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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18화 (718/1,000)
  • 718화 안녕(Hi), 쥬딜로페 (2)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그들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創世記)-

    *       *       *

    황금빛 폭풍이 가라앉고 그 가운데 나와 유다희가 맞잡은 손이 있다.

    그리고 그 손의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것은 작디작은 요정.

    여왕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공주님이다.

    <어린 여왕 ‘쥬딜로페’> -등급: F / 특성: 간택, 갹출

    -서식지: ?

    -크기: 0.1m.

    -멸종위기종의 마지막 여왕.

    여전히 작고 겁이 많다.

    와두두의 마지막 희망 완전부활!

    이것으로 또다시 와두두는 멸종을 면했다.

    원래대로라면 1차 대격변에서 멸종, 2차 대격변에서 최후의 일인마저 사라졌어야 할 비운의 종족이 1차, 2차 대격변을 모두 훌륭하게 이겨 낸 것이다!

    [……호앵?]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쥬딜로페.

    나는 그런 쥬딜로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친구. 미안해.”

    폐부의 저변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오른다.

    게임 속 세계는 이제 나에게 있어 또 다른 현실과도 같은 것, 영영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가족을 만난 기분에 나는 한참 동안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쥬딜로페는 씩 웃으며 내 옷깃을 잡아당긴다.

    [어진어진~]

    어라? 이 녀석, 이제 말을 하잖아?

    아무래도 내 이름 이상의 것을 말하진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꼬옥…

    한번 떨어졌기 때문일까? 쥬딜로페는 조막만한 손으로 내 망토 자락을 잡고는 놓지 않았다.

    나름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이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손을 뻗어 쥬딜로페의 몸을 살며시, 그러나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어진어진~]

    “그래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죽…어.]

    “……?”

    반가움이 점차 가시니 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원망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딱콩!

    녀석은 나를 나뭇가지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신의 일원인 풍뎅이와 파리들도 나를 틱틱 들이받는다.

    […죽…어…어…진.]

    “야야! 그만해!”

    [싫!]

    “앗, 피피피피, 피 단다!”

    뭐지? 예전에 토라짐을 받아 줄 때에 비해 공격력이 강해졌다.

    자칫 즉사로 이어질 수 있는 데미지!

    나는 쥬딜로페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는 동시에 잽싸게 여벌의 심장을 이용해 HP를 채웠다.

    […노…예…이이익!]

    “하하, 요녀석. 팔팔한 것 봐. 힘이 더 세졌구나!”

    그러자 유다희가 나를 힐난했다.

    “어휴, 저질 체력은 여전하네. 바뀐 게 없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는데 봤나 보다.

    나는 포기하고 쥬딜로페를 어깨 위에 얹혔다.

    …딱콩!

    뭐, 아직 포션은 많이 남았으니까.

    “이로써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네.”

    “이마에 흐르는 피나 좀 닦고 얘기하지?”

    나는 그녀들의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소감을 읊조렸다.

    “이로써 모든 것이…….”

    [멸…종…해….]

    “아아앗, 그런 나쁜 말 쓰면 안 돼, 이 녀석아!”

    ‘아무래도 소감은 마음속으로 정리해야겠군.’

    ……뭐, 이로써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종을 멸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벌과 개미의 대홍수, 그리고 2차 대격변의 두 전쟁대군주.

    그들이 사라지고 난 땅에는 새로운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반쯤 파괴된 탑의 최상층부, 무너져 내린 벽 밖으로 북방의 찬바람과 함께 따듯한 햇볕이 들어온다.

    말라붙은 호수에는 다시금 물이 차올랐고 황무지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세상은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친구 쥬딜로페 역시도 무사했고 말이다.

    짹짹짹짹…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소리.

    생존자들 사이에는 인류애가 피어나고 있었다.

    다들 손에 손을 잡고 대홍수의 끝, 세상의 개벽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잠깐.’

    바로 그때.

    ‘……손에 손? 아차!’

    나는 내 손이 지금 누구 손과 맞닿아 있는지를 문득 떠올렸다.

    유다희.

    나는 그녀와 손을 잡고 있었다.

    유다희는 지금 반파된 탑의 벽 너머로 새벽빛이 일렁이는 북방 설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슬며시 손을 놓으려 했지만 유다희가 이미 단단히 손깍지를 낀 상태인지라 섣불리 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고민했다.

    ‘……내 손가락을 모두 잘라야 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유구골 고리 골절, 주상골 골절, 주상월상 인대 파열 등을 셀프로 노려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는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보아야 하겠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말로 체력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이 계획은 보류.

    결국 나는 말로써 내 의지를 전달했다.

    “이거 놓을…….”

    “……노을? 맞아, 노을보다 예쁘네. 시작과 끝은 같다지만 나는 새벽빛이 노을보다 예쁜 것 같아.”

    유다희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아무래도 새벽빛을 받아서 그런가 새벽감성이 충만한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2차 대격변은 확실히 대단한 경험이었겠지.

    다들 감상에 빠져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는 수 없나.’

    별 수 없이, 나는 숨을 참고 끈적한 점액을 내뿜는 동시에 문어의 특성을 발휘하여 유다희의 손깍지에서 빠져나갔다.

    꿀렁- 찌걱찌걱-

    “……으음? 으악! 뭐야 이거! 으 끈적거려! 뭐하는 짓이야, 이 미친놈아!”

    그러자 유다희가 질색팔색을 하며 손을 털어낸다.

    풍경 감상에 누가 되지 않게 몰래 빼려고 했는데 들켜 버렸군.

    “아니, 손을 너무 단단히 쥐고 있길래.”

    “뭐? 어허, 야! 좋아서 잡은 줄 아냐! 분위기 탄 거야 그냥! 이 분위기도 모르는 쉑! 그리고 쥬딜로페가 떨어질까 봐 어쩔 수 없이 잡고 있었던……!”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유다희.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웃어 버렸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이미 그녀의 마음은 타짜의 포커 카드를 통해 들었다.

    내가 웃자 유다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으흠, 큼. 너 좋아서 돌아온 거 아냐. 그냥 키워 놓은 캐릭터가 아깝기도 하고. 아직 못 잡은 몬스터도 많고 쌓아둔 퀘스트들도 많고, 레비아탄 잡고 폭렙한 것도 확인 차…….”

    뭔가 변명을 늘어놓는 유다희다.

    그때.

    [어… 어어……]

    쥬딜로페가 앙증맞은 손바닥을 뻗어 유다희의 옷깃을 잡는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엄마.]

    그러자 발끈하던 유다희가 언제 성을 냈냐는 듯 확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야, 얌마! 엄마는 무슨. 얘는 왜 예전부터 자꾸 나보고 엄마래.”

    하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쥬딜로페는 손을 뻗어 내 옷깃도 잡는다.

    [아… 아아……]

    설마 아빠가 나오려나? 그러면 유다희가 엄마, 내가 아빠니 분위기가 또 이상해지는데…….

    이윽고, 쥬딜로페가 한층 더 발전한 어휘 구사력을 선보인다.

    [……아랫것.]

    왜 나는 아랫것이냐고.

    스슥-

    반대쪽 어깨로 슬며시 사라지는 오즈의 검은 꼬리를 보자 저 말버릇을 누가 가르쳤는지 알 수 있었다.

    “쥬딜로페야, 우리 이제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아랫것.]

    “아니, 많은 일들도 있었고, 이제는 뭐랄까…… 동반자 같은 개념의…….”

    [아랫것.]

    “…….”

    [아랫…것. 노…예. 슬…레…이브…. 따까…리. 꼬부…웅.]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유다희가 그런 나를 보고 빵 터진다.

    나는 깔깔 웃는 유다희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 놓는 걸 보니 나를 마동왕이 아니라 고인물로 대하려는 모양이네.”

    “뭐? 아닌데?”

    “음? 그럼 마동왕으로 대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아닌데?”

    “……그럼 뭘 어쩌겠다는 거야?”

    “으음~”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다희가 내 앞에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반쯤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유다희의 눈에 비친 내 얼굴, 내 눈에 비친 유다희의 얼굴.

    이윽고,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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