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41화 (741/1,000)

741화 술잔을 나누면 형제 (4)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의 2차전.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 오버’의 날이 밝았다.

한국, 에티오피아, 영국이 벌이는 각축전.

영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인 ‘뎀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 경기에는 실내에만 자그마치 10만 3천 명이라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잉글랜드의 성지라고 불리는 웸블리 스타디움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이 초 거대 스타디움조차도 몰려든 인파들을 다 담을 수 없어 경기장 바깥까지 증강현실 스크린을 설치해야 했다.

지구 최강의 단일팀을 선발하는 대회이니만큼 관람객들의 열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증강현실 홀로그램 서비스가 닿는 거리까지 늘어진 행렬까지 따지면 그 수가 정말 역대급이다.

오로지 직관 하나만을 위해 몰려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숫자는 약 100만 명가량.

올림픽 시즌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온 세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데 모여 e스포츠의 역사를 나날이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정확히 12시간 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들은 분주해졌다.

늘 그랬듯, 곧 있을 ‘최후의 리그’ 중계 이전에 경기 결과에 대한 예측, 타국 선수들의 커리어와 특성 분석 등을 방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렇듯,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방송은 공중파가 아니었다.

LGB게임전문방송국.

이곳 소속인 ‘홍영화의 뉴스룸’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쭉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는 사전경기예측방송이다.

위이잉-

이윽고, 서울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 있는 대형 스크린 앞 증강현실 경기장에 홍영화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뜬다.

[안녕하세요.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 2차전 사전방송의 홍영화입니다.]

하얀 피부, 살이 약간 빠졌지만 여전한 볼살,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듯한 반달 모양의 눈과 늘 생글생글 올라가 있는 입꼬리.

와-아아아아아아!

그녀가 밝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에 한국에서 나름 직관(?)을 위해 모인 수만의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네! 현재 저는 영국 특파원으로 나가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의 거리는 멀지만 게임 속에서는 바로 지척에 계실 본토의 팬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때쯤, 홍영화의 옆으로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전용진 캐스터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또 뵙습니다! 세계리그 중계를 맡고 있는 전용진입니다!]

[와아- 전용진 캐스터님 지금 어디 계세요? 저는 남부 부스에 있는데.]

[하하, 저는 지금 북부 부스에 있습니다. 어유,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뵙게 되니까 진짜 바로 옆에 있는 것 같네요.]

[호호호- 정말 그러네요.]

경기장 북부의 전용진과 남부의 홍영화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이내 서로 다른 각도의 해설을 위해 몇몇 추가 캐스터들이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이내 전용진 캐스터와 뎀걸 홍영화가 세계리그 전반에 대한 토크를 시작했다.

[와아~ 이번에 영국으로 넘어온 관광객들의 수가 170만 명이 넘는다죠?]

[맞습니다! 2026년 올림픽에 버금가는 규모예요!]

[우리 ‘닳고닳은 뉴비’ 팀이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그들의 약진이 곧 한국의 성장, 더 나아가 아시아의 기회 아니겠습니까!]

[오늘 열리는 이 살벌한 3파전! 왕좌를 놓고 벌이는 최후의 각축전에 한 나라는 반드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될 텐데요.]

[그 나라가 어디가 될지, 다들 쟁쟁한 나라들이라서 예상이 쉽지 않습니다.]

홍영화는 미모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특유의 냉철한 분석력으로 국가 별 선수들의 요모조모를 분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종족값, 결정력, 내구력, 선공 제압능력, 서포트. 이 다섯 가지의 항목으로 분석을 해 봤는데요.]

전용진 역시 미모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캐스터가 아니듯, 그런 홍영화의 분석에 적절한 의견을 덧붙인다.

[저 역시도 어제 밤새서 준비를 한번 해 봤지요. 통계 자료와 데이터 수치, 그리고 지난 경기 영상들입니다.]

전용진과 홍영화 사이로 벤 다이어그램과 그래프들이 쭉 뜨기 시작했다.

[먼저 영국 팀 소개입니다. 영국 팀 ‘로얄블러드’는 한국 팀 ‘닳고닳은 뉴비’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한국 팀이 오크 1, 인간 4로 구성되어 있다면 영국 팀은 리자드맨 1, 인간 4로 구성되어 있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팀의 평균 종족값 자체는 의외로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리자드맨 종족인 ‘라치만 구룽’ 선수와 인간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스탯을 보유하고 있는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선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종족치는 월드스타급 플레이어들에 비해 많이 낮죠.]

[하지만 영국 선수들의 특성치와 의외성은 종족치의 부족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차전의 MVP 플레이어 ‘토니토니 블레어’ 선수의 봉인계열 마법과 의외성 넘버원의 힘법사 ‘존 호킨스’ 선수, 기괴한 레시피로 예측불허의 난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기인 ‘올리버 마르코’ 선수… 이들은 아직 이렇다 할만한 공략법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고 여전히 한국 팀에게 충분한 위협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정력 항목에서는 한국 팀이 단연코 돋보이는군요. 공격 상성의 일관성을 확보한 뒤 초월적인 뉴트럴 데미지를 투사하는 투신 마태강 선수, 그리고 범용성 높은 카운터를 위시한 유세희 선수가 있습니다. 이 두 선수들은 저번 경기에서 상성의 불리함 때문에 비록 성적이 부진했지만 이번에는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는 속성이나 특성이 많은 드레이크 선수의 의외성, 고유 기술이나 아이템과의 상호작용이 좋은 윤솔 선수 역시도 아주 기대가 되네요.]

[내구력 항목에서는… 음, 이거 에티오피아 팀을 따라올 수가 없겠습니다. 팀의 리더인 페이사 릴레사 선수는 독보적인 오크 플레이어죠. 괜히 세계 랭킹 3위가 아닙니다. 딜이면 딜, 탱이면 탱. 완벽한 선수예요! 적이지만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팀이 유일하게 증명하지 못했던 항목이 바로 이 ‘내구력’ 항목이니만큼 이번 대회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에도 날카로운 분석들이 이어진다.

홍영화와 전용진 만큼이나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네티즌들이 계속해서 방송국에 제보를 넣고 있었고 방송국에 따로 초빙된 전문가들이 그것들을 추려 신빙성 있는 순서대로 화면에 내보낸다.

홍영화와 전용진은 그렇게 추려진 네티즌들의 의견까지 모니터링 해 가면서 중계를 잇고 있었다.

-선공 제압하는 능력은 한국이 좀 떨어지지 않나?

-드레이크가 있는데 뭔 개소리임ㅋㅋ

-드레이크 빼면 뭐 없잖아 딱히 빠르다고 할 만한 선수가

-ㅉㅉ선공제압이 꼭 스피드로만 되는 줄 아네, 함정기랑 매복기 잘 써서 카운터 먹히는 것도 변수에 포함이란다 뎀알못아~

-매복이랑 급습의 천재 유세희 응원한다!!

-서포트는 윤솔 하나로 말 다했지. 월드클래스급 서포터라고 본다

-ㅇㅈㅇㅈ힐도 쎄고 힘도 쎄고

.

.

전용진과 홍영화는 대본으로 뜨는 메시지 의견들을 참조하여 멘트를 계속 이어 나갔다.

마침내 최후의 리그가 개막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팀을 선발하는 대회.

6대주의 정점을 두고 다투는 왕자들의 전쟁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내 전용진 캐스터가 마이크를 들고 힘차게 외쳤다.

[경기! 시작합니드아아아아!]

*       *       *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오버(Battle Royale Ground Zero Over)’, 줄여서 배그옵.

특정 구역의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벌어지는 생존경쟁.

서서히 활동반경을 좁혀오는 레드 존을 피해서 적을 모두 죽여야 승리하는 구조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8미터인 화물을 밀어 맵 중앙에 있는 격납고에 넣는 것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이것이 오늘 한국, 에티오피아, 영국 중 결승으로 갈 두 나라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맵은 남대륙에 위치해 있는 ‘고고한 잉카’,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있는 평지로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부족해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깎여나갈 정도의 고난이도 사냥터이다.

서식하는 몬스터들도 하나같이 레벨이 높고 강력하여 처리반이 정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따로 소감을 밝혔을 정도.

츠츠츠츠츠츠츠……

이윽고, 오늘의 경기장에 총 15인의 선수들이 소환되었다.

전용진 캐스터는 흥분한 어조로 중계를 시작했다.

[네! 드디어 경기 시작입니다! 유럽 챔피언 영국과 아프리카 챔피언 에티오피아가 상대이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겠습니다!]

[개개인의 무력 뿐 아니라 팀워크 역시도 극한까지 갈고닦은 이들이니만큼 팽팽한 승부가 예측됩니다. 아마도 찰나의 방심이나 실수가 판을 가르지 싶은데요.]

홍영화 역시 침착하게 선수들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아, 빠르게 무리 짓는 선수들. 흩어져 있던 한국 선수들 역시 한 자리로 모여듭니다. 천하의 마동왕 선수도 이번만큼은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군요.]

[각국 선수들이 자기들끼리 약속한 신호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교전은 벌어지지 않고 있네요. 3국 모두 다섯 명 전원이 모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요.]

[올바른 판단입니다. 하나 둘씩 다니다가 타국 선수들에게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소중한 전력을 잃는 것도 모자라 점수까지 내주게 되는 모양이니 리스크가 너무 크죠.]

피어오르는 흙먼지, 햇빛의 반사광, 바람에 실어 보내는 냄새,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물건들, 일정 박자로 내는 소음 등으로 선수들은 서로의 팀을 찾아간다.

누구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쪽의 측면으로 꺾고, 반사광이 반짝이는 곳의 반대편으로, 달달한 냄새는 피하고 씁쓸한 냄새를 따라서, 특정 오브젝트를 중심으로, 혹은 귓가에 들려오는 모스 부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그렇게 선수들이 어느덧 팀의 대열을 갖춰 갈 무렵.

[아아! 만났습니다! 한국 팀! 5명이 모이는 바로 그 순간! 협곡 위로 적 선수 5인이 보입니다! 어느 나라 팀인가요! 이쪽에서는 햇빛의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한국! 그 상대는…!]

전용진와 홍영화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동시에 외쳤다.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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