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4화 한국 vs 미국 (2)
-2라운드
-한국: <윤솔>, <드레이크>
-미국: <오일러 심슨>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쾅!
엄재영 감독은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미국에게 완전히 당해 버렸다.
미국의 전략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1/3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나온 죠 올드맨이 유세희와 마태강의 빈틈을 찔러 1승을 챙긴 것이 가장 컸다.
미국은 2라운드에도 한 명을 내보냈지만 그것은 사실상 게임을 던지는 것(포기하는 행위)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2라운드에서는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3라운드에서는 1:3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선수 세 명과 한국 선수 한 명.
패배는 기정사실이다.
잘 해서 2라운드에서 이긴다고 해도 이미 1라운드에서 패를 두 개나 쓰고 져 버린 이상 3라운드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멍청했다. 아아, 당연히 생각했어야 하는 수였는데…….”
엄재영 감독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본래 3개의 패를 가지고 벌이는 3판 2선승제에서는 상대방의 가장 좋은 패(1)에 나의 가장 나쁜 패(3)를 상대하게 해서 1승을 양보한 뒤 상대방의 두 번째로 좋은 패(2)를 나의 제일 좋은 패(1)로 누르고 상대방의 제일 나쁜 패(3)를 나의 두 번째로 좋은 패(2)로 눌러 2승을 챙기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미 닭의 목은 비틀어졌다.
그리고 새벽은 온다.
전용진 캐스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윤솔 선수와 드레이크 선수가 입장합니다!]
한국 관중석은 꽤나 암울하다. 환호 소리도 적었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필드에 올랐다.
2:1의 싸움이니 당연히 이겨야 한다.
하지만 이긴다고 해도 팀의 승리는 불투명했다.
윤솔은 고개를 힐끗 돌려 저 구석, 맵의 외곽에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있는 마태강과 유세희를 바라보았다.
그 둘은 죄인이 된 심경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다.
윤솔이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상심해 있는 게 너무 마음 아파요.”
“어쩔 수 없다 솔. 일단 우리라도 이겨서 3라운드까지 승부를 끌어야지.”
드레이크의 말에 윤솔은 눈을 부릅떴다.
“그래요. 우리가 여기서 이기면 3라운드에는…… 대장이 있으니까.”
사실 3라운드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3:1. 미국의 쟁쟁한 랭커들이 셋이나 나온다.
그리고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세계 공식 통합랭킹 2위인 비앙카 트럼프.
반면 한국 선수는 하나뿐이다.
이 넓은 스타디움의 관중석을 통틀어 한국이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둘 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토토나 프로토 배당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하지만.
윤솔과 드레이크는 굳은 믿음으로 서로를 마주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그라면 모른다.
김연아와 트리플 악셀 승부, 장미란과 역도 승부, 이세돌과 바둑 승부, 박지성과 두 개의 심장 승부, 방탄소년단과 안무 승부, 싸이와 강남스타일 승부, 류현진과 캐치볼 승부, 페이커와 미드 승부, 봉준호와 기생충 승부, 김장훈의 고음 승부, 박항서와 족구 승부를 해도 이어진이라면 모르는 것이다.
그 어떤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이어진이라면 그것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굳은 믿음을,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더 투철해진 사명감을 가지고 필드에 올랐다.
한편, 미국 측 선수인 오일러 역시도 거구의 몸을 이끌고 필드로 올라왔다.
오우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몸집의 오크. 레벨이 아주 높은 모양이다.
심지어 손에는 도넛과 햄버거,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의 다이어트 콜라를 들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그것을 보자마자 표정을 찌푸렸다.
“기름지군.”
“하하하, 그게 나의 매력이지.”
이윽고, 오일러는 주문을 외웠다.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고 이내 그가 구현해 낸 이변이 현세에 재현된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떨어져 내리는 것은 빗방울이 아니었다.
[아앗!?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황당함에 소리친다.
그 말대로,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은 피자, 감자튀김, 햄버거, 치킨, 도넛, 아이스크림 등의 기름지고 지방진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오일러 본인과 윤솔, 드레이크를 향해 자동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일러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하하! 숨겨왔던 나의 비장의 특성 ‘악기바리’다! 내 마법은 아군과 적군 모두를 동시에 배부르게 만들지! 과연 너희들이 나의 식고문을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는 현실에서도 푸드 파이터인 남자, 기름진 것을 먹는 일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존재였다.
다만.
“응? 아무렇지도 않은데? 맛만 있을 뿐.”
“전혀 살찌지 않는군. 먹은 것 같지도 않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쏟아지는 음식들이 자동으로 입에 빨려 들어가고 있음에도 전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혀에 느껴지는 가상의 맛을 음미할 뿐.
그러자 오일러가 눈을 크게 떴다.
“어엇? 이 음식들은 플레이어의 인벤토리에 자동 축적되어서 칸이 꽉 차게 만드는데?”
인벤토리가 꽉 찬 플레이어들은 아주 느려지고 그 때문에 뒤뚱뒤뚱 걷게 된다.
마치 콜레스테롤이 가뜩 낀 혈관 속 적혈구들이 현저히 느려지는 것처럼.
하지만 윤솔과 드레이크는 수많은 음식들을 자동으로 흡수하고 있음에도 전혀 느려지지 않고 있었다.
<윤솔>
LV: 81
호칭: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드레이크>
LV: 83
호칭: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둘 다 벨제붑을 잡고 얻은 ‘폭식 창자’ 특성 때문에 인벤토리가 거의 무한에 가깝게 늘어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오일러의 위장과 인벤토리가 크다고 해도 폭식의 화신 벨제붑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 둘을 푸드 파이트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그윽!”
오일러는 치밀어 오르는 트림을 참고는 뒤로 물러났다.
쏟아지던 음식의 비가 멈추자 이내 기름진 정크푸드로 오염된 바닥이 굉장히 미끌거리게 되었다.
오일러는 눈을 부릅뜨고 윤솔과 드레이크를 바라보았다.
“후후, 후후후후……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딱히 그런 생각 안 한다.”
“맞아요. 아직 뭐 한 것도 없는데?”
“닥쳐! 나의 실력은 지금부터야!”
오일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미국에 유전 터진 것, 알고 있나?”
뜬금없는 것을 묻는다.
드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이번에 대규모 석유층을 발견했다고 뉴스에 떴으니.”
“후후후후. 그렇다면 천연 가스도 발견된 것 아나?”
“그것도 알지. 미국은 지하 자원이 풍부한 나라니까.”
드레이크의 대답에 오일러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기름과 천연가스의 힘을 한번 느껴 봐라.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동시에, 오일러는 크게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꺼어어어어억-
오일러의 뱃속에 있던 묵은 트림이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지금껏 바닥에 잔뜩 쌓여 있던 기름과 지방들이 트림 가스에 떠밀려 쓰나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화르륵!
원래 화염 계열 마법사인 오일러는 자기가 만들어 낸 가스와 기름, 지방의 파도에 불을 당겨 버렸다.
콰콰콰콰콰쾅!
칼로리를 태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마어마한 화마가 윤솔과 드레이크를 덮치기 시작했다.
거의 핵탄두급 화력이었다.
그러나.
“에잇!”
윤솔은 하린마루의 왼팔과 오른팔을 이용해 너무도 쉽게 땅가죽을 뒤집어 불의 파도를 막아 냈다.
그리고 드레이크가 오일러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핑-
불카노스 촉과 베드엔딩의 뼈로 만들어진 화살대.
드레이크가 날려보낸 화살은 불의 파토와 흙벽을 뚫고 정확히 오일러의 두툼한 뱃살에 박혀든다.
“컥!?”
오일러는 뿜어내던 트림을 멈추고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화살은 오일러의 두터운 뱃살을 뚫지 못했다. 그저 반쯤 박히다 말았을 뿐.
“하하! 나의 지방은 그 어떤 물리력도 막아 내지!”
오일러는 의기양양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은 몇 초 가지 못했다.
…따앙!
바로 뒤이어 날아온 화살이 오일러의 배에 박혔던 첫 화살의 꽁무니를 때린다.
반쯤 박혔던 첫 번째 화살이 더욱 깊게 박혔고 두 번째 화살은 튕겨나 버렸다.
그리고.
…따앙!
튕겨나간 두 번째 화살을 잇는 세 번째 화살이 날아들어 다시 첫 번째 화살의 꽁무니를 때렸다.
그리고.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따앙!
마치 망치로 못을 두드리듯 계속 날아드는 화살들!
그것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일러의 배에 박힌 첫 화살의 꽁무니를 때리고 있었다.
‘……무, 무슨 에임이?’
오일러는 오싹 돋는 소름을 느끼고 허리를 틀었지만 드레이크의 화살은 직선, 때론 곡선을 그리며 날아와 계속해서 첫 화살을 때린다.
결국.
푸우우욱-
오일러의 배에 박힌 화살은 그의 뱃속으로 깊게 박혀들고 말았다.
“끄으으으윽! 그래도! 결국! 내 지방층은! 못 뚫어!”
괴성을 지르며 버티는 오일러.
하지만 이윽고 불의 장막을 잡아 찢으며 등장한 윤솔의 앞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뭘 못 뚫는다고요?”
윤솔의 짧은 물음에 오일러는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너무나…
‘무서워!’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 순수한 눈동자에는 악의라고는 한 점도 없다.
하지만 흉악한 살기를 내뿜으며 꽂히고 있는 저 주먹은 무어라 설명해야 할 것인가!
콰콰콰쾅!
윤솔의 주먹은 오일러의 배에 꽂혔다.
드레이크의 화살이 오일러의 등을 뚫고 나왔고 이내 윤솔의 주먹이 그 뒤를 바로 뒤이어 튀어나왔다.
뻐-엉!
단 한 주먹에 오일러의 뱃가죽에 구멍이 뚫렸다.
촤르르르륵-
엄청난 양의 지방과 기름이 윤솔의 몸을 뒤덮는다.
“꺄-아아아아악!”
누렇고 끈적끈적한 지방들에 파묻힌 윤솔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은 그보다 더 큰 관중들의 함성 소리에 그대로 묻혀 버렸다.
[아아! 윤솔 선수! 승리의 포효를 지르고 있습니다! 한 마리 야수와도 같은 저 퍼포먼스! 강렬합니다! 엄청납니다! 러시아 넘버원 트로츠키 선수마저 격침시켰던 주먹이 미국의 오일러 선수를 단숨에 리타이어! 이렇게 한국이 2라운드를 가져갑니다! 보셨습니까 여러부운-!]
전용진 캐스터가 흥분에 겨워 외친다.
시무룩해졌던 한국 관중들이 다시금 응원봉을 두드리며 환호한다.
하지만.
뒤이어진 알림음에 다시 장내의 분위기는 축 쳐졌다.
3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알림음.
-3라운드
-한국: <마동왕>
-미국: <블라디미르 브세볼로도비치 모노마흐>, <메이웨더 알리타이슨>, <비앙카 트럼프>
3:1의 싸움, 게다가 그 셋 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랭커들이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비앙카 트럼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한국 팬들은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다.
제아무리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판을 뒤집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한국말이랑 한국 경기는 끝까지 듣고 봐야 아는 것이지.’
한국의 마지막 희망이 망토를 휘날리며 출격한다.
마동왕.
오늘 밤 주인공은 이 몸이라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