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32화 (732/1,000)
  • 732화 세계리그 개막! (3)

    목요일. Saturday. 결전의 날이 밝았다.

    “어진아. 목요일은 영어로 Thursday야.”

    음. 오역이 약간 있을 수 있다.

    윤솔의 지적과 함께, 최후의 리그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족.

    장소와 거리를 초월하여 자그마치 10억 개의 시선이 이 자리를 향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VS 호주>

    <영국 VS 브라질>

    <한국 VS 미국>

    각 대륙을 제패하고 올라온 챔피언 국가 간의 정상결전.

    E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 지금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배틀은 각국의 경기장이 서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관중들은 잔뜩 고조된 표정으로 증강현실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내 살아생전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커다란 스타디움이 만석이라니. 처음 있는 일이야.”

    “여기까지 원정 응원을 왔는데 당연히 우승을 노려야지!”

    “어이, 누가 이길 것 같아?”

    “배당이 얼마나 되려나?”

    “어디 경기장 시합이 제일 빨리 끝날까.”

    “나는 미국이랑 한국전이 제일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제일 빨리 이길 것인가.

    그것 역시도 호사가들의 좋은 이야기 소재였다.

    특히나 E스포츠 토토나 프로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일수록 더더욱.

    프로토(승부식)-XXX회차

    2026.0X.XX.

    최종경기일자: 2026.0X.XX.

    경기 / A / B / 예상 / 배당률

    ----------------------

    1 / 미국 / 한국 / B승 / 7.8

    2 / 호주 / 에티오피아 / B승 / 1.4

    3 / 영국 / 브라질 / A승 / 1.1

    ----------------------

    예상 적중 배당률: 12.012배

    구입 금액: (비밀♥)

    예상 적중금: (12.012*비밀♥)

    “형님! 파이팅입니다!”

    내 조언에 따라 전 재산을 여기에 건 유창이 나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마동왕 파이팅!”

    유다희가 이끌고 있는 마교 회원들 역시도 손에 토토나 프로토 용지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전원 다 한국에 애국베팅을 한 인원들이다.

    한편, 나는 굳은 표정으로 가상현실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츠츠츠츠츠츠……

    내가 게임에 들어가는 즉시 거대한 스타디움 중앙의 광장에 내 아바타가 게임 속 모습 그대로 생성된다.

    그리고 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증강현실 광장 속에서 정말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경이로운 경기장이다.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유창이 보낸 배당금 메시지를 읽어 보았다.

    “흠, 한국 쪽 배당이 많이 낮네.”

    그만큼 미국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현실에서도 강대한 나라이고 포진해 있는 랭커들의 스펙도 쟁쟁하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종속되어 있는데다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도 많이 작으니 배당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이 자리에 서 있는 존재가 러시아였다면 배당이 이렇게까지 차이나지는 않았겠지만.

    ‘오히려 땡큐지.’

    이 열세에도 불구하고 애국 배팅을 한 이들에게 제대로 한 방 몰아 줘야겠다.

    애국심의 대가는 풍족하다는 것을 알려 줘야지.

    이윽고.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미국 팀 선수 다섯과 한국 팀 선수 다섯이 접속을 완료했다.

    증강현실 경기장 중앙에는 거대한 맵이 형성되었고 열 명의 선수가 그 맵의 맞은편에서 대치한다.

    텅 빈 운동장과 같았던 스타디움 중앙 광장에 나무들이 생겨나고 오래 된 성벽들이 치솟아 오르자 관중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쯤 해서, 익숙한 목소리의 전용진 캐스터가 마이크를 잡고 한국 채널의 중계를 시작했다.

    [네! 드디어 한국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미국 선수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이번 경기는 총 3라운드로 이루어지며 다섯 명의 선수들은 각각 자기가 출전할 라운드를 정해서 나가야 하는데요. 우리 선수들이 어떤 전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미국 진영에서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네요. 미국 팀 선수 다섯 명이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선수 소개가 이어진다.

    [네! 미국 벤치를 지키고 있는 오크 종족 마법사 ‘오일러 심슨 주니어’ 선수입니다! 2미터가 넘는 키에 150킬로그램의 몸무게!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는 푸드 파이터였다고 하죠? 칼로리를 태워 만들어 내는 강력한 화염계열 마법이 특징입니다!]

    [다음 역시 인간 종족 마법사, ‘블라디미르 브세볼로도비치 모노마흐’ 선수입니다! 모노마흐 선수는 오일러 선수와는 다르게 강력한 얼음 마법을 주로 사용하죠? 원래는 러시아 선수였다고 하는데 미국 시민권을 딴 뒤 구단까지 이적했다고 하네요!]

    [네! 다음 선수는 리자드맨 종족 전사인 ‘죠 올드만’ 선수입니다. ‘올드 블랙 죠’, 혹은 ‘오크 킬러’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퇴역 군인 출신 랭커죠. 나이 일흔이 넘었지만 20대 선수들의 기량을 압살하는 플레이를 여러 번 보여 준 선수입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현실에서는 몸이 약간 불편하다는 점이……]

    [네 번째 선수는 인간 종족 마법사이자 무투가인 ‘메이웨더 알리타이슨’입니다! 현역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헤비급 프로복서인 동시에 게임 속에서도 천상계 랭커이죠! 특이하게도 마법사이면서 근접 전투를 즐긴다고 합니다! 요컨대 힘을 찍은 마법사 같은 건가요!? 골렘을 만들어 내는 소환 마법 솜씨 역시 대단한 선수이니 한국 선수들은 바짝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입니다! 다섯 번째 선수는 굳이 제가 설명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무관의 제왕 ‘비앙카 트럼프’ 선수입니다! 지난 번 북미 챔피언스 리그에서 이 선수 하나에게 캐나다의 정예 다섯 명이 올킬 당한 것 기억나십니까? 이 선수는 존재 자체가 전설이고 신화겠죠! 인간 종족이지만 그녀의 직업이나 클래스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전용진 캐스터의 설명에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장의 이 열기는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한국 팬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 경기가 치러질 맵은 남대륙 깊은 곳에 있는 ‘황금도시 엘도라도’, 오래 전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지로 언뜻 보기에는 마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픈필드형 사냥터이다.

    남대륙 특유의 적당히 따듯한 날씨, 적당히 축축한 습도.

    무너진 사원의 잔해만 아니면 대체로 완만하게 평탄한 지역이었고 이렇다 할 만한 함정이나 위험 오브젝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나 덤불들도 울창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키가 작고 뿌리가 얕아서 시야 확보에 큰 지장이 없었다.

    그나마 몇 없던 NPC들은 이미 GM의 권고에 의해 피신한 상태였다.

    간혹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몬스터들 역시 처리반에 의해 말끔하게 싹 정리되어 있어서 경기에 딱히 변수가 될 만한 요인은 전혀 없어 보인다.

    높은 곳 감독실에서 증강현실로 만들어진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엄재영 감독은 연신 침음성을 삼키고 있었다.

    “……엘도라도라. 무난한 맵이지.”

    문제가 있다면 너무 무난하다는 것 정도?

    아무런 지형적 특징이 없으니만큼 딱히 요구되는 전략도 없다.

    하지만 감독의 입장에서는 이런 무난한 지형처럼 꺼림칙한 맵이 또 없기도 하다.

    마치 데이트 상대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진짜로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렇게 되면 첫 라운드에 누구를, 몇 명이나 내보낼 것인지가 유일한 관건이로군.”

    감독의 전략이 별로 효과가 없으니만큼 선수 개개인들이 잘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엄재영 감독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했다.

    3라운드에 걸쳐 내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애초에 제한적이다.

    2/2/1, 혹은 1/1/3로 둘뿐.

    5/0/0이나 4/1/0, 3/2/0 같은 경우의 수는 대회의 규칙 상 불가능하다.

    한 라운드에는 무조건 한 명 이상의 선수가 출전해야 한다는 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을 내보냈다가 상대방이 두 명을 내보낸다면 질 확률이 높기에 1/1/3 구조는 거의 채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 미국에서도 2/2/1 전략으로 무난하게 선수들을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어느 라운드에서 한 명이 나오느냐인데.’

    상대방에서 한 명이 나왔을 때 이쪽도 한 명이 나간다면 1:1승부 한 번과 2:2승부 두 번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높은 확률로 1:2승부가 한 번은 벌어질 공산이 컸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1라운드에 1을 낼 것인가 2를 낼 것인가.

    1이 나온다면 낙승, 2가 나온다면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엄재영 감독은 버튼을 눌러 오더를 내렸다.

    전광판에 1라운드 출전자가 떴다.

    -1라운드 한국: <마태강>, <유세희>

    한국의 첫 패는 2.

    ‘투신’과 ‘눈 먼 처형인’이 황금의 유적도시 엘도라도를 밟는다.

    ‘……평소에 사이도 호흡도 좋은 둘이니 무난한 카드가 될 것이다.’

    엄재영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뒤이어진 결과에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1라운드 미국: <죠 올드만>

    미국의 첫 패는 1.

    오직 한 명의 선수만이 나온 것이다.

    ‘낙승. 이 정도면 1승은 무난하게 깔고 가겠군.’

    엄재영 감독이 내쉬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걸?’

    경기장에 선 나는 엄재영 감독과는 조금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유적지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저 리자드맨 전사.

    불어오는 흙바람을 가만히 맞고 있는 저 모습은 패배하기 위해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였다.

    ……문득 회귀 전,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만들어졌던 것임이 분명한 그의 별명이 떠오른다.

    ‘올드맨 인 더 다크(Oldman in the dark).’

    어쩌면 마태강과 유세희는 상성적으로 최악의 적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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