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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22화 (722/1,000)
  • 722화 흥행 대박 (2)

    나는 차에서 내려 바로 부스로 향했다.

    너무 주목받을까 봐 일부러 차를 바꿔서 왔는데 그러길 잘한 듯싶다.

    “싸구려 똥차들이라 그런가 잘 부서지네. 뭐, 보험처리 하든가.”

    유창이 눈앞의 문신 덩치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앞에 주차된 차량들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퍽퍽 차면서.

    나는 부스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구, 고 백작, 아니 고 후작님. 제가 높으신 분을 몰라 뵙고 결례를…….”

    “사정 좀 봐주세요 제발! 저희 이틀 전부터 대기했어요! 갸아악!”

    “이번 부동산 불하받으려고 집도 주식도 다 팔아 버렸다구요! 제발 기회를!”

    사장님, 사모님처럼 생긴 아저씨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규제를 풀어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얄짤 없다.

    “안 돼, 안 풀어 줘, 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이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던 잡상인들이 전부 치워져 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게임에 관심 있는 이들이 부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자,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안내원들이 사람들을 인솔해 내게로 온다.

    사실 이것이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2차 대격변의 영웅 ‘고인물’ 사인회>

    나는 이번 대격변을 막아 낸 일로 일약 월드스타덤에 올랐다.

    유튜뷰 채널의 모든 동영상이 조회수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고 특히나 2차 대격변 때의 몇몇 핫클립들은 내가 지금까지 올렸던 모든 동영상들의 조회수를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래서일까? 내 사인회가 인터넷에 예고되자 해운대의 모래사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몰아치는 파도의 물방울보다도 많은 군중들이 나 하나를 보기 위해 해운대의 모래사장에 긴 인평선(人平線)을 긋고 있었다.

    물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이 세계를 구해 줘서 고마워 고인물!”

    “我想和你握手.”

    “Please hug me! My love!”

    “Aimez-vous les croissants?”

    “Хотите чаю?”

    “Möchtest du ein Bier?”

    “आई लव यू”

    “あなたが欲しい.”

    “Lumilipad ako upang makita ka.”

    “Allah Akbar!”

    .

    .

    나는 부서져 나갈 것 같은 손목을 보호대로 꽁꽁 싸맨 채 계속해서 사인과 악수를 병행해야 했다.

    한국, 중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태국, 아랍, 일본 등등…….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와 나와 포옹하고 사진을 찍고 악수를 나눈다.

    그때.

    “와아 꼬인물! 나 브라질에서 왔다! 너무 좋아!”

    엄청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남미 처자들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터질 듯한 수영복에 이국미 넘치는 얼굴. 오우야,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아, 고맙습니다.”

    포옹을 원하는 듯해 어쩔 수 없이 두 팔을 벌리자.

    “악수. 악수.”

    남미 처자들은 갑자기 예의바르게 내 앞 1미터 정도 거리에 멈춰 섰고 정중하게 손을 뻗어 악수를 했다.

    그러더니.

    “와아! 드레이크! 너무 좋아! 사랑해!”

    내 옆에 서 있는 드레이크에게 가서 격한 포옹과 더 격한 볼 키스를 한다.

    ‘왜 나는 악수고 쟤는 포옹이야?’

    내가 이 부당함에 항의하려는 순간.

    “와아 꼬인물! 나 브라질에서 왔다! 너무 좋아!”

    엄청난 체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남미 형들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근육으로 인해 터질 듯한 셔츠에 개무섭게 생긴 얼굴. 오우야,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살포시 눈을 깔고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포옹. 포옹.”

    남미 형들은 나를 확 끌어안고는 격정적으로 팬심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아, 저기. 가슴털 때문에 볼이 따끔거립니다만.”

    “문화. 문화.”

    “아, 이게 인사 문화인가요? 아까 같은 나라에서 오신 누님들은 안 그러시던데.”

    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드레이크가 나를 돌아보며 씩 웃는다.

    “남미에는 내 이상형들이 많군.”

    “이상형은 모르겠고 이상한 형들이 많긴 하네.”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사인지로 고개를 숙였다.

    백사장 수평선만큼이나 길게 늘어진 줄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 밤 내내 사인회가 계속될 느낌이다.

    *       *       *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사인회는 끝났다.

    나는 녹초가 된 상태로 호텔로 돌아와 누웠다.

    옆방에 있을 드레이크도, 그 옆옆 방에 있을 윤솔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게임 속 상황을 살폈다.

    계정 정보를 연동하자 이내 나에게 적용될 패치 내용이 보인다.

    이전에 부스를 점령하고 있던 사장님 사모님들이 그야말로 꿈에 그릴 만한 이상적인 목록이 딱 뜬다.

    <이어진(고인물)>

    ‘제 1순위 불하 대상자’

    -유토러스 A지구 창고지대-1순위

    -그레이 시티 빈민가 A지구-1순위

    -지하도시 데린쿠유 대장간 A지구-1순위

    -항구도시 아크레 부유섬 등대 조망권 A지구-1순위

    -남부 유적지대 선인장 마을 케투스 핵심수원지대 A지구-1순위

    -해저도시 아틀란둠 왕성 중심가 A지구-1순위

    .

    .

    ※산정요인: 2차 대격변 때의 기여도, 재난 피해 수복 기여도, 해당 공간 점유율, 해당 공간 발견 순위, 소지금.

    진짜 알짜배기 핵심 노른자위 땅들.

    아마도 나는 여러 면에서 이 세계를 구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상당한 면적의 토지를 불하받게 될 것 같았다.

    일단은 후작이라는 작위를 얻었으니 이에 대한 영지 개념으로 유토러스 A지구의 드넓은 창고지대를 제일 먼저 불하받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현재 내 민첩 아이템들이 잔뜩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유토러스 A지구라면 2차 대격변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량이 그리 많지 않은 알짜배기 노른자위 땅이지.”

    아마 뎀 세계관의 귀족들이 가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때문에 상당한 양의 가산세를 내야 하겠지만 그 정도야 뭐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그레이 시티의 빈민가 땅의 일부도 나한테 떨어질 수 있겠군.”

    그 외에도 데린쿠유나 아크레, 도르트스마일, 남부 유적지대 케투스, 해저도시 아틀란둠 등등 다양한 마을들의 땅이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최초 발견자 기록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한동안 부동산 재산목록을 검토하고 있을 때.

    “푸하!”

    샤워실에서 누군가가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나온다.

    엄재영 감독이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왜 인마. 호텔비도 아낄 겸 같이 쓰면 좋잖아. 간만에 오붓하고.”

    “아, 물 떨어지잖아요. 다 닦고 나와요. 뭔 포세이돈도 아니고.”

    “차식- 예민하긴.”

    엄재영 감독은 수건 한 장으로 하반신만 가린 채 냉장고로 가서 맥주캔을 땄다.

    통유리창 너머 밤에 젖은 바다를 바라보던 엄재영 감독은 이내 나에게 물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런 걸 계획할 수 있는 거냐?”

    “뭐요. 2차 대격변?”

    “그냥 전부 다. 방주부터 벌과 개미 여왕에 부동산까지.”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죠.”

    “……?”

    내 말에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라고 묻는 표정.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뎀의 접속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뎀을 플레이하지 않았던 이들, 그리고 플레이 하다가 접었던 이들이 대규모로 유입됨에 따라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양반은 못 되네.”

    나는 엄재영 감독을 향해 전화가 걸려온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그것은 김한선 이사가 건 전화였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잔뜩 흥분한 김한선 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진 씨, 진짜 대박입니다!]

    “어어? 한선이냐? 뭔데 그래?”

    [앗! 재영 형님도 같이 계십니까? 잘됐네요, 한꺼번에 말씀드리죠!]

    김한선 이사는 들뜬 기분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다음과 같았다.

    내가 미리 알려 준 2차 대격변 타이밍에 맞춰 지금껏 개발해 온 신모델 캡슐을 내놓았다.

    ‘DDN’ 모델.

    차규엽이 밀어붙였던 발열 심한 구버젼 모델 ‘LINKED3021’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그야말로 장시간 게임 플레이에 최적화된 신규 모델이었다.

    거의 저격성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캡슐은 2차 대격변과 접속자 수 폭증 현상에 맞물려 기록적인 성과를 보였다.

    물론 구매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R의크레파스: 1

    -마크오백: 써봤는데 꽤나 추천할만함ㅇㅇ

    -형택이형: 레드문의 실수...이렇게 가성비 좋은걸...

    -음라이언: 하앍

    -베르디쉬: ㅇㅇ쓸만함

    -김치: ♥

    -시아: 저번 모델이 너무 구렸는데 이번건 만족ㅋㅋㅋ

    -Tians: 이번거는 ㅇㅈㅇㅈ

    -검은토끼: 신랑이 좋아하네요ㅎㅎㅎ제것도 이걸로 바꿀까봐요~

    -SoulB: 저희 할머니도 좋아하세요ㅋㅋㅋ

    -제라드: 플레이하다 잠들어도 침대처럼 편안함 굿굿~~!!

    .

    .

    첫 출시작 완판은 물론이요 수없이 빗발치는 추가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김한선 이사.

    이걸로 그의 입지는 크게 상승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감사인사를 무수히 들으며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엄재영 감독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야, 한선이 그놈한테 고맙다는 말 듣기 엄청 어려운데. 천하의 레드문 차기 사장에게 빚 한번 확실하게 지워 놨구나 너. 진짜 대박은 대박이다.”

    “대박이요? 이게요?”

    “뭐? 뭐 또 있어?”

    내 반응을 본 엄재영 감독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대박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정말 진짜배기는 따로…….

    쾅!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내가 할 말을 대신 해 주는 존재가 나타났다.

    “형님! 보고 들으셨습니까!? 대박입니다!”

    잔뜩 흥분한 유창이 내 방문을 부술 듯 열어젖히며 들어온 것이다.

    손에 내 산하의 캡슐방 관련 서류들을 잔뜩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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