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28화 (728/1,000)
  • 728화 술잔을 나누면 형제 (2)

    에티오피아의 국가대표팀 ‘강뉴’

    아프리카 챔피언스 리그의 정상에 서기까지 253전 253승,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 어마어마한 팀이다.

    강뉴(Kagnew)라는 단어의 뜻이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혹은 ‘적을 빠르게 격파하다’라는 뜻이니만큼 그 이름을 잘 살려낸 팀이라고 볼 수 있겠다.

    “…….”

    나는 에티오피아 선수단을 쭉 훑어보았다.

    다섯 선수 전원의 프로필이 머리에 떠오른다.

    먼저 구르무 담보바 선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으로 아직 얼굴에 앳된 기운이 남아 있다.

    한창 더울 에티오피아의 한낮을 그대로 재현해 낸 것 같은 뜨거운 화염마법이 특기인 마법사이며 공식 세계랭킹은 14위로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천상계 랭커 중 한 명이다.

    다음은 타파라 타카텔 선수.

    그 역시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일교차가 큰 에티오피아는 한밤중에는 정말 춥다.

    그 싸늘함을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이가 바로 이 얼음계열 마법사 타파라이다.

    그의 공식 세계랭킹은 16위로 역시나 천상계 랭커 중 한 명.

    구르무 선수와는 원래도 절친한 사이로 특히나 공격과 방어의 손발이 정말 잘 맞아 함께했을 경우 그 결과값이 몇 배로 폭증한다.

    구르무의 불꽃 벽과 타파라의 얼음 칼날, 혹은 구르무의 운석 소환과 타파라의 빙벽 축조는 거의 모든 불/얼음타입 마법사들의 태그매치 협공 교과서라고 할 수 있겠다.

    마법사 넷과 탱커 하나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팀이니만큼, 구르무와 타파라 옆에 서 있는 밸라이 배껠레 선수 역시도 마법사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마법사이면서 탱커 역할을 동시에 하는 선수로 다루고 있는 주 메타는 ‘소금’이다.

    전신을 사염(沙鹽)으로 만들어 공격과 방어, 회피를 동시에 이뤄내는 그는 어찌 보면 마법사라기보다는 주술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주특기는 물리력을 무효화하는 솔트 바디, 특기는 대량의 소금을 이용한 물리력 강제나 상대방의 수분을 모두 말려 버리는 ‘가뭄’ 특성이다.

    올해 50세로 팀의 최고령자이며 공식 세계랭킹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의 신상정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 다음은 마루 마모 선수.

    나이는 17세로 팀의 최연소 선수이지만 가지고 있는 잠재력만큼은 최고인 식물계열 마법사이다.

    공식 세계랭킹은 26위. 원래대로였으면 팀 내 서열이 5위에 불과했지만 2차 대격변 이후로 식물 메타가 상향 패치를 받게 되면서 전투력이 훌쩍 뛰어올랐다.

    아마 세계리그에서 가장 변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고개를 들어 로비 맨 앞에 서 있는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비교적 흰 피부. 코카소이드에 가까워 보이는 인종적 특징.

    깔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 저지 차림이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 팀의 리더이자 공식 세계랭킹 3위인 페이사 릴레사였다.

    그는 ‘다나킬 저지(Danakil jersey)’이라는 이름의 상체 갑옷으로 몸을 두르고 있는 탱커 유저이다.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화산인 에르타 알레와 달롤의 뜨거움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딜러 역할을 하기에도 충분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과 화산쇄설류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가능케 하며 이는 그를 세계 정상급 랭커로 만들어 준 핵심 특성이었다.

    한편.

    그들은 현재 숙소 예약 문제로 난감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그들에게 다가가 번역기를 켠 상태로 물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기겁을 했다.

    “에? 오줌?”

    “……잠시 소변을?”

    “여기서?”

    이런. 좀 더 제대로 된 문장으로 번역을 했어야 했나.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허파?”

    “장기?”

    “밀매?”

    아무래도 번역기 성능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첫인상부터 아주 이상하고 수상한 놈이 되어 버렸다.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제가 숙소를 대신 잡아드려도 되겠습니까?”

    열심히 애쓴 결과 내 말은 제대로 전달된 모양, 하지만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그저 의아한 기색만 보였을 뿐이다.

    “당신은 누구신데 그런 제안을 하십니까?”

    페이사가 물었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당신들의 팬일 뿐입니다. 직업은…… 스트리머죠.”

    내 말을 들은 페이사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공적인 일에 금전적인 문제로 얽히는 것은 원치 않아요.”

    “오, 아닙니다. 순수한 존경과 호감의 의미에서 하는 일인데요. 저는 그저 세계리그를 보러 온 평범한 관람객일 뿐입니다. 당신들의 팬이기도 하고요.”

    나는 이 게임을 좋아하며 또한 실력 있는 게이머 역시 좋아한다. 그뿐이다.

    내 순수한 호의가 전달되었음일까?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던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이내 맑은 미소를 지었다.

    페이사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들었다.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습니다. 숙소 문제는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해결할 일입니다. 공적인 일이라서 제 임의대로 할 수가 없군요.”

    “……그런가요. 하긴 그게 당연하겠죠.”

    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고민하던 페이사는 이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한번 툭 쳤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요.”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초대였다.

    *       *       *

    호텔 근처의 작은 식당.

    나는 내가 지금껏 올렸던 동영상들을 보여 주며 자기소개를 했다.

    2차 대격변을 거치며 고인물이라는 스트리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에티오피아 선수들 역시 나를 알아보았다.

    “조금 전에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낯설어서 못 알아봤어.”

    페이사가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나에게 악수를 건네 왔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살색 타이즈라도 입고 다녀야 하나.”

    “하하, 그러면 알아보기 편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해맑았다.

    으레 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어지간한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보다도 인지도와 인기가 높기에 쉽게 거만해지기 마련, 그러나 에티오피아 선수들에게서는 그런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차 대격변 동영상 잘 봤어요. 믿을 수가 없네요! 대격변의 영웅과 식사를 같이 한다니.”

    다른 선수들 역시도 내게 호의 가득한 눈빛을 보냈는데 그 중 단연코 가장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는 이는 마루 마모 선수였다.

    그녀는 식물 계열 마법사였는데 내가 일으킨 2차 대격변 이후 메타가 급격히 떡상하게 되면서 입지가 아주 높아진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시종일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황인들의 얼굴은 다 비슷비슷해 보여요. 황인들이 보기에는 흑인들도 그렇겠죠?”

    “맞아. 사실 얼굴 구별이 조금 힘들긴 해.”

    “인종 간의 차이죠. 하지만 동양인들은 정말로 어려 보이는군요. 당신은 아무리 봐도 제 또래로 보이는데.”

    “내가 열 살 가까이 더 많을걸?”

    “우와! 정말요? 하지만 십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너도 십대 후반으로 보여, 하하!”

    “중반이에요. 여기서 PVP 하실래요?”

    “하…하하하하! 농담이지!”

    우리는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다.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친해지는 것도 빠르다.

    형제처럼 친한 젊은 두 선수 구르무와 타파라는 연신 내게 시원한 맥주를 권했고 제일 연장자인 밸라이는 내게 에티오피아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

    페이사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지만 그냥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들에게는 무언가 순수하고 맑은 느낌이 있어서 마주하고 있는 나까지 허물이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게 천성(天性)이라는 건가.’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리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한 페이사에게 물었다.

    “숙소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으음, 예산에 맞는 저렴한 호텔로 다시 잡았다.”

    페이사의 얼굴에는 수심이 깃들어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독재 대통령과 그의 일당 체제 때문에 정세가 불안한 것으로 안다.

    명목상의 다당제일 뿐 사실상 일당 독재가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정국.

    구단 역시 정치 시스템 탓에 지원이 열악하지만 선수들의 실력과 자존심은 아주 높다.

    “먹고 마시고 잊어버립시다. 오늘은 내가 쏩니다.”

    “아니지. 우리가 사야지!”

    “그냥 사게 해 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강뉴부대 전사들을 대접해 보겠어.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또 없다구.”

    나는 페이사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카드를 꺼내들었다.

    “쉐프! 샤따 내려! 오늘 여기 영국 대표 요리들 다 주세요!”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도 기대감이 어린다.

    ……하지만.

    이윽고 쉐프들이 내오기 시작한 요리를 본 우리들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오잉!? 영국 요리의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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