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03화 (703/1,000)

703화 벌레의 왕 (3)

“나는 인간이 태어나기 오래 전,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시대, 지구가 아직은 불완전해서 인간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쥘 베른, 『지구 속 여행』 中-

*       *       *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접속해 있던 모든 유저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 하나가 떴다.

원래 긴급 돌발 퀘스트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거야 특수한 장소나 특수한 상황에 처한 몇몇 유저들에게만 일어나는 드문 일.

이처럼 월드맵 모든 곳에 있는 전 유저들에게 퀘스트가 뜨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유저들은 경악해야 했다.

-띠링!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현 시간부로 2차 대격변이 발발합니다>

<서대륙 ‘대군락지대’에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게이트의 위험등급은 ‘?’등급입니다>

과거 1차 대격변 때와 달리, 2차 대격변 때는 GM차원에서의 경고가 있었다.

-않이;; 대체 머임;;;

-뜬금없이 2차 대격변????

-누가 터트렸냐 또!!!!!

-나만 모르는데서 누가 또 뭔 사고를 친 거여!!!

-살떨리네...개뜬금 확장팩이라니

-갑분대격변 뭐냐ㅋㅋㅋ

-아 또 긴장빨게되네...ㅠㅠㅠ

.

.

여론은 시끌시끌했다.

2차 대격변의 메인 스토리는 몬스터들의 대규모 침공, 즉 게이트가 생성되고 유저들이 그것을 막아내어 대륙을 지키는 것이 주된 콘텐츠이다.

모든 유저들은 재빨리 서대륙으로 모여들었다.

침공해 올 몬스터의 종류가 무엇인지, 게이트의 크기가 얼마인지에 대해 바짝 긴장한 채 조사하면서.

……그리고 이내.

유저들은 웃어 버렸다.

-1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2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3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4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5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6차 웨이브 몬스터: 살육 벌(위험등급: D), 살육 개미(위험등급: D)

.

.

-뭐임ㅋㅋㅋ침공해 오는 게 살육 벌이랑 개미임??

-도랏네ㅋㅋㅋD급 몬스터가 침공이란다~

-아쿠 무셔워ㅎㅎㅎ너무 무서워서 숨어야겠네~

-쓰레기 몹들의 반란인가ㅋㅋㅋ

-나 혼자서도 막겠다ㅅㅂ

-광역마법 한 방 떨구면 끝일듯;;;

-딱봐도 개노잼 콘텐츠겠네~

-난 2차 대격변은 참여 안하고 걍 뛰던 레이드나 마저 뛸란다ㅋㅋ

-응~ 너무쉬워~ 안해~

.

.

공지에 뜬 상태창에서 습격 몬스터의 목록을 본 것이다.

유저들은 방심했다.

서대륙으로 급히 오던 몇몇은 목록을 확인하는 순간 김이 샜다며 오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진격 속도를 크게 늦추었다.

대부분은 큰 경각심 없이, 그저 호기심 정도로만 2차 대격변의 게이트에 접근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게이트(Gate).

차원과 차원을 잇는 거대한 대균열로서 이계(異界)에 그 뿌리가 닿아 있는 통로.

지면이 무너지며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게이트인 줄도 알지 못했다.

보통 커 봤자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르는 것이 게이트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대군락지대에 도착했을 때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시야를 꽉 채우는 거대한 흑빛, 무려 24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싱크홀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었다.

거의 영국 국토만 한 면적의 이 거대한 게이트는 대군락지대를 통째로 무너트리며 지면 아래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내, 그 밑에서 예고했던 대로의 몬스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홍수! 벌레들의 범람!

끔찍할 정도로 많은 수의 벌과 개미들이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하늘은 온통 벌떼로 뒤덮였고 땅은 온통 개미떼로 뒤덮였다.

유저들은 당황했다.

-어...?

-어어???

-야 이거 생각보다 좀 많지 않냐;;;?

-충해전술ㄷㄷㄷㄷ

-아니 이건 물량이 좀 사긴데...?

-않이 잠깐만...야 이건 좀 심상치 않다..?

-응 그래봐야 d급이야~

-천상계 랭커들 나오면 다 썰 듯ㅋㅋㅋ

.

.

칼을 휘둘러 개미를 베고 마법을 뿌려 벌을 태워 죽였다.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벌과 개미들의 숫자는 줄지 않는다.

벌레들이 주는 경험치나 아이템은 너무나도 적고 하찮은 것이었기에 유저들의 성장에는 하등 도움도 되지 않았다.

휘두르던 칼은 어느새 이가 빠졌고 퍼붓던 마법은 마나의 샘이 말라붙음과 동시에 사그라든다.

유저들은 그제야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나로 똘똘 뭉쳐 대항해도 어려울 판에 2차 대격변을 얕보던 이들이 빠져나가자 단합이 될 리 없었다.

유저들은 수많은 벌과 개미들의 파도에 뒤덮였다.

그것은 주변에 살던 고위 몬스터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근육질의 거인, 날개를 가진 도마뱀, 단단한 비늘로 무장하고 있는 뱀, 머리가 둘 달린 악귀 등등…….

난다긴다 하는 필드보스들 역시 씨가 마른다.

아무리 밟아 죽여도 계속해서 몰려드는 벌과 개미들.

그것들이 침으로 찌르고 입으로 물어뜯는 것도 무섭지만 우르르 달라붙어 벌레의 공 속에 갇히기라도 하면 벌레들의 체온 때문에 산 채로 쪄 죽게 된다.

꿀벌들은 말벌이 습격해 오면 여럿이 뭉쳐 말벌을 감싸 체온으로 덥혀 죽인다던가?

아무리 강한 플레이어나 몬스터라고 해도 벌레들의 파도에 일단 한 번 휩쓸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이었다.

벌과 개미들은 풀이란 풀은 죄다 갉아먹었고 물이란 물은 죄다 마셔 버렸다.

그렇게 서대륙의 밀림을 순식간에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며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중앙대륙을 침공해 왔다.

하지만 아직은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이때쯤 해서 천상계 탑 티어 랭커들에게도 비상령이 떨어졌다.

수많은 고렙 유저들이 저마다 화려한 기술과 강력한 무기를 뽐내며 벌과 개미의 웨이브를 막아 냈다.

수많은 세계랭커들의 활약으로 인해 벌과 개미의 웨이브는 일견 주춤하는 듯했다.

-캬 이래서 랭커 랭커 하는구나!

-랭커들 만세다!

-세계랭킹 100위들 선에서 정리될 듯?

-역시 대단위 마법이 짜세여~ㅋㅋㅋ

-랭커들 역공 가나요?

-벌레들 진원지까지 쭉쭉 밀어붙여라~~!!

-랭커들 지원사격 갑니다ㄱㄱㄱ

-저는 레벨이 낮으니 소모품 나눔이라도 감ㅋㅋㅋㅋ

-인류의 반격이다!!!!

.

.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천지를 가르는 참격과 온 세상을 불태울 듯한 마법도 대자연을 막아 낼 수는 없다.

하늘은 벌, 땅은 개미.

그것은 마치 대자연의 모습 그 자체, 세상 전체가 인간을 향해 덤벼드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거대한 심판 앞에서 인간의 능력과 노력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난다 긴다 하던 랭커들도 무기의 수명이 다하고 마나샘이 말라붙은 뒤 소모품까지 모두 떨어지자 일반 플레이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냉병기의 날이 무뎌지고 열병기의 온도가 식어 버릴 때쯤, 인류는 깨달았다.

2차 대격변은 그들이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겪어 왔던 그 어떠한 참사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것임을.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뒤에야, 살아남은 이들은 판단을 내렸다.

‘도망쳐야 한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이 대홍수는 그야말로 신이 보낸 것.

한낱 인간의 힘으로 이 물결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유저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의 뒤에는 필연적인 질문이 따라붙는다.

‘어디로?’

어디로 도망가야 벌레들의 범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늘은 벌이, 땅은 개미가 지배하고 있다.

유저들은 하늘과 땅이 없는 곳을 찾아 정신없이 달아났다.

-님들아! 유토러스 외곽에 벙커 있어요! 다들 그리로 피난ㄱㄱㄱ

↳유토러스 이미 쓸렸어 ㅂㅅ아! NPC들도 다 대피한 마당에 헛소문 퍼트리지마!

↳중앙대륙은 이미 가망이 없다...ㅅㄱ

-피난민 여러분들! 동대륙은 안전합니다! 동대륙 사막 Z구역 오아시스로 오세요!

↳ㅠㅠㅠ지금 오아시스 도착했는데 벌이랑 개미 천지인데요??

↳동대륙도 거의 초토화임...;;;;

↳이 글 올린 놈도 이미 뒤졌을 듯...▶◀

-ㅂㅅ들 거기 이미 털린지 오래임! 차라리 남대륙 폐가지대로 가라~ 거기가 빈집 많아서 숨을 곳 많음!

↳내가 지금 남대륙이야 이 ㅅㅂㅅㄲ야! 여기 개미 천지다!!!

↳남대륙 완전 먹혔어!! 하늘 보면 다 벌떼임ㅠㅠㅠㅠㅠ

↳남대륙이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가 벌레들도 제일 많음ㅅㅂ

-이젠 북대륙만이 답이다! 거긴 추워서 벌레도 못옴ㅋㅋ

↳문제는 추워서 나도 못감...ㅠㅠㅠ거기 지금 눈보라 시즌이잖아!!

↳어디가 안전한거야??? 제발 살려줘!!!

↳난 아들 딸이랑 게임 같이 한다고! 자식들 계정만이라도 지키고 싶어ㅠㅠㅠㅠ

-안전한 곳 없다. 서버 망했네ㅅㅂ..

.

.

……하지만 그런 곳은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 턱이 없었다.

2차 대격변 메시지가 뜬 순간을 기점으로 12시간 뒤.

인류는 패배했다.

전 대륙이 싹 밀려 버렸다.

겨우 반나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