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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16화 (716/1,000)

716화 안녕(Bye), 쥬딜로페 (3)

황금빛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방주 안에는 넓고도 광대한 정적이 감돌게 되었다.

엄청난 기세로 솟구쳐 오르던 벌레 기둥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벌레 기둥을 빗자루처럼 쓸어내린다.

파스스스스스……

벌과 개미들이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벌레들은 와두두의 포자에 저항하지 못했다.

면역체계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의 포자, 그리고 가뜩이나 개개인의 면역력이 약한 벌과 개미이기에 놈들은 순식간에 곰팡이에 감염되었고 이내 엄청난 속도로 전염되었던 것이다.

모든 피난민들이 입을 딱 벌렸다.

“벌레들이 바스러져 내린다!”

“오오오오, 벌레들한테만 효과가 있나 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에취! 재채기는 좀 나지만.”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황금빛 포자.

그것은 엄청난 기세로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쏘아졌고 그 반동으로 인해 방주 바깥으로 뿜어져 나가 다시금 위로 솟구쳐 올랐다.

대지에 반사되어 하늘을 뒤덮을 듯 퍼져나가는 포자의 눈.

방주 안의 거대한 벌레 기둥을 시작으로 방주 주변의 모든 벌레들이 와두두 포자에 의해 힘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증식이 멎은 것은 물론이요 간혹 전염이 덜 되어 움직이는 개체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이내 생존자 유저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2차 대격변의 두 전쟁대군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돔과 고모라는 멍한 표정으로 물러난다.

멸종의 설움을 이해한 것일까?

지금껏 벌과 개미들이 당해 온 핍박 이전에, 모든 종족의 위에 군림하기도 전에, 수많은 멸종의 희생자들이 느꼈을 감정에 조금이라도 공감한 것일까?

[오오……이것은, 갑자기 마음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이 미증유의 설움은 대체.]

[그런가. 모든 종족이 멸망하고 혼자 남았는가. 지금껏 내 손에 의해 사라진 종족들처럼. 그리고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

와두두, 이미 멸종한 종의 마지막 개체가 만들어 낸 현상.

펑펑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함박눈은 그런 두 여왕을 따듯하게 보듬어 안는다.

“쳐, 쳐야 하는 거 아냐?”

“막타 말야?”

“누가 톡 치면 쓰러질 것 같은데?”

남은 생존자들이 웅성거린다.

앞에 고정 S+급 몬스터들이 있다.

누구든 저것을 처치하는 자들은 적지 않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무서움을 알기에 더더욱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인 것도 있었지만.

피난민들 사이에서 몇몇 이들이 눈빛을 바꿨다.

그들은 닳아빠진 무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그때.

“멈추세요.”

아키사다가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했다.

“……가만히 지켜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왕처럼 고고하고 위압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유 모를 처연함을 담고 있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나섰던 생존자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몇 초쯤 뒤였다.

“뭐, 뭔 소리야! 뭘 지켜봐! 지금이야! 지금 죽여야 한다고!”

“그래! 저 녀석들이 발버둥 치기 전에 얼른 떨어트려야 해!”

“확실히 해야지! 불 질러! 저대로 불을 지르자!”

“벌레 새끼들은 하나라도 남기면 안 돼! 번식력이 뛰어나서…….”

멸종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은 금세 송곳니를 드러냈다.

종(種)이란. 인간이란.

하지만.

“너프가 걸리지 않아요.”

이어지는 아키사다의 말에 모두는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보스 몬스터의 HP는 0이고 사망 확정 상태라는 이야기죠.”

아직까지도 차마 무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흘낏거리는 유저들, 아키사다는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승자와 패자는 갈렸어요.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세요. 구원자, 이 세계의 영웅을 향한 예의를 다해 주십시오.”

아키사다는 탑의 최상층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어떤 유저도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철컥! …철컥!

여기저기서 병장기들을 떨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서야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이, 게임 내 앱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근황을 보고하는 이, 울고 웃고 기뻐하는 이들.

그러나 그들의 신경은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에 쏠려 있었다.

뎀의 역사, 세계관의 한 스토리를 담당하는 일원으로서 가지는 경외감을 표하는 것이다.

결국.

아키사다의 말대로 소돔과 고모라는 꼿꼿하게 선 채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뒤로 넘어가 방주의 아래로 떨어졌을 뿐이다.

키이이이잉-

그 높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의 방주.

그 아래로 추락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몸은 마치 별똥별처럼 뜨겁게 불타오른다.

천천히 바스러져 가는 중장갑의 파편들이 스타 더스트처럼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혜성이 된 위대한 두 전쟁대군주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닳아 없어져 가며 지상으로 낙하한다.

그리고 이내, 그녀들이 지상에 닿았을 때는 진동이나 구덩이 같은 것 따위는 없었다.

…….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한 대지 위에는 눈이 약간 녹은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때쯤 해서.

-띠링!

<……2차 대격변의 두 전쟁대군주 위치 파악 불가능>

<……생체 반응 미확인>

<최종 레이드 종료>

<2차 대격변이 막을 내립니다>

확장팩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전 세계에 울려퍼졌다.

<멸종위기지수>

(Endangered index)

인    간    99.99% (1급) (위험)

리자드맨 99.99% (1급) (위험)

오    크    99.99% (1급) (위험)

전멸의 끝자락에서 울려퍼진 승전보.

그것은 이내 방주를 넘어 온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우-와아아아아아!

하늘의 먹구름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폭발했다.

전 세계 모든 게임 커뮤니티가 트래픽 폭주로 인해 죄다 터져 버렸고 메이저 언론사들 역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모든 이들이 영웅의 등장에 열광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책임자이자 공로자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디야! 어디 계셔!?”

“고인물? 무조건 인터뷰 따 와!”

“이 시대의 영웅이다!”

“아아, 고인물 씨와 같은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니. 영광이야.”

“고인물 씨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

“후련한 표정? 기쁜 표정? 아무렴! 새로운 월드스타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나를 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의 핵심, 뜨거운 감자.

정작 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여전히 방주의 최상층부에 서 있었다.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아니, 밝을 수 없었다.

“…….”

나는 쥬딜로페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간 흔적을 돌아보았다.

황폐해진 땅. 그 위를 범람했던 대홍수의 흔적은 간 곳이 없다.

햇살이 내리는 대지 위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얼마 전까지 온 세상의 생명체들을 모조리 멸종시킬 기세로 몰아쳤던 재앙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변화였다.

문득, 먼 옛날 만마전 지하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절대적인 전투력의 충왕종 몬스터였던 데스웜은 작고 나약한 쥬딜로페의 앞에서 멈칫했었다.

데스웜의 예지 특성이 설마 이 결과를 예지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때.

[……인간. 너무 심려치 마라.]

어깨 위에서 나직한 위로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오즈가 무표정한 얼굴로 저 먼 지평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죽음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 그리고 또한 공평한 것. 대수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영웅은 죽음에 초연해져야 한다. 나 역시도 수많은 죽음과 대수로움을 딛고서야 겨우 흑비늘 종족의 지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니.]

“……초연해지라고?”

[그렇다. 어차피 인간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나. 남의 희생을 토대로 내가 더 위로 올라간다는 것에.]

오즈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건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하는 일.

파르테논 신전에서 레비아탄과 흰 용의 습격을 받았을 때도, 싸움 나락에서 살아남았을 때도, 항아리 게임에서 우승했을 때도. 방주를 설계할 때도.

아니, 생각해 보면 게임의, 인생의 모든 플레이가 늘 그랬다.

내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밑에 있었던 수많은 존재들 덕분이다.

그것이 몬스터가 되었든 플레이어가 되었든 시청자가 되었든, 나는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쭉쭉 위로 승승장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남의 희생과 헌신을 딛고 위로 올라왔던 유구한 세월을 회상하자, 자연스럽게 한 명의 얼굴이 또다시 연상된다.

쥬딜로페.

내 플레이의 시작과 끝에 항상 함께했던 녀석.

로그인을 할 때에도 로그아웃을 할 때에도 떨어져 본 적 없었는데.

그러고 보면 녀석의 삶도 항상 나와 함께였다.

알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부터 포구 속에 들어갔을 때까지, 녀석의 처음과 마지막에도 늘 내가 있었다.

“……그 녀석, 겁 엄청 많은데.”

그 작고 겁 많은데다가 까탈스럽기까지 한 녀석이 혼자 그렇게 길고 뜨겁고 무서운 여행길을, 그것도 홀로 떠나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래서는 쥬딜로페의 유모를 볼 낯이 없다.

나는 게임 속 친구들을 떠나보내기만 하는구나.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사이가 뜨거워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니다. 시간을 돌려, 다시 한번 회귀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로 쥬딜로페를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기필코 다른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끝, 엎질러진 기름을 다시 병 속으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아득한 심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심경으로 저 아래 피난민들의 열렬한 환호와 칭송을 그저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저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회귀 전, 2차 대격변의 전쟁영웅 튜더의 인터뷰 소감에 깊이 공감하면서.

…….

바로 그때.

“……언제든 돌아오라고?”

환호와 칭송 사이로 시니컬한 목소리 하나가 파고든다.

내가 고개를 들자 시야 구석에서 한 사람이 확 튀어나왔다.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아주 낯익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 자는 피난민들 중 하나인 검은 후드였다.

방주의 최상층부, 파괴된 흰 용의 여의주 파편들을 걷으며 튀어나온 검은 후드는 이내 나를 향해 펄쩍 뛰어내리며 외쳤다.

“정상이 너무 높잖아 이 자식아!”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반말.

이윽고 검은 후드가 확 젖혀지며 그 안의 익숙한 맨얼굴이 드러난다.

“……!”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유다희.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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