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12화 (712/1,000)
  • 712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3)

    신이 말하길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세상에 내려가 그것을 벌하려 하노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다 같이 벌하시려 하십니까? 그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나쁜 이들 중 착한 이가 50명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하시렵니까?’

    신이 말하길 ‘소돔과 고모라에 착한 이 50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만약 50명에서 5명이 부족해 45명의 착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까?’

    신이 말하길 ‘착한 이 45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만약 40명의 착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까?’

    신이 말하길 ‘착한 이 40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만약 30명의 착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까?’

    신이 말하길 ‘착한 이 30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만약 20명의 착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까?’

    신이 말하길 ‘착한 이 20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길 ‘만약 10명의 착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까?’

    신이 말하길 ‘착한 이 10명이 있다면 모든 이들을 용서하리라.’

    -창세기(創世記) 18:20~18:33-

    *       *       *

    소돔과 고모라.

    두 여왕은 수많은 자식들을 이끌고 방주를 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벌레 기둥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벌레들의 세대는 빠르게 명멸하며 새로운 벌레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벌과 개미들의 수명은 100시간. 그 뒤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왕의 출산 속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데다가 지금은 이상증식 현상까지 벌어지는 중이다.

    때문에 벌레들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벌레들의 세대가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그들에게는 각각의 내성이 생겼다.

    마치 수명이 100일 남짓한 바퀴벌레가 빠르게 세대교체를 하며 온갖 살충제들에 대한 내성을 쌓고 물려주는 것처럼, 벌과 개미 역시 각종 열병기나 냉병기들에 대한 내성을 획득한 채 그것을 물려준다.

    [이노-옴, 가증스러운 올빼미 놈!]

    [불사조는 어디로 숨었느냐!]

    소돔과 고모라는 불사조가 용과 악마의 동맹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갈 곳 잃은 분노를 토해낼 마지막 사출구를 향해 맹렬하게 용솟음쳤다.

    벌레 기둥은 어느덧 탑의 상층부에 근접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진격 속도였다.

    이제 탑의 상층부를 지나 최상층부에 근접하고 있던 피난민들의 눈에도 벌레 기둥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저 아래에서 무서운 속도로 범람해 오르는 벌레 대홍수를 본 아키사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따, 따라잡히겠어요!”

    피난민들은 불안하다는 시선으로 일제히 고인물의 홀로그램을 바라본다.

    하지만.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거대한 홀로그램은 어째서인지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다 안배를 해 두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쿠-웅!

    벌레의 기둥이 휘청했다.

    [……?]

    소돔과 고모라는 진격을 잠시 멈추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이내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벌레의 기둥을 이루는 긴 행렬. 그 최후미를 이루는 벌레들의 진영이 무너지고 있었다.

    콰콰콰쾅!

    정체가 불분명한, 어마어마한 수의 유저들이 난데없이 몰려와 벌과 개미들을 마구 두드려 잡고 있었다.

    주로 중년 이상의 남성, 여성으로 구성된 이 유저들은 배가 나오고 주름이 진 손으로도 억척스럽게 벌레들을 척척 사냥하고 있다.

    하나같이 레벨은 별로 높지 않았지만 벌과 개미들을 잡고자 하는 집념이 정말로 엄청난 이들이었다.

    “???”

    피난민들은 입을 딱 벌렸다.

    이 시점에 어디서 저런 유저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아키사다는 도대체 저들이 누구인지, 왜 저렇게 미친 듯이 벌레를 잡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창에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러자.

    모든 게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핫 게시물 몇 개가 바로 눈에 띄었다.

    <충격 비밀! 벌과 개미가 정력에 좋다!?>

    <게임중독 전교 꼴찌였던 수험생, S대생 된 이유는? ‘하루 종일 벌과 개미만 잡았더니 집중력이……’>

    <우리 아이 키 크는 비법? 게임 속에서 벌과 개미만 잡게 했더니 한 달에 8cm가 쑤욱~!>

    *       *       *

    “계획대로군.”

    나는 남몰래 식은땀을 훔쳤다.

    며칠 전, 엄재영 감독과 미리 계획해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어진아, 근데 이게 생각대로 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정력’과 ‘수험생’, ‘어린이 키’에 예민하니까요.’

    나는 레드문의 차규엽이 만들었던 댓글부대와 몇몇 기자들 인맥을 이용해 인터넷에 가짜 뉴스들을 올렸다.

    게임에 접속해 벌과 개미를 잡으면 정력이 증가하고 수험생 집중력 향상에 좋으며 어린이들도 키가 쑥쑥 자란다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의외로 이것은 효과가 좋았다.

    “허허허, 요즘 가상현실 게임들은 너무 복잡하구먼. 자동사냥 없나 자동사냥? 껄껄껄~ 나 때는 말이야~ 어이쿠! 그나저나 벌과 개미가 정말 많구먼. 하마터면 쏘일 뻔했네. 쏘이는 건 회사에서 최이사, 집에서 마누라한테 쏘이는 걸로 족해~ 껄껄껄~ 하여튼 뭐 응,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어, 이게 다 몸에 좋은 것들이니 전부 다 잡아야지~ 건강이 최고인 거야~ 어흠 어흠, 그런데 이게 정말 남자한테 좋나? 으응?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어? 헛허허-”

    “어머머 얘! 그렇게 멕아리 없게 잡아서 되겠니? 엄마처럼 이렇게 팍팍! 응? 이 봐라, 벌이랑 개미가 이렇게 많잖아! 엄마 하는 것 봐봐. 얍! 팍팍! 이렇게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는 거야. 이거 한 마리당 모의고사 점수 1점씩 오른다고 생각하랬어. 응? 누가 그랬냐고? 아파트 부녀회에 소문 쫙~ 났어. 너는 그냥 엄마 말만 잘 들어. 아휴! 평소에 게임 하지 말래도 막 하던 녀석이 오늘은 왜 이렇게 비실비실해? 응? 안되겠다, 너 지금 캡슐 밖으로 나가서 보약 한 첩 쭉~ 마시고 와. 그동안 엄마가 잡고 있을게. 어머? 호호호 민성이 엄마도 접속했어요? 아구, 내 정신 좀 봐, 나도 현질 좀 해서 +7강 쪽파 몽둥이 하나 장만해 올 걸 그랬네.”

    왕년에 리X지 좀 했던 배불뚝이 김부장, 등짝 스매싱 파워가 배구 국가대표 급인 503호 새댁 등등, 중장년 유저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벌레들의 후미를 교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정력, 수험생, 어린이 성장 말고도 무시무시한 카드 하나가 더 있다.

    [제아무리 막강한 벌레 군단이라고 해도,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돈’이다.

    스크루지 후작과 나는 MAX까지 쌓인 호감도 덕에 동업 관계가 되었고 상당히 큰 프로젝트 하나를 함께 발촉했다.

    그것은 바로 ‘현상금’ 프로젝트였다.

    [벌레 1마리당 10골드의 현상금을 걸겠습니다!]

    벌레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현실 돈으로 1원이 쌓인다.

    물론 총 상금량은 정해져 있으니만큼 먼저 빨리 많이 잡는 사람이 이득.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벌과 개미이니 랭커들은 물론이요 평소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솔깃해서 캡슐방으로 몰려들었다.

    “오? 좋은 부업거리인데?”

    “인형 눈알 붙이느니 이거 해야겠다.”

    “이제 농성 그만하자! 죽더라도 여기 있는 벌이랑 개미 다 잡고 죽는다!”

    인류, 플레이어 연합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역시나 사람의 투지를 고취시키는 데에는 정력, 수험생, 어린이 키, 돈만 한 것이 없다.

    거기에 나는 플레이어들이 가혹한 설산을 넘어올 수 있게끔 날씨까지 조종했다.

    -<크툴루 크라켄의 촉수> / 완갑 / S

    대풍랑을 부르는 해신(海神)의 위엄. 그 자체.

    -방어력 +1,700

    -민첩 +2,000

    -특성 ‘풍랑(風浪)’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완충(緩衝)’ 사용 가능 (특수)

    이 풍랑의 효과를 이용한다면 눈보라의 힘을 어느정도 상쇄 가능하다.

    또한 벌레들의 대규모 행진 때문에 설산의 눈과 얼음이 거의 다 닳거나 쓸려간 상태였기에 이제 평범하게 튜토리얼만 완수한 이들도 북대륙까지 넘어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거기에 현상금 액수에 혹한 랭커들이 더 이상의 수성이나 농성을 포기하고 요새나 쉘터 밖으로 뛰쳐나오면서 또다시 국면이 전환되었다.

    지금까지 벌레들의 대홍수 속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랭커들의 저력에 의문의 중년 뉴비 군단이 보여주는 맹렬한 집념이 더해져 미친 시너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소돔과 고모라는 황당하다는 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들은 벌레 기둥을 세워 위로 올라가는 것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후방의 자식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아키사다가 다급하게 외쳤다.

    “설마 이게 비장의 무기였어요? 이제 끝?”

    [그럴 리가. 진짜 패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당황해서 파닥파닥거리는 아키사다와 다른 피난민들을 달랬다.

    하지만 확실히 소돔과 고모라의 저돌성은 예상 범위 외였다.

    회귀 전에는 이 두 여왕의 전투력을 각자 따로따로 보았기에 계산이 어긋난 것이다.

    1+1=2 라는 공식은 현재 손을 잡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흐음, 확실히. 시간이 약간 부족하기는 한데.]

    비장의 무기가 예열(豫熱)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윽고, 소돔과 고모라는 후미를 재정비한 뒤 다시 벌레 기둥을 상승시켰다.

    놀라운 속도로 접근해 오는 두 전쟁대군주.

    [미네르바의 올빼미 이놈! 네놈을 시작으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몰살시키겠다!]

    [세상은 내 자식들을 하찮게 여기고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벌과 개미의 여왕은 지옥불조차 타버릴 정도로 뜨거운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약간의 시간을 벌고자 피난민들의 앞으로 나섰다.

    위이잉-

    내 홀로그램은 아래로 약간 이동해 두 여왕을 막아섰다.

    드디어 나를 만난 두 여왕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그래서 직접 보고 알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나는 침착한 태도로 두 여왕에게 대답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뭐라?]

    내 질문을 들은 두 여왕은 표정을 찌푸렸다.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착한 이와 나쁜 이를 균등하게 처벌하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우리들 중 지금껏 단 한 번도 벌과 개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자가 50명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까?]

    그러자 소돔과 고모라가 껄껄 웃었다.

    [실로 황당한 지적이로다!]

    그렇다.

    이 세상 모든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시작했을 때부터 벌과 개미를 잡는다.

    애초에 튜토리얼의 탑에서부터 등장하는 몬스터가 바로 벌과 개미이며 수없이 많은 저레벨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사냥감 목록에는 늘 벌과 개미가 등장한다.

    태초의 사냥감. 플레이어에게 있어 벌과 개미는 그만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피난민들은 불안한 기색이다.

    “우리들 중에 벌과 개미 한 번도 안 잡아 본 사람 있어?”

    “바보냐? 당연히 없지!”

    “50명이나 있을 리 없잖아! 대체 고인물 님은 무슨 생각을…….”

    그런 피난민들을 비웃으며, 소돔과 고모라가 크게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만일 너희들 중에서 벌과 개미에게 한 번도 피해를 끼치지 않은 자 50명을 찾을 수 있다면 너희들 모두, 나아가 온 세상을 용서하리라.]

    나는 재차 말했다.

    [만약 40명이라면?]

    [그래도 용서하마.]

    [만약 30명이라면?]

    [그래도 용서하마.]

    [만약 20명이라면?]

    [그래도 용서하마.]

    [만약 10명이라면?]

    [그래도 용서하마.]

    소돔과 고모라는 꽤나 관대했다.

    플레이어 측을 완전히 쓰레기로 낙인찍고 있기에 나오는 절대적인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한 번의 승부를 더 걸어보기로 했다.

    [……만약, 1명이라면?]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벌과 개미를 잡아 보지 않은 ‘착한 사람’이 있다면?

    내 질문을 들은 소돔과 고모라는 피식 웃었다.

    [간난아이와 같은 존재를 믿는 것인가?]

    [아니. 물론 어른들 중에 말야.]

    뉴비가 아니라 고렙 올드비 중에 벌과 개미를 한 번도 잡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피난민들조차 불신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그 긴장감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좋다.]

    소돔과 고모라가 입을 열었다.

    [단 한 명. 그 한 명의 의인만 있어도 내 너희를 멸하지 않으리라.]

    두 전쟁대군주는 하해와도 같은 아량을 베풀어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피난민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벌과 개미를 잡아보지 않은 한 명. 그 한 명만 있으면 모두가, 아니 전 세계가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벌과 개미를 한 번도 잡아 보지 않은 이는 없었다.

    애초에 레벨 1짜리 뉴비가 아니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이윽고, 분위기를 읽은 두 여왕이 깔깔 웃었다.

    [그것 보아라. 결국 너희는 필멸자(必滅者)로다.]

    말을 마친 소돔과 고모라는 군단을 이끌고 올라왔다.

    거대한 벌레 기둥은 이내 모든 것을 휩쓸어 마침내 방주의 최상층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쿵-

    이내 묵직한 충격이 소돔과 고모라의 몸을 멎게 만들었다.

    [……무엇이지?]

    투명한 결계.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모든 벌레들의 상승을 막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두 전쟁대군주를 향해, 나는 씩 웃어 주었다.

    [응, 한 명 있어~]

    이윽고, 내 홀로그램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딱 하나 있기는 있다.

    벌과 개미를 단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으면서도 높은 레벨에 올라 있는 올드비.

    “…어우, 꾸준히 버스만 탔던 게 여기서 도움이 되네.”

    레벨 1때 ‘튜토리얼의 탑’조차도 스킵하고 바로 천공섬으로 레이드를 뛰러 갔던 그녀.

    바로 윤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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