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63화 (763/1,000)
  • 763화 별들의 전쟁 (1)

    “창이 있냐?”

    나는 캡슐방 안쪽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정장을 입고 있는 유창이 부리나케 뛰어나온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회장은 무슨 또.”

    내가 옆구리를 툭 치자 유창은 씩 웃는다.

    “이제는 어엿하신 사업체 회장님 아니십니까. 제가 언제까지나 철없게 형님형님 할 수는 없죠.”

    동시에, 녀석은 나를 향해 새로운 보고서를 올린다.

    “요 옆 지구에 대형 캡슐방 들어온 것 보셨습니까? 8층짜리. 팡팡캡슐방 그거요.”

    “어어, 팡팡 봤다. 엄청 크더라. 할인도 많이 하고. 그리고 뭐, 캡슐들도 다 최신형에 엄청 좋은 모델이라고 광고하던데?”

    “아 캡슐 모델이요? 형님, 아니 회장님 혹시 그거 자세히 보셨습니까?”

    “아니, 건물 안으로는 안 들어가 봤어. 그냥 밖에 현수막이랑 바람풍선만 보고 오는 길이야.”

    유창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안에서 드레이크와 마태강이 걸어 나왔다.

    유창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 그래도 옆 캡슐방 캡슐 모델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식견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두 분 헤비 게이머 모시고 얘기를 들어봤거든요.”

    그러자 옆에 있던 드레이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한 허위광고다.”

    “맞아요. 직접 플레이 해 보니 과장이 너무 크더라구요.”

    마태강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이크의 말에 동감했다.

    드레이크와 마태강은 내게 옆에 새로 생긴 경쟁 캡슐방의 캡슐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가상현실 헬멧 내부의 렌즈와 스크린의 해상도는 높다. 하지만 해상도라는 게 무조건 높다고 능사는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해상도는 ‘화질’만 뜻하는 게 아니니까.”

    “요즘 캡슐사들 경쟁이 너무 과도하다 보니 해상도라는 용어의 실제 뜻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뜻이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문제죠.”

    “맞다. 해상도는 엄밀히 말하면 ‘화소 밀도’와 ‘시야각’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통해 정의해야 한다.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있으니 과장 광고지.”

    나는 마태강과 드레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유창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회장님. 제가 알기로는 캡슐에서 뇌에 그…직접 전달하는 거 아닙니까? 시각 정보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

    나는 손을 빙빙 돌렸다. 그러자 유창의 눈이 내 손끝을 따라  잠자리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파일럿들이 받는 중력가속도 훈련이랑 비슷한 거야. 일반인들은 캡슐에서 바로 전달되는 신호를 받으면 오히려 과한 정보량에 멀미를 일으킬 수 있다고. 왜 먼 옛날에는 게임이 2D가 아닌 3D라는 이유로 멀미를 하던 사람들이 있다고 했잖아.”

    “아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 말씀은 적응하고 버틸 수 있는 사람만 그런 캡슐을 쓴다는 건가요?”

    “일반인 중에서도 랭킹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쓰겠지. 아무튼 평범한 사람들은 아직도 저런 방식의 장치로 플레이를 하지. 그래서 저런 스펙에 더 민감하기도 하고.”

    “……아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이해 못 했지?”

    “……예.”

    유창은 알아듣는 척을 하다 곧장 시무룩해진다.

    그러자 드레이크가 반색을 했다.

    “자자, 그럼 내 차례인가! 하하! 그러면 이건 어떤가! 예전에 VR고글이라고 초기…….”

    “아니에요, 형! 이건 제가 설명할게요.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제가 더 잘 아는…!”

    드레이크와 마태강은 적당한 틈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서로를 마구 밀어내며 지식을 뽐냈다.

    결국 질리다 못한 유창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저… 형, 아니 회장님. 아까부터 이런 상황인데 사실 저희가 잘 알아듣지를 못하겠어서.”

    “아 그래? 하긴 그렇겠다.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를 수도 있지. 내가 알기 쉽게 설명해 줄게.”

    나는 유창과 다른 직원들에게 쉽고 친절한 설명을 제공해 주기로 했다.

    “먼저 인간의 ‘시력’이 뭔지를 알아야 해. 시력은 각해상도 능력을 뜻하는데 1도의 범위에서 검은색과 흰색 줄을 몇 쌍까지 분별해 낼 수 있느냐는 뜻이지. 그것을 ‘CPD(cycles per degree)’라는 단위로 표현하곤 하는데 ‘30 CPD’ 정도가가 흔히 시력 1.0이라 말하는 정상 시력 기준이야. 1 사이클이 흑백 줄 한 쌍이므로, 픽셀로 쉽게 얘기하면 1도당 60픽셀을 구분하는 기준이란 말이지?”

    드레이크와 마태강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눈으로 구분해 낼 수 있는 이 화소 밀도의 기준은 시력 기준과 시청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PPI(pixels per inch)’ 단위로 표현해. 이것은 망막의 한계인데 보통 이 기준은 12인치, 즉 30센티미터 정도이지. 시청 거리에서 약 300PPI 정도? 물론 논란의 여지도 많아. 이 기준은 아까도 설명했던 ‘30 CPD’, 즉 시력 1.0인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거든. ITU 권고 사항인지라 전통적인 기준이 되어 왔지만 이미 옛날이고 또 가상현실 게임은 사람들마다의 시력 편차를 모두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까 점점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

    도중에 잠시 말 끊고 물 마실 타이밍.

    그리고 이제 다시 설명을 계속한다.

    “물론 가상현실 캡슐 속 시청 거리가 30cm 이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 요즘은 8cm까지 근접한 것들도 나오니까. 하지만 초점 거리가 짧아질수록 눈 근육이 쉽게 피로해져. 정상적인 독서 거리가 35cm인 것을 감안하자면 점점 더 시청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단 말이지. 요즘 나오는 캡슐들은 그 점을 고려해 오히려 시청 거리를 넓게 잡고 있단 말이야. 팡팡캡슐방의 모델처럼 화소 밀도를 지나치게 높이려고 시청 거리를 줄이고 뭐 별 짓을 다 해도 어차피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거의 무의미할 뿐이야. PPI 수치가 높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이거지.”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와 마태강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했군 어진. 수학의 정X에 버금가는 설명이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영어로 치면 성X기초영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내친 김에 팡팡캡슐방 캡슐들의 제원표를 보며 첨언했다.

    “이 버전은 오디오 사운드의 샘플링 주기에도 큰 문제가 있네. 보통은 최대 가청주파수의 두 배 이상만 되면 게임 속 소리들의 실제 모델이 된 원음들을 100%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데 이게 보통은 44.1kH란 말이지? 최대 가청주파수가 대략 20kHz 정도니까 말이야. 근데 팡팡의 모델들은 스튜디오 마스터링 음원 규격인 192kHz을 지원한다고 되어있네. 이게 일반적인 소비자들을 위한 것일까? 너무 오버스펙이라 이거야. 고품질이 아니라 과품질이지. 이로 인한 장비값들은 전부 소비자들에게 청구되는 구조잖아. 몇몇 전문가 고인물들을 위한 고품질 서비스의 비용을 왜 잘 모르고 혜택도 거의 못 누리는 일반 소비자들이 나눠 짊어져야 하는 건데? 이건 좀 아니지. 차라리 따로 몇몇 좌석들만 이 모델을 비치하든가.”

    설명을 끝내고 고개를 돌리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창이 보인다.

    나는 한 번 더 짤막하게 요약해 주었다.

    “쓸데없이 개비싸다고.”

    “아항.”

    유창은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게이머들이 원하는 니즈는 수준에 따라 다르다.

    초보자에게 과도할 정도로 좋은 장비는 오히려 비효율적이니 말이다.

    나는 오랜 게임 애호가, 고인물답게 사업장 안의 캡슐들을 실용적으로 비치해 두었다.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게 기기를 골라 그에 합당한 가치를 내고 이용한다.

    예를 들어 화질이나 음질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것의 차이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는 저렴한 비용과 최소한의 전력 소모, 디자인 등이 니즈가 된다.

    화질이나 음질에 예민한 사람은 비용을 조금 더 내고 해당 좌석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소비 경험의 양상과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의문점 하나가 생긴다.

    “근데 과품질 캡슐들을 어디서 구해 왔지? 이것들은 옛날에 글루코민번 제조사에서 만들던 건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회사의 제품, 과품질에 비용도 비쌌던 것이 몰락의 이유였다.

    근데 이런 것들을 8층 사업장에 대량으로 깐 것도 모자라서 오픈 기념 출혈 행사까지 한다고? 마진은커녕 파산이나 안 하면 다행일 텐데?

    나도 드레이크도 마태강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창은 그런 우리 앞에 몇 가지 사진을 풀어 놓았다.

    그것은 바로 팡팡캡슐방에 비치된 캡슐 사진들.

    드레이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사진들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으음……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하죠, 드레이크 씨?”

    “이베이로 한창 거래할 때 느껴 본 감각이야. 마치…새 제품이 분명한데 새 제품이 아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과연.”

    나도 불쑥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드레이크의 말을 듣고 보니 묘하다.

    흠집 하나 없는 새 제품이 분명하지만 분명 도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한때 캡슐 커스터마이징에 관심을 가졌던 고인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알아챌 수밖에 없는 위화감.

    “살짝 바랬어.”

    “예?”

    “색깔이 아주 살짝 바랬다고. 야외에서 자외선을 좀 받은 색이야. 온실 속 화초처럼 종이박스 안에서 수줍게 숨어 있던 그 맑은 낯빛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아무튼 아님. 새 제품 아님. 기분 나쁨.”

    물론 느낌일 뿐이다. 결국 조사는 드레이크와 나의 마음에 미심쩍음만 깊게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바로 그때.

    쿠당탕-

    사무실로 한 꼬마가 달음박질 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게임 비용이 없어서 유리창 밖에서 캡슐만 빤히 바라보던 녀석들 중 하나다.

    녀석은 들뜬 표정으로 유창에게 달려왔다.

    “아저씨! 여기 아저씨가 말한 거요!”

    “오! 왔나 스파이 3호!”

    “애들이 찍은 거 추가분이요! 사진관 아줌마가 빼먹은 사진들이 있다고 해…서……!”

    “알았어, 알았어. 쉬어.”

    유창은 꼬마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게임을 하러 뛰어가는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아주 스파이가 천직이다.

    하긴 저런 비밀놀이가 즐거울 나이이기도 하고.

    한편, 사진을 보던 유창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음……과연. 냄새가 난다 했더니. 과연 딱이로군요.”

    헤비 게이머들은 결국 게임에 대해서 잘 알 뿐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유창이 나보다 훨씬 더 프로패셔널했다.

    “어제 오후에 보낸 아이들에게는 캡슐의 하단부를 찍어 와 달라고 했거든요.”

    유통과 각종 불법에 대해서는 잔뼈 굵은 유창이다.

    “싸게 샀다는 증거는 대부분 밑바닥 깊숙이 붙어 있기 마련이라.”

    유창은 꼬맹이 알바생들을 풀어 찍어 온 사진을 슥 보여 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캡슐 하단부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주목했다.

    대부분의 캡슐들은 깨끗했지만 몇몇 캡슐들의 하단에는 미처 지우거나 떼지 못한 스티커 자국들이 지저분하다.

    그리고 그 스티커에는 아직 글자들이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군납용> (※이 제품은 면세 제품입니다, 민간 거래 적발 시 조세범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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