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화 왕좌의 게임 (1)
<1차전 결과>
영국 vs 브라질: 영국 ‘승’ / 경기 시간: 92분 58초
에티오피아 vs 호주: 에티오피아 ‘승’ / 경기 시간: 108분 44초
한국 vs 미국: 한국 ‘승’ / 경기 시간: 77분 7초
2라운드 진출국: 영국, 에티오피아, 한국
경기가 끝난 날의 밤. 나는 개인방송을 열었다.
“네. 제가 저번에 예상한 그대로 됐죠? 결국 80분 안에 승부가 났습니다.”
한국 대 미국 전이 최단기 승부가 되었다.
물론 나는 경기 전에 미리 한국의 승리를 예언했고 말이다.
“1라운드에 마태강 선수와 유세희 선수가 미국의 죠 올드만 선수에게 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성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2라운드에 윤솔과 드레이크 선수는 무난하게 잘해주었죠. 심슨 오일러 선수도 좋은 선수지만 혼자서 두 명을 상대하기는 당연히 무리였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3라운드에서 마동왕 선수가 미국 팀의 에이스 셋을 한꺼번에 발라 버린 것은… 어우, 그건 저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싶더라니까요. 아직도 소름이 여기에 그대로 돋아 있어요.”
자화자찬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는다.
나와 비앙카의 전투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핫한 토픽이 되었다.
지금쯤 아마 지구 반대편까지 들썩이고 있겠지.
-고인물 횽도 직관 갔어요???
-마동왕이랑 친구 사이니까 갔을 듯ㅇㅇ
-본토 분위기 어떰?ㅋㅋㅋ
-캬 마동왕 어제 쩔드라;;;;
-미국 관광ㅋㅋㅋㅋㅋㅋ
-츤조국 마 별거읎네!!!
-어제 한국전 보느라 에티오피아전이랑 영국전 안 봄ㅋㅋㅋ
-나는 영국전 보다가 중간부터 틀어서 한국전 보다가 끝나고 나서 다시 영국전 끄트머리만 봄ㅋㅋㅋ갠적으로 튜더 팬이었는데 이번에 마동왕으로 갈아탔잖어~
-신토불이야~ 신토불이야~
-역시 국산이 최고제!
-근데 님들아 비앙카 경기 끝나고 실례해버렸다는 거 진짜임???
-ㅇㅇ진짜임. 그래서 경기 끝나고도 캡슐 안에서 한참동안 안 나왔대ㅋㅋㅋ
-ㄹㅇ임??? 천하의 그 비앙카가????
-엌ㅋㅋㅋ세계랭킹 2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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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 역시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기색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한국과 미국의 전투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다른 경기들의 리뷰를 했다.
“자, 오늘 한국전 보느라 다른 경기 못 보신 분들 이번 방송으로 한 방에 요약 듣고 가세요~”
나는 정성껏 딴 클립들을 재생하며 리뷰를 시작했다.
“자, 먼저 에티오피아 대 호주 전입니다.”
<에티오피아 VS 호주>
1라운드: 에티오피아: ‘구르무 담보바’, ‘타파라 타카텔’ VS 호주: ‘피터 왓슨’ / 경기 결과: 에티오피아 승 / 경기 시간: 15분 22초
2라운드: 에티오피아: ‘밸라이 배껠레’, ‘마루 마모’ VS 호주: ‘월터 라이언’, ‘도널드 모덴’ / 경기 결과: 에티오피아 승 / 경기 시간: 25분 21초
3라운드: 에티오피아: ‘페이사 릴레사’ VS 호주: ‘폴린 핸슨’, ‘크레이그 머독’ / 경기 결과: 에티오피아 승 / 경기 시간: 68분 01초.
총 경기시간: 108분 44초
MVP 플레이어: 페이사 릴레사
놀랍게도 에티오피아는 총 108분에 달하는 전투 끝에 호주에게 완봉승을 거두었다.
“네, 구르무 담보바 선수와 타파라 타카텔 선수의 협공은 워낙에 유명하죠? 태그매치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던 둘이 아예 한 필드에 나왔으니 그 시너지가 어마무시 했죠.”
하지만 그걸 의식한 탓일까, 호주에서는 오로지 한 명의 선수만이 나왔다.
졸지에 버리는 패로 나오게 된 피터 왓슨. 그는 상당히 강한 방어형 소환수를 부리는 테이머였지만 구르무와 타파라의 합공을 버텨내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에티오피아의 두 명을 한 명의 선수로 흘려보내고 난 뒤, 호주는 2라운드에 둘을 내보냈다.
월터 라이언과 도널드 모덴, 각각 강력한 중화기를 다루는 원거리 딜러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밸라이 배껠레 선수와 마루 마모 선수의 합공에는 무리였죠. 아시다시피, 몸이 소금으로 되어 있는 밸라이 선수에게는 물리력이 통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강력한 납탄도 무용지물이죠. 거기에 마루 마모 선수는 2차 대격변 이후로 떡상한 식물 메타 마법사 아닙니까. 엘도라도에 자생하고 있는 수많은 식물들의 뿌리를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원딜러 둘쯤은 충분히 격살 가능했습니다.”
결국 2라운드의 2:2 대전에서도 패한 호주는 3라운드에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둘을 내보냈다.
그 상대로 나온 이는 페이사 릴레사 하나. 2:1의 불리한 싸움이다.
“하지만 페이사 선수는 혼자서 두 명을 이겼습니다. 뭐, 결정적인 요인은 폴린 핸슨 선수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동료인 크레이그 머독 선수와의 협력을 거부했기 때문이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무려 68분이나 이어진 3라운드의 지구전 끝에, 에티오피아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깔끔하게 승리를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물론 MVP 플레이어는 2:1의 불리한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머쥔 페이사 선수고요.”
그리하여 호주는 저희들끼리 우왕좌왕하다가 제풀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어줍잖게 첫 라운드를 버린 것이 실책이었다.
“자, 다음은 영국 대 브라질 전을 살펴볼까요?”
<영국 VS 브라질>
1라운드: 영국: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라치만 구룽’ VS 브라질: ‘브루누 모라’, ‘바그네르 캄프스’ / 경기 결과: 영국 승 / 경기 시간: 45분 20초
2라운드: 영국: ‘존 호킨스’, ‘올리버 마르코’ VS 브라질: ‘호세 이우베르트’, ‘호드리구 모따’ / 경기 결과: 브라질 승 / 경기 시간: 45분 16초
3라운드: 영국: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VS 브라질: ‘가브리엘라 수자’ / 경기 결과: 영국 승 / 경기 시간: 2분 22초.
총 경기시간: 92분 58초
MVP 플레이어: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영국이 1라운드에서 첫 승을 거둔 뒤 브라질이 2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그 뒤를 바짝 쫓는다.
그리고 모든 운명이 결정된 대망의 3라운드 1:1 대장전에서 최종적으로 영국이 브라질을 꺾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영국과 브라질은 1라운드에서부터 맹승부를 펼쳤죠. 전형적인 정통파 탱커 유저인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와 전형적인 정통파 딜러 라치만 구룽이 결국 브라질의 두 선수를 꺾었습니다. 브루누 모라 선수와 바그네르 캄프스 선수는 삼바 템포의 박자를 사용하는 강력한 무투가인 동시에 브라질리언 킥과 왁싱이 주특기인 무서운 초근접 딜러인데요. 브라질리언 왁싱이라는 고통스러운 초근접 딜에 고전하기는 했지만 결국 토니토니 블레어 선수의 맹활약으로 무사히 1승을 챙겨간 영국입니다.”
하지만 브라질도 만만치 않은 나라인지라 바로 반격을 가해 왔다.
“2라운드에서는 브라질이 이겼습니다. 호세 이우베르트 선수와 호드리구 모따 선수는 평소 손발이 잘 맞기로 유명했죠. 한 명은 에티오피아의 마루 마모 선수와 같은 강력한 식물생장 마법을 사용하고 다른 한 명은 아마존을 죄다 벌목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벌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힘법사의 대명사 존 호킨스 선수와 기괴한 요리 메타가 장기인 올리버 마르코 선수는 분전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죠.”
하지만 존 호킨스와 올리버 마르코는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대수롭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기에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무려 세계리그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심경이 아주 이해가 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하긴, 모든 관중들의 기대감이 자신들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에 출전할 선수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면 저라도 약간 힘이 빠질 것 같긴 하네요.”
영국의 3라운드에서 드디어 ‘그’가 출전했다.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영국의 구국영웅.
별 볼일 없던 영국의 게임계를 확 부흥시킨 신화적인 존재다.
“튜더 선수를 더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말이 필요 없는 레전설이죠. 당연히 그가 혼자서 마지막에 나올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브라질 팀의 대장인 가브리엘라 수지 선수가 튜더 선수를 맞아 1:1 승부를 펼쳤습니다. 수지 선수는 수많은 구더기를 소환해내는 것이 특기인 강력한 흑마법사인데요. 역시나 딱히 반전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튜더 선수에게 무참하게 패하고 말았죠. 그것도 3분도 되지 않는 시간! 단 2분 22초만에요!”
개인적으로 약간 통쾌한 것은 브라질의 대장 가브리엘라 수지가 튜더에게 아주 압도적으로 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한국인을 혐오하는 내용의 SNS를 자주 올리던 이었기에 더더욱 고소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튜더가 가브리엘라 수지를 완전히 압도적으로 발라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구더기에 면역이 있었나?’
튜더는 수지가 소환한 구더기들을 아주 능숙하게 잘 잡아냈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구더기 몬스터를 상대로 연습이라도 한 양.
‘아마도 벨제붑을 노리고 있었나 보군.’
회귀하기 전 벨제붑의 역병창궐을 막아 낸 존재가 바로 튜더였으니 이 추측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벨제붑은 내가 이미 잡아 버렸고 덕분에 튜더는 헛물을 켠 셈이 되었다.
2차 대격변의 공 역시도 내가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으니 개인적으로 그에게는 약간의 미안함이 있기는 했다.
“아, 참고로 이번 경기의 MVP 플레이어는 토니토니 블레어 주니어 선수였습니다. 저는 튜더 선수가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네요. 이 점이 제가 예측하지 못한 유일한 변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니토니 블레어가 의외로 맹활약한 덕분에 영국이 1라운드에서 브라질을 기선제압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자, 이쯤 해서 경기 리뷰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또 방송 켤게요~”
나는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한 뒤 방송을 마쳤다.
“…….”
침대에 누워 모레의 일을 생각한다.
이제 2차전 진출에 성공한 3국. 한국, 에티오피아, 영국 간의 3파전이 시작된다.
2차전은 익숙한 방식인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오버. 무작위로 떨어진 필드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이다.
여기서 킬 수치를 종합해 1국을 떨어트리고 최종 선발된 두 국가가 최후의 왕좌를 놓고 생사결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일척도건곤(一擲睹乾坤).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내가 약간의 심란함을 품고 명상에 빠져 있을 때.
-띵동!
핸드폰이 한번 울렸다.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
“……뭐야?”
마동왕 전용 폰, 그 중에서도 업무용 메일주소였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꽤나 익숙한 주소와 이름이 보인다.
-----Original Message-----
From: “Bianca Trump”
<[email protected]>
To: <[email protected]>;
Cc:
Sent: 2026-06-06 (토) 22:18:09
Subject: 내일 저녁. 한번 만나 줄게. 할 얘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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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만나 달라는 주제에 뭐 이렇게 거만해? 누가 보면 내가 먼저 만나 달라고 한 줄 알겠네.”
뭐 아무튼.
우리의 오줌싸개 캡틴 아메리카가 내일 한번 만나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