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54화 (754/1,000)
  • 754화 캡틴 오 마이 캡틴 (2)

    영국 선수 4인, 그리고 한국 선수 1인.

    최후의 1인이 된 내가 필드로 나서자 튜더의 시선이 묘하게 바뀐다.

    “비앙카를 무릎 꿇렸던 남자인가. ‘그’ 비앙카를…….”

    나를 보는 튜더의 시선이 어딘가 묘하다.

    캡틴 유나이티드 킹덤과 캡틴 코리아.

    나와 튜더는 필드의 중앙에서 서로 대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세계 통합 랭킹 1위의 힘을 겪어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나로서도 상당히 감회가 새로운 자리였다.

    ……하지만.

    “안타깝구나, 한국의 용사여.”

    튜더는 나를 향해 침울한 눈빛을 보냈다.

    “전략 상 나는 너와 싸울 수 없다.”

    “……?”

    “그것은 나 개인의 영광보다는 팀의 영광을 중요시해야 하기 때문이지.”

    튜더는 정말로 서글픈 듯 이야기한다.

    “사감은 없다. 미안하다.”

    동시에, 그는 손을 들어 태그 사인을 보냈다.

    내가 필드로 나오자마자 바로 내빼는 튜더의 모습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영국 측이 무슨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쿵!

    내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영국 팀의 브레인이자 아주 골치 아픈 봉인계열 마법사였다.

    “후후후, 에이스는 에이스랑 붙어야지.”

    블레어는 뒤로 빠진 튜더를 힐끔거리며 웃는다.

    적인 나보다는 아군인 튜더에게 더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새.

    튜더를 제치고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 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나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도 안 통할 텐데. 무슨 자신감이지?”

    “후후후. 두고 보면 알겠지.”

    나를 향해 음침하게 웃어보인 블레어는 이내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내, 그의 장기가 터져 나왔다.

    키이이이잉-

    허공에 수많은 마법진들이 생겨난다.

    …텅! …터엉! …텅! …쿵!

    마법진은 각각 커다란 관 하나씩을 뱉었고 그것들은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개방된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마법이로군.”

    나는 표정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노예사역’ 특성

    ↳죽인 플레이어를 하수인으로 등록하여 사역합니다. 최대 5인까지 등록 가능하며 시전자 사망 시 리셋됩니다.

    일명 ‘노예사역’ 특성, ‘무덤사역’의 하위호환 특성으로 한층 더 질이 나쁜 스킬이다.

    이 특성은 죽은 자를 되살려 자신의 수족으로 부린다는 점에서는 무덤사역과 같다.

    다만 몬스터나 NPC, 플레이어들에게 고루 통하는 무덤사역 특성과는 달리, 노예사역 특성은 오로지 플레이어들만을 그 상대로 한다.

    물론 쿨타임이 있거나 등록 수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한번 죽인 플레이어는 관 안에 봉인되어 계속해서 써먹을 수 있다.

    최대 5인까지, 그리고 마법의 시전자가 죽기 전까지 말이다.

    “후후후, 이 스킬은 가장 최근에 죽인 플레이어 다섯을 내 수족으로 삼아 부리는 능력이지. 내가 무엇을 꺼낼지 궁금하지 않나?”

    블레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티오피아 팀이겠군.”

    “맞았어.”

    동시에, 블레어가 소환한 다섯 개의 관을 열고 흐리멍텅한 표정의 플레이어 다섯이 걸어 나온다.

    화염계열 마법사 구르무.

    얼음계열 마법사 타파라.

    일반계열 마법사 밸라이.

    식물계열 마법사 마루 마모.

    그리고 마지막은 세계랭킹 3위의 탱커 페이사 릴레사.

    “…결국 이렇게 되는군.”

    나는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에티오피아 팀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블레어는 죽인 플레이어를 노예로 부리는 스킬을 사용하는 타고난 머더러.

    그렇기에 놈이 적색지대에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을 몰살시켰을 때부터 이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다.

    세계리그에 부득불 나온 것도 능력 좋은 노예를 얻어 관짝에 봉인하기 위함이었으리라.

    2라운드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에서 팀킬을 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뒀던 것은 에티오피아 선수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점찍어 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문득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한데, 같은 영국 팀이나 한국 팀을 제외하고 굳이 에티오피아 선수들을 노예로 만든 이유가 뭐냐?”

    내가 묻자 블레어는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말했다.

    “그야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함이지.”

    “…….”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잖아. 나는 전통 있는 노예들이 좋단 말이야.”

    그 말에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죽어야만 정신을 차리겠군.”

    이외에는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콰쾅!

    나는 바로 땅을 박찼다.

    하지만 블레어는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함께 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뿜어내는 에티오피아 선수 다섯이 자신의 호위무사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쿠르르르륵! 쩌저저저적!

    구르무와 타파라가 불과 얼음의 벽을 만들어 나를 가둔다.

    밸라이는 소금의 칼날을, 마루 마모는 커피콩 폭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강력한 페이사의 분화구 같은 주먹이 나를 향해 불길과 용암, 화산쇄설류를 뿜어낸다.

    “…….”

    나는 그 모든 공격들을 맞받아치면서도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캐스터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아아 블레어 선수! 전 라운드에서 흡수한 에티오피아 팀의 능력으로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마동왕 선수! 꿋꿋합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계속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저력! 한국인의 근성입니다!]

    [블레어 선수의 소환 메타와 마동왕 선수의 광역기 메타는 상성이 좋지요! 천하의 마동왕을 상대로 다구리라니요!]

    [마동왕이 와류와 지진 한번 써 주면 다대일 상황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동왕! 보여줄 때가 되었어요! 통렬한 초광역기 한 방! 모두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블레어의 얄미운 행동은 나뿐만 아니라 지금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기대받는 상황.

    나 역시도 슬슬 몸을 풀어야 한다.

    “자, 그럼 먼저 한 방 가 보실까나.”

    나는 데스웜의 힘을 끌어올렸다.

    캐스터들의 분석대로 나에게 다대일 상황이란 전혀 어려울 게 없다.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 단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1. 와류로 중심을 잃게 만들고 내 쪽으로 가깝게 끌어들인다.

    2. 그리고 지진으로 모조리 때려 부순다.

    ……기억 못 한 사람?

    아마도 없겠지.

    이만큼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인,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메타가 또 있으랴?

    “자, 그럼 한꺼번에 정리해 주지.”

    그것이 눈앞에 있는 에티오피아 친구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모조리 끌어들여 박살낸다. 저 뒤에서 밉살맞게 웃고 있는 블레어까지.

    나는 데스웜의 힘이 깃들어 있는 왼손 건틀릿을 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이내 온 힘을 다해 와류를 일으켰다.

    …….

    하지만, 이윽고 나를 당황하게 할 만한 이변이 벌어졌다.

    그 이변이란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음?”

    나는 당황하여 다시 한번 더 왼손을 땅바닥에 대고 꾹 눌러 보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때, 블레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그 가면 속의 표정이 절로 상상되는군. 얼뜨기 자식!”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놈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달, 북월(北月)과 남월(南月)이 휘영청 떠 있다.

    그 순간.

    “……!”

    나는 와류 특성이 봉인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맞다. 깜빡했네.’

    그것은 ‘코리올리’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에는 하나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존재한다.

    대륙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태양을 중심으로 두 개의 달이 그 주위를 회전하는데 북쪽에 있는 달과 남쪽에 있는 달로 나뉜다.

    그 달 역시도 각각 고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북쪽 달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 힘을 가졌고 남쪽 달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힘을 가졌다.

    이때 북쪽에는 시계 방향의 와류가, 남쪽에는 반시계 방향의 와류가 생기는데 오늘 경기가 벌어지는 이 ‘적도의 쌍심’은 그 거대한 두 와류의 힘이 서로 맞물려 딱 무회전 상태가 되는 접점 좌표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전용진 캐스터와 홍영화가 분노에 차 외쳤다.

    [아아!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마동왕 선수의 와류 특성이 봉인되었습니다!]

    [영국 측이 이곳을 맵으로 정한 이유가 있었어요! 이곳이 바로 진정한 ‘마동왕 죽이기 맵’이었습니다!]

    [왜 이 맵이 마동왕 선수에게 불리한 맵이냐면은……! 회전좌표계에서 물체가 운동을 할 때 받는 겉보기 힘의 역학적인 효과가 마동왕 선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맞아요! 등속 회전 좌표계에서 코리올리 힘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과 회전각속도에 비례하는데 요컨대 F =2Ωmv라 이겁니다! 현실에서는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북반구에서는 물체가 운동하는 방향의 오른쪽으로 전향력이 작용하고 그 크기는 극지방에서 최대, 적도 지방에서 최소화 되어요!]

    [하지만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지구평면설 세계관에서는 두 달의 사이, 태양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선이 적도이고 그 밑에 있는 이 ‘적도의 쌍심’에서는 어느 방향의 와류이든 간에 전부 무효화 된다는 겁니다! 어느 방향으로 회전력을 가하든 간에 양쪽 달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코리올리 힘의 영향권 안에 있게 되니까요!]

    쉽게 말해 두 달이 힘겨루기를 하는 영역의 교집합에 있는 맵이라서 모든 회전력이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 잘 썼네.’

    나는 와류 특성이 봉인된 것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졸지에 좋은 무기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뭐, 굳이 와류가 봉인되었다 하더라도 무리할 것은 없다.

    어차피 내 힘은 동시대 게이머들이 감히 따라올 수도 없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러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해하고 있을 한국 팬들을 위해 사이다를 한번 끼얹을 때가 되었다.

    나는 데스웜의 힘을 거두고 이번에는 마몬의 힘을 꺼내들었다.

    …콰쾅!

    지진보다 강력한 특성인 대지진, 악마성좌들 중에서도 근력 하나로 탑 찍는 마몬의 힘이 대지를 뒤흔들어 놓는다.

    토사의 쓰나미가 일어 주위를 휩쓸고 지층을 꿰뚫고 올라온 충격파가 협곡 안을 지그재그로 날뛴다.

    우지지지지직!

    블레어가 소환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충격파에 휘말려 사라졌다.

    선수 개개인이 독자적으로 활로를 찾았다면 모르겠지만 한낱 꼭두각시인 마당에야 당연한 결과였다.

    …오싹!

    한편,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블레어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걷힌다.

    “어, 어떻게?”

    협곡 전체를 비틀어 버리는 나의 근력에 블레어는 더듬더듬거리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다.

    와류의 힘이 없어 대기권에는 그 충격파가 전달되지 않았기에 목숨은 건졌다만, 만약 땅에 두 발을 대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을 것이다.

    나는 낯빛이 조금 창백하게 변한 블레어를 향해 검지를 세워 보였다.

    “내 친구들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동시에 나는 선언했다.

    “너는 무조건 ‘와류’ 만으로 잡아 주마. 다른 어떠한 스킬도 쓰지 않고 말이야.”

    폭탄선언!

    두 달의 영향권 안이기에 그 어떠한 와류도 생겨날 수 없는 땅에서 와류로 적을 잡겠다는 공약.

    그 말에 블레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 어차피 방금 그 지진이 네 모든 힘을 쥐어짠 것이었겠지. 허풍도 적당히 떨어 줘야 전략으로 통하는 것이다. 뭐, 나는 아예 넘어갈 생각이 없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블레어는 허공에 뜬 채로 뒤로 물러났다.

    “태그!”

    얄밉게도 태그 선언을 보내는 블레어.

    나는 순순히 녀석을 놓아 주었다.

    ‘어쩌면 저 자식의 흉계 때문에 더 재밌어지겠는데?’

    벌써부터 머리에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줄지 계획이 잡힌다.

    블레어가 나의 와류 특성을 봉인해 준 덕분에 더욱 더 충격적인 연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여기서는 이렇게 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해서… 마지막 피날레로 이걸……’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앞으로.

    “하하하하- 드디어 캡틴 코리아와 붙게 되는군!”

    거구의 사내 뉴턴 존 호킨스가 뛰쳐나왔다.

    2라운드에서 마태강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자이언트 플레이어.

    신장 6미터, 체중 2톤의 거인. 사실상 오크 세계 랭킹 1위의 근접 딜러.

    온몸이 흉기 그 자체인 싸움귀가 나를 향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심지어 튜더의 힐을 받아서 최고의 컨디션을 되찾은 상태로!

    “힘 대 힘! 피가 뜨거워지는구나! 너는 전 라운드에 싸웠던 마태강보다 강한가!? 어디 한번 보여 봐라! 너의 힘을! 너의 신념을!”

    나를 향해 건물 철거용 스틸볼과도 같은 주먹을 휘두르는 호킨스!

    ……그러나.

    “비켜.”

    그를 맞이하는 내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쾅!

    주먹 한 방.

    그 한 방에 호킨스는 뒤로 나가 떨어졌다.

    머리통이 모래알처럼 박살 난 채로.

    [……!?]

    관중석도, 캐스터석도, 영국 측 벤치도 일순간 정적에 잠긴다.

    ……심지어 한국 측 벤치마저도.

    십 수억 인파들 중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각한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었다.

    다만 경기장 중앙에서 붉게 깜빡이는 대형 스크린만이 유일하게 현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현황판>

    <한국: 남은 선수 1명> -마동왕/윤솔(HP 10%이하)/유세희(HP 10%이하)/드레이크/마태강(사망)

    <영국: 남은 선수 3명> -튜더/블레어/라치만 구룽/호킨스(사망)/올리버(사망)

    뉴턴 존 호킨스, 세계 최강의 오크 플레이어, HP 0, 사망, 원 킬.

    이것이 팩트다.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실로 오랜만의 대사를 읊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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