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62화 (762/1,000)
  • 762화 무관의 제왕 (3)

    “저는 마동왕 선수가 우승한 WUO보다 더욱 더 높은, 상위의 리그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폭탄선언.

    두 가지 의미에서 내 발언은 충격적이다.

    첫 번째, 마동왕이 우승한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UO)’보다 상위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는 WUO보다 더 높은 리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나는 하늘을 밟고 올라서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니 듣는 이들로서는 흥분되면서도 의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내 말은 ‘고인물’이라는 스트리머가 프로 리그로 데뷔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왜 의미가 있느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 한국 게이머들, 그중에서도 특히 랭커들의 이분화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탑 티어 급 랭커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프로, 아니면 아마추어.

    이 두 랭커 집단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느냐, 아니면 프리 선언을 하고 공식 랭킹 없이 단독 활동을 하느냐로 분류된다.

    하지만 보통 아마추어들은 프로들에 비해 실력이 약간 모자란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편견을 부숴 버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트리머 ‘고인물’이다.

    프로리그의 넘버원은 절대적으로 ‘마동왕’ 하나.

    그리고 그 1인 체제 유아독존(唯我獨尊)에 비빌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의외로 아마추어 집단에 있었으니, 바로 ‘고인물’인 것이다.

    즉 고인물은 지금껏 아마추어들의 자존심으로 통하며 프로리그의 랭커들을 항상 긴장시키는 존재였다.

    ……그러던 고인물이!

    ……오잉!? ‘아마추어 황제 고인물’의 상태가……?

    “저 프로리그 갑니다.”

    -축하합니다! ‘아마추어 황제 고인물’는(은) ‘프로게이머 뉴비 고인물’(으)로 진화했다!

    내 발언이 끝나는 즉시 몇몇 기자들이 미친 듯이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수많은 스트리머들 역시 핸드폰이나 휴대용 캠을 통해 나를 촬영한다.

    -미쳤다 진짜!! 고인물님 프로리그 행차하신다!!!

    -와 그럼 이제 프로리그가 둘로 갈리겠네ㄷㄷㄷ

    -마동왕이냐 고인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충 놀라 뒤집어진 댓글)

    -고인물이 프로리그로 넘어오면 랭킹에도 지각변동 일어날 듯...

    -대격변! 대격변의 시작이다! 고인물이 프로리그를 접수하러 온다!

    -덜렁덜렁~

    -덜렁덜렁2~

    -근데 님들;; 애초에 wuo보다 상위급인 리그가 있긴 있음?

    -없지;;;; 이번에 열린 wuo는 말 그대로 세계의 정상을 선출하는 자리임..그래서 거기서 짱먹은 마동왕이 진짜 신화적인 선수인 거고...

    -??? 근데 그 마동왕을 어케 넘겠다는거임? 프로리그에서 마동왕 커리어 넘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실력이 안돼서 못 넘는 게 아니고 실력을 증명할 판 자체가 없음;;;

    -6대주리그보다 큰 리그가 어딨어....

    .

    .

    나는 순식간에 파티룸 전체를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모든 논란을 등진 채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계단 밑에는 송승우 차장과 박수한 사장이 나란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진 씨. 정말 간만입니다. 이번에 2차 대격변 봤어요. 엄청난 감동이었습니다. 어진 씨를 처음 만났던 그날 하루가 제 인생을 뒤바꿔 놓았습니다.”

    송승우 차장이 나를 격하게 포옹하며 말했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던 박수한 사장도 말했다.

    “이번 분기에 구단에 투자할 추가 자금도 운용할 계획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조만간 상의 한번 하시죠.”

    “아, 좋습니다. 운용자금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니까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그냥 하는 말에 불과하다.

    구단 운영비는 지금도 차고 넘칠 정도니까.

    ‘뭐. 나중에 에티오피아 선수들도 영입하고 하려면 여유 자금은 많을수록 좋겠지.’

    나는 영국에서 만났던 에티오피아 선수들을 떠올렸다.

    페이사 릴레사. 눈을 보고 마동왕과 고인물을 넘어 그 안의 이어진을 꿰뚫어 본 나의 친구.

    현재 에티오피아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치명적인 위험이 수도 안에 감돌고 있다. 아디스아바바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국가비상위원회는 분노와 답답함에 지쳐 있는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강뉴뷰대’라는 이름의 국가대표 팀을 아프리카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시켰다.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분노를 무마시킬 의도로 말이다.

    단지 국민들의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위한 시도였는데 그것이 의외로 엄청난 효과를 거두었다.

    에티오피아 팀은 세계리그까지 올라가 최후의 3국 안에 들어 버렸고 이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에티오피아의 독재자들도 그렇게 한숨 돌리는가 했다.

    페이사를 비롯한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모든 것을 폭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자국의 행태를 고발한 페이사와 구르무, 타파라, 밸라이, 마루 마모는 나를 따라 한국으로 망명 신청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지금은 내 소유의 빌딩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

    “아무튼 투자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희 아무한테나 투자 안 받는 거 아시죠?”

    “허허허허, 닳고닳은뉴비 구단 정도면 투자하는 쪽이 눈치 봐야죠. 암요. 세계 최강의 팀인데.”

    나는 박수한 사장과 악수를 하며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송승우 차장이 내게 슬쩍 묻는다.

    “저… 근데 어진 씨.”

    “예?”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송승우 차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천기누설이라도 엿들으려는 표정으로 내게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아까 소감에서 말씀하신 것 있잖습니까?”

    “네? 뭐요?”

    “그… 왜… 마동왕 씨보다 더 상위의 리그에 도전하신다고… 프로게이머로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송승우 차장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내게 캐물었다.

    “아아, 사적인 호기심으로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알지만… 진짜 너무 궁금해서 여쭙니다! WUO보다 더 상위의 리그가 있다고 하신 게 무슨 의미인가요? 그런 리그가 대체 어디에 있죠?”

    나는 그 말에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다.

    “WUO보다 더 상위의 리그…… 아직은 없죠. 하지만 곧 생길 겁니다.”

    “예?”

    송승우 차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살포시 추신을 덧붙였다.

    “제가 개최해 버릴 거거든요.”

    내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는 송승우 차장과 박수한 사장.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저 표홀하게 뒤돌아설 뿐이다.

    한편, 시상식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3위 발표, 2위 발표, 1위 발표 이후에는 4위 발표, 5위 발표, 6위 발표…… 10위 발표들이 쭉 이어진다.

    참고로 게임 방송 부문 5위는 바로 윤솔이었다.

    아직 차이는 꽤 많이 나지만 그래도 유세희가 6위로 열심히 추격 중이다.

    그리고 4위는 의외로 드레이크였다.

    평소 게임 플레이를 방송하기보다는 밥을 먹는 방송을 더욱 많이 하는 그이기에 동영상도 먹방과 겜방의 경계가 애매하다.

    프로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 그것은 겜방인가 먹방인가.

    유튜뷰 측에서도 이 점 때문에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드레이크가 가진 현실의 위상을 고려해 게임 방송으로 조회수를 측정, 이에 4위가 된 것이다.

    (참고로 드레이크의 시청자들이 드레이크를 사위 삼고 싶다고 4위를 밀어붙였기에 4위로 랭킹이 고정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슈퍼노바 상은 오늘 무대의 사회이자 탑 걸그룹 니아의 리더 박보연이 받았다.

    “유다희 님 실물 미쳤다. 캠이 미모를 다 못 담은 거였네.”

    “마동왕 님 키가 약간 자라셨나? 깔창을 높은 거 신으셨나 보네!”

    “윤솔 언니 사랑해요! 여기 한번만 봐주세요!”

    “와! 박보연! 와! 연예인!”

    “드레이크 님! 다음부터 삼계탕에 들어있는 대추랑 뿌리들은 먹지 말고 버리세요!”

    그렇게 유튜뷰에서 개최한 행사의 밤은 저물어 간다.

    세계리그가 뜨겁게 달구어 놓은 잔열을 아직 머금고서.

    *       *       *

    집에 가는 길. 호텔의 주차장.

    나는 시동을 걸고 엔진이 예열되는 동안 잠시 핸드폰을 켰다.

    가수, 스트리머, DJ, PD, 모델, 배우, 세무사, 법무사, 개그맨, 작가, 파워블로거, 기업 홍보팀 직원, 쇼핑몰 사장 등등…… 다양한 유명인들이 보내 온 무수한 친구요청들과 팬레터.

    -안녕하세요 어진 씨, 저는 뎀 코리아 해외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는...이번 신모델 캡슐 디자인 CF 건으로...

    -고인물 님!! 저 진짜진짜 팬이에요!! 고인물 님에게 DM보내려고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저는 할리우드에서...

    -어진아 안녕? 나 중학교 때 같은반!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ㅠㅠ 잘 지내? 언제 한번 동창회에서 보자! 내가 술 거하게 살게♥ 꼭 연락 줘 번호는 010…

    -ㅎㅇㅎㅇ고인물ㅋㅋㅋㅋ야! 나 기억나냐? 우리 고딩 때 같은반ㅋㅋㅋ혹시 시간 나면 술이나 한 잔 하자~~

    -오오 이게 누구야ㅋㅋㅋ어진이! 너 되게 유명해졌네ㅋㅋㅋㅋ나 군대 선임! 4월 군번인데 기억하지?  내 여자친구가 너 방송 보는데 너랑 나랑 친하다고 하니까 안 믿더라ㅠ 나중에 술 한 잔 사주라 너 돈 많이 벌잖…

    -ㅎㅇㅎㅇ 어진 올만! 나 기억하냐ㅋ 중딩 때 이후로 첨 연락해보네ㅋㅋㅋ 저 혹시나 해서 연락해 보는건데 내가 진짜 돈이 급해서……

    .

    .

    “아니, 몇년만에 연락해서 돈 빌려달라는 애들이 왜 이렇게 많아? 투자 얘기 좀 그만 듣고 싶다.”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SNS 메시지 목록들을 틈나는 대로 정리하고 있을 때.

    …덜컹!

    차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쑥 들어온다.

    뚱한 표정의 유다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생텍쥐페리를 찾아온 어린왕자처럼 대뜸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번에 팬미팅 해!”

    일방적인 통보.

    내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유다희는 조수석에 풀썩 걸터앉았다.

    “이번 세계리그 이후로 마교 회원들이 엄청나게 늘었어. 열혈들도 많이 생기고 했으니까 직접 한 번씩들 보고 인사 나눠.”

    유다희의 태도는 정말로 미묘했다. 싫음과 좋음이 공존하는 저 표정이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상 받은 거 축하해.”

    그러자 유다희의 귀가 다시 한번 새빨개졌다.

    “크흠, 거 뭐 상 받자고 한 것도 아닌데 민망하게. 아무튼, 오늘 시상식 한 데 여기 좋네. 마교 팬미팅도 여기에서 해 볼까나~”

    괜히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그녀였다.

    문득 나는 유다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창이는?”

    마동왕 변장을 하고 있었으니만큼 제일 먼저 파티룸을 나갔던 유창이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캡슐방 쪽 문제 생긴 거 때문에 바쁠걸? 행사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든데?”

    “내 캡슐방에 문제가 생겼다고?”

    내가 외려 되묻자 유다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고 있었어? 창이가 보고서 몇 번이나 올렸다고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세계리그에 정신이 팔려서 국내의 사업체들에 잠시 소홀했다.

    그동안에는 유창이 워낙에 알아서 잘해 주었기에 마음 놓고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일선에 나가 관리해야 할 때였다.

    이윽고, 나는 유창이 올렸던 결재서류들을 한번 쭉 검토해 보았다.

    거칠지만 그래도 가독성 좋게 요약된 사업 현황표.

    “……이런.”

    나는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들을 보자마자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줄로만 알았던 라이벌이란 것이 등장했다.

    <(축) 신장개업 (파격할인)>

    앗! 캡슐방비 타이어보다 싸다?!

    ……바로 사업적인 라이벌.

    내 캡슐방 본점 옆에 새로 생긴 초대형 캡슐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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