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화 세계 최강 인증 (3)
…콰쾅!
주변 바위들을 죄다 깨 부숴 버리며 등장한 거구의 남자.
존 호킨스. 일명 ‘유럽의 거인’!
나는 그를 보며 잠시 미간을 짚었다.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커졌는데?’
이것도 나비효과라고 봐야 하나 애매하다.
……뭐 아무튼.
그는 마법사답게(?) 바로 눈앞에 있는 마태강을 향해 돌진했다.
두두두두두두-
대지가 상하로 요동치며 돌 부스러기들이 위로 치솟는다.
마치 버팔로 떼, 전차 군단이 돌진하는 듯한 그 위용에 마태강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니, 저게 마법사라고?’
실로 마법 같은 근육, 설득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집이다.
“간다! 썬더 볼트(Thunder bolt)!”
마법 주문을 영창하는 호킨스.
이내 그의 주먹이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미친놈아! 그냥 힘캐잖아!”
번개같이 주먹을 뻗는다고 번개 마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파괴력만큼은 확실히 대단위다.
콰쾅! 우지지지직!
호킨스의 주먹에 맞은 바위가 모래알처럼 박살났다.
마태강은 호킨스의 주먹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고 그 주먹이 가르고 지나간 진공의 궤적을 역으로 타올라 그의 허리에 묵직한 미들킥을 갈겼다.
하지만.
“방어! 아이언 월(Iron wall)!”
호킨스는 방어 마법을 펼쳐 마태강의 공격을 막았다.
강력한 미들킥도 막아 낼 정도의 철벽 마법!
마태강은 기가 막혀 소리쳤다.
“그냥 네 몸이 단단한 거잖아!”
그 말대로 호킨스는 무식하게 많은 체력과 방어력으로 마태강의 깡딜을 버텨낸 것이다.
가드를 푼 호킨스는 다시 주먹을 내뻗었다.
“말이 많구나. 이거나 받아라!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이번에는 다르다!
콰쾅! 찌리리릿!
호킨스의 주먹이 마태강의 안면을 향해 날았다.
마태강은 두 팔을 X자로 교차해 호킨스의 주먹을 막아 냈다.
…저릿! …저릿! …저릿!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한 짜릿함이 두 팔을 마비시킨다.
‘설마 이것 때문에 체인 라이트닝이라고 한 건가?’
마태강은 완갑을 뚫고 짜르르 밀려들어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힘법사. 힘 스탯을 찍은 마법사를 잡캐, 망캐라 욕하는가!?
호킨스는 피가 몰려 시뻘겋게 변한 두 주먹을 앞세우고 미친 듯이 돌진하고 있었다.
“받아라! 파이어 레인(Fire rain)!”
6서클의 고위 마법인 파이어 레인은 불의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호킨스는 그것을 지금 마나 한 줌 없이 맨몸으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피가 몰려 빨갛게 물든데다가 너무나도 빨리 움직여 마찰열 때문에 뜨겁게 달아오른 두 주먹을 무수히, 연쇄적으로 내뻗으며 빗줄기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초토화되는 광역지대.
호킨스의 주먹세례가 닿는 곳은 모조리 모래와 먼지로 변해 버린다.
마태강이 황급히 공중제비를 돌며 주먹 소나기의 범위에서 빠져나가자.
“어스퀘이크(Earthquake)!”
이번엔 대단위 지진 마법이다.
호킨스는 두 주먹으로 바닥을 쾅 때려 대지를 뒤집어 놨다.
마태강은 착지하는 즉시 땅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경악해야 했다.
더군다나.
“플라이(Fly)!”
호킨스는 앉은 자리에서 수십 미터를 뛰어올라 지진의 여파를 피했고 곧장 마태강을 향해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
계속되는 마법 세례에 결국 마태강은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
“마법이다. 물리법칙에 의거한 마법일 뿐.”
썬더 볼트(물리), 체인 라이트닝(물리), 아이언 월(물리), 파이어 레인(물리), 어스퀘이크(물리), 플라이(물리), 메테오 스트라이크(물리)…….
이름에 괜히 ‘뉴턴’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뉴턴 존 호킨스는 그 외에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 중력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 등 각종 마법과도 같은 물리력을 강제해 마태강을 두들기고 있었다.
와지지지직! 콰쾅! 우르릉! 빠지직! 퍽! 우득! 쿵!
“매직, 매직매직, 매직, 매직매직!”
호킨스의 신들린 듯한 마법 실력에 지켜보고 있는 모든 관중들이 어머어머 하고 놀라고 있었다.
마태강은 가드 위로 쏟아지는 미친 듯한 마법(물리) 포격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이 대체 어떻게 마법사 랭킹에 등록되어 있지?’
벌써 수백 번은 한 생각이지만… 지금 투덜거린다고 해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으음, 어진 형님께서 경기 전날에 신신당부 하셨었지. 호킨스는 마법사가 아니라 무투가, 그것도 월드클래스의 근접 딜러로 봐야 한다고.’
만약 호킨스가 괜히 마법사 메타를 한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아이템과 스킬을 찍어서 무투가 메타를 갔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종족까지 오크를 골랐다면?
아마 전 세계의 모든 오크 유저들의 랭킹이 1씩 내려가겠지.
‘그래 맞아. 형님께서 말씀하셨어. 만약 호킨스의 종족이 오크였고 포지션이 근접 딜러였다면 아마 세계 랭킹에서 오크 부분 근접 딜러 1위는 그가 차지했을 것이라고. 과연 형님의 선구안은 달라.’
그런 존재와 싸운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호킨스가 인간 종족이고 클래스가 마법사인 것이 다행이었다.
마태강이 주먹을 날리려 하자 호킨스는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윈드 실드(Wind shield)!”
이번에도 말이 마법이지 사실상 그냥 힘이다.
호킨스가 뿜어낸 콧김이 마태강의 주먹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인간, 그것도 마법사 따위에게 힘으로 밀릴 수는 없지.”
마태강의 목소리가 변했다.
목소리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우드드득! 뿌드득!
날카로운 이빨이 입술을 비집고 밖으로 튀어나왔고 전신의 근육들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살가죽의 색이 변했고 주먹과 발바닥이 확 거대해졌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마태강은 억제기를 풀었다.
동시에 그의 몸을 인간의 틀 안에 가두고 있던 구속구들이 모조리 해금되었다.
오크!
마태강은 원래의 종족인 오크로 되돌아갔다.
더군다나 마태강은 레벨과 스탯이 높았기에 진화체계 상 오크의 상위종으로 분류되는 오우거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자고로 오우거라 하면 육전형 몬스터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이다.
질긴 가죽과 그 안에 꽉꽉 들어찬 근육, 돌기둥 같은 통뼈, 늑대 같은 허리와 곰 같은 등, 날카로운 이빨, 거대한 손바닥과 발바닥, 수 미터에 육박하는 키와 수백 킬로그램은 너끈히 나가는 몸무게, 그리고 항상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피,
늘 상대와 바짝 맞붙어 피 튀기는 육박전을 즐기는, 흡사 야수와도 같은 마태강의 전투적인 스타일이 진화 트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반격 시작이다.”
오우거로 진화한 마태강은 육전형 몬스터 특유의 그 괴물 같은 근력을 앞세워 돌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전에서 죠 올드만에게 무참하게 패한 것에 대한 울분일까?
세계 정상에 서게 된 마태강의 주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묵직했다.
뻐-억!
오우거의 주먹에 강타당한 호킨스의 머리가 팩 돌아간다.
비틀거리는 거구.
마태강은 두 주먹을 깍지 껴 말아 쥐고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쾅!
심판의 망치와도 같은 그 해머링에 천하의 호킨스조차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내, 두 괴물이 한데서 맞붙는다.
힘 대 힘의 육탄전!
오우거의 주먹을 상대로도 호킨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오오오오오!”
두 괴물의 주먹이 서로의 몸을 사납게 난타한다.
마치 고대 전사들의 왕위 다툼, 피투성이의 야만 그 자체를 보는 듯 날것 그대로인 광경.
수백 번의 공방전 끝에.
콰쾅!
뒤로 밀려난 것은 바로 호킨스였다.
끝끝내 종족의 벽을 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후욱!”
가쁜 숨을 짧게 짧게 끊어 내쉬는 호킨스, 그런 그를 향해 마태강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타고난 피지컬이 아깝군. 왜 마법사 메타를 고집하지?”
그러자 호킨스가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것은 편견 때문이다.”
“…편견?”
“그렇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우락부락하면 멍청하다는 시선들 때문이지.”
마태강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호킨스는 침을 한번 퉤 뱉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이랬다. 자연스럽게 운동이나 싸움만 하고 다녔지.”
“…….”
“아무도 믿어 주지 않더군. 내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을. 이래 봬도 꽤나 감수성이 여리다고.”
마태강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뻐끔거렸다.
‘……아니 근데 왜 마법의 대부분이 물리인 건데.’
뭐, 확실히 마법사는 머리가 꽤나 좋아야만 운영할 수 있는 클래스이긴 하다.
복잡한 술식 계산과 아이템과 장비의 콜라보, 짜임새 있는 설계로 캐릭터를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장점을 포기하면서까지 어울리지 않는 메타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마태강은 다시 말했다.
“나는 무식해서 그런 건 잘 모르겠군.”
“……!”
“솔직히 그냥 치고 받으면서 싸우는 게 제일 즐겁지 않나? 솔직하게 굴라고.”
마태강의 말에 호킨스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지금껏 아무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없었는데.”
“네 덩치를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뉴턴 존 호킨스는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겼다.
그 앞에서 ‘솔직하게 몸 대 몸으로 한판 뜨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저 적의를 표출하는 방법이라고는 뒤에서 ‘머리는 나쁠 것 같다’라고 수군거리는 게 고작이었겠지.
하지만 지금, 눈앞의 마태강은 솔직담백하게 두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맞짱 함 뜨자!’
……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선한 경험은 또 처음인지라 호킨스 역시 만면에 미소를 그렸다.
“그러냐? 힘을 쓰는 건 너무 무식해 보이지 않겠냐?”
“있는 힘을 쓰는 게 왜 무식해. 힘 세면 무식할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더 무식한 거지. 그리고 좀 무식하면 어때? 힘이 센데. 다 쥐어 패면 그만 아냐?”
마태강이 오우거 특유의 솥뚜껑 같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씩 웃자 호킨스 역시도 씩 웃었다.
“너 같이 단순한 녀석은 처음이다. 간만에 아주 후련한걸? 경기 끝나면 전화번호 알려 줘.”
호킨스는 마태강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심지어 회귀자인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마태강에게 꺼내어 보였다.
…우지지지직!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어금니, 더욱 더 부풀어 오르는 근육.
모든 이들(심지어 같은 영국 선수들까지)을 경악하게 만드는 ‘이변’이 벌어졌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그렇다.
뉴턴 존 호킨스, 그 역시도 화석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