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61화 (761/1,000)
  • 761화 무관의 제왕 (2)

    2026년의 늦여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일정을 밀착 마크하며 귀국 후 비는 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이들이 있었다.

    <유튜뷰 스트리머 THE RED DWARF★2026>

    <마동왕 님을 올해의 VVIP로 선정……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길 간곡히……>

    2020년도 슈퍼노바에서 2026년도 레드 드워프라.

    “하긴 지난 6년 새에 유튜뷰 코리아도 많이 컸지.”

    해외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온 나를 바로 파티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 나를 홍보도구로 이용할 생각인 것이 뻔히 보인다.

    연초도 연말도 아닌 이런 애매한 중간 시즌에 시상식 및 파티를 여는 것을 보니 아예 나에 맞추어 행사를 기획한 모양.

    ‘뭐 나한테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이니까.’

    나는 그간의 정과 친분을 고려해 초대를 수락했고 지금 차를 몰아 영등포 데오큐브시티의 메릿지 호텔로 향하는 중이다.

    주차를 마치고 1층 로비에 들어가자 깨끗한 레드카펫이 보인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밝은 조명 빛.

    분수와 조각상, 고아한 분위기의 그림, 사진이 담긴 액자들.

    그리고 주변에는 투숙객들이 언제든 앉아 쉴 수 있도록 소파 등이 쭉 늘어 놓여 있다.

    ‘……옛날 생각나네.’

    저번에도 이곳에 온 적 있다. 대충 6년쯤 전이던가?

    예전에는 이런 장소의 고아한 분위기에 눌려 시종일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꼈었다.

    하다못해 저 멀리 정장을 입고 서 있는 직원들 눈치에 화장실 위치도 제대로 못 물어봤으니까.

    “어디 보자…… 여긴가?”

    1층의 중앙 로비에 오늘의 행사 일정을 알리는 입간판들이 보인다.

    <9층-유튜뷰 연말 시상식>

    오, 이제 아예 9층을 통째로 빌린 건가.

    예전에는 9층에 있는 4개의 파티홀 중 하나만을 빌려서 파티를 열었는데 이제는 4개의 파티룸을 모두 빌린 모양이다.

    심지어 게임 콘텐츠 부서만 단독으로!

    “크, 게임 방송의 위상이 많이 높아지긴 했어.”

    물론 그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나다.

    해외까지 나가 25억 명 이상이 시청했던 경기에서 당당히 우승, 심지어 MVP 트로피까지 차지하고 왔으니 한국 게임방송이 전 세계적으로 흥할 수밖에.

    심지어 세계 통합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시상식에서 대놓고 한국의 게이머인 ‘고인물’과 ‘마동왕’에게 고개 숙여 경외감을 표하기까지 했으니 그 낙수효과는 단순히 고인물과 마동왕의 방송이 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마 주위 시선이 엄청 쏠리겠군.’

    나는 곧바로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이윽고, 커다란 호텔 파티룸이 내 눈앞에 보인다.

    흰 보자기가 덮인 원형의 테이블들이 즐비한 홀.

    커다란 샹들리에와 촛불들이 이곳저곳에 화려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작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다.

    정장을 입은, 수려한 외모의 직원들이 파티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입장하는 이들에게 기념품이 담긴 가방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유튜뷰 스트리머 THE RED DWARF★2026>

    요란한 글귀가 적혀 있는 에코백이다.

    가방 안에는 향초와 달력, 다이어리, 블루투스 스피커 등이 들어있었다.

    한 직원에게 가방을 받자, 그는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안녕하세요 고인물 님! 저 진짜 팬이에요!”

    오늘의 나는 고인물로서 이 자리에 왔다.

    그렇다면 마동왕은 어디에 있냐고?

    ‘형님. 이거 안 들킬까요 진짜?’

    바로 내 뒤에 있다.

    유창이 어색한 포즈로 내 뒤에 서 있었다.

    비록 유창의 키가 나보다 조금 더 크기는 했지만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직원과 포옹 및 기념 사진 촬영, 사인까지 해 주고는 파티룸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안녕하세요.”

    내가 들어가 인사를 하자.

    “……?”

    이미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스트리머들이 다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분위기.

    “…옷을 벗어야 알아보실까요?”

    슬쩍 웃옷을 뒤집어 벗는 시늉을 하자.

    “우와아아아아아! 고인물 님! 2차 대격변의 영웅!”

    “튜더의 정신적 스승!”

    “엑스칼리버의 진짜 주인!”

    “와아아악! 대박! 저 진짜 팬이잖아요!”

    “으헉!? 고인물 님이셨구나! 옷 입고 계셔서 못 알아봤어요!”

    “세상에! 마동왕 님도 계시잖아!”

    “저 감동해서 울 것 같아요! 두 분 보려고 오늘 여기 온 건데! 아아아아!”

    옷을 조금 벗어 쇄골 부근까지 드러내자 비로소 요란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게임계에서 내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따져보면 이런 반응들은 당연한 것이다.

    나와 마동왕(유창), 겜방을 하는 모든 스트리머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우르르 몰린다.

    “고인물 님, 2차 대격변을 막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소돔과 고모라 등장하는 순간 바로 죽어서 로그아웃 당하는 바람에… 흑흑.”

    “마동왕 님 이번 세계리그 우승 축하드립니다!”

    “튜, 튜더를 달로 보내 버리시는 게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진짜 여기, 여기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꿈같아요! 자기야…우리 지금 지구에 있는 거 맞지?”

    “세상에 설마 달을 부수실 줄이야…….”

    “마동왕 님 덕분에 한국의 게임방송 스트리머들이 다 같이 흥하고 있어요!”

    “진짜 한국 겜방계의 아버지이십니다.”

    “인증샷 한 번만 남겨도 되겠습니까 고인물 님. 어디 공개도 안 하겠습니다. 제가 진짜 너무 팬이어서…….”

    “아앗! 마동왕 님이 사인을!? 가문의 영광입니다!”

    한때 내가 존경하고 또 우러러보았던 게임 방송 스트리머들이 이제는 나를 향해 그런 눈빛을 보내온다.

    모니터로만 볼 수 있었던 이들의 화려한 삶, 서로간의 우정, 시트콤 같은 일상, 젊고 예쁘고 잘생기고 유쾌한 존재들.

    그리고. 이제는 그 중심에 내가 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이 관심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초조하게 애쓰고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있을 때.

    “우웩. 이게 뭔 상황이래?”

    나를 향해 혀를 내미는 이가 있었다.

    유다희, 반가운 얼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가 나와 옆에 있는 마동왕(유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야?”

    “별 거 없어. 그냥 시상식 나오려고.”

    “누구 속여먹으려는 건 아니고?”

    “설마.”

    유다희는 약간 툴툴거리더니 내 옆자리에 앉는다.

    기본적으로 자유 지정석이었지만 내 옆으로는 감히 아무도 다가오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는 사람은 유다희가 유일하다.

    이윽고.

    유튜뷰 연말 축제 및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네! 그러면 지금부터 게임 방송 부문에서 가장 빛났던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니아의 리더 박보연이 사회를 맡았다.

    그녀는 유쾌한 어조로 멘트를 읊어 나간다.

    “ㅇㅇ부분 대상에······.”

    “ㅅㅅ부분 우수상에······.”

    “ㅈㅈ부분 금상에······.”

    .

    .

    수많은 이들이 상을 받고 자기만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늘어놓는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영광된지, 지금 심정이 얼마나 기쁘고 얼떨떨한지.

    하지만 이 자리의 진짜 주인공들은 그들이 아니다.

    나. 오로지 나를 위한 자리!

    그것을 알기에 이 거대한 파티홀에 모인 모두의 시선은 나와 내 옆의 나(마동왕)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박보연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다음은 대망의 3위입니다! 세 번째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신 초신성! 그 이름은……!”

    어차피 1위나 2위는 나일 테니 3위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뒤이어진 이름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로 유다희 님입니다!”

    이것은 좀 의외였다.

    내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다희는 머쓱한 표정으로 코끝을 쓱쓱 문지른다.

    “뭐. 왜.”

    “…….”

    “아니, 나도 좀 잘 나갈 수 있지.”

    유다희는 뭘 보냐는 듯 손바닥으로 내 볼을 쭉 밀었다.

    그동안 바빠서 잘 신경을 못 쓴 사이, 유다희는 스스로의 힘으로 훌륭하게 복귀한 것이다.

    심지어 레비아탄의 저주에 걸리기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그녀.

    “이제는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내 속마음을 아니까 가식 안 떨고 방송할 수 있어서 엄청 즐거워. 돈이나 조회수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서 콘텐츠 짜고 영상 편집하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시청자님들이 전보다 더 좋아해 주시더라.”

    전에는 약간이나마 얼굴에 그늘이 있던 유다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맑고 투명하다.

    자신을 대함에 있어 더없이 솔직해진 유다희. 내 기억 속, 회귀 전의 그녀가 짓고 있던 표정과는 180도 다른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나 자신 또한 구원받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저절로 말이 나왔다.

    “고마워.”

    “엥? 뭐가?”

    “다시 돌아와 줘서.”

    이것은 회귀 전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악!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왜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뭐, 뭐라는 거야 이 자식! 남사스럽게……!”

    ?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다희는 버럭 화를 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대로 향한다.

    얼굴 표정은 겨우겨우 진정시킨 모양이지만 여전히 귀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채로.

    이윽고, 유다희와 유튜뷰 코리아의 박수한 대표가 악수를 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유다희는 무대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시청자들을 향해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수많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유튜뷰 코리아의 대표 박수한은 후덕한 몸집의 중년인.

    그는 유다희를 보며 껄껄 웃더니 악수를 청한다.

    “다희 씨는 올해의 유튜뷰 초신성 50인에 선정되셨습니다.”

    “아, 네.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기준 겜방 부문에서 ‘상승세 1위’를 기록하셨죠. 매달 전 분야 시청자수에서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랭크 중이시고요. 요즘 시장이 커진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하신 성과입니다.”

    결국 유다희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레비아탄 게이트가 터지기 전만 해도 3위는커녕 30위에도 들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재기는 그야말로 눈부신 반전이었다.

    누군가는 유다희의 도약을 보고 ‘기적’,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던 것을 옆에서 쭉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감히 그 노력을 기적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 없었다.

    유다희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스트리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그녀를 응원하게 된 수많은 시청자들 역시도 한 마음 한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내.

    박보연의 두 눈이 반짝 빛난다.

    “네! 다음은 2위입니다! 2026년의 대스타!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기가 많았던 스트리머! 그 이름은……!”

    이윽고, 스포트라이트가 이쪽을 향해 쏘아졌다.

    그 대상은 바로.

    “마동왕 씨입니다!”

    박보연의 말에 유창이 엉거주춤 일어나 무대로 나간다.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마동왕의 커리어가 다시 한번 열거된다.

    선수 경력 7년차. 커리어 끝판왕.

    데뷔하자마자 바로 서울시 리그 우승, 1차 대격변 이전 국내리그 우승, 1차 대격변 이후 국내리그 우승, 최연소 로열로더,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빅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MVP플레이어,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 리그 우승,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 리그 MVP플레이어, 뎀 유니버스 선정 올해의 선수, WUO 선정 게임 역사상 최고의 선수, 2026년 월드 게이머 역대 베스트 10, 2026년 아시아 온라인 투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 2026년 전 세계 통합 온라인 투표 1위 역사상 최강의 게이머…….

    하지만 이 정도로 쟁쟁한 스펙으로도 한국에서는 2위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마동왕의 수상이 끝나고 난 뒤, 대망의 1위가 발표될 시간.

    박보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외쳤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 2026년을 벌써부터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 줄 영웅! 한국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스트리머!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그 남자!”

    동시에, 천장에 있던 하이라이트가 모조리 이쪽을 향한다.

    세계의 강대국 전원이 모여드는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픽, 이 최후의 리그에서 MVP 트로피를 받은 마동왕조차 결국엔 넘지 못했던 벽.

    “바로 고인물 씨입니다!”

    스트리머 고인물. 바로 나다!

    나는 2차 대격변 이후 조회수 측면에서는 부동의 1위를 계속 지켜오고 있었다.

    마동왕의 채널이 비록 각 동영상 당 조회수는 더 높지만 동영상의 개수 면에서는 고인물의 채널에 밀린다.

    결국 고인물은 모든 동영상들의 총 합산 조회수로 마동왕을 젖히고 1위를 굳힌 것이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시청자들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유튜뷰 측에서 전해 주는 상금과 트로피를 받았다.

    어느덧 많이 후덕해진 송승우 팀장과 박수한 대표가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구단을 창립할 때 가장 많은 투자자금을 보탰던 이들이다.

    “정말, 어진 씨 데뷔 초창기에 컨택했던 게 제 인생의 자랑이자 훈장입니다.”

    이제는 차장이 된 송승우 팀장이 내 손을 잡고 흔든다.

    박수한 대표는 내가 이뻐 죽겠다는 듯 친히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니아의 박보연이 나를 향해 쪼르르 다가와 바짝 붙어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사부…… 아니 이어진 씨. 1위 소감이 어떠신가요?”

    “얼떨떨합니다. 정말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박보연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고맙고도 소중한 시청자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모두들 아실 겁니다. 방금 전 시상대에 올라왔던 마동왕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인 WUO에서 우승, MVP 트로피를 받았다는 것을.”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대의 눈빛을 보낸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들.

    나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기대감을 심어 주었다.

    “저는 마동왕 선수가 우승한 WUO보다 더욱 더 높은, 상위의 리그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폭탄선언.

    현 시점에서는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 지구 상 모든 최강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WUO리그의 위상조차도 아득히 초월하는 궁극의 리그.

    나는 그곳으로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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