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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36화 (736/1,000)
  • 736화 한국 vs 미국 (4)

    “내가 끝낸다. 다들 나와!”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이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 둘이 자기 키의 절반이나 될까 싶은 소녀의 명령에 쩔쩔매는 모양새가 어딘가 요상하다.

    하지만 지금 필드 중앙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이 소녀의 정체를 아는 모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다.

    북미 게이머들의 대표이자 미국의 자존심.

    비앙카 트럼프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은빛으로 빛나는 긴 머리와 짙은 스모키 화장, 비현실적으로 작은 얼굴과 길쭉한 다리.

    그녀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 고고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움푹 꺼진 구덩이 중앙에 서 있는 나는 만신창이가 된 외형과는 달리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자 비앙카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쓸모없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이 움찔하더니 고개를 슬쩍 떨군다.

    그들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스폰을 대 주는 회사가 비앙카의 가문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윽고, 비앙카의 눈이 다시 나를 향한다.

    “네가 캡틴 코리아지? 그동안 잘 버텼어. 그 기백만은 인정할 만하네.”

    “내가 캡틴 코리아면 너는 캡틴 아메리카겠군.”

    “뭐, 그렇지? 근데 철 지난 영웅놀이에는 관심 없고…….”

    비앙카는 말끝을 잠시 흐리더니 이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은 실로 엄청나게 뇌쇄적이어서 나조차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역시 톱스타의 아우라는 뭔가 좀 다르구나.’

    이렇게 근접한 거리에서 봐서 그런가 느낌이 새롭다.

    연예인은 솔이나 보영이 외 니아 멤버들을 많이 봐서 어느정도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20대 초반의 나이였다면 분명 현혹되었겠지.

    하지만 나이를 아주 꽁으로 먹은 건 아닌지라 이내 집 나갔던 평정심이 되돌아온다.

    그때, 비앙카가 내게 말했다.

    “너 근성이 제법이네.”

    ……?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 타이밍에 칭찬이라니.

    내가 말이 없자 비앙카는 귓속말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를 내어 한마디를 더 이었다.

    “미국으로 오지 않겠어?”

    흩날리는 얼음 가루 때문에 밖의 사람들은 우리의 대화를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앙카의 제안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말했다.

    “시민권.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연봉. 집과 차. 최상급 아이템. 온갖 공략법을 제공하지.”

    이렇게 대놓고 헤드 헌팅이라니. 그것도 적 팀의 수장을.

    나는 비앙카의 배포에 조금 감탄했다.

    그리고 이 참에 궁금한 점도 물어봤다.

    “미국 시민권을 준다고?”

    “그럼. 당연하지. 원한다면 우리 회사 안에서 내 직속으로 근무할 수도 있게 해 줄게.”

    “그러면 군대 안 가도 되나?”

    “흐음, 한국은 징병제를 실시하나? 그렇다면 당연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지.”

    내가 솔깃한 듯 질문을 하자 비앙카는 기분이 매우 좋아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은 굳는다.

    “그렇다면 사양할게. 나는 이미 군대 갔다 왔거든.”

    군대 가기 전이라면 몰라도 갔다 와서 미국 시민권을 딴다면 뭔가 너무 억울하잖아.

    뭔가 개손해 같은 느낌적인 느낌.

    ……뭐 하여간.

    내 거절의사를 들은 비앙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내 전신에서 사나운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럼 할 수 없지. 알게 해 줄게. 네가 방금 감히 누구의 제안을 거절한 것인지.”

    “비앙카 트럼프.”

    “……진짜 내가 누군지 몰라서 말하는 게 아니고.”

    “재벌 3세. 가수. 영화배우. 연예인. 뎀 공식 통합 세계랭킹 2위. 올해의 U.S.A골든뮤직디스크 3관왕. 단일 계정으로서 유튜뷰 팔로워 전 세계 1위. 취미는 SNS 가계정으로 튜더에게 악플 달기. 중학교 2학년 때 부두교에 잠깐 심취했었음. 좋아하는 음식은 의외로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파는 정크푸드. 충지가 6개인데 치과가 무서워서 가기 미루다가 많이 썩어버렸음. 중증 애니 오덕이라서 2D 남자들만 좋아하고 3D 남자들에게는 관심 없음. 17살 때까지 이불에 오줌 쌈. 요즘도 파티에서 술 많이 마신 날에는 종종 쌈…… 그리고 기타 등등…… 뭐 더 필요한가?”

    “뭐, 뭐, 뭣!? 그, 그만해 미친놈아! 아니 그것들은 또 어떻게 안 거야!?”

    비앙카는 예전에 조 추첨에서 높은 산 순위를 들었을 때처럼 발작을 일으킨다.

    회귀하기 전, 튜더 측에서 증권가에 흘렸던 비앙카 관련 찌라시들을 읊은 것 뿐인데… 아무래도 그것들이 다 사실이었던 모양이구만?

    그 고고하던 비앙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을 보니 내 도발이 제대로 먹혔나 보다.

    뭐 남들이 보기에는 찡그려도 예쁘다, 퇴폐적이다 하고 칭찬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저렇게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를 괴롭히면 훗날이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

    “이… 이… 이 자식! 너는 내가 진짜 가만히 안 놔둔다!”

    이윽고, 비앙카는 바로 비장의 패를 뒤집어 깐다.

    쿠-구구구구구구……

    묵직한 지진이 필드를 뒤흔들며 얼음먼지들을 싹 다 걷어 버린다.

    그리고 이변이 발생했다.

    “…….”

    “…….”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채로 발가벗겨졌다.

    촤라라라라라라락-

    마법서, 지팡이, 건틀릿, 갑옷 상의, 갑옷 하의, 로브, 투구, 안대, 마스크, 완갑, 반지, 목걸이, 귀걸이, 신발, 각반, 망토, 방패, 단검…….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모든 장비들이 전부 벗겨져 한 곳을 향해 날아간다.

    그 아이템들이 날아가는 곳은 바로 비앙카가 있는 곳이었다.

    …철커덕! …철컥! …파캉!

    비앙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의 아이템들을 모조리 장착하기 시작했다.

    건틀릿 위에 단검이 덧대어지고 그 위에 마도서가 날아와 찰싹 붙는다.

    원래라면 동시에 장비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템들이 어째서인지 중복 착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쭈우우우욱-

    아이템들이 줄지어 빠져나가는 동시에,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의 몸 역시도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실시간으로 파산, 도산하고 있는 것을 보는 듯한 광경.

    비앙카는 그 둘의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레벨과 스탯까지 싹 다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비앙카의 몸이 점점 커진다.

    그녀는 원래라면 중복해서 착용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템들을 주렁주렁 착용하게 되었고 이내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의 전투력을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해 냈다.

    비앙카 본인의 힘까지 더해져 그녀는 현재 혼자서 3인분의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호호호. 봤나? 이게 바로 ‘대공황’ 특성의 힘이지. 같은 종족의 아군을 흡수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거야.”

    대공황 특성. 나도 아는 특성이다.

    워낙에 희귀한 특성이기에 어디서 얻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휘하의 고등급 몬스터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공황 특성은 이름답게 주변에 있는 파티원, 그중에서도 같은 종족 유저들을 실업자로 만들어 버린다.

    아군의 아이템과 경험치, 스탯까지 모조리 빼앗아 자신의 것에 더하는 것.

    마치 부유한 기업이 다른 기업들을 골라가며 장바구니에 담아 쇼핑하듯, 그렇게 원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것에 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지.”

    비앙카는 두 손을 쫙 뻗었다.

    와드드드득!

    모노마흐의 골렘이 비앙카의 모션에 따라 움직인다.

    이내 골렘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천민자본주의’ 특성!

    가지고 있는 소지금에 비례하여 전체 스탯이 증가하는 특성이다.

    이는 비앙카가 가지고 있는 ‘IMF’ 특성, 주변의 같은 종족 파티원들의 소지금을 모조리 빼앗아오는 스킬과 결합해 더욱 더 증폭된 결과값을 내놓는다.

    전용진 캐스터가 입을 딱 벌렸다.

    [아아! 비앙카 선수! 본인의 레벨도 높았는데 거기에 모노마흐 선수와 알리타이슨 선수의 아이템과 경험치, 스탯까지 싹 흡수하여 더더욱 강해졌습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의 소지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 왜 시합 전에 저렇게 많은 골드를 가지고 나왔을까 의아했었는데 그 수수께끼가 지금 풀립니다! 지금의 비앙카 선수를 전 세계의 그 어떤 랭커가 당해 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마치 3:1같은 1:1! 이모가 주시는 3인분 같은 1인분입니다! 세계랭킹 1위인 튜더가 와도 이건 못 막아요! 명실공이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딱 중계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

    비앙카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대공황 골렘의 몸집은 빌딩 그 자체.

    더군다나 알래스카의 냉기를 휘감고 있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 싸늘한 존재이다.

    드리워지는 거대한 공황의 그림자.

    경기가 열리는 날짜인 오늘, 목요일이 검게 물든다.

    1929년 10월 24일 이래 거의 100년 만에 ‘검은 목요일’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호호호호! 나를 ‘비앙카 트럼프 더 빅맨(BIGMAN)’이라 불러라!”

    얼음 갑옷을 두르고 있는 빌딩만한 사이즈의 골렘.

    그것은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대하고 웅장했다.

    이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전 세계의 10억 인구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죽어라!”

    비앙카는 골렘의 주먹을 들어올렸다.

    마치 달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낙하가 시작되었다.

    나를 향해 쇄도해 오는 대공황 주먹.

    이것은 세계 공식 통합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조차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전 세계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

    ……물론 내가 없었더라면 말이지.

    ‘아! 이제 겨우 참지 않아도 되겠네.’

    그동안 참 오래도 참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풀파워 시간!

    퍼퍼퍼펑!

    나는 전신에서 검붉은 기류를 피워 올렸다.

    -<이어진 폴다운 모드>

    LV: 96

    호칭: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모든 스탯 10배 뻥튀기.

    거기에 지금껏 차곡차곡 스택을 쌓아 왔던 백전노장, 야수, 싸움광, SM플레이어 등등의 변태 특성들도 모조리 개화시켰다.

    나의 깡 공격력이 미친 듯이 폭증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딱 한 곳, 마몬의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는 오른 주먹에 몰아넣었다.

    쿠르르르륵!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내 어깨 위까지를 뒤덮고 있는 중장갑 건틀릿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단조된 기관차 엔진처럼 뜨거운 증기를 내뿜으며 요동치는 오른 주먹.

    푸슉- 끼리리릭… 철커덕!

    나는 그것을 뒤로 당겨 장전한 뒤 정면을 향해 에임을 겨눈다.

    지금 이 한 방.

    딱 한 방이면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아끼고 아껴뒀던, 미국과의 마지막 승부처에서 터트릴 비장의 퍼포먼스.

    그리고 멀리서 응원해 주는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세계리그는 나 마동왕이 접수했으니 안심하라구!’

    한국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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