 남아 있나? 하여간 알바 새끼들은 좋은 말로 하면 들어 처먹지를 않아서…… 개, 돼지 다루듯 욕하고 때려야 일을 똑바로 하지 쯧쯧.]

    나이도 꽤나 먹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말에서부터 천박함이 묻어난다.

    [거 너무 땍땍거리지 마슈. 유통 상 실수로 군납 스티커가 붙어 버린 거라서 우리도 떼느라 애먹었으니까. 원래 군납 아니에요 저거. 그냥 시중에 팔리는 정품하고 성능 똑같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캡슐 제조사인 글루코민번에서는 아예 민간용과 군납용의 디자인을 다르게 만들었다고 했고 팡팡캡슐방의 캡슐들과 파츠들은 누가 봐도 군납용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유창이 그 점을 따지자 이내 팡팡캡슐방 사장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온다.

    [아, 예. 뭐 신고하시게요? 하세요~ 우리에게 물건 떼 주시는 분이 장성급 되시는 분이예요. 뭐 일반 병사 나부랭이한테 받는 줄 아시나.]

    그리고 숫제는 충고까지 하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정의로운 것 같지? 지랄 마, 네가 하는 짓거리는 그냥 선량한 자영업자 죽이기야. 딱 보니까 너도 자영업자 아냐? 다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거니까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살어~ 보니까 저번에 민원 넣었던 것도 너 같은데…… 그딴 무의미한 짓 해 봤자 세상은 안 변하거든. 그냥 한 사람의 원한만 사는 거야. 그런다고 네 삶이 나아져? 그런 좁쌀만 한 심보와 그릇으로 뭘 하겠냐? 내가 수완 좋게 장사해서 돈 버는 게 불만이면 넌 장사 때려 쳐야 돼. 보고 배울 생각은 못할망정, 에이 쯧! 이래서 사업자의 그릇은 따로 있는 거야~]

    나는 중간까지만 듣고 녹음기를 껐다.

    “……얘는 진짜 노답이네. 안 되겠다.”

    내 사업장 옆에 사업장을 연다고 해도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가격 경쟁 붙는다면 나는 자신이 있다.

    이미 거의 최저라서 더욱 가격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만큼 서비스를 고품질로 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탈세에 횡령까지 저질러서 덤벼온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조져야겠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놈에게 자비란 필요 없다고.

    그러자 유창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공무원이나 군인들은 대놓고 귀찮아하고… 뭐 이놈 빽도 장성급 군인이라니 나름 상당한 모양인데.”

    하기야,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리도 당당한 것이겠지.

    드레이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한국의 군 형법 체계는 조금 까다롭더군. 검사, 판사 업무를 담당하는 군법무관은 수사나 영장 청구, 형 집행까지 모두 소속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구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사단 법무참모가 사단장의 비리 수사 허락을 사단장에게 구해야 하고 사단장을 수사하고 체포할 권리는 사단장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지. 그러니 어떻게 첩보 보고를 하고 수사개시 보고를 하고 수사를 하고 체포영장 청구를 하고 체포를 하고 재판 개시 보고를 하고 재판을 하고 형 확정 보고를 하고 형을 집행할 수 있겠나? 과정도 이리 까다로운 것을.”

    군 내부의 갑질, 횡령, 폭행, 배임, 심지어 살인까지도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군형법 체계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가 룰을 지키지 않는 자라면 나 또한 규격 외의 방법을 쓸 수밖에.”

    나는 턱을 한번 쓸었다.

    자고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적의 뒷배가 장성이라면 나도 장성급 인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계급은 계급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그러자 마태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근데 주변에 군인 인맥이 있으십니까? 그것도 장성 급으로.”

    “뭐, 잘 찾아보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

    내 두루뭉술한 대답에 마태강 뿐만 아니라 유창과 드레이크까지 고개를 갸웃한다.

    한편. 나는 사건의 개요들이 적힌 보고서와 사진들, 그리고 녹취록을 메일에 첨부했다.

    그리고 재빨리 인터넷에 접속해 한 카페로 들어갔다.

    유창, 드레이크, 마태강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신고하신다고 하셨으면서 카페는 왜 들어가시는지?”

    “엇? 어진, 거기는 네 팬카페 아닌가?”

    “요셉이 형이 현 회장으로 있는 덜렁교로군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그인에 열중하기 위해서다.

    어느 팬카페가 안 그러겠냐마는 이곳 ‘덜렁교’ 팬카페는 마동왕 팬카페인 ‘마교’와 하루가 멀다 하고 사이버 전쟁을 벌이는 곳.

    당연히 보안이 삼엄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팬카페들과 다르게 무려 6단계의 보안을 거쳐야 비로소 로그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설명에 태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근데 저번에 키스 사건으로 마교와 덜렁교는 휴전을 맺은 것 아닙니까?”

    그러자 드레이크가 짐짓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헛! 크흠! 그렇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입술 앞이 선하게 기억이, 아니 눈앞이 선하게 기억이 나는군. 그 뒤로 마교와 덜렁교가 싸우는 일이 적어졌다고 뎀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도 축하가 자자했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겉보기에는 그렇지.”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붉은 꽃도 십 일을 가지 못한다는 말.

    마교와 덜렁교의 화해 무드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딱 매스컴이 다른 이슈로 관심을 돌릴 정도의 시간.

    “3일 뒤에 빗속의 대난투가 있던 거… 너희는 모르지?”

    마치 누가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까를 두고 싸우는 친남매처럼, 마교와 덜렁교는 불과 3일 만에 거한 전투를 치렀다.

    차들도 운행하지 못하는 극악한 폭우. 그 재해 앞에서 마교와 덜렁교는 서로의 애정을 증명하기 위해 댄스 배틀을 펼쳤는데.

    ‘……글쎄, 그걸 과연 댄스배틀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춤 대결 치고는 상당한 수의 인원이 탈진, 복통, 저체온증, 근육통 등으로 실려 나갔는데 고작 스포츠 경기였다는 유다희의 보고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 후 마교와 덜렁교 측 모두에서 각각 마동왕과 고인물로부터 ‘악성 개인 팬 엄벌 공지’를 전달받았기 때문에 전투가 장기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문에 전투가 음지화되었단 것이다.

    덕분에 지금 인터넷은 마교의 여론전인 ‘마북공정’, 덜렁교의 여론전인 ‘덜사 왜곡’이 한창이었다. 디도스 공격과 해킹들은 당연한 얘기고.

    “……끙.”

    나는 보안 로그인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1단계, 아이디, 비밀번호 입력

    2단계, 데일리 고인물 퀴즈

    3단계, 후원내역 인증 (나는 패스)

    4단계, 덜렁교 전용 OTP

    5단계, 고인물 인증센터에서 사용하는 공인덜렁인증서

    6단계, 고인물의 마지막 행사 장소를 도로명주소로 입력

    5분이나 들여 결국 로그인에 성공한 나는 뻐근해진 손가락을 우득- 하고 꺾었다.

    지켜보던 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 보안 절차.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인가…….”

    “와…… 저 같으면  그냥 안 들어가요.”

    “회장님. 자동 로그인 기능은 없습니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팬카페 회원들은 지금도 보안이 너무 허술하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실정이란 말이지.

    그때, 유창이 내게 물었다.

    “근데 지금 팬카페 들어가시는 이유가 뭡니까, 형님?”

    “아아.”

    나는 그의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짧게 입을 열었다.

    “간만에 정모 한번 열어 볼까 해서.”

    어차피 마동왕도 세계리그 우승 기념으로 팬미팅 한번 열기로 했으니 고인물도 2차 대격변 기념으로 팬미팅 한번 열 때 됐다.

    타닥- 타닥-

    “정모를…열…겠…읍니…다……. 횐…님덜……이 아기다리…고 기…다렸던……히읗 히읗 쉼 쉼표 쉼표.”

    나의 독수리 타법에 드레이크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진! 그 볼품없는 타자법은 무엇인가! 내 눈이 썩는다! 원래 타자 잘 치지 않나!”

    아 뭘 모르네. 팬카페는 이런 게 맛인데.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독수리 타법에 열중했다.

    “꿈 많은……우리 덜렁이들……여기 여기 모여라~!”

    탁-

    짧은 엔터와 함께. 팡팡캡슐방을 향한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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