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20화 (720/1,000)
  • 720화 무엇이 달라졌는가 (5)

    <1. 식물, 바위, 불, 언데드 타입 몬스터들의 상향>

    <2. 힐러 클래스 상향>

    <3. 일일 퀘스트 종류 다양화 및 보상 대폭 상향>

    <4. 플레이어들에게 부동산 분양 활성화>

    <5. 길드전, 공성전 기능 활성화>

    <6. 종족별 언어 해금>

    커다란 글자들이 홀의 벽면 스크린에 떴다.

    2차 대격변의 핵심들이 딱딱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그 밑으로는 동영상과 사진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웅성거리는 좌중 속에서, 남세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에 발생했던 2차 대격변의 원인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웅성거린다.

    사실 이곳에 2차 대격변의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무저갱 속에 있던 벌과 개미의 알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화율이 높아져 개체 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고 그렇게 증가한 벌과 개미들의 무리가 또 다른 무리를 이루고 이루고 해서 결국엔 지상까지 범람하게 된 것이다.

    군집 내의 개체 밀도가 매우 높아지며 빠르게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도중 벌과 개미들은 각종 마법 등에 내성을 지니게 되었고 날개가 길어지고 뒷다리가 짧아지는 등 기동과 전투에 익숙한 신체로 변화했다.

    식욕과 폭력성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증가해 가는 길마다 모든 것을 파괴했고 그 결과값은 곧 바로 세상 모든 종의 멸망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확장팩 아니었을까요?”

    한 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남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표본 집단이 된 플레이어들의 행동 패턴과 접속 시간을 딥러닝으로 분석한 결과 슬슬 게임에 대한 몰입도와 흥미도가 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다소 이르기는 했지만 오차폭은 예상 범위 이내였죠.”

    뉴비들과 올드비들의 간극도 심해지고 있었고 신규 유저들의 발길도 뜸해지던 타이밍이었기에 뎀 유니버스 본사에서도 이번 2차 대격변이 터진 타이밍을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1차 대격변이 지형의 변화를 야기했다면 2차 대격변은 생태계의 변화를 야기했습니다.”

    남세나는 홀로그램을 가리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월드맵.

    그것은 전과는 사뭇 다른 외양을 갖추고 있다.

    츠츠츠츠츠츠츠……

    빠른 속도로 복원되어 가는 대륙은 점차 울창한 녹지로 뒤덮여 가고 있었다.

    남세나는 첫 번째 변화를 설명했다.

    <1. 식물, 바위, 불, 언데드 타입 몬스터들의 상향>

    “벌과 개미들의 시체가 수도 없이 깔리게 되면서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비옥해진 토지와 그로 인해 자라나게 된 식물들이죠.”

    벌과 개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썩으며 토질이 좋아졌고 이로 인해 식물들이 큰 폭으로 생장했다.

    따라서 바위타입, 땅 타입 몬스터들이 상향을 먹었고 식물 타입 몬스터들의 개체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벌과 개미들의 시체는 썩어 흙이 되기도 하지만 바짝 말라 장작이 되기도 했죠. 혹은 화석이 되고 석유가 되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 타입 몬스터들 역시도 상당히 파워업 한 겁니다. 또 벌레들의 대홍수에 휩쓸려 죽은 플레이어들의 원념이 구천을 떠돌고 있기 때문에 언데드들의 세력 역시도 크게 강성해졌습니다.”

    그리하여 2차 대격변을 버텨낸 몇몇 몬스터 종족이 괴랄하게 강해져 버렸다.

    신규 몬스터들이 새로 생겨났으며 원래 있던 몬스터들의 아종이나 변종, 상위종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숲의 깊숙한 곳에는 무시무시한 식물들이 또아리를 틀었고 불타는 지대나 음습한 곳에는 어김없이 강력한 불을 토해 내는 마수들이나 지독한 사기를 뿜어내는 시체들이 자리 잡았다.

    전체적으로 땅이 매우 영양가 있게 변했기 때문에 땅에 두 발 대고 사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강하고 사나워지기도 했다.

    그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이윽고, 남세나는 다음 변화를 설명했다.

    <2. 힐러 클래스 상향>

    “당연한 결과입니다. 벌레들이 창궐함에 따라 역병이 퍼졌고 이로 인해 신관들의 중요성이 증가했죠. 세계관의 모든 NPC들이 힐러 계열의 성직자들을 더욱 더 존귀하게 대접해 줌에 따라 스탯, 특성, 아이템, 거래, 퀘스트 등등에서 보다 더욱 혜택을 얻게 될 겁니다.”

    이것은 아마도 플레이어들의 직업 선택에 꽤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원래도 귀족 힐러라고 불리던 힐러 클래스가 이로 인해 더욱 더 좋은 취급을 받게 될지, 아니면 오히려 흔해지는 바람에 취급이 안 좋아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신성력과 아이템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 종족이 이번 기회에 꽤나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는 플레이어 인구가 오크나 리자드맨에게만 편중되는 현상을 해결할 좋은 열쇠이기도 했다.

    이내 남세나의 설명은 세 번째 변화로 넘어간다.

    <3. 일일 퀘스트 종류 다양화 및 보상 대폭 상향>

    “이 역시도 당연한 결과이죠. 벌과 개미로 인한 NPC 측의 피해는 막심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하고 쑥대밭이 된 논과 밭을 다시 일궈야 하죠. 당연히 자잘자잘한 일일 퀘스트들이 많아질 것이고 일당도 후해질 것입니다.”

    무너진 신전의 기둥을 다시 세우고 황폐화된 농지를 재건하며 붕괴된 요새의 첨탑과 다리들을 다시 축조하는 일.

    이 모든 것들은 이 세계를 사랑하는 플레이어들의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설명 역시도 이와 꽤나 관련이 있었다.

    <4. 플레이어들에게 부동산 분양 활성화>

    “NPC들이 대거 사라진 이후 빈 건물이나 토지들이 많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GM 측에서는 NPC들과 협의하여 이 장소들을 플레이어들에게 불하할 계획입니다. 형평성 논란이 일지 않게끔 여러 가지 조건들을 검토할 예정이며 이는 곧 다음 변화와도 연관성을 가집니다.”

    부동산을 불하함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그 장소를 얼마나 오랫동안 점유하고 있었는지다.

    서버에 입력된 플레이어의 이동 궤적, NPC들의 평판, 해당 장소에서 보냈던 플레이 시간과 애착도, 피해 수복 공헌도 등을 계산하여 우선순위를 메기며 의외로 돈은 가장 적게 고려되는 요인이었다.

    홀에 모인 모든 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 변화를 눈여겨본다.

    다들 서버가 열리자마자 재빨리 접속해 꿀 부동산을 선점유할 생각인 모양.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곧이어 다섯 번째 변화가 제시된다.

    <5. 길드전, 공성전 기능 활성화>

    “유저들이 공간을 점유할 수 있게 되면 벌어지게 될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던 길드전, 공성전과는 달리 시스템적인 지원이 이루어져 보다 체계적인 대규모 전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공격대를 이루어 백병전을 벌일 수도 있고 야음을 틈타 기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식 선전포고가 없는 경우라면 카르마 수치를 감당할 배짱이 있어야겠죠?”

    그 말에 꿀 부동산을 선점유하고 알박기 할 생각에 두근두근하던 몇몇 업자들의 표정이 확 안 좋아진다.

    기껏 좋은 자리를 불하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으면 빼앗길 수밖에 없다.

    결국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이번 패치로 인해 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뭐,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묘하게 달관한 것 같은 남세나의 말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은 듯한 눈치다.

    남세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 변화를 설명할 차례다.

    <6. 종족별 언어 해금>

    “이 점이 오늘 설명드릴 가장 핵심적인 변화입니다.”

    오크와 리자드맨, 인간을 가로막고 있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북대륙에 우뚝 섰던 바벨탑이 무너지고 난 결과라고 하기에는 다소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여섯 번째 변화를 듣게 된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뭐야? 이제 종족별로 대화가 통해?”

    “서로 적대 진영인 건 여전한 모양인데?”

    “흐음, 그냥 대화만 가능해진 건가.”

    “그런데 이게 왜 제일 큰 변화라는 거야?”

    대격변을 거치며 유대감이 생기게 된 세 종족.

    다소 특이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게 메인 변화라고 할 만큼 대단한 일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언어가 통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유저들 간의 친목이나 화합을 돕기 위한 부차적인 변화로 생각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연코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변화보다도 대단한 변화입니다. 괜히 맨 마지막에 넣은 것이 아니죠.”

    남세나는 마이크에 대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레드문의 젊은 이사 김한선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드디어 플레이어끼리 의사소통이 되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이것은 그냥 편의적인 패치 아닙니까? 2차 대격변으로 인해 세상이 뒤집힌 것에서 파생된 결과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걸요? 대체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겁니까?”

    레드문의 이사가 직접 질문하자 좌중들도 흥미를 보인다.

    “…….”

    질문을 받은 남세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내, 마이크를 자기 입가로 바짝 끌어당겼다.

    지직-

    짧은 노이즈가 정적을 찌른다.

    그 뒤를 이어, 남세나의 건조한 목소리가 쩍 갈라지듯 울렸다.

    “이건 용과 악마가 손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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