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7화 병신과 머저리 (7)
군단벌 ‘크라브로(crabro)’.
살육 벌의 정점(頂點), 최초의 살육 벌을 이 세상에 내놓은 태고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보다 더 지고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벌은 없을 것이다.
거대한 말벌의 몸, 다리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개의 관절은 하나하나가 마상창(馬上槍)처럼 거대하고 날카롭다.
앞다리를 이루는 두 개의 거대한 헤비 랜스(Heavy Lance)와 나머지 네 개의 다리를 이루는 라이트 랜스(Light Lance)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뚫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나 앞다리의 위협적인 헤비 렌스는 찌르고 베는 날이 아닌 오직 찌르기에만 통하는 송곳형의 촉으로 이루어졌다.
붉은 루비처럼 빛나는 두 눈알 속에는 파리 대왕 벨제붑과 마찬가지로 수억 개나 되는 안와들이 패여 있었다.
그리고 장군개미 ‘포르미카(formica)’ 역시 크라브로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포르미카는 기본적으로 살육 개미의 최상위종으로서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위엄 있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몸을 떠받치는 여섯 개의 다리는 모두 커다란 방패의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나 머리 부분의 커다란 방패, 툭 불거져 나온 두개골은 모든 열병기와 냉병기, 그 어떠한 공격이라도 되퉁겨낼 듯한 위용을 자랑한다.
역시나, 붉은 루비처럼 빛나는 두 눈알 속에는 파리 대왕 벨제붑과 마찬가지로 수억 개나 되는 안와들이 패여 있었다.
<군단벌 ‘크라브로(crabro)’> -등급: S / 특성: 맹독, 벌레, 군락, 혈족전생, 일침, 천원돌파, 연쇄살인, 연속살인, 대분화, 로얄코트
-서식지: 대군락지대 지하대분묘 나락골, 고기 삶는 밀림
-크기: 10m
-잊혀진 지 오래 된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의 충왕종(蟲王種).
여섯 자루의 장창으로 뚫지 못할 것이 없었으며 단일 개체로서의 무력은 위험등급 S급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장군개미 ‘포르미카(formica)’> -등급: S / 특성: 맹독, 벌레, 군락, 혈족전생, 앙버팀, 옹고집, 백전노장, 만근추, 대지진, 로얄코트
-서식지: 대군락지대 지하대분묘 나락골, 육중한 밀림
-크기: 10m
-잊혀진 지 오래 된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의 충왕종(蟲王種).
여섯 개의 방패로 막지 못할 것이 없었으며 단일 개체로서의 무력은 위험등급 S급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군단벌과 장군개미.
이것들은 드넓은 광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몸을 꿈틀거린다.
윙윙윙윙윙윙-
거대한 곤충이 날개를 비비는 소리.
그로 인해 만들어진 파동은 광장의 물과 먼지를 순식간에 쓸어가 버렸다.
“아아, 크라브로와 포르미카가 한 공간에 있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 두 녀석을 보니 회귀하기 전 과거의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
이 두 보스 몬스터는 로얄블러드 길드를 이끌고 있는 세계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가 전 세계적으로 위명을 떨치게 된 계기이다.
최초 발견지는 2차 대격변 발발 이후 각각 서부밀림의 고기 삶는 밀림과 육중한 밀림.
이후 발견된 지 불과 1시간 만에 항구도시 아크레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그 지점을 통과해 중부대륙까지 밀고 들어왔다.
살육 벌과 살육 개미, 각각 두 세력에 속해 있는 정통파 전투원으로 멸종의 어머니 휘하의 직속 행동대장이기도 하다.
참고로 내가 회귀하기 전, 튜더가 이끄는 로얄블러드 길드에게 막히기 전까지 저 두 놈이 살해한 플레이어들의 수는 여섯 자릿수를 가볍게 넘어가는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런 놈들이 한 공간에 둘이나 포진해 있다 이거지?”
나는 자세를 낮추고 눈앞의 거대 벌과 개미를 마주했다.
한때 플레이어들의 공포, 대격변의 화신이었던 두 놈과 겨루게 되자 감개가 무량하다.
……하지만!
“너희 둘은 대격변에서 설 자리가 없을 거다.”
골치 아픈 놈들이니만큼 반드시 이곳 지하에 발을 묶어둬야 한다.
지상으로 올려 보내게 되면 그 순간부터 답도 없다.
퍼펑!
나는 바로 레이드를 개시했다.
군단벌 크라브로가 나를 향해 창을 찔러 들어온다.
“군단벌의 강점은 강력한 한 방 데미지, 그리고 단점은…….”
나는 클로즈 베타 맵에서 잔뜩 주워 먹은 민첩의 돌 때문에 한층 더 빨라져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상창 찌르기를 피한 나는 그 궤적을 그대로 거슬러 타올라 갔고 이내 크라브로의 하복부 공간을 장악했다.
“전체 스탯에 비해 유난히 약한 방어력 정도일까나!”
군단벌 크라브로는 머리와 가슴, 배를 연결하는 연결부위의 중장갑이 얄팍해서 물리 데미지에 취약하다.
그러니 이 부분만 제대로 노려준다면 ‘부위 파괴’ 기술로 놈을 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악!
나의 깎단은 단단하고 우둘투둘한 방패에 의해 가로막혔다.
“……!?”
장군개미 포르미카가 가운뎃다리의 방패를 뻗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가 경악했다.
“어어? 개미와 벌은 앙숙인데, 협조를 한다고?”
하지만 이런 변수쯤은 허용 가능하다.
나는 재빨리 깎단을 뒤로 물리고 그 자리를 피했다.
…콰쾅!
군단벌의 창이 날아들어 내가 있던 자리를 완파해 놓았다.
위이이이잉-
개미와 벌이 나를 향해 거대한 몸뚱이를 기울인다.
그 무엇도 뚫어 버리는 창과 그 무엇도 막아 내는 방패가 나를 압박해 조이고 있었다.
그때.
[포-애애앵!]
앞으로 용맹하게 나서는 벌레 전사가 여기에 하나 더.
쥬딜로페가 눈을 부릅뜨고 양 손을 허리에 얹은 채 볼과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다.
“…뭘 하려고?”
내가 묻자 쥬딜로페는 자신만만하게 자기의 병사들을 가리킨다.
파리와 풍뎅이, 그리고 나.
이만한 벌레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으니만큼 눈앞에 있는 저 군단벌과 장군개미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호애애!]
이윽고, 쥬딜로페는 앙증맞은 손바닥을 펴고는 그 위에 소복하게 쌓인 포자를 입으로 후 불어 날려보냈다.
폴폴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간 포자는 거대한 군단벌과 장군개미의 몸에 살포시 뿌려졌다.
[……?]
[……?]
물론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후애앵…]
쥬딜로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어트린다.
윤솔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저렇게 큰 벌레들은 포자로 몸 전체를 뒤덮어 버려야 할 걸? 국소부위에만 뿌리는 건 별 소용이 없어 보이네.”
[호애앵? 호? 포애앵?]
“뭐? 어떻게 저렇게 큰 녀석의 몸을 다 덮어 버릴 수 있냐고? 글쎄… 엄청 큰 대포로 포자를 쏘아 보낸다거나… 아무래도 무리겠다, 그렇게 큰 대포가 있을 리 없으니.”
[…….]
윤솔의 말에 쥬딜로페는 뭔가를 골똘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고민할 틈이 없었다.
…콰콰쾅!
군단벌의 창이 동굴 벽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가 박힌다.
가로막는 게 무엇이든지 관통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기세.
장군개미의 방패 역시도 무시무시한 둔기였다.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지는 중장갑 방패는 어지간한 공성병기를 훌쩍 뛰어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쳇!”
드레이크는 쇠뇌 두 발을 연달아 발사하던 끝에 화살이 떨어졌음을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차라라라라락-
자석 기능이 있는 화살통으로 화살들을 회수해 보았지만 장군개미의 방패가 워낙 단단해서인지 화살들은 꽤 많이 상해 있었다.
“배드엔딩의 외골격과 불카노스를 섞어서 만든 화살인데도 이 모양인가, 어지간한 냉병기는 거의 먹히지도 않겠군.”
드레이크의 말마따나 장군개미의 방패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아직 군단벌의 창에는 안 맞아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장군개미의 방어력이 숨 막히는 만큼 군단벌의 공격력도 엇비슷한 수준에 있겠지.
그 생각을 하면 나조차도 오싹 소름이 돋는다.
심지어 나는 회귀 전, 한 나라를 대표하는 탑 티어급 천상계 랭커들이 군단벌 크라브로의 마상창 끝에 휴게소 소떡소떡처럼 꿰어 있는 것을 직접 봤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연쇄살인과 연속살인, 백전노장 특성 스택이 누적되어 있지 않아서 해 볼 만한 수준이네.’
‘연쇄살인’은 적을 죽인 수만큼 물리공격력이 증가하는 특성, 그리고 ‘연속살인’은 상대를 죽이고 난 뒤 일정 시간 안에 다음 적을 죽였을 경우 물리공격력이 증가하는 특성이다.
또한 ‘백전노장’은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방어력과 체력이 증가하는 특성으로 모두 이 두 거대 충왕종 몬스터의 공략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 특성들이이었다.
회귀하기 전과 달리 지금 만난 군단벌 크라브로와 장군개미 포르미카는 이 누적 특성들로 인한 특전이 0이니만큼 상대하기가 그렇게까지 까다롭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원래 지상에서는 대립했어야 할 이 두 몬스터가 어째서인지 지하에서는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파캉! 쿵!
내 공격은 번번이 장군개미 포르미카의 방패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반면 군단벌 크라브로는 점점 빠른 속도로 나를 압박해 온다.
공격은 군단벌이 맡고 방어는 장군개미가 맡으니 공방일체가 거의 완벽했다.
콰지지지직!
크라브로의 창이 뒤의 벽에 부딪쳤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었고 동굴 내부의 종유석이란 종유석은 모두 떨어져 내렸다.
…우르르릉!
지층(地層) 하나가 그대로 관통되는 듯한 충격에 지형이 통째로 뒤틀린다.
드레이크와 윤솔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어진! 두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 같다!”
“맞아! 벌의 창과 개미의 방패가 너무 강해! 공방일체가 거의 완벽하잖아! 그나마 속도가 느려서 망정이지.”
친구들의 말이 맞다.
벌이 찔러 오는 창은 성벽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고 개미가 막아 내는 방패는 산사태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그러나, 어떤 것에든 약점은 있는 법!
나는 벌의 창을 피하고 개미의 방패에 튕겨 나오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나긋하게 물었다.
“너희들 ‘모순(矛盾)’이라는 말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