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98화 (698/1,000)

698화 병신과 머저리 (8)

모순(矛盾).

그것은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과 행동의 앞뒤가 서로 다름을 뜻한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전국시대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무기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시장에 서서 말하길 ‘이 방패를 보시오, 아주 견고하여 그 어떤 창이라도 다 막아 낸다오!’, ‘이번에는 이 창을 보시오! 아주 날카로워서 어떤 방패도 다 뚫어 버린다오!’라고 하며 물건을 팔았다.

그러자 한 행인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무기 상인은 말문이 막혀 어버버거리다가 그만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거지.”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를 응시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리는 여섯 개의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여섯 개의 방패라.

“이무모엇순이은지.”

이만한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제일 먼저 군단벌 크라브로를 도발했다.

“자, 원래 너희 사이도 별로 안 좋잖아? 벌이랑 개미 주제에 친한 척 하지 말고 덤벼 보라고.”

그러자 이내 여섯 개의 창끝이 나를 향하여 겨누어졌다.

알몸이라서 그런가 몸을 흔들어 어그로를 끄는 즉시 바로 바로 먹힌다.

퍼퍼퍼펑!

이윽고, 여섯 개의 창이 여섯 개의 방향에서 쏘아져 왔다.

바로 그때.

“어진! 이쪽으로!”

눈치 빠른 드레이크가 반대편에서 달려온다.

그린헬에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드레이크가 몬스터를 낚아오는 솜씨는 이제 가히 천하일품이다.

그의 뒤를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는 장군개미 포르미카를 보면 알 수 있다.

“드레이크!”

“어진!”

크로스!

나와 드레이크는 허공에서 서로를 향해 펄쩍 점프했다.

동시에.

…턱!

허공에서 서로의 손을 하이파이브 하듯 맞잡은 우리는 서로의 몸으로 서로의 몸에 반동을 걸며 뒤엉켰다.

쿵!

나와 드레이크가 그대로 지면에 뒹구는 순간.

콰콰콰콰쾅!

나를 추격해 오던 군단벌의 창과 장군개미의 방패가 한데 부딪치고 말았다.

…찌이이잉!

묵직한 충격파가 두 거대 충왕종의 몸을 파르르 떨리게 만든다.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리는 크라브로의 창과 모든 것을 막아 내는 포르미카의 방패가 부딪치는 순간.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풍이 일어 동굴 속의 물과 먼지들을 뒤로 싹 걷어 내 버렸다.

돌조각 하나 없이 매끈해진 동굴 바닥 위로 천장의 종유석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이내, 모순의 결과가 드러났다.

…뚝!

크라브로의 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두 동강 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포르미카의 방패 역시도 무사하지 못했다.

우지지지지직!

방패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균열이 생겨났고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파열되었다.

…쿵! …쿠쿵!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는 그 자리에서 육중한 몸을 바닥에 뉘였다.

여섯 개의 다리로 버둥거려 보았지만 이미 독문병기들은 완파되었고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반동 데미지와 상태이상 ‘스턴(stun)’이 이 두 거대한 충왕종을 바닥에 드러누운 채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벌레는 일단 배를 보인 시점에서 끝이라고 봐야지.”

나는 뒤집어진 채 버둥거리는 벌과 개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여전히 난감한 기색이었다.

“어진, 하지만 놈들의 외골격이 생각보다 두껍다. 딜을 박아 넣으려면 조금 힘들겠는데.”

“거기에 두 마리나 되니 화력을 집중하기도 좀 어렵겠고 말야.”

윤솔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이크의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때려서 잡는 것은 하수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마리의 벌레를 올려다보았다.

딱딱하고 두꺼운 외골격으로 무장하고 있는 군단벌과 장군개미.

뭐, 굳이 저 외골격 중장갑을 부수려면 부수지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두 마리를 동시에 처치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

“……그렇다면, 때리지 않고 잡는다.”

단단한 성을 공략하는 방법에는 꼭 공성병기로 성벽을 파괴하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창해룡 버뮤다의 창 ‘노틸러스’> / 양손무기 / S+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공격력 +1

-특성 ‘물의 근원’ 사용 가능 (특수)

-파괴불가 (특수)

세 개의 뿔이 달려 있는 삼지창.

뿔 하나하나는 나선무늬가 좌현으로 휘돌고 있는 배낙지조개의 껍데기를 닮았다.

창해룡 버뮤다를 잡고 얻었던 히든 피스이다.

하지만 이것을 본 윤솔과 드레이크는 어딘가 실망한 기색이었다.

“앗? 하지만 어진아, 이 창의 공격력은 1인걸?”

“파괴불가라고 해 봤자 공격력 1짜리 무기 아닌가?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친구들의 의문은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아이템을 떨군 창해룡 버뮤다의 설정을 모르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예전에 오즈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버뮤다의 푸른 비늘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어서 한 장이라도 떼어내 땅에 꽂아 놓으면 그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생겨난다고 하는 전설을 나는 너에게 절대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오? 그럼 창해룡의 비늘에서 물이 계속 무한대로 만들어진다는 거네?’

[크큭! 그래서 버뮤다가 잠들어 있는 곳은 언젠가 샘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 역시도 절대로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하핫! 어때. 궁금하지 인간!? 호기심에 괴로워해라!]

내 어깨 위에 올라앉은 오즈는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간. 창해룡 버뮤다가 있는 곳은 언젠가 깊은 바다로 변하게 되지.]

“그렇다면 놈의 힘이 깃들어 있는 이 창 역시도 마찬가지겠군?”

그렇다. 내가 노리고 있는 것은 이 삼지창에 붙어 있는 특성인 ‘물의 근원’!

창해룡 버뮤다의 핵심 특성이었다.

단단한 성벽을 가진 성은 무조건 부딪친다고 해서 공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직접 건드리지 않는 방식, 가령 ‘수공(水攻)’ 같은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

…퍼억!

나는 앞으로 달려가 삼지창을 바닥에 힘차게 꽂아 넣었다.

그러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콸콸콸콸콸콸콸콸-

세 개의 창극이 꽂힌 곳에서 푸른 물결들이 일렁이더니 이내 엄청난 기세로 물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이다!

[……!]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던 두 마리 충왕종 몬스터는 밀려오는 물결에 당황하여 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창은 계속해서 물을 뿜어낸다.

뿜어져 나온 물은 낮은 경사를 타고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가 기어 올라온 동굴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

……실로 엄청난 속도로.

“세상에.”

눈 깜짝할 사이에 공동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본 윤솔이 입을 딱 벌렸다.

“마치 소금을 내는 맷돌 전설을 보는 것 같아.”

과거 착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요술 맷돌을 손에 넣었다.

‘곡식 나와라’하고 맷돌을 돌리면 곡식이 나오고 ‘돈 나와라’하고 맷돌을 돌리면 돈이 나오는 신비한 맷돌이었다.

이를 질투한 욕심쟁이는 맷돌을 훔쳐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바다로 나아갔고 그 당시 귀한 물건이었던 소금을 얻기 위해 ‘소금 나와라’라는 소원을 빌며 맷돌을 돌렸다.

그 결과 엄청난 소금이 나와 배는 가라앉았고 욕심쟁이는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맷돌은 계속 돌아가며 소금을 내놓게 되어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펑펑펑펑!

지금도 삼지창에서는 물이 펑펑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끝없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소금 맷돌 전설이 생각날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다의 평균 염분 농도는 35‰이야. 해수 1kg에 소금이 35g 정도라는 거지. 전 세계 바닷물의 총 양은 13억 7천만 km^3이고 비중은 약 1t/m^2야. 대략적인 무게는 13억 7천만 km^3*1,000,000,000m^3/km^3=1.4*10^18톤이고.”

“?”

“바닷물 1kg에 소금 35g정도가 들어 있으니 전 세계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의 양은 대략 4.9*10^16톤이 되겠지? 소금 맷돌이 바다에 빠진 14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대략 600년 동안 이 정도 양의 소금이 생산되었다는 거야. 얼추 계산해 보면 1년당 81조 6666억 6666만 6666 톤의 소금이 생산된 것이지.”

“??”

“대충 1년에 82조 톤이라고 하면 365*24*60*60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초당 소금의 생산량은 2,589,633톤 정도 되겠군. 매 초마다 말이야.”

“???”

“대충 맷돌 1회전에 1kg의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치면 맷돌은 초당 2,589,633,000회라는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 되지. 보통 맷돌의 지름은 약 40cm, 그렇다면 둘레는 0.8π, 그렇다면 맷돌 손잡이가 1회전에 0.8π만큼 이동한다고 할 때 그 속도는 대략 6,508,457km/s… 빛보다 빠르지. 이건 물리학에 대한 도전이야.”

“????”

윤솔과 드레이크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나는 그저 씩 웃어 줄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 소금 맷돌은 없어도 게임 속에는 그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고. 저 삼지창을 봐!”

과연, 내 말대로 삼지창은 엄청난 속도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실의 물리법칙을 아득히 초월하는 이 기세라면 이곳을 금세 바다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는걸.

이윽고.

콸콸콸콸콸콸-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가 물결에 떠밀려 저 아래의 깊은 굴 바닥으로 쓸려 내려간다.

마치 개수대에 떠내려가는 벌레처럼 바둥거리면서.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띠링!

알림음이 떴다.

<지하대분묘 나락굴 ‘알 창고’에 물이 차오릅니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들이 고인물 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위의 알림음은 처음 듣지만 아래의 알림음은 그동안 심심찮게 들어왔던 것이다.

죽음룡 오즈,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미네르바의 올빼미 불사조,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등의 고정 S+급 몬스터를 잡았을 때마다 들려왔던 수많은 알림음들 중의 하나.

또한 머릿속에 회귀 전 함께 어울렸던 고인물들 간의 대화도 떠올랐다.

‘그런데 형님, 누님들. 고정 S+급 몬스터 중에 제일 까다로운 게 누군가요?’

‘너희들 설마 용과 악마만 논하는 거야? 2차 대격변 때 ‘두 전쟁군주’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벌써 잊었어? 그때 용도 악마도 숨도 못 쉬고 숨어 있던 거 기억 안 나?’

바로 그때!

그 모든 상념을 깨는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오!

지하굴 아득한 밑바닥, 나락과도 같은 저변에서 들려오는 절규.

그 비통에 가득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드디어 눈을 떴다.

2차 대격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대멸종의 어머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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