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52화 (752/1,000)
  • 752화 세계 최강 인증 (6)

    <현황판>

    <한국: 남은 선수 3명> -마동왕/윤솔/유세희/드레이크/마태강(사망)

    <영국: 1킬> -튜더/블레어/라치만 구룽/호킨스(HP 10%이하)/올리버(사망)

    이걸로 한국과 영국의 스코어는 한국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다만 영국 측에 그나마 불행 중 호재라고 여길 만한 것이 있다면 라치만이 마태강을 잡고 연이어 드레이크에게 태그를 받아 내면서 호킨스와 올리버의 부진을 어느정도 메꿨다는 것이다.

    부상이라고는 꼬리가 잘린 것밖에 없는 그의 앞으로 나선 이는 바로 유세희!

    거대한 불카노스 대낫을 들고 있는 소녀였다.

    눈 먼 처형인. 사상 최강의 여고생.

    “…….”

    유세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라치만을 향해 서 있었다.

    방금 전 마태강이 실시간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을 중계를 통해 들은 터라 그녀의 심기는 별로 좋지 않다.

    한편, 캐스터들은 유세희가 나오자 기대 반 불안 반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아, 한국 측의 선택은 유세희 선수인가요! 라치만 선수와는 상성이 나쁘지 않습니다!]

    [유세희 선수 잘하는 선수죠. 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만큼 라치만이라는 강적을 맞아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미지수이기는 합니다!]

    [그 왜 예전에, 유세희 선수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대만 선수 두 명을 더블킬로 잡아 낸 전적이 있잖아요?]

    [하지만 러시아 전에서 트로츠키 선수에게 원킬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마태강 선수 역시 트로츠키 선수에게 별달리 저항해 보지 못하고 패했던 것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미국전에서 죠 올드만 선수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캐스터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것은 유세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라치만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었다.

    신장 1미터 90센티미터에 체중 90킬로그램, 손톱 날의 길이 95센티미터.

    영국 랭킹 2위, 세계 통합 랭킹 4위, 리자드맨 공식 랭킹 1위.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 1패의 오점도 없이 이곳 세계의 정점까지 올라온 역전의 용사임과 동시에 현실에서는 ‘구르카의 악마’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퇴역군인.

    심지어 세계 통합 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조차 제자를 자처할 정도의 실력자.

    그것이 바로 라치만 구룽이다.

    그는 눈앞에 등장한 작은 소녀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손녀뻘인 아이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니 마음이 편치는 않…….”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핏!

    유세희가 특유의 엄청난 스피드로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

    라치만은 황급히 허리를 뒤로 뺐다.

    무시무시한 참격이 절벽가를 횡으로 깊게 패 놓았다.

    쩌저저저저저적!

    균열이 가는 암석지대, 위에서 집채만 한 낙석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유황 가스에 불이 붙고 뜨거운 지하수가 펑펑 터져 나오는 땅.

    하지만 그 격동의 한가운데에서도 유세희는 미동조차 없이 평온하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표홀히 서 있을 뿐이다.

    라치만은 헛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허어, 어린아이의 정신 수양이 벌써 이런 경지라니. 앞으로가 두려워지는구나.”

    이내 그의 쿠크리가 뱀처럼 휘어져 날아든다.

    천하의 투신 마태강조차 본능적으로 겨우 피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까앙!

    다른 유저들이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목을 내놓아야만 했을 그 고스피드의 공격을 유세희는 너무도 쉽게 막아 냈다.

    “……!”

    라치만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유세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으로 라치만의 공격을 반 수 앞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탐색전 끝. 이제부터 본게임요~”

    세계 탑 티어의 랭커를 눈앞에 두고도 기죽기는커녕 투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포식자, 사냥꾼의 자세였다.

    탈(脫)아시아급 기량. 비록 나이만 조금 어릴 뿐, 그녀는 이미 월드클래스 급의 근접 딜러인 것이다.

    부우우웅!

    깡 공격력이 거의 1만에 육박하는 대낫, 그것은 휘둘러지며 나는 소리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인다.

    필드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유세희에게서 익숙한 동료의 향취를 느꼈다.

    ‘……잭 오 랜턴!’

    누더기 망토를 휘날리며 대낫을 들고 복수를 꾀하던 목숨추수자.

    -<복수자의 핏빛 대낫> / 양손무기 / S

    진득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낫.

    어딘가 그리운 향취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민첩 +3,500

    -물리공격력 +9,9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할로윈’ 사용 가능 (특수)

    지금 유세희가 들고 있는 대낫에서는 전성기의 잭 오 랜턴이 뿜어내던 그 살벌한 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퐁! …퐁! …퐁!

    마치 유령처럼 허공을 딛고 날아다니는 유세희는 빠를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날카롭다.

    ‘흐음. 이 아이가 죠 올드만, 그 늙은이에게 패했었다고? 믿어지지가 않는군. 잠재력만 놓고 보면 튜더 그 녀석보다도 뛰어날지도 모르겠거늘.’

    라치만은 계속해서 몰아치는 대낫을 피해 연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쿠크리 같은 손톱을 꺼내 참격 대 참격 싸움을 해 보려고도 했지만.

    따앙! 쩡!

    어찌된 영문인지 저 시뻘건 대낫에 닿으면 쿠크리 손톱이 부서질 듯 떨린다.

    ‘……대체 뭘로 만들어진 낫인지.’

    라치만은 손톱의 이가 빠지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연신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유세희의 성장 속도에 경악하고 있었고 말이다.

    ‘세상에, 천재들은 정말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사실 그동안 유세희는 혼자 울분을 많이 참아 왔었다.

    대만전에서 더블킬을 하며 화려하게 떠올랐다가 이내 러시아전에서 트로츠키에게 완패, 이어서 미국전에서 죠 올드만에게 완패했다.

    트로츠키와 죠 올드만의 공통점은 모두 유세희를 만나기 전에 마태강을 무참하게 패퇴시켰다는 것.

    이번 라치만 구룽 역시도 마찬가지다.

    …꽈악!

    그래서 유세희는 더욱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네티즌들에게 거품이라고 까이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번에야말로 꼭 마태강의 복수를 자기 손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번쩍!

    불길한 핏빛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라치만의 표정이 굳어 간다.

    대각선으로 잘려나가는 종유석, 깊은 흉터가 패이는 절벽, 펑펑 터져 나오는 독기와 유황가스들.

    유세희의 공격은 눈 먼 듯 날뛰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사실 차근차근 라치만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때, 유세희를 피해 바닥에 납작 엎드리려던 라치만이 일순간 발을 헛디뎠다.

    ‘이런, 꼬리가 없으니…!’

    드레이크의 저격을 피하느라 어쩔 수 없이 잘라냈던 꼬리의 빈자리가 크다.

    무게중심을 잃어버리자 두 다리가 통제를 잃고 꼬였다.

    그 틈을 유세희는 놓치지 않고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좁혀 온다.

    “……큭!”

    라치만은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열 개의 손톱으로 우물 정(井) 자를 만들어 가드를 세웠다.

    곧 떨어질 대낫을 대비하기 위해서 한시도 유세희의 손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러나.

    불쑥!

    대낫을 휘두르기보다는 목을 빼어 라치만의 두 눈을 들여다보는 유세희.

    왜 공격하지 않는지 몰라 의아해하는 라치만에게, 유세희는 물었다.

    “돈 받은 만큼은 하신다고 했죠?”

    아까 라치만이 튜더에게 했던 말이다.

    라치만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유세희가 눈을 빛냈다.

    “돈 많이 드릴게요.”

    동시에, 유세희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황금빛이 폭사되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황천의 뱃사공 고르딕사의 시선이 우물 정자의 손톱 가드 사이사이로 라치만의 두 눈을 꿰뚫어 본다.

    “헉!?”

    라치만은 황급히 고개를 틀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을 감아요? 전투 중에?”

    유세희는 바로 대낫을 휘둘러 라치만의 얼굴을 북- 그어 버렸다.

    바로 전 라운드에서 마태강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그윽!?”

    라치만은 한쪽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물러났다.

    흉터, 그리고 후두둑- 흩뿌려지는 피.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었기에 즉사는 피했지만 출혈 데미지가 상당하다.

    거기에.

    꾸드득- 뿌드득- 뚜둑!

    손끝과 발끝이 점차 황금빛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치는 즉시 눈을 감았기에 마비는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유세희처럼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고스핏의 근접 딜러를 상대로는 치명적이다.

    …핏! …퍼억! …서걱! …쩍!

    붉은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어김없이 라치만의 비늘조각이나 살점토막이 떨어져 내린다.

    나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죠 올드만 전이 도움이 되긴 했나 보네.’

    세계무대로 나와 엄청난 강적들과 맞섰던 경험이 가뜩이나 천재였던 유세희의 성장을 가속화시켰던 모양이다.

    죠 올드만과 싸워봤던 경험을 토대로 유세희는 라치만을 계속해서 압박해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괴물을 키워 낸 것일지도?

    그러나.

    “기특하긴 하다만, 거기까지다.”

    라치만이 이빨을 드러냈다.

    흰 수염에 감추어져 있었던 칼날 같은 이빨들이 유세희를 향해 겨누어졌다.

    “!?”

    유세희는 달려가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천재 중의 천재, 본능이 시키는 경고는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피피피피핏!

    라치만의 입속에서 이빨들이 침처럼 발사되었다.

    틀니. 라치만은 입에 머금고 있던 날숨을 뱉어내는 동시에 무수한 양의 이빨들을 날려 보낸 것이다.

    딱! 따닥! 따다다닥!

    유세희는 대낫 뒤로 숨어 모든 이빨들을 피해 냈지만.

    츠츠츠츠츠…

    라치만의 이빨은 마치 상어의 것처럼 금세 다시 돋아난다.

    이 점은 그동안의 경기에서 한 번도 관측된 적 없었던 히든 패턴이었다.

    “치잇!”

    유세희는 계속되는 이빨의 소나기를 피해 뒤로 물러나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르딕사의 시선을 맞받은 탓에 상대방의 시야가 제한되어 에임이 부정확하다.

    이윽고 둘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쯤.

    “허허허, 태그.”

    라치만은 너무도 싱겁게 태그 선언을 했다.

    영국 진영으로 재빨리 물러나는 라치만, 이미 이빨 날리기로 거리를 꽤나 벌려 놓은 터라 태그를 막기란 요원해 보였다.

    드레이크가 나서서 저격을 한다면 또 모를 일이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도 태그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으으 치사하게!”

    유세희는 대낫을 들고 폴짝폴짝 뛰었지만 라치만이 다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마태강의 주먹에 드레이크의 저격까지 연달아 겪었던 그가 풀 HP 상태인 유세희까지 상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이니 영국 측의 결정은 당연한 것.

    그리고.

    …쿵!

    샐쭉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세희의 표정을 단번에 딱딱하게 굳히는 인물이 등장했다.

    마태강의 복수, 아깝게 놓친 적…… 지금 그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존재를 상대하는 것.

    영국의 지존.

    세계 통합 랭킹 1위.

    세계리그의 끝판왕.

    바로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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