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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48화 (748/1,000)
  • 748화 세계 최강 인증 (2)

    영국 팀의 올리버 마르코.

    그는 세계 통합 랭킹 14위의 월드클래스 랭커로 미국 팀의 오일러 심슨의 라이벌이었다.

    현실의 올리버는 쉐프, 현실의 오일러는 푸드 파이터.

    그는 평소에 ‘요리는 요리다워야 한다’, ‘요리는 맛을 아는 사람에게만 대접되어야 한다’, ‘푸드 파이터들이 맛도 모르고 무작정 빠르게 많이 먹는 데 소모되는 식재료가 정말 아깝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일러가 게임 속에서도 ‘많이 먹는’ 메타를 위시하여 랭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독 타입으로 자신의 메타를 바꾸었다.

    무식하게 많이 먹을 거라면 독이나 많이 먹으라는 것이다.

    ‘……주방만큼 사람에게 독을 품게 만드는 곳이 또 없지.’

    3류 식당의 막내 쉐프부터 시작해 수많은 갈굼과 군기를 견뎌냈던 올리버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수십, 수백 종류의 독으로 그는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세계의 정상.

    비록 라이벌이었던 오일러 심슨은 만나지 못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국내 리그, 그보다 상위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더 나아가 세계리그에서까지 맹활약하는 동안 지금껏 자신의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드레이크를 상대로 만나기 전까지는.

    ‘뭐, 뭐지?’

    독인(毒刃) 올리버는 식은땀 한 방울을 흘렸다.

    땀 한 방울이 대지에 떨어지자 진흙이 타들어갔고 이내 녹색 포연이 피어오른다.

    이처럼 그의 독은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올리버가 풀어놓은 모든 독을 그저 묵묵히 무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츠츠츠츠츠……

    녹색 독안개를 헤치고 나온 상대의 모습은 경기 시작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칠흑의 장갑, 하지만 결코 무거워 보이거나 둔해 보이지 않는 경갑 형태의 검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기사.

    전신에는 날카로운 미늘과 사슬을 두르고 정신에는 시커먼 사기(邪氣)가 엄습해 들었다.

    검은 용의 머리와도 같은 투구의 이빨들, 죽 찢어진 검은 아가리 속으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두 눈알이 엿보인다.

    데스나이트! 죽음의 기사!

    드레이크는 ‘언데드 도핑’을 맞고 두 대의 거대 쇠뇌를 든 궁수형 데스나이트로 진화한 것이다.

    ‘……아하 참, 저게 있었지.’

    나는 드레이크를 데스나이트로 변하게 만든 단검을 바라보았다.

    -<‘오염된 긍지’의 단검> / 한손무기 / S

    고귀하던 긍지가 더럽혀졌을 때의 좌절감은 당신을 무저갱보다 깊은 마음 속 심연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물리 공격력 +1

    -특성 ‘데드 엔드(Dead End)’ 사용 가능 (특수)

    ※아이템의 소유권자가 사망 시 그 사망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여한 이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그 외의 방법으로는 아이템 소유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I’자 모양의 손잡이에 송곳 모양의 뾰족한 칼날이 튀어나와 있는 배즐러드(basilard)형 단검.

    아마도 이 세계관 속 유일한 궁수형 데스나이트일 것이 분명한 네임드 몬스터 ‘빌헬름 텔’이 떨구는 아이템.

    칼끝과 칼 손잡이에서 시커먼 기운이 불길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딱 보기에도 요물(妖物) 중의 요물이다.

    이것은 과거 러시아전 당시 드레이크가 안혁수, 아니 빅토르 안을 1:1 궁수대결로 꺾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일명 ‘언데드 도핑’, 혹은 ‘시체뽕’이라 불리는 히든  피스.

    저 단검에 찔린 대상은 단숨에 언데드화된다.

    레벨에 따라 플레이어도 스켈레톤 모드, 좀비 모드, 구울 모드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보통은 스탯이 조금 저하되는 편이지만 레벨에 따라서는 오히려 스탯이 오르기도 한다.

    드레이크의 레벨은 무려 83, 언데드로 따지면 ‘데스나이트’나 ‘구울 킹’ 정도의 엘리트 급이 어울린다.

    한편, 올리버는 과거 드레이크와 빅토르 안의 경기를 보지 못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데스나이트가 활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러자, 그동안 묵묵히 있던 드레이크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 패인은 바로 그것이겠군.”

    “……뭐?”

    올리버가 반문할 시간도 없었다.

    드레이크는 데스나이트의 기운을 받아 칠흑의 비늘로 덮인 두 대의 쇠뇌를 치켜들었다.

    스탯만 폭증한 게 아니라 쇠뇌도 거대해졌다.

    마치 공성병기처럼 크고 길쭉해진 쇠뇌는 이제 한 발 쏠 때마다 그 반동 때문에 몇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격력 역시도 전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쉬익- 펑! 우지지직!

    드레이크의 화살에 맞은 절벽가에 거대한 크레이터 두 개가 패였다.

    두 대의 쇠뇌가 쉴 새 없이 뿜어내는 강력한 화력!

    심지어 드레이크는 자신의 언데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온 사기(死氣)까지 화살에 실어 방출하고 있었다.

    쾅! 콰쾅! 콰콰콰쾅!

    볼텍스(Vortex).

    시커먼 와류를 몰고 온 화살은 꽂히는 즉시 그 반경 몇 미터를 온통 폭파시켜 놓는다.

    이제 화살은 거의 대포알 급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사격이 아니라 포격에 가까운 맹공!

    과거 안혁수가 선보였던 막강한 화력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드레이크였다.

    “으…으으으으! 당하고만 있을 줄 아냐!”

    올리버는 몸을 굴려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허공에 대고 수인을 맺었다.

    하늘에 커다란 마법진들이 우르르 생겨나는가 싶더니 이내 빗방울들이 점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쏴아아아아아아-

    바로 독 샤워! 온갖 종류의 지독한 독을 품고 있는 빗방울들이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내린다.

    이내 무수한 양의 독줄기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습도(濕度) 99%가 아니라 독도(毒度) 99%.

    올리버는 재빨리 독우산을 꺼내 뒤집어썼다.

    떨어지는 이 빗방울에 닿으면 자신이라고 해도 몸이 녹아 버린다.

    치이이이이익…

    온 세상 천지에 빗방울 자국이 남는다.

    뜨거운 진흙은 강력한 독에 오염되어 사방팔방에서 역한 매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첨벙! 첨벙! 첨벙! 첨벙!

    드레이크는 떨어지는 독의 소나기도, 뜨거운 진흙도, 터져 나오는 유황가스와 끓는 지하수도 모조리 씹어 버리고 달려 나간다.

    데스나이트의 칠흑갑주로 모든 독과 오염물질들을 튕겨 버리는 동시에 벨제붑의 아들을 잡고 얻은 강력한 독 내성으로 갑옷 내부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올리버는 공포에 질렸다.

    자신의 독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처음, 그래서 더더욱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태, 태그!”

    뒤에 있는 같은 팀 동료인 존 호킨스를 향해 교체 선언을 보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선수 교체를 외치려던 올리버는 그 자리에서 선 채로 굳어 버렸다.

    퍼엉!

    드레이크가 전진하는 자세 그대로 코앞까지 달려와 올리버의 입 안에다 대고 화살을 발사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전진사격.

    달려오는 힘까지 실려 쏘아진 화살은 그 한 방으로 올리버의 입을 뚫고 들어가 뒤통수와 목 뒤를 완전히 폭파시켜 버렸다.

    …콰쾅!

    올리버의 머리통을 뚫고 나아간 화살은 그 뒤에 있는 절벽의 한 귀퉁이까지 날려버린다.

    쿠르르르릉!

    붕괴해 내리는 잔해물 아래,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올리버가 그대로 오염된 진흙구덩이에 널브러졌다.

    철푸덕!

    일격(一擊). 승부가 갈렸다.

    수많은 이들이 이 충격적이고도 파격적인 전투 방식에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당연히 한국 측 캐스터들은 난리가 났다.

    [아아! 드레이크 선수! 설마 세상에 이런 진행을 보여 줄 줄은 몰랐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1승을 챙겨오나요! 믿어지지 않는 광경입니다!]

    [정확히 58초 만입니다! 천하의 올리버 마르코를 상대하는 데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요!]

    심지어 드레이크는 체력도 거의 닳지 않은 상태이다.

    “태그.”

    드레이크는 팔팔한 상태로 한국 진영을 향해 복귀했고 이내 다음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리가 다음에 내보낼 선수는 바로 마태강이었다.

    “기운 나눠받고 갑니다.”

    마태강은 드레이크를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벤치를 박차고 나갔다.

    이윽고, 영국 측에서도 다음 선수를 내보냈다.

    …쿵! …쿵!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

    그 거대한 진동에 잠시 캐스터들은 옵저버 캠을 재설정해야 했다.

    [이거 떨림 보정 기능이라도 켜야겠는데요?]

    [아니면 옵저버 캠 고도를 더 높이시죠.]

    [스크린에는 진동방지가 잘 되어야 할 텐데요.]

    지축을 ‘구겨 밟는다’는 말이 제일 잘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지표면은 쩍쩍 갈라지며 몸살을 앓았다.

    [자, 드디어 저 선수가 스탠딩 라인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단연코 저용량 인게임 스크린샷보다는 이렇게 실황으로 보는 게 압도적이에요!]

    […등장만으로도 관중들이 술렁입니다!]

    곧 온몸이 근육질인 거구의 인간 플레이어가 필드로 나왔다.

    “……흡!”

    올리버가 남겨놓고 간 독안개를 콧김을 뿜는 것만으로 날려버리는 남자.

    저 우람한 승모근과 이두, 삼두근, 그리고 8개를 넘어 10개나 되는 복근.

    게임 속에서 보디빌딩이라도 한 듯한 몸매다.

    뉴턴 존 호킨스. 일명 ‘유럽의 거인’!

    그가 필드로 뛰어나오자 땅이 쿵쿵 울리며 지면에 균열이 생긴다.

    …우르릉! …쿠쿵!

    암석 산 몇 개가 무너졌고 자욱한 가스들이 그의 날숨과 들숨에 맞추어 소용돌이친다.

    발자국 발자국마다 땅이 상하로 요동쳤고 목을 좌우로 꺾을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황무지 전체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2미터 12센티미터의 키에 160킬로그램의 몸무게.

    대머리, 턱수염, 갑옷과도 같은 전신 근육, 온몸을 뒤덮은 흉터와 문신.

    조상들 중에 게르만인, 사모아인, 슬라브인, 수단니그로인 들이 골고루 있었다는 루머가 괜히 퍼진 게 아니다.

    타고난 피지컬에 부던한 노력까지 더해져 지금의 그가 있는 것.

    ……게다가 현생의 그는 회귀 전과는 또 사뭇 다르다.

    [앗, 지금 새로운 피지컬 데이터가 들어왔거든요?]

    [음!? 호킨스 선수, 부상을 당한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현재 대본에 있는 데이터와 상이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캐스터는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빠르게 새로운 데이터를 읊어 내려갔다.

    [키 2미터 22센티미터, 몸, 몸무게 180킬로그램! 더욱 증량했습니다!]

    [……음. 지금 현실에서의 피지컬 이야기 하는 것 맞죠? 게임에서가 아니라.]

    [이, 이미 현생인류로서는 거의 종족 생장 한계 아닌가요? 어떻게……!]

    [아앗, 말씀 중에 경기 시작합니다! 호킨스! 시작부터 엄청난 스텝! 과연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출신 플레이어 ‘메이웨더 알리타이슨’이 라이벌이라고 선언한 남자답습니다!]

    아마 이것도 나비효과의 일종인 모양.

    ……더군다나 가장 무서운 사실은 이것이다.

    뉴턴 존 호킨스가 눈앞에 있는 마태강을 향해 벽력처럼 소리쳤다.

    “자, 바로 간다! 썬더 볼트!”

    그가 바로 마법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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