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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09화 (709/1,000)
  • 709화 2차 대격변 (6)

    저레벨일 때의 자신이 저렙 몬스터를 잡는 풍경이 홀로그램으로 뜬다.

    어쩌다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냥 붕- 스쳐 지나가는 걸로 봐서는 딱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 환영이었다.

    유저들은 추억에 잠겨 옛날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계단을 크게 한 바퀴 돌아 한 층을 올라갈 때마다 환영들은 확실하게 레벨업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층 위로 올라가면 더 레벨업 한 자신이 더더욱 레벨이 높아진 몬스터를 잡는 광경.

    그렇게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때마다 환영 속 자신은 레벨업을 하며 현재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잡는 몬스터 역시도 바뀔 때마다 점점 더 크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와, 내가 점점 강해지네?”

    “아 맞아, 나 레벨 20 구간 때는 이러고 놀았었지.”

    “오, 위로 가면 그럼 내가 레벨 30이었을 시절도 있나?”

    ……그렇다면 이 탑의 맨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유저들은 기이한 열망과 호기심을 품은 채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도중에 중간중간 빨간 포션과 파란 포션이 가져다주는 추억의 맛을 느끼면서 말이다.

    ……층을 오르는 동안 유저들은 느꼈다.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에 잡던 몬스터들.

    벌과 개미에 쫓겨 다니면서도 잡템들을 열심히 모아 푼돈을 만들어 가던 그때 그 시절.

    작은 것 하나에도 웃고 울며 열심히 게임을 하던 자신의 옛 표정.

    유저들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점점 성장해가는 자신의 환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유저들의 표정은 굳어 갔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환영 속 자신의 모습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점점 닮아 간다.

    환영 속 유저들의 눈빛, 그리고 그것을 보는 유저들의 눈빛도 점점 바뀌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 레벨을 올린 유저들의 얼굴에서는 흥분의 열기가 가셨고 오랜 사투 끝에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난 뒤에도 시큰둥했다.

    마찬가지로 입가에 걸려 있던 흐뭇한 미소는 걷히고 대견하다는 시선 역시도 흔들린다.

    환영 속 사람들은 냉정하고 또 기계적이었다.

    잡은 몬스터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재빠르게 시체를 뒤지고는 쓸 만한 아이템이 없으면 바로 떠난다.

    치열했던 전투를 되짚으며 미처 채 꺼지지 않은 전투의 열기에 남은 흥분을 마저 느낀다거나 몬스터가 떨군 아이템을 모아 기념품을 만든다거나 하는 것도 일절 없었다.

    그저 빨리빨리 다음 레벨, 다음 단계로 넘어갈 뿐이다.

    어쩌다 아이템이 떨어지면 그것의 등급과 효율을 따진 뒤 바로 바닥에 버리거나 경매장에 던졌다.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면 선발대의 정보부터 찾아보고, 후기를 읽고, 좋지 않으면 거른다.

    처음 보는 몬스터를 발견하면 냉정하게 스탯과 경험치량, 드랍 아이템을 검색해 보고는 효율을 따져 판단한다.

    히든 퀘스트를 받으면 걸리는 시간과 보상을 견주어 보고는 거절, 혹은 스킵한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하면 걸린 시간과 드랍된 아이템, 보상 결과를 확인한 뒤 무미건조한 반응으로 자리를 뜬다.

    “……아. 확실히 저 레벨 구간에서부터 마음이 좀 변했던 것 같아.”

    “맞아. 고렙이 되고부터 게임에 대한 재미를 잘 못 느끼게 됐어. 아이템 팔아서 돈 벌려고만 했지.”

    “관성 때문에 플레이는 했지만 예전만큼 두근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

    “맞아. 비싼 아이템 얻으려고 노가다만 했었어. 쉬려고 게임을 켜던 게 쉬려고 게임을 끄는 것으로 변했으니.”

    “그냥 상위 티어 랭커들 따라서 아이템이랑 스킬 트리 짰지. 랭커들이 바꾸면 나도 따라 바꾸고.”

    몰랐던 던전, 몰랐던 몬스터를 보면 일단 덤벼 보고 죽어 가면서 배우던 모험은 이제 없다.

    미감정 아이템 하나에 울고 웃던 모험도 이제 없다.

    단순히 정보 검색 후 상위 티어 랭커들의 특성과 스탯, 아이템 트리를 따라가며 노가다를 하는 계산기들만 있을 뿐이다.

    유희가 작업으로, 플레이가 노가다로.

    이 던전은 투자시간 대비 산출량이 떨어져서 거르고~ 이 몬스터는 위험 부담이 있으니 거르고~ 이 메타는 랭커들이 하지 않는 메타이니 거르고~ 이 아이템은 비효율적이니 거르고~

    플레이 타임은 중요한 투자 재산으로 여겨졌고 모험이라고 하기도 뭣한 ‘작업’을 시작할지 말지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최대한 빨리, 강하게, 안전하게, 더 위로.

    독창적인 직업, 나만의 스킬트리, 개성 있는 룩, 한 몬스터만 잡는 장인.

    이 모든 것들은 ‘비효율(非效率)’이라는 이름 하나로 귀결되었다.

    독창적인 직업은 잡캐가 되었고 나만의 스킬트리는 겜알못이 되었으며 개성 있는 룩은 관종이 되었고 한 몬스터만 잡는 장인은 파티에 안 껴 준다.

    모험을 하지 않는 모험가라, 이 얼마나 ‘모순(矛盾)’적인가!

    유저들은 굳은 표정으로 점점 현재의 자신에 가까워지는 과거의 자신을 바라본다.

    어린이가 동심을 잃어 가는 것을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씁쓸하게 보이듯, 뉴비가 초심을 잃어 가는 것은 올드비의 시선에서 보면 씁쓸하다.

    그중에는 정말 큰 충격을 받은 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아닌데……나, 나는 처음부터 잘했는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성장 자체가 먼 과거의 일이 되면 사람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었다는 착각을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잘 탔다고 으레 착각하는 것처럼.

    “저건 내가 아닌데. 아냐, 내가 아냐! 나는 저렇게 퀘스트 일일이 찾아보지도 않았어! 단축키 지정해서! 그래! 애드온도 다 설정하고……! 근데 저건 뭐지!?”

    “내가 저 던전에 들어갔었다고!? 아, 아닌데? 분명 패스한 던전인데? 제법 매력적으로 생겼지만 파밍 효율이 극악이라 내가 분명 찾아보고 걸렀단 말이야!”

    “당황하면 백스텝부터 하는 게 뉴비 본능이라고 맨날 욕했었는데…나도 그랬었잖아!?”

    거기에 더 나아가면 아예 과거가 풍화되어 사라진 올드 게이머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자신 안의 감정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공허할 뿐이다.

    “뭐더라, 저 저렙 몬스터 이름……분명 수천 번 반복 레이드 뛰었는데…….”

    “기억이 안 나. 저 경비병들은 자체 피어가 없지 않나? 초입 구간이라 레벨도 10~15라서 피어 자체가…있었나……?”

    “어어? 내 옆에 붙어 있는 펫은 뭐지. 거미 모양 펫? 큐티튤라인가. 알긴 아는데. 아니, 내가 쓴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실력과 랭킹을 얻은 대신 과거의 자잘한 것을 모두 잃은 그들은 타인을 보는 낯선 감정으로 자신의 옛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피난민 유저들은 어느덧 탑의 상층부에 이르렀다.

    재생되는 환영들 역시 점점 강해져 현재의 그들을 거의 따라잡았다.

    바로 그때.

    “……어!?”

    여유가 생긴 피난민들 중 하나가 그동안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보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깜짝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유저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빼들어 나선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빙글빙글 올라오며 걸었던 삶의 계단.

    그 아래를 내려다보자 발아래 깔려 있는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

    저 아래 아주 작게 보이는 벌과 개미들, 그리고 그보다 위에 있던 거미나 새 등의 몬스터. 그리고 그보다 높은 곳에 있던 몬스터, 또 그보다 높은 곳에 있던…….

    지금까지 잡아 왔던 수많은 몬스터들의 환영이 밑에 모여 위를 쳐다보고 있다.

    그것들이 바로 지금껏 이렇게 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알게 모르게 딛고 올라왔던 발판들이었다.

    나 하나가 이 위치까지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을까.

    피난민들 중 몇몇은 심지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맞아, 나는 저 녀석들 덕분에 여기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거야. 그동안 잊고 있었어.”

    “허어… 내가 저렇게 많은 벌과 개미들을 죽였었던가? 참… 세월 쏜살같군.”

    “그동안 위만 보고 가느라 전혀 몰랐어. 밑에 저렇게 많은 것들이 있었을 줄은.”

    “하하, 그래 맞아. 저 녀석들과 하루 종일 치고받으며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샌가부터 한 대 툭 치면 죽는 녀석들이라며 무시하고 지나갔지.”

    “심심풀이로 다리를 찌르거나 날개에 구멍을 낸 적도 있었어. 쓰레기 취급하면서…… 한때는 못 잡아 전전긍긍하면서 날밤 새고 그랬던 몬스터인데.”

    추억, 아련함, 슬픔, 씁쓸함. 그리고 고마움.

    사람들은 다양한 심경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키사다 역시 그런 사람들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으음, 고된 여정을 거쳐서 그런가. 다들 감수성이 예민해졌네. ……나도 그렇고.’

    사실 평소였다면 ‘그럼 돼지고기 먹을 때도 돼지한테 고맙다고 하면서 먹나요?’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경험치 줘서 고맙다고 일일이 인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과거에 숙연하다.

    “…….”

    아키사다는 고개를 들어 탑의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흰 빛을 바라보았다.

    -<흰 용의 오르골> / 재료 / S+

    삶의 극한에 이른 자들은 으레 그동안 살아 왔던 전쟁 같은 삶을 반추해 보기 마련이다.

    -특성 ‘회고록(回顧錄)’ 사용 가능 (특수)

    ※환영은 환영일 뿐입니다

    흰 빛은 저 위에 있는 조개 모양의 아이템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옅은 선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아 악기류의 아이템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

    아키사다는 어쩐지 이 탑을 설계한 이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그때.

    …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탑이 옅게 한번 흔들렸다.

    당황한 피난민들 사이에서 정보에 밝은 몇몇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크, 큰일이다! 커뮤니티 최신글 보니 벌과 개미들도 북대륙을 넘었대!”

    “지금 검은 탑 1층을 공략 중이라더라!”

    “헉!? 방주 1층에 지금 막 구멍이 났대! 지금 벌과 개미들도 이리로 들어오고 있다나 봐!”

    그 말에 모든 피난민들의 표정이 공포에 질렸다.

    벌과 개미들에 의해 구멍이 난 곳은 1층이라 고층인 이곳과는 꽤나 거리가 멀지만… 벌레들의 엄청난 수와 진격 속도를 생각하면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탑의 상층부인지라 더 이상 도망칠 공간도 없었다.

    아키사다 역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팟!

    피난민들의 눈앞에 커다란 환영 하나가 나타난 것은 방주 1층의 문이 뚫렸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과 거의 동시였다.

    [여기까지 올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인물.

    홀로그램 속에서 등장한 그는 우아한 몸짓으로 피난민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내, 짧고도 충격적인 말을 지껄였다.

    [2차 대격변을 일으킨 범인은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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