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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31화 (731/1,000)
  • 731화 세계리그 개막! (2)

    “최후의 담판을 지어 보자고. 누가 최고인지 말야.”

    “바라던 바. 이번에야말로 알게 해 주지. 누가 정점인지.”

    비앙카와 튜더의 신경전은 조 추첨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둘의 대화를 종합해 보면.

    ‘한국은 깔고 간다 이거로군.’

    영국의 튜더와 미국의 비앙카가 맞붙기 위해서는 각각 브라질과 한국을 격파하고 2차 리그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미국의 비앙카는 한국을 당연히 이기는 상대, 즉 밟고 갈 계단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흐음. 취급이 별로네요. 저희.”

    옆에 있던 마태강이 불편한 신음을 낸다.

    그러나 지금 투신 마태강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튜더나 비앙카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밑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더더욱 이 무시가 열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윤솔,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 역시도 비앙카의 그 오만한 태도에 딱히 무어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태강아.”

    “네?”

    내 부름을 들은 마태강이 고개를 돌린다.

    나는 녀석에게 씩 웃어 보였다.

    “몇 분 컷 해 주랴? 저놈들.”

    그 말에 마태강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녀석은 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고조된 어조로 중얼거렸다.

    “크, 방금 그 대사를 연호가 들었어야 하는데.”

    우리 구단으로 이적 절차를 밟고 있는 ‘천재’ 이연호를 생각하나 보다.

    그때.

    오로지 영국 선수들만을 노려보던 미국의 대장 비앙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이내, 그녀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한국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번에 맞붙게 될 상대를 향해 저런 절대적인 자신감이라니.

    나는 그 당당함에 조금은 감탄했다.

    확실히 미합중국(美合衆國)은 초강대국 그 자체.

    외교, 정치, 경제, 군사 방면에서 당할 나라가 없는 최강의 국가이다.

    게임 산업에 때려박는 예산도 전 세계 1위로 2위부터 15위까지 포진한 국가들의 게임 산업 예산을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많다.

    보유한 랭커 수와 게이머 수, 시장 규모 역시도 물론 전 세계 1위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비앙카 트럼프는 그들 중 정점에 서 있는 플레이어.

    현실에서 역시도 대단한 군수기업이자 캡슐산업체의 오너를 부모로 둔 동시에 본인 스스로도 엄청나게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다.

    SNS 팔로워 수가 억에 육박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

    심지어 바로 전 북미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팀이던 캐나다를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출전해 올킬로 꺾어 버린 뒤 MVP트로피를 차지한 이가 바로 비앙카이니 지금 그녀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윽고, 비앙카가 말했다.

    “이게 누구야. 대격변의 영웅이시네.”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움찔했다.

    설마 이번 2차 대격변을 얘기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고인물임과 동시에 마동왕인 것을 눈치 챘다는 말인데…….

    하지만 이내 뒤이어진 그녀의 말은 나를 안심시킨다.

    “1차 대격변 동영상 잘 봤어. 제법이더라.”

    아, 비앙카는 지금 천공섬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기에 안심했다.

    한편, 내가 말이 없자 비앙카는 오해했는지 나직하게 웃었다.

    “너무 쫄 것 없어. 재밌게 즐겨 보자구.”

    비앙카는 내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그때, 옆에 있던 드레이크가 말했다.

    “별로 재미 보지는 못할 거다.”

    “……?”

    나는 필요 이상으로 날카로운 드레이크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

    보아하니 드레이크는 비앙카에게 감정이 별로 안 좋은 듯싶다.

    그때 옆에 있던 윤솔이 소곤소곤 말해주었다.

    “드레이크 씨가 예전에 군인이었잖아. 그때 군수 기업들하고 좀 마찰이 있었나 봐.”

    아, 비앙카는 재벌 3세였지 참.

    그러고 보니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짱짱한 군수기업이다.

    확실히, 미국 팀은 군수기업의 스폰을 받고 있는 구단이니만큼 드레이크가 별로 안 좋아할 만도 했다.

    더군다나 내가 모르는 악연으로 좀 얽혀 있는 사이 같기도 하고?

    하지만 비앙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픽 웃었다.

    “미안- 너희들이 재미있게 놀든 재미없게 놀든 사실 별 상관은 없어. 크게 관심 없거든.”

    “…….”

    “현 시점에서 한국은 크게 주목할 가치가 없지. 2차 대격변의 영웅 고인물이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는 프로게이머가 아니잖아?”

    비앙카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고정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영상 봤어. 조작이 아니라 진짜야 그거? 상태창이나 게이지 바 등등 뭐 대부분 모자이크가 되어 있던데, 구린 점이 많은가?”

    “…….”

    “뭐 실제로 잡았든 조작이든 간에, 몬스터 잡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거야. 필드에서 PVP를 뜨는 건 말야, 전혀 다른 것이거든. 뭐, 저기 있는 튜더 놈은 너를 좀 의식하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웃기는 일이지.”

    비앙카는 여전히 절대적인 자신감을 뽐내고 있었다.

    하기야, 나는 그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안다.

    리그 한정, 비앙카는 튜더를 넘어설 정도의 전투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 레이드라면 몰라도 PVP에서는 비앙카가 튜더보다 한 수 위이긴 하지. 그래서 얘는 지금 그걸 증명하지 못해서 안달 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비앙카가 숨기고 있는 특별한 특성 때문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차차 밝히면 될 일이다.

    내가 말이 없자 비앙카는 나를 스쳐 지나가면 말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지. 그래서 언랭은 서러울 수밖에 없는 거야. 억울하면 너도 랭킹 등록해서 순위권으로 올라오라고. 저기 저 페이사처럼.”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나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비앙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2등도 잘한 거야.”

    2등 역시 기억된다. 1등이 2등을 기억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비앙카가 가당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 뭐지?”

    “그야 에베레스트지. 8,848m.”

    내가 대답하자 비앙카는 코웃음을 치며 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은?”

    누가 2등을 기억할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 침음성을 삼켰다.

    자기들 역시 1등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드윈오스턴 산. 8,611m.”

    나는 아니다.

    내가 너무도 쉽게 대답하자 비앙카가 움찔했다.

    “흐…흥! 그래 뭐. 요즘은 문화가 바뀌어서 2등까지는 재미로 기억한다고 치자. 하지만 3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 이름 따위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칸첸중가 산. 8,586m.”

    “크흠.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있으니 3등까지는 알 수도 있지. 하지만 4등부터는 정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

    “로체 산. 8,516m.”

    “웃기지 마! 그래! 손가락도 다섯 개니 5위까지는 기억할 수도 있지!”

    “마칼루 산. 8,481m.”

    “하하! 그래. 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너도 모를 거다! 6등 따위 애매한 성적을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기억해 주겠……!”

    “초오유 산. 8,201m.”

    “…….”

    “다울라기리 산 제 1봉 8,167m, 마나슬루 산 8,156m, 낭가파르바트 산 8,126m, 안나푸르나 제 1봉 8,091m, 가셔부름 제 1봉 8,080m, 브로드피크 산 8,047m……”

    “그, 그만!”

    비앙카가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비앙카의 귀에 대고 계속해서 달콤한 속삭임을 흘려 넣었다.

    “가셔부름 제 2봉, 시샤팡마 산, 갸충캉 산, 가셔부름 제 3봉, 안나푸르나 제 2봉, 가셔부름 제 4봉, 히말추리 산, 디스타길 사르 산, 나가디 추리 산, 눕체 산, 마차푸차레 산……”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       *       *

    ‘으아아 그만해 미친놈아!’

    결국 비앙카가 약간의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 그날의 조 추첨은 마무리되었다.

    미국과 영국은 그 뒤로도 계속 툭닥거렸고 브라질 선수들과 호주 선수들은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소란을 구경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이 일련의 소란에 관심 없다는 듯 일찌감치 돌아가 버렸다.

    우리 역시도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로비를 빠져나갈 때쯤 해서 의자에서 일어나 나왔다.

    리무진에 타서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엄재영 감독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미국 놈들, 아주 작정하고 우리를 무시하는구만.”

    “맞아요, 형님. 제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랭킹을 겨우 321위까지 밖에 말하지 못했는데 중간에 끊다니, 2,744m 백두산 순서가 오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니, 그건 좀 네가 너무했고.”

    엄재영 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야, 좀 통쾌하긴 하더라. 비앙카 선수가 그렇게 질색팔색하는 건 처음 봤다. 그 까칠하고 도도한 랭커가.”

    “제 과묵한 이미지가 조금 무너졌겠네요.”

    “그거야 뭐, 국내리그 때도 몇 번 있었잖아. 그냥 승질 뻗는 대로 해. 캐붕이니 뭐니 신경쓰지 말고.”

    아무래도 엄재영 감독은 이번 미국 팀의 태도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엄재영 감독은 호텔 회의실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전략 회의에 들어갔다.

    “미국은 우리를 당연히 이기는 상대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던데.”

    “뭐 좋은 전략이라도 세워 놨나 보죠.”

    사실 나는 미국의 전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비앙카가 이렇게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 역시도.

    그리고 놀랍게도, 엄재영 감독 역시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회귀자 급의 혜안이다.

    “내 생각엔 말이다. 미국이 이렇게 기세등등할 수 있는 이유는 1차전의 특별 규칙 때문인 것 같다.”

    엄재영 감독은 상황을 아주 정확히 짚었다.

    괜히 명장이 아니다.

    스슥-

    엄재영 감독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대진표와 대회 규칙에는 다소 특이한 점이 보인다.

    1차전에 바로 라운드 수 제한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1차전의 경기에서는 태그가 안 돼. 오직 3라운드 안에 선수교체 없이 승부를 내야 한다.”

    선수는 5명인데 라운드는 3개뿐이다.

    그렇다면 한 라운드에 복수의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회 규칙에서는 당연하게도 한 라운드 안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의 수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0명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보통 2:2:1로 배분하겠네요.”

    다섯 선수가 3라운드 안에 쪼개져서 나가야 하니 최소 한 라운드의 인원이 홀수로 쪼개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선수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보통은 안정적으로 두 선수를 붙여서 2라운드에 걸쳐 페어를 두 번씩 내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라운드에는 한 명의 선수가 나가게 되는 것.

    이상적인 경우라면 2:2 전투가 두 번 벌어지고 마지막에 1:1 대장끼리의 전투가 이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미국이 보이고 있는 저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면 뭔가가 수상하단 말이야.”

    엄재영 감독의 촉과 나의 미래 지식은 정확히 하나의 결과를 짚어내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회의실 안에 감돈다.

    이윽고, 엄재영 감독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진아. 미국전, 가능하겠냐? 더군다나 그쪽의 캡틴이 무려 세계랭킹 2위…….”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엄재영 감독의 말을 막았다.

    “형님. 우리가 국력이 없지 덕력이 없습니까?”

    지들이 현실에서나 잘났지 게임에서도 잘났냐 이거야.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이 피식 웃는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혈전이 되겠구나.”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엄재영 감독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혈전이 아니죠.”

    “……그럼?”

    엄재영 감독의 의문스러운 물음.

    나는 그에 검지를 까닥거리며 화답할 뿐이다.

    “참교육의 시간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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