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35화 (735/1,000)
  • 735화 한국 vs 미국 (3)

    -3라운드

    -한국: <마동왕>

    -미국: <블라디미르 브세볼로도비치 모노마흐>, <메이웨더 알리타이슨>, <비앙카 트럼프>

    3라운드의 대진표가 뜨자 한국의 게임 커뮤니티들은 시끄러워졌다.

    -질 것을 알지만 싸워야 하는 남자의 숙명...ㅠㅠㅠ

    -지는 거야 상관없지만 나의 영웅이 모욕 당할까봐 무섭다...

    -않이 3:1 실화냐고...;;;;

    -님들아! 희망은 있어욤! 마동왕님은 예전에 데뷔전 때 5:1로 싸워서 이김!

    -그건 태그매치여서 사실상 1:1을 5번 한거잖아여;;;

    -이건 세 명이랑 동시에 싸우는거임...ㄷㄷㄷ

    -근데 이건 찌라시인데...마동왕이 예전에 아마추어 때 프로 3명이랑 3:1 떠서 개발랐다는 말이 있던데?

    -그건 못하는 애들이겠지 ㅂㅅ아

    -응 뎀알못 꺼져~ 그 3명이 임요셉/이연호/송병건이었어~

    -근데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미국의 비앙카/모노마흐/알리타이슨은....임요셉/이연호/송병건이랑은 급이 다르지...

    -아니 애초에 이게 논란이 벌어질 건덕지나 있냨ㅋㅋㅋㅋ???

    -당연히 마동왕이 지겠지 ㅂㅅ들아ㅎㅎ 마빠들 역겹네;;

    -지더라도 멋있게 졌으면 한다...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자~~!! 꼴사납게만 지지 마라~~!!

    -지더라도 마동왕은 멋지다! 끝까지 파이팅^^!!!

    .

    .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3:1, 거기에 그 세 명이 모두 세계 정상급 랭커인데다가 그 중 한명은 심지어 세계 공식 통합 랭킹 2위에 빛나는 비앙카 트럼프이다.

    아무리 지금껏 기적을 보여 왔던 마동왕이라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부디 능욕만 당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 한국 팬들의 마음이었다.

    *       *       *

    한편.

    나는 일찌감치 필드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전용진 캐스터는 그런 나의 행동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아! 마동왕! 한국의 마지막 희망! 모든 것에 초연한 듯 지금 필드에 먼저 나가 미국의 강적 세 명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 경건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무사를 보는 듯한 비장감이 느껴집니다!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외압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겠다는 저 기개! 가히 영웅적입니다!]

    관중석의 팬들이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며 전용진 캐스터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뭐래.’

    나는 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저것들을 역으로 죄다 박살내 버릴 생각이었다.

    가능한 충격적이게, 임팩트 있게, 반전적으로다가 말이다.

    그때.

    “눈알 굴리는 소리가 가면 밖까지 나는군.”

    “포기해라. 그 어떤 발악을 한다 해도 뒤집을 수 없는 판이다.”

    내 눈앞으로 두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메이웨더 알리타이슨.

    둘 다 인간 종족이고 마법사이다.

    모노마흐는 ‘알래스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원래 러시아 소속이었다가 미국으로 헐값에 팔려갔기에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알래스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주 강력한 얼음 마법을 사용하기에 어느 정도는 주의해야 한다.

    알리타이슨은 골렘을 부리는 마법사로 자기가 직접 골렘에 탑승해 근접 전투를 즐긴다.

    마법사인 주제에 현실에서는 헤비급 프로 복서인지라 골렘의 주먹 스킬이 예사롭지 않은 편이었다.

    그 둘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맵도 무난무난하겠다 전력 차이도 압도적이겠다, 뭐 시간 끌 것 있나?”

    “빨리 끝내지.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경기를 마쳐야 영국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이 움직인다.

    휘이이이이잉-

    모노마흐가 검푸른 마법서를 펼쳐 시동어를 외치자 이내 대기가 허옇게 얼어붙는다.

    “모조리 얼어라.”

    그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극저온의 필드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얼음가시들이 삐죽삐죽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온 세상 천지에 빙하기가 와 버렸다.

    우지지지지직!

    나는 발밑에서 치솟아 오르는 얼음 고드름 하나를 슬쩍 피하며 생각했다.

    ‘……으음, 리치왕의 하위호환쯤 되려나?’

    현 시점에서 일개 플레이어가 리치왕이 연상되게 할 정도의 얼음마법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나름대로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리치왕을 졸업한 이 몸 고인물께서는 이 정도의 추위는 그저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 정도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말씀!

    더군다나.

    쿠-구구구구구……

    알리타이슨이 주문을 외우자 대지에서 거대한 골렘이 일어난다.

    엘도라도의 무른 토지 아래 깊숙한 곳에 있는 광물층이 통째로 융기해 올라 만들어진 거대한 아다만티움 골렘.

    황소의 것과 같은 굵은 뿔을 가지고 있고 두 주먹의 크기는 거의 몸통의 크기에 맞먹었다.

    그것은 알리타이슨을 가슴팍에 움푹 패여 있는 조종석에 태운 채 움직였고 이내 나를 향해 주먹세례를 꽂는다.

    콰콰콰콰콰쾅!

    극저온의 얼음폭풍이 내 몸을 덮쳐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위로 운석과도 같은 아다만티움 골렘의 주먹들이 떨어져 내렸다.

    주변의 차가운 서릿발들은 빙벽이 되어 모든 도주로를 차단했고 골렘은 계속해서 내 가드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매섭긴 하네.’

    나는 슬쩍슬쩍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간간히 가드를 올리며 냉기 피해와 물리 피해를 막았다.

    골렘의 공격력이야 뭐 현 시점의 플레이어들에게나 강한 것이지 나에게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오히려 발목을 붙잡는 냉기 피해가 더욱 성가셨다.

    하지만 그래 봤자 성가신 수준, 여름밤의 모기 같은 수준의 딜이니 짜증스럽긴 해도 위험하지는 않았다.

    ‘……으음. 아직이다.’

    여차하면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눈앞의 둘을 리타이어 시켜 버릴 수 있다.

    어떻게? 간단하다.

    왼손을 뻗어서 왼쪽에 있는 모노마흐를, 오른손을 뻗어서 오른쪽에 있는 알리타이슨을 잡아서 그대로 쳐 죽이면 되는 것이다.

    얼음벽이고 아다만티움 골렘이고 마몬의 힘 앞에서는 그냥 다 수수깡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별로 임펙트가 안 살지.

    ‘……빨리 나와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판을 뒤집을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말이다.

    한편.

    전용진 캐스터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우리의 영웅 마동왕 선수! 두 명의 미국 선수를 맞아 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버티는 게 어딥니까!? 세계 최정상급 랭커 두 명의 폭풍 같은 합공에도 꿋꿋이…! 버티며 한국의 근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아, 마동왕 선수! 이것이 바로 저력이라는 것일까요-오!?]

    실시간 댓글들도 난리가 났다.

    -마동왕이야말로 한국의 자부심이다

    -와;;; 둘이 합공 때리는데 한 치도 안 밀리네

    -장렬하다...보다가 조금 울었다...

    -나였으면 1초만에 순삭됐을텐데...사스가 갓동왕

    -버티는 모습 애잔해...어떡해...ㅠㅠㅠㅠㅠ

    -근데 좀 뭔가...고전하고 있다기에는;;; 마동왕 HP바 좀 봐라;;

    -...뭐임? 왜 피가 안 닳음?

    -저게 그거냐? 미국 랭커들이 지금 한국 가지고 노는 거냐??

    -아니...모노마흐랑 알리타이슨도 개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에이 설마 그럴 리가...지금 미국 랭커 두명이 봐주고 있는 거겠지...

    -HP바 보이긴 함? 얼음가루랑 타격 이펙트 때문에 가려져서 안 보이는데?

    -아까 잠깐 힐끗 보였음. 다행히 마동왕 체력이 꽤 차 있었다..

    -아무튼...너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네...ㅠㅠㅠ

    -아무리 마동왕이라도 2:1은 무리구나...아니 심지어 3:1인가...

    .

    .

    물론 응원석 역시도 마찬가지다.

    “왜! 왜 맞고만 있어 바보야! 반격할 수 있잖아!”

    유다희마저도 애타게 외치다가 주변 눈치를 보고 흠칫한다.

    다행히 다들 경기에 몰입해 있느라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지만.

    뭐 아무튼.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의 합동 연격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둥! …둥! …둥!

    미국 팀의 관중석은 심장까지 떨어 울리는 충격파와 진동에 온통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반면 한국의 관중석은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분위기가 더욱 더 침울해진다.

    ……하지만!

    ‘귀여워.’

    나는 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한국 팬들과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적당히 성장한 뉴비들을 보는 것만큼 귀엽고 뿌듯한 것이 또 없지.’

    마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을 보고 있노라면 리그의 수준이 진일보한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제야 비로소 경기다운 경기! 내 실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경기가 조금쯤은 가능해졌다.

    ‘……아아, 까닥 잘못하면 무의식 중에 손이 나가겠네 이거. 참자, 참아.’

    나는 당장 허공으로 주먹을 뻗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마치 모기에 물린 곳을 긁고 싶다는 충동처럼 강렬한 욕구가 계속해서 내 가드를 움찔거리게 하고 있었다.

    ‘……딱 한 대,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

    백전노장 특성으로 인해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는 몸뚱이, 그 안에서는 야수와 싸움광, 그리고 SM플레이어 등의 변태 패티쉬 특성들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전용진 캐스터는 무언가를 오해한 모양이다.

    [아아! 마동왕 선수! 움찔움찔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가드를 굳힐 기력이 남지 않은 것일까요!? 철벽같던 방어가 이제는 천천히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도 저 폭풍 같은 공격을 여지껏 버텨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네요! 역시 캡틴 코리아! 한국의 영웅다운 마지막입니다!]

    절망적인 해설에 한국 관중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언뜻언뜻 들렸다.

    하지만 오히려 초조함을 보이는 건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 쪽일 것이다.

    ‘이, 이 자식 이거 왜 이렇게 단단해!?’

    ‘마치 철벽을 때리는 것 같아. ……뭐지 이 불길함은?’

    탑클래스 랭커들답게 감들이 좋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모양.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드 사이의 좁은 틈으로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을 살폈다.

    흩날리는 얼음가루와 골렘의 타격 이펙트 때문에 현재 나의 HP는 거의 가려져 있는 상태.

    내 상태를 확인하려면 잠시 공격을 멈춰야 하는데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끄떡도 하지 않는 나에게 미증유의 공포를 느끼고 있을 테니까.

    ‘뉴비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조금이라도 공격 속도를 늦췄다가는 반격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겠지.

    나도 그 레벨 때는 그랬으니까.

    콰콰콰콰콰쾅!

    빠른 것을 넘어서 급해 보이는, 아니 이제는 초조해 보이기까지 한 두 랭커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물론 나는 반격하지 않고 그저 겨우겨우 버티는 모양새로 꿍꿍 참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린 결과.

    “아, 진짜! 뭣들 하는 거야! 저리 비켜!”

    ……물었다.

    내가 노리던 대상이 드디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연예인들은 대부분 관종, 그것은 모노마흐와 알리타이슨 뒤에 서 있는 저 인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끝낸다. 다들 나와!”

    이윽고, 지지부진하고 답답한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할 해결사가 등판했다.

    세계 공식 통합랭킹 2위 비앙카 트럼프.

    북미 게이머들의 대표이자 미국의 자존심이 드디어 필드로 출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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