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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14화 (714/1,000)
  • 714화 안녕(Bye), 쥬딜로페 (1)

    나는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한창 백수생활을 하며 게임에만 빠져 있었을 때.

    -띠링!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현 시간부로 2차 대격변이 발발합니다>

    <서대륙 ‘대군락지대’에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게이트의 위험등급은 ‘?’등급입니다>

    난데없이 뜬 알림음들.

    “벌이랑 개미? 에이 뭐야, 뭔 잡몹들이 침공한다고 난리야.”

    처음에는 나 역시도 일반 유저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곧 온 세상의 절반 가량을 뒤덮으며 몰려드는 벌레들의 대홍수는 내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최전선으로 달려가 온 힘을 다해 싸웠다.

    다행스럽게도, 그때는 게임이 출시된 지 시간이 많이 지나 상당수의 유저들이 고인물화 되어 있던 때였고 2차 대격변의 생존자들과 그들을 규합해 지휘한 몇몇 영웅들은 최선을 다해 벌과 개미들을 막아냈다.

    ……물론 나는 대격변 초기에 벌과 개미들의 파도에 짓눌려 리타이어 당했지만.

    뭐 그렇게 해서 2차 대격변이 마무리된 후, 길게만 느껴지던 접속불가 시간이 거의 끝나 갈 때쯤 뉴스 속보가 떴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대군주 위치 파악 불가능>

    <……생체 반응 미확인>

    <최종 레이드 종료>

    <2차 대격변이 막을 내립니다>

    벌과 개미의 대홍수가 마무리된 것이다.

    누가 2차 대격변을 막았는가?

    한국의 마태강, 미국의 비앙카, 러시아의 트로츠키, 일본의 아키사다.

    그 외에 프랑스의 크로와상(Croissant),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 중국의 ‘시첸(微尘)’ 등등의 랭커들이 많이 거론되었지만 그 여론들은 결국 자국 여론의 지분이 크다.

    하지만 자타공인, 모두가 인정하는 2차 대격변의 1등 공신은 분명 존재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로열 블러드 길드의 수장이자 현 공식 세계랭킹 1위.

    뎀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로 통하는 천상계 중의 천상계, 랭커들의 랭커이다.

    2차 대격변이 완료된 이후, 튜더는 공식 인터뷰에 응했다.

    세계 모든 종의 멸종을 막아 낸 대영웅의 심경은 어떨까?

    나를 비롯한 전 세계의 팬들이 그의 인터뷰에 주목했다.

    ……하지만.

    인터뷰에 등장한 튜더는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튜더는 그때의 그 인터뷰에서 ‘와두두’ 종족을 언급했다.

    그리고 끝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종족의 마지막 여왕의 존재도.

    ‘저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튜더는 결국 인터뷰 도중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2차 대격변이 끝난 뒤 밝혀진 영웅의 심경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튜더의 친구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각종 추측이 오갔지만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었다.

    그 정체가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나 ‘몬스터’, 혹은 ‘펫’이라는 설들만 분분할 뿐.

    그래서일까? 그 당시의 나는 튜더의 심경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아니, 펫이나 NPC 친구 하나 잃고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으면 엄청 남는 장사 아냐? 근데 왜 울어?”

    아무리 고인물인 나라도 저건 좀 너무 과몰입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펫이나 NPC 친구 잃는 대신 현실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100번도 더 그럴 수 있겠다 참 나~ 이래서 있는 것들이란~”

    별 생각 없이 함부로 지껄이면서 말이다.

    *       *       *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한 대 패고 싶은 심경이었다.

    벌레 타입 몬스터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생물.

    원래라면 1차 대격변과 함께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존재.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救援者).

    [호애앵-]

    내 어깨 위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작디작은 소녀 쥬딜로페.

    나는 이 소녀를 대포의 포탄으로 써야 한다.

    사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와두두란 기본적으로 곰팡이, ‘기생종(寄生種)’으로 분류되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일개 종을 구성하고 있는 종족.

    이들은 마치 동충하초(冬蟲夏草)와 같이 곤충 타입의 몬스터에게 기생하여 그 몸을 빼앗는 특성이 있는데 와두두 포자에 한번 감염된 곤충은 겉모습은 생전 그대로이나 내면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더욱 크고 강해지며 오로지 와두두 여왕의 명령에만 복종하게 되는 벌레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온몸의 포자들이 왕성히 번식하여 결국 거대한 곰팡이 균체로 변해 꼼짝달싹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벌레를 제외하면 주변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생물이다.

    [뽀앵- 호앵-]

    지금 내 어깨에 앉아 슬라임 젤리를 오물거리고 있는 쥬딜로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생물이 얼마나 무해한지를.

    하지만, 지금 쥬딜로페의 희생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생물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내가 애초에 그녀를 알에서 깨워 지금껏 호감도 작업을 하며 데리고 다녔던 이유도 바로 다 이 순간을 위함이었다.

    1차 대격변에서 멸종했어야 할 와두두 족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2차 대격변에서 벌레 대홍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쥬딜로페는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래, 어차피 순수한 선의도 아니었잖아.’

    이것은 쥬딜로페를 처음 거뒀을 때도 했던 생각이었다.

    나는 내 어깨 위에서 쥬딜로페를 안아들었다.

    이미 멸종한 종족의 마지막 여왕인 그녀가 대포 속에 들어가 장렬하게 포자로 산화한다면 이 밑에 모여든 모든 벌레들을 모조리 동충하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쥬딜로페의 포자는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의 마음마저 어루만질 수 있겠지.

    종족의 설움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져 나간 쥬딜로페와 그것에 피격당한 두 여왕은 높은 탑 아래로 떨어지며 별똥별처럼 불타 결국 지면에 닿기도 전에 한 줌 가루로 사라질 것이다.

    벌레 기둥은 무너질 것이고 세상은 쥬딜로페가 남긴 무해하고 아름다운 포자로 가득해지겠지.

    그리고 또다시, 불모지에는 생명이 꽃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렇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서 공전절후의 영웅으로 군림할 것이고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으리라.

    무려 2차 대격변을 막아냈고 두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를 격퇴했으니 말이다.

    게임사에 길이 남을 랭커가 될 기회다.

    …….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일을 겪었다.

    네티와 베티 자매의 비극을 바로 옆에서 겪었고 잭 오 랜턴을 눈앞에서 잃었으며 애제자를 잃은 아르파공을 보았고 친구 레흐락과 게슈탈트의 도움을 받았으며 더 나아가 불사조의 최후를 함께했다.

    인공지능과 그냥 지능, 그리고 가상현실과 현실. 하지만 관계와 관계의 간극은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는 그동안 함께하고 정들었던 수많은 추억들로 인해 넘칠 정도로 메꿔져 있었다.

    “…….”

    나는 쥬딜로페를 본다.

    […….]

    쥬딜로페 역시 나를 본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아주 잠시 회상했다.

    -<와두두 여왕의 알> / ?

    벌레도 식물도 아닌 존재의 알.

    안에는 꿈 많은 소녀 ‘쥬딜로페’가 잠들어 있다.

    -5% 확률로 시끄러움

    -부화조건: ???

    한때 아주 작은 알에 불과했던 녀석.

    1차 대격변을 거치며 깨어난 이후부터는 늘 먹고 자고 울기만 하는 떼쟁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예쁜 옷을 입고 뻐기거나 부하로 삼은 파리와 풍뎅이들을 부려먹는 등 제법 여왕 테가 나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머릿속에 쥬딜로페의 유모가 죽어가며 남겼던 말이 떠오른다.

    ‘새로운 여왕님을 모시게 된 자로군. 좋은 눈을 하고 있어. 여왕님을 잘 부탁함세…….’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넘겼던 말이 지금은 마음의 족쇄가 되어 내 몸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이 날을 위해 구한 아이다. 이 순간을 위해 키운 아이다.

    인신공양.

    그것만이 2차 대격변으로 인한 모든 참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내가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

    “고인물 님! 빨리요!”

    “대포가 점화되었습니다!”

    “화약이 타들어 가요! 뇌관까지 일보직전입니다!”

    “어서! 어서 포탄 장전을!”

    “발사 10초 전!”

    뒤에서 피난민들이 보채고 있었다.

    내 옆에서는 윤솔과 드레이크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심지어 늘 쥬딜로페와 티격태격 했던 오즈까지도.

    하지만 친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윤솔이 입을 열어 짧게 말하긴 했다.

    “어진아. 예전에 천공섬에서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내가 고개를 돌리자, 윤솔은 어딘가 슬프게 느껴지는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너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역사가 크게 바뀔 것이다.’

    그 말을 내가 그대로 돌려받게 될 줄은 몰랐군.

    나는 떨리는 손으로 쥬딜로페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발은 대포의 앞에 다가와 있다.

    [호앵?]

    쥬딜로페는 평소와 다른 내 표정에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녀석의 그 큰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나는 한참 동안을 고민한 끝에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못하겠어.”

    바보라고, 병신이라고 욕먹어도 싸다. 기꺼이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지금껏 함께 게임을 플레이해왔던 이 작은 녀석을 차갑고 살벌한 포구 안에 혼자 남겨놓을 수는 없다.

    ……나의 소중한 친구를 말이다.

    “차라리, 차라리 내가 들어가겠어. 벨제붑의 역병 맹독을 광역으로 터트리고 무한 버서커 모드로 비빈다면 고정 S+급 두 마리 정도는…….”

    너무 당황했기 때문일까? 나는 현실감각 없는 말을 두서없이 지껄이기 시작했다.

    윤솔과 드레이크조차 그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척!

    나의 바보짓을 가로막는 이가 딱 하나 존재했다.

    바로 쥬딜로페 본인이다.

    [뿌앵스.]

    녀석은 예전에 카지노에서 썼던 선글라스에 입에는 두툼한 어린이용 시가까지 물었다.

    그리고 당당한 태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을 가리켰다.

    ‘맡겨 둬.’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태도.

    이윽고. 쥬딜로페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날아올라 포구 속으로 쏙 들어간다.

    “어어!? 안 돼!”

    예전에 깎단을 강화할 때도 그랬지만, 쥬딜로페는 예상 외의 행동을 할 때는 참 잽싸진다.

    나는 재빨리 포구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쥬딜로페는 이미 대포 속 저 깊은 곳까지 날아들어 가고 있었다.

    “발사 5초 전!”

    아키사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쥬딜로페를 향해 어두운 포구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포구 속에서 나는 분명 보았다.

    …반짝!

    황금색으로 빛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빛줄기가 포구 속 어둠을 온통 환하게 비추며 내 시야를 열어 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쥬딜로페가 내뿜고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빛.

    호감도 게이지가 MAX 단계조차 넘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우정의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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