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화 무관의 제왕 (1)
세계리그의 마지막 경기, 최후의 시합이 끝난 날.
WUO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내가 살면서 본 게임 경기, 아니 모든 경기란 경기를 다 통틀어 최고의 시합이었다...
-이정도면 마동왕 장례식 때 틀어야 하는 거 아니냐? 생전 고인의 쌉지리는 플레이를 감상하시겠습니다 하면서ㅋㅋㅋ 도랏다 도랏어
-달의 몰락ㅗㅜㅑ...
-살면서 달이 뽀개지는거 첨봄..ㄷㄷㄷ
-ㅁㅊ 대격변 또 일어나는줄 알았잖어~
-처리반들이 깔끔하게 막아줘서 다행임ㅋㅋㅋㅋ
-와 근데 달 부순 마동왕도 마동왕인데, 달 파편들 막아낸 처리반들도 처리반이다...
-GM이면 뭐 그정도는 해야지
-↳GM도 어찌보면 플레이어들인거 모름?
-이번 참에 알게 됐음...플레이어들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GM미만 잡이라는걸..
-아무튼 마동왕 만세다 이거야!
-한국이 6대주리그에서 우승할줄 누가 알았겠냐고ㅋㅋㅋㅋㅋ
-애국베팅 최고!!!
-마동왕 MVP는 진짜 따놓은 당상이다~~^^
-사랑해요 마동왕중계!!!
-이 경기 직관왔던 게 신의 한수였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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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아직 시합의 열기를 잊지 못하고 있을 때.
주최 측에서는 재빨리 그 잔불에 장작을 넣는다.
간이 시상식. 제대로 된 시상식 전에 미리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다.
최후의 6국.
한국, 영국, 에티오피아, 호주, 브라질, 미국 팀의 국가대표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랐다.
“비록 아쉽게 패배했지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리그에서는 더욱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
1라운드에서 탈락한 호주, 브라질, 미국의 선수들은 비앙카를 필두로 다들 비슷한 소감들을 나열했다.
그래도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게이머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과였기에 모든 관중들이 비난하는 이 하나 없이 뜨거운 호응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다음은 2라운드 진출자다.
한국, 에티오피아, 영국.
사실상 이 3국부터가 이번 세계리그의 주인공들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훗날 벌어질 대규모 시상식 전, 간소하게나마 기념품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념품이란 바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었다.
‘뻔하지만 좋은 상징물이지.’
나는 무대 계단 옆에 앉아 있는 상태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늘 그렇듯, 동메달부터 시상한다.
에티오피아 대표팀들은 단상 위로 올라섰다.
주최 측 사회자가 축하의 말과 함께 메달을 들고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이변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에티오피아의 국가대표들 전원이 손으로 X자를 그려 보인 것이다.
그들의 대장인 페이사 릴레사는 목을 향해 다가오는 동메달을 향해 단호한 거부의 손짓을 보였다.
선수들이 손으로 X자를 그려 메달을 거부하자 주최 측은 당황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손으로 X자만 그리고 있는 터라 더더욱 당황스럽다.
관중석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쯤 해서, 페이사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수상을 거부합니다.”
충격적인 발언.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정치적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독재 권력의 홍보 선전물로 쓰일 생각이 없기에 수상을 거부합니다. 저희를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들, 그리고 축제를 즐기고 계셨을 관중 여러분들, 그리고 이 메달을 받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 온 다른 선수 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동메달 앞에서 손으로 X자를 그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에티오피아 국가대표들의 모습.
그들에게 누가 감히 비난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연이어 터지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들이 그들의 몸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윽고, 에티오피아 팀이 무대에서 내려온다.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페이사를 향해 슬쩍 물었다.
“뒷감당 가능하겠어?”
“무슨 뒷감당?”
“에티오피아로 돌아갔을 때 후폭풍 말이야.”
내 말에 페이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피식 웃었다.
“미쳤나? 고국으로 돌아가게.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면 우리들 전부 다 총살이야.”
헉,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뭐, 어디로 가게?”
“음. 글쎄. 일단 망명할 곳을 찾아야지.”
페이사의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진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얼른 말했다.
“한국은 어때?”
“응?”
“너만 좋다면 언제든지 와. 내 집이 꽤 크거든. 모두 모여서 같이 살 수 있어.”
집이 아니라 빌딩이지만 말이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와준다면 우리 구단의 연습 상대로도 아주 훌륭할 것이고 보다 더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엄재영 감독이 툭 튀어나왔다.
“그래. 우리 구단으로 아예 들어오는 건 어때?”
“아, 형님. 그건 좀…….”
“말만 하라고! 망명이 다 뭐야! 아예 귀화하게 도와줄 수도 있어!”
“왜 부담 주세요 자꾸!”
“아,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그러지! 절대 실력이 탐이 나서 이러는 게 아냐!”
나와 엄재영 감독이 툭닥거리는 것을 본 에티오피아 선수들 전원이 크게 웃는다.
한결 밝아진 표정의 페이사가 엄재영 감독에게 물었다.
“2군 선수들까지 함께 데려가도 됩니까?”
“아 물론이지! 2군이 뭐야! 3군, 4군, 5군, 육군 장군 멍군까지 싹 다 데려와도 돼! 대환영이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영국이 상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는 건강 상의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그래서 대신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가 대표로 맨 앞에 서게 되었다.
경기 전과 비교해 안색이 한층 더 파리해진 블레어, 늘 튜더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언제나 튜더의 자리를 꿰차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튜더를 대신해 대표 자리에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저주하고 있는 모양새.
우-우우우우우우!
블레어가 은메달을 목에 걸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특히나 영국 관중들이 제일 야유가 심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장의 무게, 정치 인생으로 단련된 블레어조차 처음으로 남들 앞에 서는 게 무섭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블레어는 감정적으로 소리 질렀다.
“왜들 그럽니까! 2등도 잘한 거라구요!”
그 말이 관중들의 분노를 더욱 더 부채질했다.
그들이 블레어에게 야유를 보내는 이유는 영국이 1등을 하지 못하고 2등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2등도 잘한 거지! 근데 그게 네가 할 말은 아니거든!”
“네놈이 신성한 세계리그에 똥물을 끼얹었어!”
“졸렬한 연체동물 자식! 다음 선거를 기대해라!”
“내가 이번에 한국에서 좋은 요리법 하나 배워 왔거든!? 낙지탕탕이가 뭔 줄 아냐!?”
영국인들은 격분하여 블레어를 향해 물건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피쉬앤칩스, 해기스 등등의 영국 요리들이 날아든다. 개중에는 간간히 세발낙지들도 섞여 있었다.
바로 그때.
“소란을 멈춰 주시길 바랍니다.”
무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관중들의 난동이 멎는다.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한층 수척해진 얼굴의 그가 무대로 걸어 나온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던 그가 무대로 나오자 관중석은 조용해졌다.
튜더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동안 ‘공식 랭킹’이라는 것에 집착했었고 저도 모르게 오만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영국 관중들 하나하나를 톺아보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느꼈습니다. 자신을 수치와 통계 따위로 재단하는 것을 허락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고수들도 있다는 것을. 하늘 위에 또다시 하늘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튜더는 증강현실 스크린 창을 하나 띄워 보았다.
그곳에는 박살 난 엑스칼리버의 잔해가 보인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수리조차 할 수 없게 된 전설의 명검.
자신을 상징하는 성명절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튜더는 평온한 안색으로 대사를 이어 나갔다.
“사실 이 아이템은 원래 제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관중들이 수군거린다.
지금껏 엑스칼리버는 튜더를 상징하는 아이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튜더는 모든 진실을 밝혔다.
“저는 이 아이템을 제 힘으로 구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의 원 주인은 먼 나라 한국에 사는 한 게이머, 저는 그에게 돈을 내고 엑스칼리버를 빌린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수군거린다. 기자들은 특종을 잡았다는 듯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튜더는 말을 이었다.
“저에게 이 명검을 빌려준 이는 프로 게이머가 아닙니다. 프로 게이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아이템을 떨구는 몬스터를 잡을 정도의 실력자.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렇다. 한국 국적이며 공식 랭킹에 등록되지 않았고 프로리그에서 뛰지 않으면서도 어지간한 프로들은 전부 쌈 싸먹어 버릴 정도로 강한 존재.
‘고인물’.
모든 이들은 직감적으로 튜더가 언급하고 있는 게이머를 특정할 수 있었다.
튜더는 수척한 얼굴로나마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한국은 참 신비로운 나라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에게 공식 랭킹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려준 두 명의 최강자가 모두 한국인이네요.”
엑스칼리버를 임대해 준 고인물, 그리고 세계리그를 제패한 마동왕.
튜더는 이 두 신화적인 영웅을 향해 깊게 머리 숙여 경외감을 표했다.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더욱 더 성장하는 게이머가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튜더의 연설은 자칫하면 폭도로 변할 뻔했던 영국 관중들을 단번에 진정시켰다.
“엑스칼리버를 떨구는 몬스터가 고인물에게 잡혔었구나.”
“그래. 저 정도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맞아. 너무 압도적인 패배여서 화도 안 나.”
“역시 튜더는 다르군. 인정이다.”
여론 역시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회복되었다.
블레어는 낑 소리를 내며 튜더의 뒤를 따라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금메달!
열화와 같은 환호성 속에 한국 팀 멤버들이 무대로 오른다.
“사랑해요 윤솔! 우윳빌깣 윤솔! 반전근력 윤솔!”
“꺄아아악! 드레이크 오빠 금메달 파티! 시상식 패션 너무 멋저요옷!”
“세희쨩 최고다아! 느무느무 귀엽다아아!”
“태강아! 누나들이 화환 보냈쪄! 양심은 중동 갔다! 사랑해!”
윤솔, 드레이크, 유세희, 마태강을 응원하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단상에 오르자.
…….
장내는 일순간 조용해진다.
선수 경력 7년차. 커리어 끝판왕.
데뷔하자마자 바로 서울시 리그 우승, 1차 대격변 이전 국내리그 우승, 1차 대격변 이후 국내리그 우승, 최연소 로열로더,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빅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MVP플레이어,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 리그 우승,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 리그 MVP플레이어, 뎀 유니버스 선정 올해의 선수, WUO 선정 게임 역사상 최고의 선수, 2026년 월드 게이머 역대 베스트 10, 2026년 아시아 온라인 투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 2026년 전 세계 통합 온라인 투표 1위 역사상 최강의 게이머…….
내가 목에 금메달을 걸고 품에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의 MVP 트로피를 품에 안는 순간.
……! ……! ……! ……! ……! ……!
홀의 천장이 들썩일 정도의 함성, 중앙 광장의 무대가 요동칠 정도의 발구름.
인간의 가청영역을 넘어선 어마어마한 환호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