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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33화 (733/1,000)
  • 733화 한국 vs 미국 (1)

    죠 올드만.

    별명은 올드 블랙 죠.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생기게 될 그의 별명을 나는 하루 정도 미리 알고 있다.

    ‘올드맨 인 더 다크(Oldman in the dark).’

    그는 나이가 많은 흑인 노인으로 한때 수많은 전장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츠츠츠츠……

    올드만은 전신의 검록색 비늘을 쓸어내리며 전장에 섰다.

    마태강과 유세희 페어가 그런 올드만의 앞을 가로막는다.

    한국 팀 선수는 둘, 미국 팀 선수는 하나. 쉽게 가져갈 수 있는 판이었다.

    하지만.

    “……!”

    이내 엄재영 감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올드만은 지금껏 북미 챔피언스 리그에서 싸우며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변의 시작이었다.

    *       *       *

    마태강은 유세희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근접 딜러, 저쪽도 근접 딜러야. 마침 지형도 무난한 평지고.”

    “뭐 딱히 망설일 이유가 없네. 바로 갈까?”

    마태강과 유세희는 각각 건틀릿과 대낫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글거리는 불꽃과 서슬 푸른 대낫이 올드만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바로 그때.

    츠츠츠츠츠츠츠…… 푸쉭!

    올드만의 비늘이 빳빳하게 곤두서는가 싶더니 이내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비늘 밑에서 매연과도 같은 검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는 듯한, 혹은 기관차가 석탄 증기를 뿜어내는 듯한 광경.

    “……!?”

    마태강과 유세희는 잠시 멈칫했다.

    놀랍게도, 올드만이 뿜어낸 검은 기류는 순식간에 경기장의 절반 가까이를 뒤덮어 버렸다.

    마태강은 혹여나 독이 있을까 싶어 경계했지만 딱히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한 흑안개인 듯싶었다.

    올드만은 몸에서 뿜어낸 흑안개 속에 모습을 감췄고 그의 어두운 색 비늘 때문에 더더욱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신의 시야도 제한될…… 아차!’

    마태강은 이를 악물었다.

    올드만은 시각장애인, 애초에 눈이 보이지 않는 플레이어다.

    아니나 다를까.

    …부웅!

    뒷목을 노리며 휘둘러지는 참격!

    마태강은 겨우겨우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해 냈다.

    순전히 100%, 천재의 감 덕분이다.

    그러자 올드만의 목소리에서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이걸 피하다니.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대단하군.”

    하지만 요행은 연속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올드만은 날카로운 손톱 열 자루를 뻗어 바로 마태강의 숨통을 조여 들었다.

    퍼펑! 펑! 쩍! 쩌억-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근처에 있는 바위나 통나무들이 모조리 두동강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소음은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리자드맨 특유의 칼날 같은 손톱이 마태강의 목을 파고 들려는 바로 그 순간.

    …따앙!

    올드만의 손톱을 막아 내는 물체가 있었다.

    불카노스 대낫!

    눈먼 처형인 유세희가 올드만을 막아선 것이다.

    “뭐 달라진 게 있나요?”

    유세희 역시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장을 감싼 흑안개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있었다.

    …땅! …따앙! …깡!

    리자드맨의 손톱이 제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불카노스에 견주는 것은 무리다.

    올드만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흐음. 영국의 그 구르카 노인네와 싸우려고 출전했는데.”

    그리고는 꼬리의 무게를 이용해 몸을 한번 빙글 돌려 유세희의 공격을 피해 냈다.

    “여기서 이렇게 내 손녀보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고전할 줄이야.”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올드만은 그저 여유로운 기색이다.

    시력이 없으니 청각, 후각, 촉각이 예민해지는 것은 둘 다 똑같다.

    ……그러나.

    유세희와 올드만, 둘 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암흑 속에서 살아온 세월은 올드만 쪽이 압도적으로 더 길다.

    더군다나 올드만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퇴역군인이 아니던가!

    자연스럽게, 올드만은 유세희를 천천히 짓눌러 가고 있었다.

    “……! ……! ……!”

    유세희는 같은 처지에 있는 상대를 처음 만나보았기에 꽤나 당황했다.

    “동류를 만나본 경험이 적거나 아예 없는 모양이군.”

    올드만은 유세희보다도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필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마태강의 주먹과 유세희의 대낫 사이의 그 좁은 공간으로 슬쩍 파고들었고 이내 흑안개에 몸을 묻어 버렸다.

    “……젠장.”

    마태강은 이를 악물었다.

    시야를 가리는 이런 류의 공격을 받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광역을 차폐하는 흑안개는 처음이다.

    쾅!

    발을 굴러 흙먼지를 일으켜 보았지만 일부 지역의 흑안개가 걷혔을 뿐, 올드만이 지금도 계속 피워내고 있는 흑안개는 더욱 더 짙어지기만 할 뿐이다.

    ‘세희는 늘 이런 상황에서 싸워왔던 건가.’

    마태강은 새삼 옆에 있는 유세희의 존재를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의지만 할 수 없지.”

    마태강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 그리고 원래 종족인 오크로 변신했다.

    우드득!

    투신의 덩치가 부풀며 피부가 녹색으로 물든다.

    오우거. 오크의 상위종이 그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좋은 판단이 아니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몸을 작게 웅크려야 하지.”

    유령처럼 나타난 올드만은 그런 마태강의 등짝에 귀신같이 칼침을 박아 넣었다.

    “다음부터는 참고하라고. 젊은 친구.”

    마태강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등짝의 상처가 쓰리다. 계속해서 HP가 빠지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도트 데미지가 들어오고 있는 듯했다.

    ‘오크에게만 추가 데미지를 주는 특성인가? 괜히 오크 킬러라고 불리는 게 아니군.’

    하지만 마태강도 생각이 있다. 괜히 오크의 몸을 해금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콰콰콰쾅!

    마태강은 뜨겁게 달궈진 건틀릿으로 지면을 때려 흙먼지와 파편들을 만들어 냈다.

    소리 없이 어둠 속을 유영하던 올드만마저 뒤로 물러날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서 대체로 맞지는 않겠지만 일단 한 번이라도 맞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올드만은 리자드맨 전사치고는 그리 체력이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태강의 주먹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와 봐라. 자신 있으면.”

    마태강은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원래 무규칙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그러나.

    마태강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옆에 있는 유세희의 존재이다.

    “아앗!?”

    유세희는 진동하는 땅과 마태강이 흔들어 놓는 대기에 그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마태강은 황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

    늘 솔플만 해 와서 그런가, 페어인 점이 이럴 때는 오히려 독이 된다.

    “어둠 속에서는 차라리 혼자인 것이 마음 편하지. 안 그런가?”

    이윽고. 먹물 속에서 드러나는 오징어 촉수처럼, 뒤에서 뻗어나온 올드만의 열 손톱이 마태강의 얼굴을 휘감는다.

    “내가 이래서 페어를 못 해. 피아구분이 안 되잖아.”

    씩 웃은 올드만은 그대로 마태강의 얼굴을 그어 버렸다.

    “크윽!?”

    눈알이 화끈거린다.

    마태강은 황급히 뒤로 손을 뻗었다.

    퍼펑!

    다행스럽게도 주먹 끝에 뭐가 닿는다.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갔다!

    “……!?”

    올드만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 상황에서 반격을 한다고?’

    자동으로 뿜어져 나가는 반사 데미지도 아니다. 그냥 순수한 피지컬에 의한 반사신경.

    “확실히 잠재력이 대단하기는 하군. 하지만 완전히 다 개화하려면 아직 멀었…….”

    올드만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퍼펑! 퍼퍼퍼펑!

    마태강이 전신에서 뜨거운 화염을 뿜어내며 올드만을 바로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건틀릿의 빛이 전면을 환하게 비춘다.

    “넌 끝났어.”

    마태강은 오우거 특유의 커다란 손바닥을 확 뻗어 올드만의 머리통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후욱-

    올드만은 또다시 검은 안개를 뿜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낫을 휘두르고 있는 유세희가 있었다.

    퍼펑!

    올드만은 몸을 날려 마태강과 유세희의 사이로 빠져나갔고 그 때문에 마태강과 유세희가 충돌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엇!?”

    천재적인 감각으로 서로의 위치를 인지한 마태강과 유세희는 황급히 공격을 물렸지만 이미 늦었다.

    퍼퍽! 쾅!

    대낫은 마태강의 가슴팍을 두 조각으로 쪼개 버렸고 주먹은 유세희의 복부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퍼퍼펑!

    그리고 마태강과 유세희의 공격이 맞닿아 만들어 낸 충격파는 올드만의 전신을 사납게 난자했다.

    우지지직!

    올드만의 한쪽 팔과 다리, 그리고 꼬리가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콰쾅!

    유적지 한 켠이 무너졌고 그 소란에 의해 흑안개가 옅어져 간다.

    오-오오오오오오!

    흥분한 관중들이 내지르는 소리.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마태강과 유세희, 둘 다 전투불능.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나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는 분명 죠 올드만이었다.

    전용진 캐스터가 안타까움이 가득한 탄식을 흘렸다.

    [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페어로 출전했던 마태강, 유세희 선수가 예상 외의 복병을 만나 고전 끝에 쓰러졌습니다. 아앗! 지금 말씀드리는 순간 죠 올드만 선수의 HP도 막 0이 되었네요! 극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근접 딜러인 마태강, 유세희 선수가 서로의 몸에 오발탄을 꽂은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상황을 유도한 죠 올드만 선수의 노련함이 불러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 참 아쉬운 순간입니다.]

    전황은 심각하다.

    두 명이 나가서 한 명에게 졌으니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꽈악!

    엄재영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무난하게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2:1 싸움에서 질 줄이야.

    초반의 결과가 거의 최악, 상상할 수 있는 패 중 가장 나쁜 패가 나왔다.

    맹인이라는 죠 올드만의 특수성과 페어 플레이(Pair play)라는 규칙의 변수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2라운드에서 미국은 이제 무조건 두 명을 내보내겠군.’

    1로 2를 잡았으니 이제 안정적으로 2라운드와 3라운드에 각각 선수 두 명씩을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2:2대전과 2:1대전에서 한 번만 이긴다면 미국은 안전빵으로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2:1 대전에서는 미국이 낙승을 거둘 확률이 크고 말이다.

    그런 초조한 상황 속에서 엄재영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2라운드 한국: <윤솔>, <드레이크>

    한국 팀의 다음 주자는 윤솔과 드레이크. 2명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그저 말없이 턱을 쓰다듬을 뿐이다.

    ‘으음. 형님이 완전 말리셨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지금의 미국에게는 그런 상식이 먹히지 않는다.

    -2라운드 미국: <오일러 심슨>

    미국은 또다시 1.

    전장의 분위기가 미국 쪽으로 조금 더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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