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10화 (710/1,000)
  • 710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1)

    …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검은 탑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광경을 게임 세계 밖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굳은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오이오이 무려 ‘고인물’이 대비해놓은 방주라구!!

    -너희같은 D급 쓰레기들에게 고인물의 크고 아름다운 탑이 당할쏘냐!!

    -믿습니다!!! 플레이어의 희망!!!

    -고인물...당신은 대체...

    -와 진짜 튼튼하다 저 탑..ㄷㄷㄷ

    -절대 안뚫릴듯?ㅋㅋㅋㅋ

    -근데 어떻게 만든거임 저런걸??

    .

    .

    고인물이 만들어둔 인류 최후의 보루는 벌과 개미들의 대홍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다.

    <방주> -등급: S

    어버이: 고인물

    무려 S급 던전이다.

    일개 플레이어가 이런 규모의 건축물을 어떻게 제작했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확실히 엄청난 방어력을 지닌 쉘터였다.

    D급 몬스터인 벌과 개미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들어도 방주의 외벽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북대륙에 우뚝 솟은 이 거대한 검은 탑은 모든 인류, 모든 오크, 모든 리자드맨, 아울러 모든 플레이어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하지만.

    벌과 개미 군단의 너머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는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벌레의 바다가 홍해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갈라졌고 그 사이로 두 명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육 벌 여왕 ‘소돔(סדום)’>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창을 뻗어 붉은 바다(紅海)를 갈랐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소돔- <元世記 10:19>

    <살육 개미 여왕 ‘고모라(ועמורה)’>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방패를 뻗어 검은 산(黑山)을 세웠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고모라 <元世記 13:10>

    2차 대격변의 전쟁군주, 이 세상 모든 벌레들의 어머니.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갈 정도의 전투력이 숨겨져 있다.

    우글거리는 벌레 떼의 중심에서, 그녀들은 모든 작은 것들의 존경과 사랑,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

    -예??? 위험등급이 S+급이라고요????

    -심지어 두...마리?????

    -ㅁㅊ저걸 어케 잡냐;;;???

    -않이 실화냐고~~~;;;

    -저것들이 일으킨 거엿구나..벌레대홍수...

    -......흑막이 좀 쎈데?

    -애초에 막을 수가 없는 거였네 이건...ㄷㄷㄷㄷ

    -GG...

    -전 세계 플레이어들 다덤벼도 안될 듯 ㅅㄱ~

    .

    .

    그녀들의 등장은 방주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기세를 단숨에 부수어 꺾어 버렸다.

    콰콰콰콰쾅!

    소돔의 창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이내 유성우처럼 날아가 방주의 벽을 때렸다.

    그 일격에 검은 탑이 한번 크게 흔들리더니.

    우지지직!

    결국 벽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

    선벽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듯, 탑에 난 구멍으로 검고 붉은 벌레들이 들어찬다.

    두 여왕은 수많은 아들과 딸을 이끌고 방주 안으로 직접 들어왔다.

    [오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돌! 그놈의 흔적이 이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구나.]

    [배신의 대가를 치러라 ‘미네르바의 올빼미’야!]

    끓어오르는 증오를 토해 내면서.

    *       *       *

    “우우우우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게임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

    탑 상층부.

    피난민들의 야유가 터져 나온다.

    방주를 세운 위대한 선지자에게 감사하는 태도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방금 전 내가 한 발언 때문이다.

    [2차 대격번을 일으킨 범인은 바로 접니다.]

    나는 홀로그램에 대고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 나는 피난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의사를 전하는 중이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일단은 피난민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거늘.

    나는 목청을 가다듬은 뒤 다시 홀로그램을 조종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2차 대격변은 저절로 발발했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피난민들은 그제야 흥분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2차 대격변이 원래 일어날 이벤트였나요?”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설명 좀 해 줘!”

    나는 군중들의 아우성에 친절하게 화답했다.

    [저는 그저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탄약과 총 자체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죠. 아니, 방아쇠라기보다는 억제기에 가까울지도.]

    군중들은 서서히 내 말에 귀기울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 세계관 이면에 숨겨져 있던 메인 시나리오의 설정 한 자락을 공개했다.

    [용과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 이 세상의 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벌과 개미입니다.]

    세상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지배하던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적이자 식량으로 삼아 인구를 불리고 줄이고를 반복했다.

    벌과 개미의 대립으로 인해 세상 모든 종들의 씨가 말라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먹이로 삼는 두 부족.

    적 부족의 시체는 여왕의 양분이 되어 이쪽 부족의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들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대륙이 멸종의 도가니로 변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중재자가 나서 두 여왕 간의 휴전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중재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물론 뻥이다.

    설정 상 그 중재자란 아마도 불사조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 불사조의 유지를 이어받은 유일한 존재가 나이니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닌 셈일지도?

    이어진 내 말에 피난민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그럼 지금까지 고인물 님이 2차 대격변의 발발을 억제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렇다잖아. 두 여왕의 전쟁을 막은 게 고인물이래.”

    “뭐야 엄청나잖아. 그럼 그동안 일반 유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건데…….”

    “근데 설정 상 까마득히 고대의 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몰라, 뭔 퀘스트 같은 게 있었겠지. 타임슬립을 했다거나.”

    나는 손을 들어 수군거림을 잠재웠다.

    [이상증식하는 벌과 개미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두 여왕이 길고 오랜 잠에 빠져야 하죠. 하지만 두 여왕은 망설였습니다.]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짧은 잠에 드는 것, 하지만 벌과 개미의 여왕은 싸워왔던 역사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이나 다름없는 정도의 수면조차도 망설였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잠에 빠진 동안 자식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까 걱정되어서였죠.]

    만약 어머니가 잠에 들었을 때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자식이 병에 걸리진 않을까, 배를 곯고 다니지는 않을까, 타인에게 무시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두 여왕으로 하여금 전쟁을 그만두고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시시각각 벌과 개미들의 수는 불어났고 그만큼 대륙의 생태계는 척박해지고 있었다.

    [그때, 제가 그녀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물론 내가 아니라 불사조가 말한 것이다.

    [두 여왕이 잠든 뒤에도 제가 남아 벌과 개미들을 보살피겠다고. 그들이 다른 존재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받지 않게 잘 조율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두 여왕은 스스로를 깊은 잠에 빠트렸고 전쟁은 멈췄다.

    벌과 개미들의 증식은 멈췄고 대륙은 그것들의 시체더미 위에서 다시끔 생명의 싹을 꽃피웠다.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가장 아래의,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모든 등급의 기초가 되는 개미와 벌.

    그것의 등급은 ‘D’, ‘Develop(성장시키다)’의 ‘D’

    모든 식물과 동물들의 영양분이 되는 존재.

    영양분을 가져다 줄 여왕이 잠들자 그것들은 헌신의 대상을 온 세상으로 바꾸어 자신들의 몸뚱이를 바쳐 왔다.

    그렇게 해서 벌과 개미는 이 세계관에서 가장 작고 하찮으면서도 크고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심호흡 후 다시 이어 갔다.

    [한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내 말에 피난민들은 웅성거린다.

    그들 중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몇몇 랭커가 손을 들며 따지듯 물었다.

    “그 변수가 뭡니까!?”

    “그것이 겨우 막은 전쟁이 다시 시작되게 된 이유 같아 보이는데요!?”

    “도대체 누구 책임이냐고!”

    나는 대답 대신 그저 한번 희미하게 웃어 보였을 뿐이다.

    동시에.

    ……파앗!

    새로운 홀로그램이 피난민들의 눈앞에 떴다.

    -이재웅 왔다감^^

    -ㅂㅅ몹

    -저는쓰레기입니다

    -이형근♡홍선표

    -나를 때려주세요

    -ㅋㅋㅋ

    -SEX

    -(똥 그림)

    -애인급구 010-99XX...

    .

    .

    그것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벌과 개미의 몸에 칼자국과 화상자국으로 새겨 놓은 ‘최초의 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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