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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15화 (715/1,000)
  • 715화 안녕(Bye), 쥬딜로페 (2)

    “……발사 5초 전!”

    아키사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몇 겹의 벽 뒤에서 들려오는 듯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황급히 손을 휘저어 포구 속의 어둠을 헤집었다.

    연신 나오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윤솔과 드레이크는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그 순간.

    …반짝!

    눈부신 황금빛이 포구 속의 어둠을 밝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빛줄기.

    그것은 바로 쥬딜로페가 내뿜고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빛.

    호감도 게이지 MAX를 찍었을 때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우정의 증표였다.

    [호애앵-]

    쥬딜로페. 그녀는 차가운 포구의 어둠 속에 홀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나를 향해 빵싯 웃어 보이며.

    ……순간,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꿈 많은 소녀 쥬딜로페.

    알에서 깨어난 이래 지금까지 기나긴 여정을 함께해 온 존재.

    그동안 녀석과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쇼핑도 하고 사냥도 하고 여행도 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대회 준비도 함께 하고 경매에도 같이 참여했고 도박도 같이 했으며 아이템 강화도 같이 하고 던전 공략, 퀘스트 노가다, 아이템 수집, 극한의 마라톤, 댓글놀이, 기타 등등… 함께하지 않았던 콘텐츠가 없었다.

    늘 내 플레이에는 쥬딜로페가 있었다.

    로그인할 때면 항상 제일 먼저 달려와 반겨 주던 얼굴.

    로그아웃할 때 항상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시무룩해하던 얼굴.

    ……그리고 이것을 자각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 환청이 들려온다.

    ‘이거 왜 이래? 어차피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키운 몬스터잖아.’

    그것은 또 다른 나, 내면의 소리였다.

    그렇다.

    내가 쥬딜로페를 거뒀던 것은 처음부터 오늘을 위함이었다.

    세상을 멸종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벌레들의 대홍수.

    온 세계를 뒤덮은 벌과 개미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와두두의 포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여왕급의 개체가 온 몸을 불사르며 뿜어내는 막대한 양의 강력한 포자가.

    지금처럼 소돔과 고모라, 두 여왕이 수직 궤도로 함께 있는 순간이 절호의 찬스였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황금 같은 타이밍.

    “…….”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포구 속의 황금빛을 바라보았다.

    쥬딜로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포르르 떨리는 더듬이, 대포의 화력을 견뎌내기에는 너무 얇은 날개, 그리고 떠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깍지 낀 앙증맞은 손가락.

    하지만 붙어 다닌 시간이 얼만데 내가 그걸 모를까?

    쥬딜로페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거나 무서우면 늘 울고 떼만 쓰던 평소와 달리, 녀석은 지금 애써 태연한 듯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호앵- 뽀애앵-]

    염려 말라는 듯, 누가 봐도 거짓임이 티 나는 불안한 태도로, 계속해서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하며.

    나는 그 앞에서 결국 무너져 내렸다.

    내가 포구 앞에서 멈춰 서자 다른 피난민들이 나를 옆으로 잡아끌었다.

    아키사다가 다급하게 뛰어와 내 팔꿈치를 당긴다.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의 앞에서 사사로운 감정은……!”

    무엇이 대(大)고 무엇이 소(小)인가.

    대포가 대(大)고 안에 들어가 있는 소녀가 소(小)인가? 그렇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생각을 잘못했고 이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회귀 전 보았던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의 눈물이 떠올랐다.

    ‘저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2차 대격변의 전쟁영웅 튜더는 인터뷰 도중 울음을 터트렸었다.

    후회(後悔).

    이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 하루하루가 장밋빛, 황금빛일 것이라 생각했던 영웅이 보인 뜻밖의 감정에 전 세계가 경악했던 날이다.

    그리고 지금,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며 후회하던 그의 처절한 토로가 하나의 시간축을 건너와 이제야 내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

    나는 내 소중한 친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목젖만 따로 깊은 심해에 가라앉은 듯, 무겁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쥬딜로페야. 집에 가자.”

    피난민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끌어내려 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으아아! 고인물 님! 어서 나오세요! 죽습니다!”

    “어이어이, 당신 미쳤어!?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발사 3초 전이야! 좀 떨어지라구!”

    “으아! 뭔 힘이 이렇게 세! 근력 스탯 미쳤어!”

    난다긴다 하는 랭커들의 힘으로도 나를 대포 앞에서 비키게 하는 것은 무리다.

    “……어진아.”

    윤솔이 운다.

    그녀는 볼에 긴 눈물선을 그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 그녀의 힘이라면 나를 대포 앞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지.

    하지만 윤솔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포구 속에서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쥬딜로페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호감도 MAX게이지를 보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탓이다.

    …털썩!

    윤솔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드레이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쥬딜로페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걸까, 새삼 다시 자각이 든다.

    나는 모순적인 인간, 현실을 모르고 일을 벌인 멍청이였다.

    “집에 가자. 쥬딜로페야.”

    지독한 후회와 자기혐오가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바로 그때.

    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이 방주를 뒤흔들었다.

    [이제는 끝이다! 대멸종(大滅種)의 시간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벌레의 기둥을 타고 탑의 최상층부로 올라왔다.

    그녀들의 창과 방패에 의해 제일 먼저 파괴된 것은 흰 용의 여의주로 만들어진 오르골이었다.

    츠츠츠츠…

    탑이 내뿜고 있던 희뿌연 빛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로 우리뿐이다.

    생존자 그룹 최선두에 있던 아키사다가 다급하게 외쳤다.

    “고인물 씨! 이대로라면 방주가 위험해요! 모두를, 세계를 지켜야죠!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영웅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말은 지금 상황 앞에 무의미하다.

    방주가 다 뭐냐. 이런 작은 어린애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게 어째서 방주냐.

    영웅? 작은 소녀를 제물삼아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는 존재를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지?

    세계를 지켜야 한다고? 이 소녀의 희생으로 지켜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면 애초에 지킬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지독한 자기혐오와 함께 불신이 고개를 든다.

    회귀 이후, 나는 처음으로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섣불리 2차 대격변을 일으킨 것을 말이다.

    회귀 전에도 일어났었고 회귀 후에도 일어난, 원래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던 사건.

    이에 따라 언젠가는 보내 줘야 할 인과율적인 존재가 쥬딜로페이긴 하지만…….

    혹시나, 혹시나 만에 하나. 유저들이 더욱 더 강해지고 자력으로 벌과 개미들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한 뒤에 터트렸더라면, 그때까지 내 힘으로 2차 대격변을 억제했더라면 쥬딜로페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돌아온 이래,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을 수밖에 없는 법.

    그런 내 귀를 때리는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발사 1초 전!”

    아키사다의 목소리에 결국 윤솔과 드레이크가 나섰다.

    “……어진아.”

    “……어진.”

    둘은 내 팔을 잡고 대포에서 떼어 낸다.

    내가 멍한 표정으로 대포 앞에서 멀어지는 순간.

    [호애앵…]

    포구 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쥬딜로페.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눈물 어린 눈으로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 …진 …안 …녕.]

    그 조악한 한 글자 한 글자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한다.

    동시에.

    …번쩍!

    대포가 크게 진동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반동에 밀려 뒤로 날아가 자빠졌다.

    ……! ……! ……! ……!

    황금빛 불기둥이 벌레의 기둥을 순식간에 찍어 누른다.

    [오-오오오오오오!?]

    소돔과 고모라의 진격이 멎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대멸종의 어머니를 따르는 수많은 자식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르릉! 우지지지지직-

    성장을 멈춘 벌레 기둥, 그것은 순간적으로 휘청하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몸을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주 전체에 휘날리는 황금색의 눈.

    그것을 본 모든 피난민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아키사다는 가만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위로 민들레 홀씨 같은 것이 반짝반짝 빛을 뿜으며 살포시 내려앉았다.

    동시에.

    전 세계,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귓가에 일제히 같은 알림음이 떴다.

    -띠링!

    <……2차 대격변의 두 전쟁대군주 위치 파악 불가능>

    <……생체 반응 미확인>

    <최종 레이드 종료>

    <2차 대격변이 막을 내립니다>

    멸종(滅種)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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