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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02화 (702/1,000)
  • 702화 벌레의 왕 (2)

    나는 미친 듯이 뒤돌아 뛰었다.

    오래 전, 용과 악마보다도 훨씬 먼저 전 세계를 지배했던 두 전쟁군주가 본격적으로 대멸종의 전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윙윙윙윙윙윙-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가 천둥처럼 몰아친다. 슬라임 젤리로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동시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가 온 세상에 선전 포고를 합니다>

    <현 시점부터 살육 벌과 살육 개미의 개체수가 급증합니다>

    <1차 웨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왕의 동원령에 따라 벌레굴 깊숙한 곳에서부터 벌과 개미들이 우글우글 기어 나온다.

    리젠 속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빨라졌다.

    이윽고, 소돔과 고모라가 입에서 기이한 빛덩이를 토해 냈다.

    그리고 그 빛은 온 몸에 칼자국과 화상자국으로 낙서가 되어 있던 벌과 개미에게 각각 하나씩 깃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지상에서 돌아온 자식들에게.

    “……드디어 시작됐군.”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이를 악물고 뒤돌아 뛰었다.

    지금부터는 1분 1초가 다급했다.

    “서둘러! 지금부터 벌과 개미들이 이상증식을 할 거야! 저 상처 입은 벌과 개미들을 기준으로 5분마다 두 배로 늘어나니 빨리 여기서 도망가야 해!”

    열심히 뛰는 나를 보며 윤솔과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나를 따라오기는 하는데 굳이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뛰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5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고? 그러면 저 상처 입은 한 마리가 5분 뒤에는 두 마리, 두 마리가 5분 뒤에는 네 마리가 되는 건가? 그렇게 대단한 증식속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맞다. 어차피 벌과 개미들은 톡 치면 죽는 약한 몬스터가 아닌가. 대량으로 쓸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한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마리가 5분 후에는 2마리, 2마리가 5분 후에는 4마리야.”

    “…….”

    “그렇게 1시간이 지나면 처음엔 1마리였던 게 4,096마리가 돼.”

    “……!”

    “2시간 후면 16,777,216, 천 육백 칠십 칠만 칠천이백십육마리지.”

    “……!!”

    “거기서 15분만 더 지나도 1억 돌파야.”

    “……!!!”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설명을 계속했다.

    “3시간 뒤에는 1마리였던 것이 687억 마리가 돼. 4시간이 지났을 무렵에는 281조 마리가 되지.”

    지금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정말 답도 없다.

    1마리였던 것이 약 4.9*10^86, 즉49,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마리가 된다.

    이틀 뒤에는 2.4*10^173.

    삼 일이면 1.23*10^260.

    ……그렇다면 이 기세로 1년이 지나면?

    1.23*10^31644!

    게다가 벌과 개미가 각각 따로이기에 저 수치에 2를 곱해야 한다.

    결국 벌과 개미들의 수는 모든 대륙과 바다를 합친 것은 물론 밤하늘을 넘어 우주를 뚫고 결국에는 우주의 팽창속도를 아득히 앞지르는 속도로 많아질 것이다.

    그야말로 무한대나 다름없는 수!

    그리고 무한대의 벌과 개미가 차지하는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한 이 게임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

    세계관의 종말(終末).

    이것이 바로 ‘2차 대격변’이자 전 게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업데이트로 손꼽히는 확장팩인 것이다!

    “그야말로 코스믹 호러가 따로 없네.”

    “누미노제 그 자체로군.”

    윤솔과 드레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야 친구들도 2차 대격변의 공포를 여실히 느낀 듯하다.

    도대체 왜. 윌슨 총수가 게임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의 스케일로 확장팩을 내놓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1차 대격변 때와는 달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2차 대격변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5분 뒤, 온몸에 칼자국과 화상자국으로 낙서가 되어있던 벌과 개미가 각각 두 마리로 늘어났다.

    -이재웅 왔다감^^

    -ㅂㅅ몹

    -저는쓰레기입니다

    -이형근♡홍선표

    -나를 때려주세요

    -ㅋㅋㅋ

    -SEX

    -(똥 그림)

    -애인급구 010-99XX...

    .

    .

    다리와 날개가 멀쩡했지만 몸에 새겨져 있는 낙서들만큼은 그대로였다.

    모든 것들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가장 작고 약하며 천하고 보잘것없던 것.

    그것에서부터 모든 세상의 종말이 도래한다.

    그리고 증식하는 개미들과 별개로 우르르 몰려오는 벌과 개미들의 수 역시도 엄청났다.

    그것들은 눈 깜짝할 새에 불어났고 서로 서로 단단히 연대해 약한 몸을 보강한다.

    “…쳇!”

    드레이크가 화살을 쏴 봤지만.

    위이이이이잉- 빠각! 빠가가각!

    화살은 벌과 개미들의 날갯짓에 그 위력이 반감되었고 몇 겹으로 층을 만든 외골격의 벽을 얼마 뚫지 못하고 멈춰섰다.

    심지어 수많은 벌레들이 아래턱으로 화살을 찝어대는 통에 화살을 회수하지도 못했다.

    벌과 개미들은 어둠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신성불가침 방어막이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멸(滅)하리라!]

    소돔과 고모라가 자식들을 이끌고 준동하기 시작했다.

    1차 대격변이 천공섬의 추락으로 인한 ‘지형’의 대격변이었다면 2차 대격변은 벌과 개미의 이상증식으로 인한 ‘생태계’의 대격변이다.

    그 여파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어서 창해룡의 삼지창이 만들어내는 물보다도 더욱 빠르게 차오른다.

    태초의 지배종이 이제 본연의 위치를 찾고자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낱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뭐 없다.

    호다닥-

    나는 삼지창을 뒤로한 채 냅다 달렸다.

    “……부디 창해룡의 힘이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길.”

    푸른 용 버뮤다가 만들어 내는 바닷물은 소돔과 고모라의 추격을 아주 잠시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촤아아아악!

    목덜미가 싸늘하다.

    고개를 뒤로 돌리니 파도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보인다.

    어마어마하게 강맹한 참격이 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벌 여왕 소돔이 거대한 기병창을 들어 올려 내게 찌르기를 날린 것이다.

    그것은 바다를 둘로 갈라 버리며 곧장 나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나는 재빨리 마몬의 건틀릿과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화산도 뒤흔들어 분화시키는 힘으로 소돔의 창에 맞섰다.

    따-앙!

    무시무시한 충격, 나는 온 힘을 다해 보았지만 겨우 소돔의 창을 한 번 빗겨내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크윽!”

    손목이 박살나는 것 같다.

    벌레들이 빚어내는 소음 때문에 신경 싱크로율을 낮췄는데도 이 정도 통증이라니!

    소돔의 창을 받아내는 것은 나로서는 무리였다. 마몬 본인이 직접 망치를 들고 왔다면 또 모를까.

    그나마 크툴루 크라켄의 손목보호대가 아니었더라면 반동 데미지 때문에 족히 몇 초는 스턴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콰콰콰쾅!

    나는 손을 휘둘러 반사 데미지를 뿜어냈다.

    반동 때문에 에임이 정확하지 못했기에 내가 튕겨난 반사 데미지는 벌 여왕 소돔이 아니라 개미 여왕 고모라를 향해 날아갔다.

    [어림없지!]

    고모라는 성벽과도 같은 두 장의 방패로 내 반사 데미지를 막아 내 다시 나에게 쏘아 보냈다.

    그야말로 지옥의 핑퐁이다.

    근묵자흑 특성으로 살짝 반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 시점에서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나는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이래서는 끝이 없겠다! 빨리 플로이드의 무덤으로 들어가자고!”

    나는 이곳으로 들어올 때 통과했던 극도로 좁은 틈을 다시 찾아냈다.

    내가 또다시 날아오는 반사 데미지를 튕겨내고 여벌의 심장으로 회복하는 사이, 윤솔과 드레이크는 좁은 틈 안으로 들어간다.

    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

    어느새 엄청나게 불어난 벌과 개미들이 나를 포위했다.

    벌레들의 체온 때문에 열돔이 만들어져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몸에서 점액을 내뿜은 뒤 곧바로 플로이드의 무덤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벌과 개미들이 따라오기 어렵도록 그 좁은 틈 전체에 점액을 꽉 채워 뿌리며 지나갔다.

    고개를 들면 정수리가 천장에, 가슴이 바닥에, 왼쪽 어깨가 왼쪽 벽에, 오른쪽 어깨에 오른쪽 벽에 닿을 만큼 좁은 동굴이다.

    또 구불구불한데다가 워낙에 길어서 벌레들이 이 틈을 통과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폐소공포증이고 뭐고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좁고 협소하던 이 구멍이 이제는 역으로 우리를 구원할 동아줄이 되었다.

    그러나.

    …콰쾅!

    뒤흔들리는 동굴 벽면과 바닥은 내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우지지지지직!

    부수고 온다.

    소돔과 고모라가 플로이드의 무덤을 강제로 비틀어 열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빨리!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북대륙으로 되돌아간다!”

    내 말에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 포복 속도를 높였다.

    안 그래도 오면서 점액을 적당히 깔아 놓았기에 친구들의 탈출 속도는 나 못지않게 빨랐다.

    물론 뒤따라오면서 틈 전체에 꽉 들어찬 점액들을 파 내야 하는 벌레들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일이겠지만.

    어느덧, 우리는 벌레들의 추격에서 차츰차츰 멀어질 수 있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자식의 원수를 놓친 어머니의 광기어린 분노.

    지하대분묘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절규만이 과녁을 잃고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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