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27화 (727/1,000)
  • 727화 술잔을 나누면 형제 (1)

    4개월 뒤.

    나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영국 미들섹스 하운스로우에 있는 대형 공항.

    런던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약 24㎞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24시간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내리자마자 쌀쌀하고 눅눅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중충한 하늘에는 무거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언제든 비를 뿌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린다.

    나는 사진을 찍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라운지로 걸어갔다.

    몇몇 공항 직원들이 방문 목적을 물어온다.

    목적은 뭐, 당연히 최후의 리그인 ‘WUO(World Ultimate Olympiad)’에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어?

    “리그가 열리기 전까지는 2주 정도 남았으니 그 전까지는 푹 쉬자고. 영국 구경도 하고.”

    나는 구단 선수들 및 직원들, 모든 식구들을 전부 영국으로 데려왔다.

    그것도 대회가 본격적으로 개최되기 전, 십 수 일이나 일찍! 그것도 전원 퍼스트 클래스로!

    리그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국에서 휴가나 좀 즐길 생각이었다.

    날씨가 좋지는 않지만 뭐, 그래도 해외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구단주가 되니 이런 건 좋구만.”

    사실 뭐 신고식이라거나 조 추첨 행사 등등을 감안한다면 여유 시간은 2~3일 정도?

    그러니 마냥 여유를 부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편.

    “와아- 영국은 시내 풍경이 되게 예쁘다. 건물들 좀 봐! 저렇게 큰 시계탑은 처음이야.”

    윤솔은 공항에서 런던으로 온 이후부터 계속해서 감탄 중이다.

    하지만 천성이 집돌이인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에 별다른 취미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 풍경을 봐도 그저 심드렁할 뿐이다.

    그것은 내 옆에 있는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밥이나 먹고 레이드나 뛰고 싶군.”

    “동감이야.”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먹방 하기로 시청자들이랑 약속했는데. 같이 하겠나 어진?”

    “메뉴 뭔데?”

    “그야 영국에 왔으니 응당 영국 요리지. 파쉬 앤 칩스라거나.”

    “……됐어.”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서로 딱 달라붙어 있는 마태강과 유세희가 보인다.

    “오빠, 군대는 언제 가?”

    “이번 대회까지는 마치고 생각해 봐야지.”

    “안 가면 안 돼?”

    “그 누구보다 내가 그러고 싶어.”

    슬슬 군 입대를 고려해야 하는 마태강은 약간 의기소침한 기색이다.

    하지만.

    “태강아. 늦게 가. 느읒~게.”

    “네? 왜요?”

    “군대는 늦게 갈수록 좋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빨리 갔다오는 게 좋다고 하던데.”

    “너는 아니야.”

    “……?”

    나는 곧 녀석이 군 면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법이 개정되어서 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메달을 따게 되면 병역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마 이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게 된 것만으로도 녀석은 군면제를 받을 것이다.

    ‘아깝다. 나도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면 군면제…… 아 그때는 이 게임이 없었지. 하필 딱 이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로 회귀하는 바람에.’

    사실 이게 정말로 우연인지도 모르겠다.

    조디악과 클로즈 베타, 벨페골과 불사조, 그리고 윌리엄 링트 윌슨.

    이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나는 회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다.

    후두둑- 후두둑-

    우산을 노크하는 빗방울.

    내가 비 내리는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헤이-”

    옆에서 누군가 내 우산을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드니 온화한 표정의 영국인 노부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길이라도 물어볼 것 같은 기색.

    ‘그래. 회귀니 과거니 하는 건 잠시 잊자. 중요한 것은 현실이지.’

    세계리그를 코앞에 두고 영국까지 와 있는 시점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할 게 뭐 있나.

    지금 눈앞에 닥친 현실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장땡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영국인 노부부에게 화답했다.

    “저 영어 못 해요.”

    “왓?”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

    그러자 노부부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다.

    옆에 있던 윤솔이 노부부의 말을 영어로 통역해 주지 않았더라면 조금 민망할 뻔했다.

    아니, 한국인이 영어 못 하는 게 뭐 이상한가. 민망할 게 뭐 있어.

    나는 태연한 기색으로 윤솔의 통역을 기다렸다.

    ……한데? 윤솔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노부부의 인사와 질문을 들은 윤솔이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보고 동방 식민지에서 왔냐는데?”

    ……? 이게 지금 무슨 소리여?

    우리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이제 노부부의 시선은 드레이크에게 옮겨 간다.

    드레이크는 노부부가 하는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나보고는 서구 식민지에서 왔냐는군.”

    그 뒤로 이어지는 말도 상당히 가관이었다.

    노부부는 온화한 태도로 우리에게 덕담을 늘어놓았다.

    우리들은 신사의 나라 국민. 당신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동양인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니 신기하다. 다들 그저 신기해하는 것일 뿐이니 두려움에 떨지 말고 즐겁게 놀다 가라.

    ……뭐 대충 이런 말들?

    나는 덕담을 끝으로 돌아서서 멀어지는 노부부의 등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멀리서 사진을 찍는 팬들의 행위가 그들에게는 동물원 원숭이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였던 것일까?

    드레이크는 영국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과거에 영국이 어마어마하긴 했었지. 식민지 지배하고 학살하고 착취하고 팔아넘기고. 그래서 사이 안 좋은 나라들이 많은 것은 자업자득. 지금이야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해서 신사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라지만. ……뭐, 미국인이 할 말은 아닐 수도 있고.”

    “뭐 상관없어. 어차피 대회 나가면 다 짓밟아야 할 먹잇감일 뿐이니까.”

    “맞는 말이로군. 아니, 때리는 말인가?”

    나는 드레이크의 어깨를 한번 툭 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비도 오는데 빨리 호텔 들어가서 뽀송뽀송하게 한숨 푹 자야겠다.

    *       *       *

    나는 호텔로 가 바로 드러누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싸부! 여기까지 왔는데 시내 투어 해야죠! 런던! 런던! 비 내리는 런던!”

    잔뜩 들뜬 유세희가 졸라댔기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 도시의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비 냄새, 사람 냄새, 거리 냄새를 맡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차마 더 뭉기적거릴 수가 없었다.

    마침 저녁 식사시간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도 들려오고 있었기에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힐끔 쳐다본 뒤 밖을 구경할 사람들끼리 뭉쳤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유세희, 마태강. 그리고 엄재영 감독.

    당연히 보디가드로 온 유창도 함께다.

    우리가 막 로비를 떠나 현관문으로 향할 때.

    “Sorry. You have a duplicate reservation.”

    나는 데스크에서 작은 소란이 이는 것을 목격했다.

    눈길이 절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데스크에 서 있는 이들은 십 수 명의 흑인들이었고 맞이하는 호텔 직원들은 아주 사무적인 태도만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윤솔에게 슬쩍 물었다.

    “무슨 일이래?”

    내가 의지하는 기색을 보이자 윤솔은 신이 난 모양이다.

    ‘드디어 내가 도움이 되는구나!’ 라는 기색.

    그래서 드레이크를 굳이 만류하면서 자기가 통역을 해 준다.

    “내가 스피킹은 안 돼도 리스닝은 제법 되지. 조금만 기다려 봐.”

    윤솔은 데스크 쪽에 몇 초간 귀를 기울인 끝에 통역을 해 주었다.

    “으음, 중복 예약이 있었나 봐.”

    “중복?”

    “응. 뭐 20명 방을 예약해야 하는데 2명 방을 예약한 모양인데?”

    “호텔 쪽 실수래?”

    “그런 것 같아. 근데 돈을 2명 방 밖에 입금을 안 해서 예약하는 쪽에서도 방을 하나만 잡는 줄 알고 나머지 방들을 다 취소한 건가 봐. 손님들 측은 20명 분 숙박료를 2명 분으로 잘못 알았고 호텔 측은 이에 대해 재확인 없이 방을 취소했으니 쌍방과실 같아.”

    입금할 금액에서 0 하나를 빼고 하는 바람에 20명이 2명으로 바뀌었나 보다.

    손님들은 자신들의 실수도 있음을 알고는 더 이상 항의를 하지 않았다.

    직원들 역시도 메뉴얼대로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뭐, 호텔에서는 18인 어치 돈을 더 내면 전원의 방을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 해 준다는 모양이네.”

    “나쁘지 않은 대처로군.”

    “근데 저쪽은 추가 입금이 곤란하다고 하는 모양이야. 신고한 예산이 딱 제한되어 있고 이미 그만큼만 결제를 받았다고. 공무원들인가?”

    그래서 그런가? 데스크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난데없는 행정 오류에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현관문을 나서려던 발걸음을 딱 멈췄다.

    “먼저들 가고 있어.”

    동료들은 의아한 기색, 하지만 나는 팀에서 떨어져 혼자 물러났다.

    윤솔과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 엄재영 감독이 밖으로 나가 리무진에 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데스크로 향했다.

    숙소 예약 문제로 인해 곤란한 듯한 사람들.

    나는 선글라스와 마스크 너머로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에티오피아 국가대표 선수단.

    세계랭킹 3위 페이사 릴레사가 이끄는 팀 ‘강뉴(Kangnew)’의 멤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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