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21화 (721/1,000)
  • 721화 흥행 대박 (1)

    부산. 그중에서도 해운대.

    각종 게임 축제가 열리곤 하는 콘텐츠 중심지이다.

    뎀 관련 행사 중에서도 가장 큰 행사인 뎀스타 게임축제.

    한국 뎀 산업협회가 주최하고 뎀스타 조직위원회, 부산정보산업육성원이 주관하는 한국 최대의 페스티벌이다.

    뎀스타의 꽃은 바로 거대한 증강현실 경기장. 드넓은 해수욕장에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뎀 속 월드맵과 그곳에서 구현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 각각의 캐릭터이다.

    보통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재현하는 데 많이 쓰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축제이니만큼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 가상현실의 모든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증강현실이니만큼 방문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그리고 단순히 이 경기장만이 다가 아니었다.

    참여부스. 수많은 업체들이 각각 부스를 마련해 자신들의 콘텐츠와 아이템을 홍보하는 자리 또한 흥미로운 소스다.

    원래대로라면 다양한 게임업체들이 모여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이번 축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 하나의 게임으로만 이루어지는 축제이기에 각 부스들 역시 모두 뎀에 관련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와! 해변에서 바닷물에 발 담그고 게임을 할 수 있다니.”

    “그러게, 진짜 게임이 이 세상으로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증강현실도 이제 무시 못 하겠네.”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동시에 해변에 설치된 부스로 와서 게임 관련 콘텐츠를 즐긴다.

    가장 많은 인기가 몰리는 곳은 역시 2차 대격변 이후의 변화들을 미리 체감할 수 있게 만들어진 부스들이었다.

    <1. 식물, 바위, 불, 언데드 타입 몬스터들의 상향>

    한 부스에서는 2차 대격변 이후 새롭게 생겨난 몬스터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새롭게 추가된 식물 계열 몬스터들 중 가장 강력한 생명력과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 보이는 ‘바인 드래곤(Vine dragon)’입니다. 용의 뼈에 덩굴식물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는 모양새가 기괴하죠? 벌써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이 몬스터의 실체는 용의 뼈가 아니라 그것을 휘감아 조종하는 이 넝쿨식물 군체입니다. 원래 한낱 잡초에 불과했던 이 식물은 도처에 깔린 벌과 개미들의 시체를 양분삼아 무섭게 자라났고 이내 숲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고대룡의 뼈를 자신들의 숙주로 삼을 정도로 과감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게……]

    [수많은 벌과 개미들의 시체는 땅에 녹아들어 토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죠. 이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존재는 바로 지하에 사는 충왕종 몬스터인 ‘샌드웜’으로 단순히 지력(地力)에 의한 파워업뿐만이 아니라 양질의 흙을 먹고 배설하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거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체내의 방어력 또한 크게 상승했고 원래 거대했던 덩치가 더욱 더 거대해졌으며 심지어 몸의 외골격을 단단한 광물로 코팅한 변종, 아종, 상위종들의 다양한 출현이 예상됩……]

    [온 세상을 전부 뒤덮었던 2차 대격변의 벌과 개미들도 시간이 부족해 몇 군데 함락시키지 못했던 곳이 존재했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동대륙 극지에 있는 ‘킬라우에아’ 화산입니다. 이 뜨거운 용암지대의 한복판에 살고 있었던 ‘용암거스름 킹크랩’은 거대한 덩치와 단단한 갑옷, 전신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길 때문에 벌레들의 습격에서도 비교적 오랜 시간을 저항할 수 있었는데 수많은 벌과 개미들을 장작 삼아 불태우는 동안 더욱 더 노련해진 집게발로 유저들을 기다릴 것입니……]

    [2차 대격변의 대홍수에서 살아남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들의 원념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배회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간 어둠 속에 몸을 묻은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검은 군주들이 몸을 일으켰고 이 갈 곳 없는 가엾은 난민들을 자신의 군사로, 혹은 먹잇감으로 삼아 세력을 크게 확장했지요. 이렇게 망령들을 식사거리로 삼아 덩치를 불린 어둠의 군주들 중 가장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보인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거인국의 ‘아몬 백작’, 그는 거인국의 멸망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고대의 사악한 존재이며 1차 대격변의 주인공이었던 식인황제조차 자신의 수하로 부릴 정도로 강력한 준 악마성좌……]

    바로 그때.

    “아이 씨! 누가 그딴 소식 듣고 싶대!?”

    몬스터 홀로그램 영상을 손으로 확 흩어 버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뚱뚱한 체구에 선글라스, 목에는 두툼한 금목걸이를 걸고 있는 남자가 슬리퍼만 신고 부스 안으로 난입했다.

    그의 어깨에는 완장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뎀 부동산 유토러스 A지구 비대위원장>

    그는 손을 휘저어 그 뒤의 홀로그램들도 싹 치워 버렸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뭐 중요하다고! 그냥 애들 게임 얘기일 뿐이잖아! 진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부터 빨리빨리 설명하란 말야!”

    이윽고 살아남은 내용은 하나뿐.

    <4. 플레이어들에게 부동산 분양 활성화>

    자칭 비대위원장이라는 그 남자는 콧김을 쒹쒹 뿜어내며 안내원들을 다그쳤다.

    “이거! 이거나 좀 설명해! 그깟 몬스터니 탈것들이니가 뭐 중요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수군거렸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보다 못한 십대 관람객 한 명이 항의했다.

    “아저씨, 여기 게임 업데이트 소식 듣는 자리거든요? 다들 새롭게 패치된 내용이 궁금해서 모인 건데 혼자서 자기 맘대로 정보를 홱홱 넘기면 안 되죠.”

    그러자 비대위원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딜 이놈 새끼가 어른 하시는 일에 눈을 똑바로 뜨고! 어!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해야지 이런 데까지 와서 게임 소식 찾아보는 게 자랑이냐!? 어? 지금 그게 잘하는 짓이야!?”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놈아! 게임 얘기가 중요한 게 아냐 지금! 그런 건 딴 데 가서 들으라고!”

    비대위원장의 윽박지름에 관람객들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안내원들은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2차 대격변으로 인해 NPC 인구가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각종 건물이나 부지 등의 부동산을 플레이어들에게도 불하하는 제도가 생겨……]

    게임 속 부동산 관련 설명이 시작되자 이내 관람객들이 확 늘어난다.

    신기하게도 이 설명에 몰려드는 관람객들은 일반적인 관람객들과는 복장이 조금 다르다.

    커다란 금목걸이나 진주 목걸이를 했거나 무스탕에 짙은 화장, 혹은 쫄쫄이 나시에 문신을 잔뜩 한 덩치들이 하, 허, 호 글자가 들어간 번호판을 달고 있는 외제차를 끌고 온다.

    “아, 유토러스 A지구가 가장 핫하니 거기 부지부터 청약 넣어야지.”

    “거 이번에 그레이 시티 판자촌 달동네도 싹 다 재개발 들어간다던데? 땅값 무쟈게 오르겠구만.”

    “거기 오래 산 사람 있어? 영구임대자들 있으면 입주권 좀 팔아 봐! 돈을 얼마든지 쳐 줄게!”

    “뭔 가상현실 땅값이 현실 강남 땅값보다 비싸네. 참 나~ 그래도 일단 줄은 서야지.”

    “박사장! 거 돈 좀 풀어서 랭커들 몇 명 고용해 봐. 길드전이나 영지전 막아야지. 내 땅 지키려면.”

    갑자기 도떼기시장, 떳다방처럼 변한 게임 부스의 분위기에 안내원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위화감을 느낀 관람객들도 멀찍이 서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투자를 목적으로 온 이들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린다.

    문신 덩치들이 벽을 만들고 사장님 사모님들이 모여들어 담배연기를 뿜어내면서 열띤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뭐? 신규 몬스터 정보가 궁금하지 않느냐고? 에헤이~ 그런 애들 하는 게임에는 관심 없지.”

    “그래도 그게 또 돈이 된단 말이야? 참 신기해~”

    “아무튼, 여기 지도부터 좀 봐봐. 우선권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섭외해서 불하 먼저 받고 재개발지구 한번 깔끔하게 빼 먹어 보자고.”

    “아휴~ 젊은 애들 유동인구 많은 곳이 최고지. 알음알음 월세 올려도 아무 말도 못한다니까?”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땅에 금을 긋고 평당 가격을 주고받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바로 그때.

    부르릉-

    차 한 대가 부스 앞에 섰다.

    허름한 SUV차량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규 몬스터 추가랑 힐러 상향 패치 소식 들으러 왔는데 차 좀 빼 주세요~”

    부스 앞에 줄줄이 불법주차된 외제차들 때문에 접근이 안 되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장님 사모님들은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다.

    “어딜 거렁뱅이 같은 게 여길 들어와!”

    “제깟 게 와 봐야 뭐 할 수 있는 게 있겠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게임 얘기나 하려고!”

    “얘들아, 적당히 타일러서 돌려보내라. 부스 사람 꽉 찼다.”

    아무도 차를 빼 주지 않는다.

    심지어 부스 안 자리를 내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빵!

    운전자가 클락션을 울려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어이, 어르신들! 차 좀 빼시라고요. 여기 전세 냈어요?”

    그들은 ‘전세’라는 단어에 쫑긋 귀를 움직였다가 금세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좋은 말로 해도 듣지를 않네.”

    운전자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자 하나 움직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이번 투기 건에 수많은 부동산 큰손을 움직인 남자, 아까의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좋은 말? 거 젊은놈이 으른들 계시는데 말 한번 건방지게 하네.”

    “아조시가 여기 사람들 대표예요? 차 좀 빼 달라…….”

    “어이 학생. 너 여기 있는 분들이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고요. 게이머 아니면 빠지세요.”

    “참 나…… 야 막아.”

    참다못한 비대위원장은 강남 전통의 형벌, ‘야 막아’를 시전했다.

    그러자 곧 몇 대의 외제차들이 운전자의 차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앞뒤양옆 모두 1cm만 남기고 완전 밀착 주차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

    심지어 모두 서민, 아니 졸부조차 꿈도 못 꾸는 액수의 외제차들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차를 치워 주길 기다리는 것뿐.

    “넌 거기 계속 있어. 발표 끝날 때까지.”

    그러자.

    덜컹-

    선루프가 열렸다.

    찰칵-

    동시에 여기 모인 사장님 사모님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 한 장 박혔다.

    “……?”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콰쾅!

    차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가 싶더니 주위 가로막고 있는 외제차들을 전부 뭉개 버린다.

    “으아아악! 저 미친놈 뭐야!?”

    “이 차가 어떤 차인 줄 알아!? 네놈이 평생 벌어도 범퍼 하나 못 사는 차야!”

    “아이고! 내 차 다 부숴졌네! 경찰 불러!”

    아수라장이 된 부스 앞.

    푸슉-

    이윽고, 휴대용 캡슐을 쓴 남자 하나가 자동차 조수석에서 내렸다.

    “아, 스크루지 후작님? 이번에 부동산 불하 계획 때문에 바쁘시죠?”

    캡슐을 조작하는 모양새로 보아 아무래도 게임 속 인물에게 보낼 음성 메시지를 우편 시스템으로 예약하고 있는 모양.

    사장님 사모님들이 뭔 상황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남자는 그들의 면면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보낸 사진에 찍힌 사람들한테는 땅 내주지 마세요. 단 한 평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 아니, 이번에 2차 대격변을 막아 낸 공로로 대귀족 반열인 후작으로 진급한 남자.

    고인물.

    바로 나다.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투기꾼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비켜. 여기는 게임 하는 사람들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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