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병신과 머저리 (10)
<살육 벌 여왕 ‘소돔(סדום)’>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창을 뻗어 붉은 바다(紅海)를 갈랐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소돔- <元世記 10:19>
<살육 개미 여왕 ‘고모라(ועמורה)’>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방패를 뻗어 검은 산(黑山)을 세웠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고모라 <元世記 13:10>
무저갱보다 깊은 곳.
나락의 저변에서 두 여왕이 몸을 일으켰다.
단단한 외골격 중장갑과 거대한 독문병기.
외형은 아름다운 여인의 그것이나 뿜어내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흉폭한 군신(軍神) 그 자체이다.
그리고 두 전쟁군주의 출현과 동시에, 수없이 많은 벌과 개미들의 그들의 여왕을 섬기기 위해 바다처럼 모여들었다.
[…….]
소돔과 고모라, 벌과 개미의 여왕들은 자신의 몸에 묻은 바닷물을 불쾌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윙윙윙윙…
벌레들은 이내 날개들을 모아 바람을 일으켜 여왕의 젖은 몸을 말린다.
그리고 나머지 벌레들은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창해룡의 삼지창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삼지창은 파괴불가 아이템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기세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벌레들이 홍수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많은 벌과 개미들이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다가 뒤로 떠밀려간다.
허우적거리는 벌레들. 침수되는 굴.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불쾌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삼지창을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한편.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고정 S+급 몬스터가 한꺼번에 두 마리나 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아니, 한번 겪어 본 적은 있나.’
과거 ‘붉은 용 일족의 군주 용암룡 모르그마르’와 ‘폭식과 부패의 악마성좌 벨제붑’이 싸우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때는 두 몬스터가 서로를 적대시했었지.’
당시의 나는 눈치를 보다가 붉은 용과 파리 대왕이 맞붙어 싸우는 틈을 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눈앞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았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 모든 멸종의 어머니.
이들의 모습은 내가 일찍이 회귀 전의 지식에 의해 알고 있던 바와 같다.
하지만 딱 하나. 원래의 설정이랑 달라진 점이 있었다.
“…….”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원래의 설정을 떠올렸다.
먼 옛날, 과거의 과거, 아득히 멀었던 태초를 되짚어야 한다.
이 두 여왕의 근원을 알고자 함이라면 말이다.
지금의 두 지배종인 용과 악마, 그들은 지배종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각각 경쟁종이었던 거인과 천사를 꺾어야만 했다.
그들이 일으킨 종족전쟁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용과 악마는 승리했다.
그리고 현재. 용과 악마는 서로 유일한 지배종이 되기 위해 반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
용과 악마가 지배종이 되기 전.
천사와 거인이 아직 융성하던 시기보다도 더 전.
빛도 어둠의 개념조차도 확립되기 전, 태초의 세상에는 그 모든 종들을 아득히 초월하는 지배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벌과 개미였다.
거대한 대륙을 둘로 갈라 지배하던 벌과 개미들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유구한 세월에 걸쳐 서로 반목했고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그 양분(養分)으로 새로운 자식들을 낳아 기르며,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은 물려받은 원한과 의무가 된 증오로 또다시 대륙을 양분(兩分)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정점에는 위대한 두 전쟁군주인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다.
두 여왕 간에 벌어졌던 이 영원에 가까운 소모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 중재자가 나타나 그녀들을 설득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결국 중재자의 설득에 두 여왕은 휴전을 선언했고 각자 아주 긴 수면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이 세상에는 벌과 개미 외의 다른 생명체들이 태동할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이 짧은 여유로 인해 파생된 존재들 중 현재까지 무사히 살아남아 새로운 지배종의 위치에 오른 것이 바로 용과 악마였다.
그러니 현재의 일곱 용군주와 일곱 악마성좌조차 한 수 접어주는 태초의 두 지배종 여왕들을 만난 것은 현세의 끝을 살아가는 미물(微物), 한낱 인간(Player)으로서는 무한한 영광일 것이다.
……아, 근데 뭐가 이상하냐고?
“으음.”
나는 절로 치밀어 오르는 신음을 삼켰다.
예전에 붉은 용과 파리 대왕이 싸웠던 것처럼, 나는 소돔과 고모라가 서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설정 상 벌과 개미는 서로 앙숙 지간이기 때문이다.
회귀 전의 기억과 설정에도 분명 소돔과 고모라는 각각 벌 대군과 개미 대군을 이끌고 서로 전쟁을 벌였고 그 와중에 대륙의 생태계는 완전히 절단이 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벌 여왕 소돔과 개미 여왕 고모라는 서로를 마주본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대체 왜 안 싸우느냔 말이야!?’
나는 턱 밑으로 고인 식은땀을 떨궜다.
두 마리나 되는 고정 S+급 몬스터의 위압감에 짓눌린 덕에 다리가 후들거려 죽을 것 같았다.
세계의 멸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뚝 멈춰 버리자 나도, 그리고 윤솔과 드레이크도 당황했다.
“오면서 본 벽화가 이걸 뜻하는 거였구나. 근데 벽화 내용과 조금 다른걸?”
“맞다. 벽화 속에서는 두 여왕이 서로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지. 한데 지금은 왜 싸우지 않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아까 군단벌과 장군개미도 서로 싸우지 않았었는데…….”
그래, 나 역시 지금 그게 의문이었다.
그때.
나는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창에 주목했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저게 뭔 소리래?’
혹시 이 둘이 맞붙지 않는 이유가 이 설명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여왕의 태도를 살폈다.
바로 그때.
처음으로 두 여왕의 입이 열렸다.
[내 아들들아, 딸들아.]
두 여왕은 같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기에 대사의 대부분이 겹친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너희들의 머릿수가 왜 이렇게 적어졌느냐?]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동굴에 온통 꽉 차 있는 것이 벌과 개미인데 이 수가 적다니?
하지만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2차 대격변을 이미 겪어 본 나의 입장에서는 두 여왕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온 세상을 뒤덮었던 그 엄청난 숫자의 벌레들을 생각하면 여기 있는 것들은 정말 새 발의 피겠지.
하지만 그것은 지상에서의 이야기고, 현재 두 여왕은 지하대분묘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의 벌과 개미들은 지상에 올라가 있다.
오랜 세월동안 잠들어 있었던 두 여왕을 위한 영양소를 모아 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두 어머니는 그녀들의 자식들 대부분이 지상에 올라가 있고 플레이어들에 의해 가장 질 낮은 사냥감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여왕은 현재 자식들이 처한 상황을 모른다.
아니 벌과 개미라는 종 자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모른다.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난 그녀들은 자기들의 종이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가장 위에서 가장 아래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이냐? 왜 내 자식들이 이것뿐이 안 남았지?]
그러니 이렇게 의아해하고 있는 것이겠지.
“…….”
나는 눈치를 보다가 뒤로 슬쩍 빠졌다.
현재도 창해룡 버뮤다의 삼지창은 물을 펑펑 뿜어내고 있다.
찰랑-
어느덧 물이 발목까지 고여 들었다.
‘이제 슬슬 여기서 탈출할 각을 재야…….’
바로 그때.
내 생각을 뚝 끊어 버리는 이변이 발생했다.
그것은 아주 작고 초라하게,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일어났다.
뽈뽈뽈뽈……
저 멀리 어둠 속 구멍에서 아주 작고 미미하며 하잘 것 없는 것이 나타났다.
<살육 벌>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m
-덩치는 크지만 느린 벌.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높이 날 수도 없다.
양 앞다리와 꽁무니에 붙어 있는 송곳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살육 개미>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m
-덩치는 크지만 느린 개미.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빨리 뛸 수도 없다.
양 앞다리에 붙어 있는 방패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한낱 D급 몬스터.
이곳 동굴에 바글거리는 벌과 개미들 중 하나와 다를 것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동굴 속에 있던 것들보다도 유난히 작고 약했다.
더듬이는 끊어졌고 다리는 부러져 있다.
날개는 죄다 찢어져 너덜거렸고 몸 곳곳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아주 힘겹게, 두 개뿐이 남지 않은 다리로 몸을 질질 끌며 여기로 오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그 두 벌레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 녀석들은 과거 지상에서 저렙 플레이어들에 의해 괴롭힘 당하던 개체들이었다.
‘아 씨, 간지 안 나게. 빨리 레벨업해서 좀 멋있는 몬스터 잡아야지. 이 따위 너절한 것들 말고…….’
‘진짜 더럽게 많네, 이 쓰레기들은. 아아- 용이나 악마 같은 것 잡고 싶다!’
‘빨리 레벨 올려서 이딴 쓰레기 몹들 좀 졸업하고 싶다. 현질 좀 더 박아야지 뭐, 크크크-’
‘돈 모아서 더 돈 되는 몬스터 잡으러 가야지. 이딴 쓰레기들 말고.’
‘맞어, 이딴 쓰레기들이나 잡으려고 이 게임 한 거 아니니까.’
벌과 개미를 죽이며 투덜거리던 유저들.
리젠되면 죽이고, 또 리젠되면 또 죽이고.
어떤 유저들은 의무감에, 어떤 유저들은 재미로, 어떤 유저들은 짜증을 담아, 어떤 유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벌과 개미를 죽였다.
더듬이를 자르고 날개를 찢고 다리를 떼고… 어딜 봐도 경험치나 아이템을 얻기 위한 사냥은 아니었다.
그냥 재미삼아.
투쟁이나 사냥이 아닌 학대.
[…….]
어머니의 시선이 돌아온 자식을 향한다.
날개도 더듬이도 없고 다리도 두 쪽뿐이 안 남은 아들과 딸.
그리고 몸에는 불로 지져진 듯한 화상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자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두 팔을 뻗어 자식을 안아 올렸다.
이윽고.
어머니의 시선은 아들과 딸의 몸으로 향한다.
자식의 등 위에는 불로 지져진 화상자국들이 만들고 있는 글자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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