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57화 (757/1,000)
  • 757화 달을 부수는 자 (2)

    …화아악!

    손아귀 속에서 검은 기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돌.

    -<악마의 돌> / 재료 / S

    너무나도 아름답게 생긴 보석.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홀려 버린다.

    -어둠 속성 저항력 -50%

    -?

    그것은 과거 벨제붑을 쓰러트리고 얻은 히든 피스이다.

    이 아이템 역시도 사실 회귀 전에 튜더가 쓰던 것이었기에 사용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번번이 실례하는군.’

    원래대로라면 튜더가 벨제붑을 몇 번이나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던 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았어야 할 아이템.

    하지만 지금 그것은 내 차지다.

    “…….”

    튜더는 내 손 안에 들려 있는 이 검은 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명검 엑스칼리버에 부글부글 끓는 아우라를 불어넣었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튜더는 내 지난 경기 영상들을 모조리 분석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악마의 돌’을 쓰는 것은 이번 경기, 아니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기에 별달리 대비책이 있을 리 없다.

    더군다나 이 돌은 나조차도 완전히 처음 써 보는 것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이 아이템은 당신 것이고 당신 역시도 이 자리에서 처음 사용했지.’

    튜더, 그는 악마의 돌을 세계리그 최후의 승부처에서 사용했고 그것으로 일약 월드 탑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과정을 그대로 내가 답습할 것이다.

    …콰콰콰쾅!

    시뻘건 아우라의 폭풍이 날아든다.

    나조차도 무시할 수 없게 된 엑스칼리버의 참격이 내 주변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우르르릉! 콰쾅! 우지지직!

    단단한 암반층이 마치 연두부 부서지듯 허물어져 내린다.

    붕괴해 내리는 협곡,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파괴적인 자연재해였다.

    [아아! 마동왕 선수! 선공을 빼앗겼습니다!]

    [이거 빅매치가 시작되자마자 끝나 버리는 것 아닌가요오! 튜더 선수! 초장부터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합니다!]

    [마동왕 선수가 제아무리 대단한 플레이어라도 결국엔 언랭이거든요! 진짜배기 랭킹 1위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부터 어렵습니다 마동왕 선수! 과연 살아남았을까요!?]

    세계 각국 캐스터들은 마이크를 잡고 연신 소리친다.

    하지만.

    “…후욱 …후욱.”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튜더의 표정은 좋지 않다.

    그는 천재이다. 그래서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칼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는 것을.

    츠츠츠츠츠츠……

    이윽고, 한 줄기 바람에 흙먼지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캐스터들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벌어진다.

    [아앗!? 마동왕 선수! 생존해 있습니다! 생존해 있어요! 놀랍습니다! ‘그 튜더’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쏘아낸 일격에 피격당하고도 멀쩡한 모습이에요!]

    [다들 현황판 좀 보시죠! 마동왕 선수의 HP는 1도 깎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입니다!]

    [……어? 아니, 근데. 저게 뭐죠? 저 사람 마동왕 선수 맞나요?]

    [에? 저게 뭐야? GM! 처리반! 저게 뭡니까? 왜 필드에 몬스터가……?]

    중계를 하던 캐스터들의 표정이 점점 의문과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자욱한 포연이 걷히고 난 곳에는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해골 머리. 구불구불 휘어져 있는 네 개의 뿔.

    날카로운 이빨들과 푹 패인 눈구멍 속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피어오르고 거대한 전신에서는 뜨거운 용암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괴물.

    전신은 화산재와 검은 먹구름에 휘감겨 있고 사방으로 뻗친 거대한 두 팔과 다리, 그리고 날개는 그야말로 마신(魔神) 그 자체!

    <발록 ‘마동왕’> -등급: ? / 특성: ?

    -서식지: ?

    -크기: 13m

    -오로지 싸우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고대의 악마.

    태어날 때는 작은 오크의 몸이었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으며 적들의 광기와 흉폭함을 흡수한 덕에 그 누구보다도 크고 강력한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보아라.

    ‘악마의 돌’은 인간 유저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오크의 몸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히든 피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은 바로 오크의 궁극(窮極)!

    오크 종족을 선택한 플레이어가 거의 만렙을 찍어야만 이를 수 있는 천외천(天外天)의 경지이다.

    발록!

    그 지고한 존재 앞에서 오우거나 자이언트 따위는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내가 재앙과도 같은 이 육체를 필드 위로 드러내자 주변은 무덤 속과도 같은 정적에 잠겼다.

    […….]

    캐스터들도, 관중들도 말이 없다.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시청자들 역시도 일순간 넋을 잃고 키보드에서 손을 떨어트리고 만다.

    압도적(壓倒的)! 이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이, 이게 뭐야?”

    심지어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마저도 나를 올려다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계 정상에서 날고 기는 그이지만 회귀자인 내 앞에서는 뉴비나 다름없다.

    아마 그는 오크가 상위종인 오우거나 자이언트로 진화하는 것은 몇 번인가 봤을지 몰라도 그보다 더욱, 더욱 더 까마득한 상위종으로 진화한 플레이어는 처음 봤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보여 주잖아.”

    나는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키가 커지니 기분이 좋구만. 역시 남자는 키 13미터 이하는 전부 루져야.

    발록의 몸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일단 크니까 시야도 탁 트이고 스탯도 미친 듯이 폭증했다.

    전신의 신진대사가 엄청나게 빠르게 활성화되었고 세포와 세포가 마찰해 뜨거운 열이 발생하였으며 이 때문에 관절에서는 불길과 용암이 솟구친다.

    입에서는 내장이 연소되어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연신 뭉게뭉게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어때? 인간과 오크, 악마성좌 사이의 미싱 링크를 발견한 기분이.”

    내 대답에 튜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이다.

    당연하게도, 나와 튜더를 제외한 전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지금 다 난리가 났다.

    [세상에! 마동왕! 마동왕 선수입니다! 마동왕 선수가……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발록으로 변신했습니다! 아니, 이건 변신이 아니라 진화인가요!?]

    [발록이라 하면 초고위 악마들 중 최전선에서 날뛰는 전쟁광, 전투부족들을 일컫는 말이죠! 아니 그런데 인간이! 아니 오크가 거기까지 진화할 수 있는 거였습니까!?]

    [저는 오크 유저들이 상위종족인 오우거나 자이언트, 트롤 등으로 진화하는 것은 그래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 중에서는 몇 번 본 것 같은데…… 이, 이건 대체, 대체 뭡니까 이 상황!]

    [마동왕 선수…… 지금껏 언랭이었던 이유가 있었네요. 랭킹에 등록되면 레벨이 드러나니까…… 그 어마어마하게 높은 레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보통 레벨로는 저런 상위종 진화테크가 나올 수가 없어요! 발록이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캐스터들의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지금쯤 WUO의 시청자 게시판에 어떤 댓글들이 달리고 있을지 역시도 예상이 간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순간 다른 채널 돌렸나 했네...갑자기 왠 몬스터;;;

    -않이...처리반이 몬스터 다 제거한 거 아녔음??

    -근데 원래 적도의쌍심에 발록이 서식하던가?? 아니지 않냐??

    -뭐 필드 보스가 갑자기 리젠된 거?

    -ㅂㅅ들아 잘 봐!!! 저거 마동왕이잖아!!!!

    -어????? 진짜야? 저거 마동왕??

    -아니...아니 어케? 왜? 뭐야 이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누가 해설 좀 해 줘ㅠㅠㅠㅠ!!!!!!!!!

    -캐스터들 말 들어보셈 빨리;;;

    -마동왕이 원래 오크 유저였고 레벨 높아서 바로 발록으로 진화한 거???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 같은데?

    -아니 원래 마동왕이 오크 종족이야?

    -ㄴㄴ경기 전 프로필 보면 인간이라 되어있음

    -오크도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으니 인간도 오크로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는 듯?

    -뭔가 히든 피스 같은 아이템을 썼나보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레벨이 몇이길래 상위종을 몇 단계나 건너뛰고 바로 발록??

    -애초에 오우거나 트롤이나 자이언트 말고 그 상위종으로 진화할 수가 있는 거였어?

    -ㅅㅂ나는 리자드맨이 카멜레온맨이나 벨로시랩터맨으로 진화하는 건 봤어도...이건...

    -사스가 갓동왕! 아시아의 프린스!!!

    .

    .

    이런 상황 속에서.

    …쿵!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크의 몸, 아니 발록의 몸을 얻기 전에도 내 전투력은 위험등급 S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힘을 가진 존재들과 엇비슷했었다.

    그런 마당에 악마의 돌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스탯 뻥튀기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힘은?

    ‘지금 이대로라면 고정 S+급 몬스터랑도 다이다이 뜰 수 있을 것 같은데?’

    명실공이 이 세계의 절대자 그 자체. 단신으로 서브스트림 하나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

    그것이 바로 나란 말씀!

    내가 필드 위로 존재감을 뽐내자 튜더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친다.

    그러던 그는 문득 발걸음을 뚝 멈추고 깜짝 놀랐다는 듯 자신의 발을 내려다본다.

    아주 옅게, 미약하게 떨리는 몸.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압도하는 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것을.

    “……이, 인정 못 한다. 나보다 강한 녀석이 있다고!?”

    그는 발악하듯 엑스칼리버를 들었다.

    강맹한 아우라가 또다시 나를 향해 날아든다.

    튜더의 용맹한 기상, 고귀한 아우라, 그것을 상징하듯 굵고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튼다.

    “부숴 버리겠다!”

    용자의 검 엑스칼리버가 용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쇄도해 들었다.

    “부순다고? 마침 잘 됐군.”

    나 역시도 주먹을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구……

    존재 자체가 재앙이나 다름없는 발록의 주먹이다.

    지상에 떨어진 작은 태양과도 같은 주먹에는 마몬의 힘이 100%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눈앞에 있는 튜더를 향해 불의 궤적을 그린다.

    쇄애애애애액!

    지상에서 쏘아져 올라가는 별똥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내 주먹은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폭파시키고 찢어발기며 날아갔고 이내 튜더가 혼신의 힘을 다해 뿜어낸 아우라와 부딪쳤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단판승부.

    그리고.

    그 승부의 끝은 수십 억 인파의 기대를 한 순간에 허무한 물거품으로 사그라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콰쾅!

    1초. 아니 0.1초? 어쩌면 0.01초?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도 짧은 그 순간에 승부가 정해져 버렸다.

    쨍강!

    눈앞에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금속 조각들.

    불길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 수많은 가루들은 바로 엑스칼리버의 파편들이었다!

    은하수처럼 분해된 이 전설의 명검은 순식간에 발록의 화염폭풍에 휘말려 흩어진다.

    그리고.

    펑!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고막을 찢어 놓을 정도로 강렬한 충격파가 한번 협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와르르르르르… 콰쾅!

    산이란 산은 죄다 무너져 내린다.

    협곡이 붕괴해 내렸고 이내 평지처럼 변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검은 흙먼지가 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버섯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역방향으로 치솟아 올라가는 별똥별이 하나.

    쇄애애애애애애애액-!

    그것은 바로 전 세계 통합 랭킹 1위 튜더!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였다!

    내 주먹에 맞은 튜더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별이 되어 저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삐익!

    전황판의 수치들만이 조용히 바뀔 뿐이다.

    <현황판>

    <한국: 남은 선수 2명> -마동왕/윤솔(HP 10%이하)/유세희(HP 10%이하)/드레이크/마태강(사망)

    <영국: 남은 선수 1명> -블레어/튜더(사망)/라치만 구룽(사망)/호킨스(사망)/올리버(사망)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 HP 0, 사망, 원 킬.

    세계 정상을 놓고 다투던, 수많은 구설수와 논란의 중심에서 서로 비교되던 두 영웅의 대전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허탈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허탈함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은 곧이어 휘몰아치는 전율과 압도감이 채운다.

    ……! ……! ……! ……! ……! ……! ……! ……! ……! ……! ……! ……! ……! ……! ……!

    아주 꽉- 꽉- 들어 채운다.

    홀의 천장을 날려버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

    지금 이 순간 직관 온 관중들도, 방송으로 시청하는 시청자들도, 그리고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중계를 해야 할 캐스터들도 모두 목이 터져라 환호하며 발을 구르고 있을 뿐이다.

    …….

    그리고 그 모든 혼돈과 열광의 도가니 한 복판에서.

    “다음.”

    나는 무미건조한 태도로 남은 사냥감을 마저 지목하고 있었다.

    이윽고, 영국 측 벤치를 가리키고 있는 내 손가락 끝에 창백한 얼굴 하나가 걸린다.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저 얄미운 간잽이 놈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