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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55화 (755/1,000)
  • 755화 캡틴 오 마이 캡틴 (3)

    …쿵!

    자이언트의 거구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상체까지 쓰러진 호킨스의 몸은 내 앞에 엎드려 경배를 올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머리통이 박살나 사라져서 으스스하게만 보이는 경배였지만.

    [……아. 저, 저거!]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한국의 전용진 캐스터였다.

    그리고 그 뒤를 바로 이어서 홍영화가 마이크를 잡았다.

    [꺄아아아악! 마동왕 선수! 이거 실화인가요-오!?]

    그러자 비로소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마치 번개를 뒤따라오는 것 같은 엄청난 함성이었다.

    각국 캐스터들이 그제야 흥분한 기색으로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세상에! 지금 제가 뭘 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방금 마동왕 선수한테 원 킬 당한 게 영국의 국가대표인 ‘그 호킨스’ 선수 맞습니까!?]

    [맞습니다! 뉴턴 존 호킨스! 오크의 상위종 자이언트로 진화한 유저! 방금 전 라운드에서 마태강 선수와 격렬하게 맞붙던 그 선수가 맞아요!]

    [느린 화면으로 보시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마동왕 선수가 마치 귀찮다는 듯 주먹을 휘두르고 있구요! 거리 재기용 잽 같은 이 단순한 동작에 호킨스 선수의 머리가 펑! 펑입니다! 펑!]

    [아니… 대체… 대체… 대체… 이건 대체!]

    당연한 말이게도, 호킨스의 머리가 터지는 순간 WUO 공식 게시판도 터져 버렸다.

    -방금 내가 뭘 본 거냐???

    -원킬임? 진짜 원킬?

    -존 호킨스를 평타 한 방으로 잡았다고?;;;;;

    -아니 전전 라운드에서 마태강이랑 그렇게 지지고 볶고 하던 ‘그’ 호킨스를???

    -쌌다 응애응애ㅠㅠㅠㅠㅠㅠ

    -마동왕 횽...세계리그 뿌셔...지구 뿌셔...호킨스 뚝배기 뿌셔...

    -방금 리플레이 안본 눈 삽니다. 한번 더 보게;;;

    -이거다! 이게 마동왕이다! 이게 한국이다!

    -한국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야!

    -마동왕이 한국인인게 아니라 한국이 마동왕의 나라인 거다!

    -국경은 이제 의미가 없어! 아시아 전체가 마동왕의 대륙이야!!!

    -아시아에 태어난게 자랑스럽다...

    .

    .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이 남기는 댓글들이 미친 듯이 갱신된다.

    마동왕의 유튜뷰 개인 채널 역시 조회수가 폭발하는 중이었다.

    고인물TV에 올라온 2차 대격변 영상에 필적할 정도로 조회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는 마동왕TV의 세계리그 평정 동영상.

    이대로라면 개인방송의 역사상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신화적인 영역에 돌입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빨리빨리.”

    나는 영국 측을 향해 손바닥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내 앞으로 다음 선수가 나온다.

    “젊은 친구, 힘이 제법이군.”

    라치만 구룽.

    영국 랭킹 2위, 세계 통합 랭킹 4위, 리자드맨 공식 랭킹 1위.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 1패의 오점도 없이 이곳 세계의 정점까지 올라온 역전의 용사임과 동시에 현실에서는 ‘구르카의 악마’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퇴역군인.

    라치만은 멀쩡하게 재생된 꼬리를 흔들며 자세를 낮추고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리자드맨 특유의 기동성을 발휘하여 표홀하게 움직여 상대를 맹공하는 전략을 자주 쓴다.

    하지만 바로 이전 라운드에 존 호킨스가 허무하게 죽는 걸 봐서 그런가 섣부르게 접근해 오지는 않고 있었다.

    “안 올 거야?”

    “그쪽이 오지 그러나.”

    라치만 구룽은 아예 몸의 중심을 뒤로 젖혔다.

    앞으로 돌진할 일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수 있다.”

    전형적인 니가와 전법. 예전에 내가 흰 용을 상대로 썼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치만이 하면 그 의미가 다르다.

    ‘원래 얍실하고 기동성이 빠른 캐릭터일수록 니가와 전법이 강력하지.’

    고전 게임 ‘킹 오브 파X터즈’에서도 최번개라는 작고 마른 캐릭터가 가장 ‘니가와’를 잘하지 않는가.

    라치만은 나보다 기동성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지금 자신들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번 매치를 장기전으로 끌어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그럼 내가 가고.”

    나는 주먹을 들어 옆의 절벽을 쾅 내리찍었다.

    …우르릉!

    협곡 위의 바위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입을 딱 벌리고 산사태를 바라보는 라치만을 향해 나는 씩 하고 웃어 주었다.

    “어때? 나의 원딜이.”

    “……이런 것도 원딜이라고 봐야 하는가?”

    라치만은 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쏟아져 내리는 바위들을 피해 내 쪽으로 달려온다.

    스팟!

    과연 신기에 가까운 고스피드.

    하지만 내 동체시력을 얕보면 곤란하지.

    ‘현실에서는 코앞의 신호등도 잘 안 보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픽셀 단위까지 볼 수 있다고.’

    나는 뒤로 슬쩍 물러났다.

    가각-

    라치만의 손톱 끝이 피카레스크 마스크의 코끝을 아주 살짝 긁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에 따라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허억!?”

    라치만은 기겁을 하며 방향을 튼다.

    아마도 눈앞으로 다가오는 내 손바닥이 산처럼 거대하게 보였겠지.

    …꽈악!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던 라치만의 신체 일부가 손아귀에 잡혔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꼬리였다.

    팟!

    라치만은 이를 악물고 꼬리를 끊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당기는 것이 더 빨랐다.

    꼬리는 끊어졌지만 꼬리가 아직 붙어 있을 때 당겨졌던 힘으로 라치만의 몸뚱이는 나를 향해 다가온다.

    “어어어어엇!?”

    라치만이 미처 뭔가 저항을 하기도 전에.

    턱-

    나는 라치만의 목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뿌각!

    거대한 만마전을 망치 한 자루만으로 건설했던 산업역군의 힘이다.

    황금향의 거대한 황금기둥조차도 떡 주무르듯 했던 마몬의 오른손을 라치만의 목뼈가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짤!

    나는 라치만의 목을 쥔 손을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마치 노래방 탬버린을 흔들듯 하는 그 한 번의 손사래에 라치만은 목뼈가 부러져 즉사하고 말았다.

    […….]

    캐스터석은 또다시 말이 없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떠들썩했던 관중석도 다시 조용해졌다.

    특히나 영국 측 관중석은 무덤과도 같았다.

    그런 와중에.

    삑-

    전광판의 수치가 또다시 바뀌었을 뿐이다.

    <현황판>

    <한국: 남은 선수 1명> -마동왕/윤솔(HP 10%이하)/유세희(HP 10%이하)/드레이크/마태강(사망)

    <영국: 남은 선수 2명> -튜더/블레어/라치만 구룽(사망)/호킨스(사망)/올리버(사망)

    라치만 구룽, 세계 최강의 리자드맨 플레이어, HP 0, 사망, 원 킬.

    전 라운드에서는 너무나도 의외의 광경이어서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이번은 조금 다르다.

    …오싹!

    소름. 실로 가공할 만한 영웅의 존재감.

    규격 외. 말도 안 되는 존재와 동시대를 함께, 실시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이 오싹한 전율(戰慄)이 지금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수십억 인파의 몸을 떨게 만든다.

    전 세계, 6대주 각국의 캐스터들은 일제히 고함쳤다.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튜더 선수의 스승이자 전직 군인… 그리고 전쟁영웅인 라치만 구룽 선수가… 일격! 일격에 당한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라치만! 최강의 리자드맨 플레이어! 세계 랭킹 4위라는 최정상급 랭커! 그런 대단한 선수가 고작… 고작…….]

    [고작 짤짤이에 맞아 죽다니요! 그냥 평타도 아니고 짤짤이에! 아아!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은 뒤집히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한국에서 온 단 한 명의 선수가 지금 여섯 개의 대륙을 모조리 뒤집어 엎어 놓고 있단 말입니다!]

    마이크를 숫제 목구멍 속까지 박아 넣을 듯 떠들어대는 캐스터들.

    그리고 호킨스 전 이후로 뜨겁게 달아오른 WUO 공식 게시판은 마치 핵 용광로 속처럼 부글부글 끓어 터진다.

    -아니, 방금 또 평타??

    -심지어 짤짤이임ㅋㅋㅋㅋㅋㅋ

    -도랏다 진짜;;;뭐냐 이거???

    -혹시 몰카임???

    -주작이네ㅋㅋㅋ영국이랑 짜고 치는 거임~

    -마동왕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마진요 결성해야 한다...

    -호킨스에 이어 라치만도 원킬? 평타?

    -대체 마동왕의 레벨은 몇이냐???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경지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그 누구도 짐작 불가

    -그야말로 갓...그 자체

    -神;;;

    -그는 신이야!

    -이거 진짜 튜더 아니면 마동왕 막을 사람이 없겠는데???

    -마동왕은 이미 튜더 급이다ㅎㄷㄷㄷ

    -근데 튜더라고 해도 호킨스나 라치만 원킬 가능???

    -마동왕이 튜더보다 센 거 아니냐 이쯤되면...

    -그건 아직 모르지;;

    -이제 곧 알게 될 듯....둘 중 누가 위인지!

    .

    .

    한편.

    현실 좌석에 앉아 경기를 바라보고 있던 마태강과 게임 속 벤치에 앉아있던 유세희는 입을 딱 벌렸다.

    “……!”

    [……!]

    서로 위치해 있는 곳은 다르지만 느끼는 것은 같다.

    그들을 그토록 고전시켰던 존 호킨스와 라치만 구룽이 일격, 그것도 공격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시덥잖은 손놀림에 연달아 작살나는 모습.

    그것이 이 두 천재의 머릿속에 벼락과도 같은 영감을 안겨 준 모양이다.

    ……뭐 아무튼.

    “다음.”

    나는 고개를 들어 영국 측 벤치를 쳐다보았다.

    내 발 앞에는 머리통이 부서져 죽은 호킨스와 목이 부러진 채 혀를 빼물고 죽은 라치만의 시체가 뒹굴고 있다.

    …뿌득!

    이 가는 소리가 살벌하다.

    이윽고, 경기장이 상하로 세차게 요동쳤다.

    콰쾅! 우지지직!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경기장 중앙으로 착지하는 선수.

    드디어 세계의 정점,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

    “…….”

    신화적인 영웅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핏발 선 눈으로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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