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47화 (747/1,000)

747화 세계 최강 인증 (1)

최후의 리그, 그 중에서도 마지막 게임이 시작되었다.

바로 지금 열리고 있는 한국 대 영국 전 말이다.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 3라운드의 결승전.

게이머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줄곧 내내 바라마지않을 성지(聖地).

장소와 거리를 초월한 15억 인구, 비단 E스포츠를 떠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들이 시청하고 있는 경기로 기록될 것이다.

최후의 왕좌를 목전에 두고 맞붙는 두 왕위계승권자.

여기서 이기는 쪽은 전 세계의 정점에 서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관객들 때문에 홀은 아예 장비들을 개방해 버렸다.

대형 스크린, 증강현실 홀로그램 장치들이 외부의 대로변마다 설치되었고 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기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중계를 맡게 된 전용진입니다!”

전용진 캐스터는 오늘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그러자 이내 어마어마한 환호가 전용진 캐스터의 멘트에 응답한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전용진 캐스터는 온 세상 천지를 진동시키는 함성에 감격하여 잠시 멘트를 잇지 못했다.

이내, 그는 약간 붉어진 눈시울로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대리인인 저를 통해 중계를 들으시는 팬 여러분들 역시도 같은 심경이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윽고, 홀의 북쪽 게이트가 열리고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그러자 전용진 캐스터의 옆 부스에 있던 뎀걸 홍영화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네, 오늘의 선수들이 홀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영국 팀 ‘로열 블러드’ 소속의 선수들이 보이네요. 1군 로스터들부터 시작해 3군 선수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선수진들의 앞으로 올리버 마르코, 존 호킨스, 라치만 구룽,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와 무대에 오른다.

전용진 캐스터와 홍영화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멘트를 읊었다.

“‘올리버 마르코’ 선수가 첫 번째로 입장합니다! 인간 종족 마법사로 주 사용 메타는 ‘독’이지요! 온갖 종류의 독들을 자유롭게 다루는 그는 현실에서의 직업이 요리사라고 합니다!”

“아아, 묘하게 설득력 있으면서도 위험해 보이는 연관 관계네요. 쉐프와 독이라.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 유머가 오늘을 기해 확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리버 마르코는 뚱뚱한 몸을 이끌고 무대로 올라와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선수가 무대의 계단을 오른다.

“네! 다음은 ‘존 호킨스’ 선수입니다. 분명 인간 종족 마법사이지만 글쎄요.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분명 주의해야만 할 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의외성만으로는 이번 대회에서 제일간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어요.”

“세 번째는 ‘라치만 구룽’ 선수입니다! 전 왕실연대 소속의 군인이지만 지금은 정년을 맞아 전역한 상태이지요. 종족은 리자드맨이고 종족 특성답게 빠르고 거친 근접전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세계 톱클래스의 근접 딜러이니만큼 오늘 한국 팀에 아주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소개할 선수의 이름은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입니다. 영국 최연소 하원의원이며 역시나 인간 종족 마법사이지요. 특기는 바로 이전 경기에서 큰 인상을 남겼던 봉인계열 마법입니다! 저도 그 플레이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어떻게 그렇게 꽁꽁 숨겨 놨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어가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 곳곳에서 야유가 터졌다.

‘우우- 겁쟁이!’

‘치사한 놈!’

‘너 말고 다른 선수 내보내!’

‘저놈은 영국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일 거야!’

‘지난번 경기 물어내! 내 입장료 물어내라고!’

‘에티오피아에게 사죄해라! 재미없는 놈아!’

지난 번 게임을 재미없게 만든 주범.

심지어 자국민들조차 영국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까고 있는 마당이다.

하지만 블레어는 못 들은 척 담담하게 앞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에게 욕하는 이들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듯했다.

어그로 끄는 능력을 보니 과연 정치인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다.

그리고 이내, 전용진 캐스터와 홍영화의 시선이 한 곳에서 마주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국 선수는 말이 필요 없다.

“다음 선수는 영국 팀의 리더! 세계 통합 랭킹 1위!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한 남자!”

“바로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선수입니다!”

이윽고, 쏟아지던 아우성이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

블레어는 그제야 조금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가 노려보는 무대 밑부분에서 올라오는 이가 있었다.

감탄이 날 정도로 잘생긴 금발 미남.

발걸음 하나하나에서부터 귀티가 나는 귀공자가 무대 중앙으로 등장했다.

튜더가 오연한 시선으로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

저 위의 VIP 석에서 대놓고 투덜거리는 이가 보인다.

바로 비앙카 트럼프였다.

튜더와 감정이 좋지 않은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관중들이 환호하는 게 싫었던 비앙카는 일부러 튜더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것은 한국 팀. 그리고 맨 앞에 나와 있는 흰 가면의 남자.

마동왕. 캡틴 코리아.

그와 눈이 마주치자 비앙카의 표정이 더더욱 썩었다.

“더 재수 없는 놈.”

*       *       *

이윽고, 선수 소개가 모두 끝났다.

‘음. 귀가 가려운데.’

누군가가 내 욕을 하나? 에이, 그럴 리가.

지금껏 한 점 부끄러움도, 한 벌 옷도 걸치지 않고 살아온 인생. 부끄러움이 있을 리가 없다.

와아아아아아아-

수없이 많은 인파가 지르는 함성과 발 구르는 소리.

하지만 신경을 한 곳에 집중하자 주변 분위기는 고요히 가라앉는다.

튜더는 비앙카를 이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 받기보다는 고개를 틀어 관중석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VIP 특등석에 내 친구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페이사 릴레사를 비롯한 에티오피아 팀 전원이 나를 응원하러 와 있었다.

마루 마모가 나를 향해 윙크를 찡긋 날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우리 앞으로 다섯 개의 캡슐이 배정되었다.

반대편의 영국 팀 역시도 각각 다섯 개의 캡슐을 받는다.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정점을 노리는 열 명의 승부사가 출전 준비를 끝마쳤다.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펑펑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전용진 캐스터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경기! 시작합니드아아아아!]

*       *       *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접속과 동시에 오늘의 전장이 보인다.

이 땅의 이름은 ‘적도의 쌍심장(雙心臟)’, 두 개의 달 아래 두 개의 높은 송곳 산이 있는 황무지이다.

지면의 균열이나 바위틈 곳곳에서 유황가스와 끓는 지하수, 유증기가 뿜어져 오르고 있는 살풍경한 대지.

부글부글부글…

검게 죽은 땅에 패인 웅덩이 속에서는 뜨거운 진흙이 끓는다.

나는 그것을 보며 턱을 쓸었다.

‘적도(equator)라.’

본래 적도라는 것은 지구의 자전축에 대하여 지구의 중심을 직각으로 지나도록 자른 평면과 지표와의 교선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두 개의 달 중앙을 정확히 가르고 있는 경계선을 뜻한다.

‘……맵 선정 한번 절묘하군.’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들었다.

내 생각에는 이번 맵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영국 측이 고의적으로 이 맵을 고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쪽에서 시도해 올 전략이 얼추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지.’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동안.

…쿵!

영국 측에서 첫 번째 선수를 내보냈다.

올리버 마르코!

현실에서는 유명한 쉐프, 게임에서는 독법사로 유명한 랭커다.

그리고 우리 측에서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선수가 나섰다.

드레이크 캣! 양손에 두 대의 쇠뇌를 든 궁수가 올리버를 상대로 출전했다.

전 세계 각국의 캐스터들은 다소 의아한 기색이었다.

[아아, 올리버 마르코 선수를 상대로 드레이크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마법사를 상대로 궁수라. 글쎄요 저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요?]

[상성만 놓고 보면 올리버 선수가 유리해 보입니다만…….]

궁수와 마법사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만약 두 클래스가 서로 대립한다면 대부분은 마법사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궁수는 장거리 공격이 가능하지만 단지 그것뿐, 그리고 마법사 역시도 대부분 궁수의 원거리 딜을 따라할 수 있다.

체력은 어차피 엇비슷하게 적으니 승부는 보통 누가 먼저 딜을 넣느냐로 갈리곤 하는데 공격 속도가 느리고 방어력이 약한 궁수는 대부분 마법사의 원거리 광역 마법에 당하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올리버는 필드에 나오자마자 바로 대단위의 독 마법을 캐스팅했다.

“어디 영국 요리 맛 좀 봐라.”

현직 쉐프가 다루게 될 수백 가지 재료가 마법진에서 소환되었다.

그리고 이내 끔찍한 레시피가 재현된다.

츠츠츠츠츠츠…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독안개가 필드를 뿌옇게 감쌌다.

더불어 올리버의 몸 전신에서 녹색 땀방울들이 뭉글뭉글 배어나와 탄알처럼 쇄도해 날아간다.

퍼퍼퍼펑!

저 독에 당하면 순식간에 몸이 굳는다.

그렇게 된다면 이내 이어지는 추가 독 데미지에 절어 죽어 가게 될 것이다.

계속되는 출혈을 야기하는 독, 닿은 것을 썩게 만드는 독, 폭발하는 독, 실명 등의 각종 상태이상을 거는 독, 움직임을 극도로 느려지게 하는 독…….

올리버가 뿜어낸 온갖 종류의 독들은 기체와 액체의 형태로 변해 주변 필드를 모조리 오염시키고 있었다.

필드 전체에 녹색 안개가 쫙 깔리자 한국 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드레이크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본다.

올리버는 나직하게 웃었다.

“궁수의 유일한 밑천은 기동력이지. 하지만 봐라. 이 필드 어디에 네가 발붙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숨만 쉬어도 바로 중독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낙승(樂勝). 올리버는 그렇게 생각했다.

쉬이이이익- 푸푹!

자신의 왼쪽과 오른쪽 어깻죽지를 동시에 관통하는 화살 두 대를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윽고, 녹빛 안개 너머로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너무도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드레이크.

“좀 역하긴 하군.”

피해량은 미간이 약간 찌푸려진 정도일까나?

나는 필드에 나가 있는 드레이크의 뒷모습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드레이크>

LV: 83

호칭: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그렇다.

드레이크는 과거 벨제붑 레이드에서 살점토막 구더기를 죽인 특전 보상을 가지고 있는 상태.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독들에 내성을 가진다.

그를 중독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내 깎단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벨제붑의 극독 정도랄까.

“좋은 걸 줬으니 나도 좋은 것으로 보답하지.”

드레이크는 눈앞에 있는 올리버를 향해 눈빛을 번뜩였다.

그 역시도 최후의 리그를 위해 준비해 뒀던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나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카드.

이윽고, 드레이크는 허벅다리 안쪽의 칼집을 끌렀다.

시커먼 단도 하나가 세상을 향해 살벌한 이빨을 드러냈다.

-<‘오염된 긍지’의 단검> / 한손무기 / S

고귀하던 긍지가 더럽혀졌을 때의 좌절감은 당신을 무저갱보다 깊은 마음 속 심연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물리 공격력 +1

-특성 ‘데드 엔드(Dead End)’ 사용 가능 (특수)

※아이템의 소유권자가 사망 시 그 사망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여한 이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그 외의 방법으로는 아이템 소유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과거 러시아전에서 궁귀 안혁수가 쓰던 히든 피스.

일명 ‘데스나이트 도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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