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04화 (704/1,000)
  • 704화 2차 대격변 (1)

    아키사다 아야카. 그녀는 모범생답게 2차 대격변 공지가 뜨자마자 현실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게임 세계에 접속했다.

    그녀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본 광경은 그야말로 헉 소리 나오는 것이었다.

    종말. 아포칼립스.

    하늘은 온통 벌이요 땅은 온통 개미라.

    그 무엇도 이 재앙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 이것은 침공(侵攻), 정말로 침공이었다.

    적당히 아슬아슬하게 막을 수 있는 만큼의 몬스터들을 던져 주던 게이트 웨이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작정하고 플레이어들을 절멸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는 미친 확장팩.

    하지만 GM은 2차 대격변을 공지한 이후 별다른 입장 발표가 없었다.

    관계자들을 통해 듣기로는 예상치 못한 확장팩 추가 업데이트에 GM측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나?

    아키사다는 멍한 표정으로 벌과 개미의 세계를 바라본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린 뒤 마법 주문을 영창했다.

    콰콰콰콰쾅!

    6서클의 광역마법 8개가 서부전선에 떨어져 내렸다.

    커다란 흙벽과 철로 된 가시들이 솟아올라 개미떼의 진격을 막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우와 눈보라가 벌들을 얼리고 태운다.

    강력한 바람과 번식력이 강한 넝쿨식물, 떨어져 내리는 번개가 불특정 다수의 벌과 개미들을 마구 짓이기고 있었다.

    과연 일본 랭킹 1위를 지키는 마법사의 화력은 차원이 다른 것!

    서부전선은 아키사다 아야카 한 명의 힘으로도 지켜지고 있었다.

    ……한 3초 동안은 그랬다.

    아키사다 아야카가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벌과 개미들은 자꾸 자꾸 증식한다.

    턱없이 수가 불어난 벌레들은 대흙벽과 철 가시밭길을 넘어 서부전선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막아야 한다!’

    아키사다는 이를 악물었다.

    이 뒤에는 어머니의 도시 유토러스가 있다.

    이곳을 잃는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NPC들이 대피할 때까지 만큼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콰콰콰콰쾅!

    아키사다는 또다시 힘을 쥐어짜 광역 마법을 날렸다.

    모든 게임이 다 그렇다시피, 피격 범위가 넓은 마법은 마나 소모량도 크고 비효율적이다.

    그런 것들을 펑펑 날려대고 있으니 제아무리 6서클 마스터에 8개의 마법을 동시 캐스팅할 줄 아는 숙련도를 지녔다고 해도 마나샘이 오링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키사다는 마법사치고는 최대 마나 보유랑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녀가 정점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타고난 천재성으로 인한 마법 동시영창 능력과 빠른 상황판단력 때문이지 스탯 포인트 자체가 높은 축캐는 아니었으니까.

    결국 아키사다가 벌과 개미들에게 밀려나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아아.”

    아키사다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옆에서도 수많은 유저들이 벌과 개미떼에 뒤덮여 죽어 간다.

    만약 여기서 밀린다면 중부대륙은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아키사다의 앞으로.

    윙-

    벌과 개미떼가 달려들었다.

    아키사다는 죽음을 직감했다.

    …….

    바로 그 순간!

    퍽!

    아키사다의 얼굴로 날아드는 벌 한 마리를 걷어차는 묵직한 한 방이 있었다.

    “……?”

    아키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서 있다.

    방금 전, 아키사다에게 달려드는 벌에게 미들킥을 날린 이었다.

    그는 아키사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신 차려. 왜 맞설 생각을 해?”

    “……?”

    아키사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후드는 혀를 한번 쯧 차더니 고개를 돌렸다.

    “저길 봐.”

    아키사다는 검은 후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막 숲 하나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호수가 말라붙고 나무들이 죄다 갈려나가는 곳.

    “……!”

    그 풍경을 본 아키사다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숲이 실시간으로 파괴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광경은 지금까지 많이 봤으니까.

    아키사다가 놀란 이유는 그 숲에서 튀어나온 존재 때문이었다.

    [크-워어어어어억!]

    숲이 사라지자 원래 그 숲에서 군림하던 필드 보스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장갑암룡(裝甲巖龍)’

    깊은 땅 밑에서 지력에 의해 굳은 암석들을 비늘로 삼아 돌아다니는 거대 도마뱀이다.

    온몸을 단단한 돌과 끈적한 진흙으로 감싸고 있는데다가 위험등급 A+랭크에 올라있을 만큼 엄청난 신체능력을 지녔으니만큼 벌레들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키사다의 판단은 틀렸다.

    와기긱- 와기기기긱-

    벌과 개미들은 날카로운 턱으로 장갑암룡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자 우르르 몰려들어 장갑암룡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벌레의 공을 만들어 그 안에서 체온으로 쪄 죽일 셈이다.

    하지만 장갑암룡은 질척한 진흙밭에 뒹굴어 개미와 벌들을 털어냈다.

    그리고 몸의 절반을 진흙에 파묻고 몸의 딱딱한 부위만을 돌출한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벌레들은 절대 장갑암룡을 못 이길 텐데?”

    아키사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장갑암룡이 이 많은 벌레들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벌레들 역시 장갑암룡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검은 후드는 고개를 젓는다.

    아키사다의 말은 이번에도 틀렸다.

    위에에에에에엥-

    벌레들이 불길하게 준동한다.

    이윽고, 개미와 벌들은 진흙밭에 들어가 움직임이 둔해진 장갑암룡에게 또다시 달라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 모양을 만들지 않았다.

    …턱! …터억! …턱!

    하나같은 움직임으로 일제히 장갑암룡의 등 위로 타오른 것이다.

    […….]

    장갑암룡은 진흙에 몸을 묻은 채 버텼다.

    ……그러나.

    등 위로 타오르는 벌과 개미의 숫자가 만 단위가 넘어가자 그때부터는 괴로운지 조금씩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우욱! 그워어어억!]

    결국 장갑암룡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꿈틀거린다.

    하지만 계속해서 위로 달라붙고 기어오르는 벌과 개미들은 이미 장갑암룡의 등 위로 빌딩처럼 거대한 군체(群體)를 만들었다.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장갑암룡의 외피가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빠지직! 우지지직-

    그 뒤에 벌어진 결과는 끔찍했다.

    벌레들의 무게는 장갑암룡의 외피를 깬 것도 모자라 그대로 살을 파고들어 뼈를 부러트린 뒤 안의 내장들을 몽땅 짓이겨 버렸다.

    장갑암룡의 몸은 마치 커다란 망치에 관통당한 듯 구멍이 뻥 뚫렸고 그대로 으깨지는 신세가 되었다.

    “…….”

    아키사다는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검은 후드는 고개를 저었다.

    “힘으로 막으라고 만든 대격변이 아니야.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리자 서부전선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랭커들이 보인다.

    러시아의 트로츠키가 이끄는 러시아 랭커 연합.

    대만의 저우쯔위가 이끄는 대만 랭커 연합.

    중국의 장마오 쉰과 탕쯔이가 이끄는 중국 랭커 연합.

    그 외에도 많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빅리그의 영웅들이 모여 서부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전도 인류의 수명을 기껏해야 몇 분 정도 늘려놓았을 뿐이다.

    “…빌어먹을! 끝이 없군!”

    러시아의 트로츠키가 입에 물었던 시가를 뱉으며 말했다.

    가용 가능한 냉병기들은 모두 날이 무뎌졌고 열병기의 화력은 이미 예전에 식어 버렸다.

    벌레들의 습격은 플레이어고 NPC고 몬스터고를 가리지 않았다.

    아니, 피해량은 플레이어들이 압도적으로 컸다.

    수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벌과 개미들을 우습게 보고 맞섰기 때문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일부 나이 많은 NPC들, 그리고 용이나 악마 계열 몬스터들은 벌과 개미들을 보자마자 PTSD가 도진 듯 벌벌 떨며 도망쳐 버린다.

    맞설 생각 따위는 애초에 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이제 슬슬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아가고 있었다.

    <멸종위기지수>

    (Endangered index)

    인    간          99.9% (1급)

    리자드맨   99.7% (1급)

    오    크          99.8% (1급)

    인간, 리자드맨, 오크 모두 1급 멸종위기생물이 되었다.

    100%가 되면 멸종이다.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치솟고 있는 사망자들의 수, 그 하찮던 개미와 벌들이 이렇게 무시무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을 자체가 벌과 개미떼에 의해 점령당했기에 신전에서 부활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부활해 봐야 또 죽을 뿐이다.

    애초에 사망 패널티로 인해 접속도 하지 못하게 된 지금, 대륙 전체에 창궐하고 있는 이 벌과 개미들을 막을 존재는 없었다.

    대홍수. 그야말로 모든 생물을 멸종시키는 신의 심판!

    뉴스에서도 연일 실시간 속보로 때리고 있을 정도의 대참사에 당연히 모든 유저들 역시 난리가 났다.

    [현재 시각 기준으로 중부대륙의 요새인 ‘토치카(tochka)’가 벌과 개미 군단에게 함락당했다고 합니다. 토치카 요새는 서부전선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로서 몬스터 침공에 대항하고자 하는 플레이어 측의 의지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는데요…… 이번 참사로 인해…… 김태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또 속보입니다! 유토러스에 있었던 대규모 지하 벙커 ‘필박스(pillbox)’를 기억하십니까? 지금으로부터 1분 전 이 최후의 벙커가 개미 군단에게 함락당했다는…… 아앗! 또, 또 속보입니다! 서부전선 후면의 쉘터 32개에서부터 연락이 끊긴 지 3분, 장진혁 종군플레이어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전부 파괴된 것으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최후까지 항전하던 랭커들과 동대륙의 성채 ‘칼침의 탑’이 결국 함락되었습…… 이로서 결국 동대륙은 완전히 벌레들의 손아귀에 떨어지……]

    -야 이건 진짜 미쳤는데..;;;

    -벙커 쉘터 요새 성채 다 함락당하는구만...

    ↳아 대군락지대에서 사냥하다가 2차 대격변 메시지 뜨고 바로 죽어서 아직까지도 겜 접속 못하네..ㅠㅠㅠ

    ↳벌이랑 개미 클라스 오졌다...다시 봤어...

    -않이 보내도 좀 막을 수 있는 규모를 보내야 할 것 아니냐고!!!

    -아 똥망겜 밸런스 수준;;;

    ↳꼬접해

    ↳그렇다고 접진 못하겠는데...아 진짜 그래도 이건 아니지ㅡㅡ

    -랭커들 다 뭐함ㅡㅡ?

    ↳다 뒤짐ㅋㅋㅋ ㅅㄱ~

    -근데 저 벌이랑 개미 등에 낙서되어 있는 거 뭐냐? 누가 저기다 낙서함?

    -누가 좀 어떻게 막아봐!! 게임 망하겠어!!

    .

    .

    모든 사람들의 염원은 한결같았다.

    이대로 이 세계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 말이다.

    ……바로 그때.

    다소 특이한 의견 하나가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았지만 분명히 주목받고 있는, 아주 작은 여론의 흐름이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하지만 아직 살아있음이 분명한 극소수 접속자들의 증언.

    -북대륙...북대륙으로 가라...

    ↳거긴 날씨가 추워서 벌레들이 못 온다

    ↳눈보라가 무섭긴 해도 벌레 대홍수만큼 무섭겠냐?

    -그리고 결정적으로...거기에 가면...

    .

    .

    북대륙.

    아직 벌과 개미들이 점령하지 못한 유일한 땅.

    그곳은 피난민들조차 쉽사리 발길을 들일 수 없을 정도의 맹추위와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거의 폐쇄되다시피 한 지역이다.

    게다가 지금은 연초라 눈보라도 한층 더 거세졌을 시기.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은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피난민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이었다.

    -거기 가면 ‘방주’가 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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