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11화 (711/1,000)
  • 711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2)

    -이재웅 왔다감^^

    -ㅂㅅ몹

    -저는쓰레기입니다

    -이형근♡홍선표

    -나를 때려주세요

    -ㅋㅋㅋ

    -SEX

    -(똥 그림)

    -애인급구 010-99XX...

    .

    .

    쓰레기 낙인.

    담뱃불과 단검으로 벌과 개미의 몸에 낙서를 하며 킬킬거리는 플레이어들.

    얼굴은 모자이크, 음성은 변조되어 있었기에 신상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잔혹함은 필터링이 되지 않는다.

    “…….”

    피난민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아키사다 아야카가 경멸의 눈으로 스크린 속 유저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홀로그램 속 유저들은 계속해서 벌과 개미를 학대하고 있었다.

    [아 씨, 간지 안 나게. 빨리 레벨업해서 좀 멋있는 몬스터 잡아야지. 이 따위 너절한 것들 말고…….]

    [진짜 더럽게 많네, 이 쓰레기들은. 아아- 용이나 악마 같은 것 잡고 싶다!]

    [빨리 레벨 올려서 이딴 쓰레기 몹들 좀 졸업하고 싶다. 현질 좀 더 박아야지 뭐, 크크크-]

    [돈 모아서 더 돈 되는 몬스터 잡으러 가야지. 이딴 쓰레기들 말고.]

    [맞어, 이딴 쓰레기들이나 잡으려고 이 게임 한 거 아니니까.]

    노골적인 언어폭력은 덤이었다.

    나는 홀로그램 영상을 중지했다.

    피난민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봐 왔던 몬스터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모양.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2차 대격변을 막지 못한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말은 피난민들의 양심을 더욱 찌른다.

    한 피난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겨, 결국 우리 때문에 일어난 거였군요.”

    나는 그저 가만히 눈을 감는 것으로 그 말에 답했을 뿐이었다.

    이윽고, 홀로그램에서 다음 동영상이 뜬다.

    온몸에 낙서가 된 채 돌아온 벌과 개미를 보는 두 여왕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짧은 잠에 빠져 아주 잠시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인데, 대체 왜 내 자식들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이냔 말이다!]

    [아이들은 역시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도다!]

    [결국 평화는 모든 것을 좀먹게 할 뿐!]

    그 뒤의 대사는 편집되어 나오지 않는다.

    피난민들은 그제야 두 여왕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이해한 듯싶었다.

    “맞아. 나도 내 아들이 학교에서 맞고 돌아오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플 거야.”

    “우리 딸 학교에서 괴롭혔던 것들을 전부 다 찢어 죽여 버리고 싶겠지.”

    “난 내 자식이 저런 꼴 당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갚아 줄 거고.”

    유저들은 시무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들 중에는 분명 벌과 개미를 쓰레기 취급했던 이도 있을 것이다.

    그제야 모두가 알게 되었다.

    왜 벌과 개미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몸에다가 이상한 낙서를 새겨 놓는지.

    “지금까지 벌과 개미들을 무시하고 막 대했었어.”

    “생각해보면 이 게임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다 저렙 몬스터들이 있어 준 덕인데.”

    “사실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옛날 쪼렙 시절의 나였던 거야.”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잊고 있었어. 저렙 때의 나를.”

    여론이 반성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2차 대격변은 벌과 개미들의 누적 피해량이 일정 수치 이상 쌓이면 저절로 벌어지는 시스템입니다. 두 여왕이 눈을 뜨는 조건이 바로 그것이죠. 즉, 2차 대격변 확장팩을 발발시킨 것은 바로 여러분들 본인입니다.]

    아, 물론 이것도 절반쯤은 뻥이다.

    여왕이 눈을 뜨는 것에는 위의 조건 외에도 두 가지 조건이 더 있다.

    하나는 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과 악마의 동맹이 먼저 이루어질 것, 마지막은 여왕의 굴에 불이든 물이든 대량의 무언가를 흘려보내 직접적으로 잠을 깨우는 것이다.

    1의 조건이야 뭐 어느 정도 만족되었고 2는 내가 의도치 않았지만 흰 용과 레비아탄의 동맹으로 인해 만족되었다.

    ……그리고 3 역시도.

    하지만 굳이 이 사실까지 다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반은 구라라는 것은 반은 진실이라는 것과도 같으니까.

    나는 두 팔을 쫙 벌렸다.

    [자, 이 중 벌과 개미를 잡몹 취급하지 않은 자만이 내게 돌을 던지세요. 그리고 벌과 개미를 잡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올라온 이도 내게 돌을 던지십쇼.]

    당연히 아무도 없다.

    검은 탑의 상층부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아오! 뭐야 이 분위기! 다들 너무 과몰입하는 거 아냐!?”

    누군가 날카롭게 외쳤다.

    중국의 유명 랭커 탕쯔이, 그녀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좌중을 돌아보고 있었다.

    “고작 데이터 쪼가리 따위에 왜 숙연해하는 건데! 그럼 뭐 몹 하나 잡을 때마다 일일이 다 인사 박고 다니냐!? 너네는 꿔바로우 먹을 때마다 돼지한테 고맙다고 해!?”

    꽤나 짜증스러운 일침이었다.

    하지만 이 말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때쯤 해서, 내가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자, 누가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입니다.]

    “…….”

    [감성을 팔 생각은 없어요. 공감할 사람은 하고 말 사람은 말면 됩니다. 다만…….]

    나는 홀로그램 창을 띄워 방주 바깥 세상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불길과 연기, 시체로 뒤덮인 한 땅이 있었다.

    드넓은 황무지에는 온통 재와 부스러기들만이 남아 황폐하기 그지없다.

    “……뭐야. 이게 뭔데? 왜 보여 주는…… 어!?”

    짜증스러운 표정의 탕쯔이가 톡 쏘아붙이다 말고 경악했다.

    피난민들의 눈 역시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불모지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곳은 바로 뎀의 문화 도시, 번영과 풍요의 상징, ‘어머니의 도시 유토러스’였던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고향이었던 이곳이 폐허 그 자체로 변해 버린 모습은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중에서도 뚜렷하게 절망이 드러난 건 탕쯔이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가 훌륭한 랭커임과 동시에 하우징(보금자리를 꾸미는 것) 콘텐츠 유투버로 미래에 성공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하우징에 집착하는 계기가 무엇인지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인테리어 업계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되는 바람에 한참 전세계가 그녀의 인터뷰로 떠들썩했었으니 말이다.

    나는 천천히 홀로그램 속 유토러스의 한 부분을 확대했다.

    불타고 있는 건물 중 유난히 잘 버티고 있는, 색상이 사뭇 다른 아이보리색 3층 건물.

    [탕쯔이 씨. 저기 3층 건물의 2층과 3층. 본인이 소유한 집이지 않습니까?]

    “그, 그냥 취미로……!”

    [그냥 취미란 말이죠? 데이터 쪼가리를 가지고 노는 취미?]

    탕쯔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중국 유명한 거부 집안의 자제인 그녀가 뎀에 들어와서까지 하우징에 목을 매는 이유.

    그것은 씀씀이는 채워졌으니 이젠 그 출신성분까지 귀족으로 피를 개조시켜야 한다는 그녀의 부모님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 중국 재계에서 무시 받는 인테리어 노동 따위를 시도라도 했다간 바로 독방 감금일 테니 그녀가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소는 오직 게임 속 세계뿐.

    [취미죠? 그냥 단순한?]

    “……어, 취미야.”

    탕쯔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냥 취미야! 심심풀이라고! 이제 보여 주지 마!”

    [평범한 도료에 일일이 방염 인챈트를 하고, 직접 건물 전체를 도색한 사람치고는 가혹한 말이군요.]

    “……그, 그만해. 제발.”

    나는 말을 멈췄다.

    …털썩!

    앞장서서 역설하던 탕쯔이가 주저앉자 분위기가 한 층 더 가라앉았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이 세계를 사랑하고 또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만큼은 세계관에 몰입해 달라는 겁니다.]

    시니컬하던 탕쯔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물을 한번 훔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팟!

    갑자기 허공에 환한 빛이 어리더니 플레이어들의 환영이 나타났다.

    탑의 최상층.

    레벨업하여 현재의 자신과 완전히 똑같아진 플레이어들의 환영은 실제 플레이어의 몸과 겹쳐진다.

    동시에.

    -띠링!

    <2차 대격변의 생존자들에게 버프가 깃듭니다>

    <생존자들의 앞길을 응원합니다>

    타이밍 좋게, 강력한 버프가 생존자들의 신체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오오! 고인물 님! 이 끓어오르는 힘은 대체!”

    “어떻게 저희에게 버프를 주신 거죠!?”

    “영광입니다! 사랑합니다 고인물 님!”

    “그는 신이야!”

    군중들은 나를 칭송한다.

    하지만.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나는 의문의 버프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그때, 드레이크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어진, 아무래도 GM측에서 추가 패치를 해 생존자 전원에게 버프를 준 것 같다. 난데없는 확장팩에 그들도 많이 놀란 모양인데.’

    아, 그런 거였나?

    그것 참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왔다.

    나는 GM의 지원도 나의 업적인 것처럼 소리쳤다.

    [자! 여러분들은 강해졌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멸망을 막아 냅시다!]

    “우-오오오오오!”

    탑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무기를 들고 일어난 탕쯔이 역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아키사다가 외쳤다.

    “그, 그런데. 지금 방주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두 여왕과 그녀의 자식들을 어떻게 막죠?”

    그렇다. 매우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아무리 버프가 걸렸다고 해도 기껏해야 스탯이 약간 상승했을 뿐이다.

    방주 바깥에서 끝도 없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벌레 대홍수를 막아 내기란 택도 없는 사실.

    하지만 피난민들은 용기백배하고 있었다.

    “나는 벌과 개미들의 고마움을 깨달았어!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여지껏 탑을 오르며 초심을 되찾았잖아!?”

    “우정의 힘! 사랑의 힘! 용기의 힘!”

    “지금의 우리들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을 모아 싸우면 할 수 있어!”

    “그렇죠 고인물 님!?”

    나는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에? 안 되죠, 그런 걸로는.]

    “…….”

    피난민들은 급격히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나 역시도 현실적인 사람이다.

    [무슨 원피스 찾았더니 ‘사실 그건 지금껏 모험을 하며 만났던 동료들과의 소중한 우정이다’ 같은 소립니까 그게. 그런 거 아니고요. 우리는 현실적으로 벌레들을 막아야 해요.]

    나는 홀로그램 속에서 손가락을 뻗어 탑의 꼭대기를 가리켰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정상.

    [그곳에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나는 따라오는 외국인 플레이어들도 배려해 영어로 한 마디 덧붙였다.

    [I see, follow me(내가 그것을 보았나니 나의 자취를 따라 걸으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