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99화 (699/1,000)
  • 699화 병신과 머저리 (9)

    오…오오오오오오!

    지하굴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절규는 모든 이들의 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뭐, 뭐지 이게?”

    “으음, 다양한 감정들이 엄청나게 밀려들어오는군.”

    그렇다.

    지금 굴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비통과 분노, 슬픔과 답답함, 지독하게 압축된 한(恨)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무언가이다.

    이윽고.

    두 개의 굴 밑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로 부글거리던 물은 이내 역으로 범람한다.

    안쪽의 막다른 곳까지 물이 다 찬 것이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양 갈래 동굴을 살폈다.

    이윽고, 내가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살육 벌>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크기: 1m

    -서식지: 전 대륙.

    -덩치는 크지만 느린 벌.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높이 날 수도 없다.

    양 앞다리와 꽁무니에 붙어 있는 송곳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살육 개미>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크기: 1m

    -서식지: 전 대륙.

    -덩치는 크지만 느린 개미.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빨리 뛸 수도 없다.

    양 앞다리에 붙어 있는 방패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두 종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나약한 D급 몬스터.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놈들의 ‘숫자’였다.

    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

    감히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벌과 개미들이 동굴 밑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으앗!?”

    윤솔과 드레이크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벌과 개미의 파도는 바닷물을 밀어내고 이쪽을 향해 범람해 온다.

    마치 벌레의 대홍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물러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

    우리는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 ……! ……! ……! ……! ……! ……! ……!

    셀 수도 없이 많은 날개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동굴 전체를 꽉 채워 진동시켰기 때문이다.

    “으아아! 고막이 터질 것 같아!”

    “엄청난 소음이군. 헬기 이륙도 이 정도는…….”

    나는 드레이크와 윤솔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싱크로율을 낮추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막을 찢을 듯 밀려드는 이 소음도 조금은 진정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귀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의 수준, 이에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대비책을 꺼냈다.

    -<츄츄의 슬라임 젤리> / 재료 / D

    그레이 시티의 명물 슬라임 젤리.

    슬라임으로 만든 젤리답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옛날 케이블에서 선전하던 ‘믹X 앤 픽X’처럼 다용도로 사용가능한 아이템.

    내가 슬라임 젤리를 꺼내들자 드레이크가 바로 납득했다.

    “귀마개로군!”

    그는 서둘러 슬라임 젤리를 잡으려 했지만 나는 손을 뻗어 제지했다.

    “기다려. 바로 귀에 넣는 건 안 돼.”

    “……?”

    “‘노이즈 캔슬링’ 알지?”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소음 제어).

    주로 헤드폰과 이어폰에 쓰는 용어로 외부 소음을 상쇄, 혹은 차단하는 기술을 말한다.

    청력은 한번 손상되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개발된 기술로 미군에서는 X리엠 같은 기업의 이어플러그나 귀마개를 보급하기도 하니 드레이크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곧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더 꺼냈다.

    -<갈팡질팡석> / 재료 / B

    항상 좌우로 진동하는 기묘한 돌.

    해에서 담금질되어 달에서 식은 뒤 세상을 향해 떨어진 혜성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달과 해의 인력을 모두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항상 좌우로 빠르게 진동한다.

    갈팡질팡석.

    B등급의 재료 아이템이지만 아무도 그 쓸모를 찾지 못해 경매장에 널린 아이템.

    나는 이걸 사전에 많이 준비해 뒀다.

    그리고 깎단으로 갈팡질팡석을 깎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거 보챈다고 좋은 귀마개가 나오나.”

    눈을 감은 것은 덤이다.

    나는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

    “B… Bb… A… Ab… G… Gb….”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오케이, G 플랫이었구만.”

    겉을 조금 깎은 갈팡질팡석을 그대로 슬라임젤리에 넣어 버렸다.

    우우우우우…

    처음엔 먹먹한 소리로 울리던 젤리가

    웅웅웅웅웅-!

    이내 세차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슬라임 젤리를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나누어 주었다.

    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것을 귀에 꽂았고 곧 탄성을 내질렀다.

    “엇! 뭐지! 귀가 엄청 편하다!”

    “어진! 이건 대체!”

    나도 귀에 슬라임 젤리를 꽂으며 대답했다.

    “단순히 귓구멍을 차폐하는, 그러니까 막는 종류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PNC(Passive Noise Cancellation)이라고 하지. 주로 쓰이는 것도 이 종류야. 하지만 이 기술의 단점은 가격이 싼 대신 소음 차단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손으로 귓구멍을 막거나 무엇으로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도 저 벌과 개미들의 소리엔 쉽게 벗어날 수 없어.”

    드레이크는 그제서야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겠다는 표정이다.

    “ANC(Active Noise Cancellation)이군! 나도 너무 오래 전이라 잊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가격이 있는 장비는 모두 그 기술을 쓰지.”

    “맞아. 외부 소음과 역 위상의 파동을 같은 시점에 쏘아내면 파동은 서로 상쇄되는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지.”

    “1930년대에 처음 개발된 기술 아닌가!”

    “잘 아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78년 BOS*에서였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당연하다! 원래는 비행기 조종사 같은 직업의 지속적인 소음을 줄이기 위해 나온 것이고, 현재는…….”

    그때, 윤솔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본다.

    “으아! 둘 다 그만하세요! 아니면 그냥 원래 슬라임 젤리를 주시던가요!”

    우리가 방금 시끄러웠나?

    내 표정을 읽었는지 윤솔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날갯짓 소리보다 훨씬 듣기 힘들었거든? 둘 다 투머치토커야!”

    “솔아…….”

    “미스 솔이, 아임 솔이…….”

    나는 드레이크에게 윙크하며 입에 검지를 가져다댔다.

    “쉿, 드레이크. 게임 안에서 ANC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고, 실제 레이드에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음향적 효과는 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자고.”

    “좋다. 어진. 사실은 말리지 않았다면, 공기와 마나가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로써 어떤 다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묻고 싶었지만 미스 솔이 그렇게까지 우리의 학구적 토론에 대해서 경기를 일으키니 어쩔 수 없군.”

    “나도 같은 마음이야. 이러한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게임을 ‘제대로 알고 플레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참 아쉽네.”

    “그렇지. 공식의 성립과 대입, 그리고 실전.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숙달되어야 진정한 고인물이 되는 것이지.”

    “혹시 그 골프 게임 알아? 변수가 지나치게 적어서 유저들이 공식을 완벽히 알아내 아예 파훼되어 버린…….”

    “아아아아! 안다! 팡……”

    뽁-

    보다 못한 윤솔이 우리들의 귀에서 슬라임 젤리를 뽑아 버렸다.

    “집중! 집중!”

    갑자기 들어온 큰 소음에 우리는 바닥을 굴렀다.

    “벌레들이 밀려오고 있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굿!”

    “아아, 맞아. 깜빡했네, 고마워.”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양갈래 동굴을 바라보았다.

    미친 듯이 밀려오고 있는 벌과 개미의 파도.

    ……하지만.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없이 바글거리는 벌과 개미의 물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두 개의 실루엣이 있었다.

    홍해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벌레의 바다.

    그리고 그 중심부로 드리워지는 긴 그림자.

    “……!”

    그 광경을 본 윤솔과 드레이크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분명 지하대분묘에 진입하면서 본 동굴 초입의 벽화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

    나 역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벽화에 그려져 있던 것은 온 세상을 뒤덮었던 벌과 개미의 대홍수.

    그리고 그것을 이끌던 두 명의 거대한 여인.

    나는 지금 그 벽화가 실시간으로 눈앞에 구현되는 것을 보고 있다.

    무저갱보다 더욱 더 깊은 곳에서 두 ‘여왕’이 눈을 떴다!

    우글거리는 살육 벌떼의 중심에서 한 여인이 모든 벌들의 존경과 사랑,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했다.

    <살육 벌 여왕 ‘소돔(סדום)’>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창을 뻗어 붉은 바다(紅海)를 갈랐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소돔- <元世記 10:19>

    이 세상 모든 살육 벌들의 어머니.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등 뒤에 달린 여섯 개의 다리와 날개, 그리고 결정적으로 맨 앞에 달린 두 개의 앞다리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기병창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전신을 붉은 중장갑으로 감싸 두른 그녀는 사자처럼 휘날리는 붉은 머릿결을 나부끼며 이곳 중앙 전장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역시나 숨 막히는 피어를 흩뿌리는 여자가 중앙 광장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글거리는 살육 개미떼의 중심에서 그녀는 모든 개미들의 존경과 사랑, 두려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살육 개미 여왕 ‘고모라(ועמורה)’>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3m

    -머나먼 대과거, 빛도 어둠도, 용도 거인도, 천사도 악마도 없던 시절. 태초의 지배종을 통솔하던 위대한 전쟁대군주가 있었다.

    여섯 자루의 방패를 뻗어 검은 산(黑山)을 세웠던 기적은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화책 속 깊은 곳에 묻혀 버렸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고통이 실로 중하니 이제 내가 올라가서 그 모든 취급과 행함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

    -고모라 <元世記 13:10>

    이 세상 모든 살육 개미들의 어머니.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등 뒤에 달린 여섯 개의 다리와 날개, 그리고 결정적으로 맨 앞에 달린 두 개의 앞다리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방패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성벽과도 같은 방패들로 전신을 무장한 그녀는 밤안개처럼 흩뿌려지는 검은 머릿결을 나부끼며 이곳 중앙 전장으로 올라왔다.

    “……!”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드디어 나타났다. 2차 대격변의 화신(化身)들이.

    세상 모든 것들의 멸종!

    바야흐로 세기말(世紀末)이 코앞으로 도래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