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96화 (696/1,000)
  • 696화 병신과 머저리 (6)

    -띠링!

    <히든 던전 ‘전쟁군주의 지하대분묘(地下大墳墓)’를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

    .

    오른쪽 뺨이 바닥에, 왼쪽 뺨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좁고 협소한 바위굴.

    나는 이것을 보고 생각했다.

    ‘찾았다. 플로이드의 무덤.’

    사실 이 좁디좁은 틈이 플로이드의 무덤이라 불리게 된 계기는 실제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

    1900년대 초반, 플로이드 콜린스라는 동굴탐사가가 좁은 동굴 틈에 갇혀 결국 빠져나가지 못했던 사고가 있었는데 수많은 굴에 플로이드의 무덤이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은 바로 이 이유에서이다.

    그를 추모하며 기리려는 목적 외에도 그 좁은 굴이 얼마나 극악한지를 나타내기 위함인 것도 있다.

    나는 그 좁은 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어 보았다.

    차가운 암벽은 나를 전혀 환영하지 않는다.

    벽의 귀퉁이가 부스러지며 생긴 흰 가루들이 어깨를 까끌까끌 긁고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기보다는 구멍에 낑긴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바닥에 오른쪽 뺨이, 천장에 왼쪽 뺨이 닿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볼살이 짓눌리며 입술이 붕어의 그것처럼 툭 튀어나온다.

    좁다. 진짜 좁다.

    크라켄을 잡고 얻은 틈 특성이 아니었더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빛도 전혀 들지 않아 구멍 속은 그야말로 완전한 암흑천지였다.

    솔직히 알림음이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맵의 일부인지도 몰랐겠지.

    일반인들이었다면 아마 눈 뜨고도 던전 입구를 발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슬쩍 눈알을 굴려 상태창 옆의 시간을 보았다.

    어슴푸레하게나마 여명이 비쳐 올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꽁꽁 휘감아 조이고 있는 이 가짜 밤은 도무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장 몇 센티미터 앞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우리는 계속 굼뱅이처럼 좁은 굴속을 파고들어갔다.

    지금까지 구태여 집중하지 않았던, 시각을 제외한 수많은 감각들이 더욱 더 예민해진다.

    청각, 촉각, 후각, 심지어 미각까지.

    동굴 벽에 금속제 아이템이 긁히는 소리, 차가운 물에 젖은 천이 달라붙는 느낌, 먼지나 석회수의 냄새, 그리고 입술로 흘러들어가는 땀의 찝찔한 맛.

    “으아아, 이 틈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야? ……너무 무서워.”

    “빠져나갈 수 있기는 한 건가? 여기서 끼면 거의 캐릭터 삭제행이로군. 구조대도 못 올 테니.”

    뒤에서 윤솔과 드레이크가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려온다.

    레이드 때면 과묵해지는 이 둘이 앓는 소리를 낼 만큼 이 굴은 좁고도 험난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걱정 마. 이것은 구멍이 아니라 통로야. 끝은 있어.”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맞은편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면 가라(If it blows, it goes).’

    동굴탐사가들의 조언은 게임 속에서도 물론 유효하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좁은 틈을 기었다.

    때로는 서서 뒤통수와 이마를 동시에 눌러오는 좁은 틈 사이를 게걸음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그렇게 십 수 미터를 기어들어갔고 ㄱ자로 꺾여 있는 통로를 구불구불 빠져나갔다.

    아니, 빠져나갔다기보다는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나 좁은 공간에 물까지 고여 있어서 몇 번인가 숨을 참아야 했다.

    꾸르르륵…

    그냥 평지에서 물에 들어가는 것과 몸 하나가 겨우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굴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그 압박감의 정도가 다르다.

    심해의 아득한 수압에 짓눌렸던 경험이 있어서 겨우겨우 버텨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용기를 내야 했다.

    심지어 이 물웅덩이 구역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아무리 무모하고 용감한 이들이라고 해도 이 동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온 이들이라면 여기에서 전진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숨을 참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동안 나를 믿어 의심치 않고 따라왔던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들어가야 해.”

    “으음, 이거 환청은 아니겠지?”

    “응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거 맞아. 계속 가자고 친구들.”

    맨 후미에 있던 드레이크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진짜 나인지 되묻는다.

    아마도 극한의 폐소감이 만들어내는 환청 비스무리한 것을 겪고 있는 모양.

    하기야 이 코스는 인간의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시험하는 과정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궁극체 몬스터가 그렇듯,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두 극한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레이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하물며 이 세계를 가장 크게 뒤바꿀 2차 대격변을 일으키고자 하는 입장에서야 더더욱 말이다.

    “…….”

    나 역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좁아터진 암반층의 균열을 파고들었다.

    마치 태초부터 있었던 고대의 무한한 암흑의 틈바구니로 파고드는 느낌, 산 채로 파묻혀 화석이 되어가는 고대의 생물이 느꼈을 감각이 이런 것일까?

    아득한 공포가 그 어떠한 압력보다도 무겁게 다가온다.

    짓눌러지는 것을 넘어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던 굴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세하게 좁아지고 있어 그것을 눈치 챘을 무렵에는 온몸이 동굴에 꽉 끼어 있어서 더더욱 공포스럽다.

    내 몸뚱아리 하나 비집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암흑 속에, 그 지저의 무저갱 속에, 그 단단한 태고의 암반 속에 갇혀 홀로 고독하게 죽어가야 하는 감각!

    “……물론 나는 틈 특성이 있어서 괜찮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뭐 아무튼, 내가 이렇게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앞에서 잘 가고 있으니 뒤따라오는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공포감을 버리고 힘을 낸다.

    이윽고, 어둠 너머 통로 반대편에서 바람이 웅웅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시원해진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가 오기 쉽게끔 점액을 뿜어내며 계속해서 앞으로 꿈틀꿈틀 나아갔다.

    그때.

    “……!”

    나는 기분 나쁜 냄새를 맡았다.

    악취.

    그것은 바람에 실려 저 앞에서부터 스멀스멀 다가온다.

    어딘가 구릿하고 약간은 고소하면서도 살짝 비린 냄새.

    그것은 건조한 바람에 섞여와 콧속에 진득하게 버무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말라죽은 곤충 특유의 냄새였다.

    ‘여름방학 때 곤충채집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냄새를 알지.’

    벌레의 송장.

    곤충, 특히나 풍뎅이류가 죽은 채로 바짝 마르면 주로 이런 냄새를 풍긴다.

    잠자리나 메뚜기류의 시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가끔 살아 있는 벌레에게서도 이런 냄새가 날 때가 있는데 몸집이 커다란 갑충의 배나 관절 부분에서 유독 진하게 나는 냄새이기도 하다.

    “우으… 기분 나쁜 냄새야.”

    [웅앵…]

    윤솔은 셔츠 자락으로 코를 막은 채 앞으로 기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쥬딜로페 역시 이 냄새가 싫은지 더듬이로 코를 막고 있었다.

    이윽고.

    …펑!

    나는 구멍 바깥으로 몸을 빼냈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텅 빈 공동의 바닥으로 떨어져야 했다.

    “오, 드디어 끝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빈 동굴을 둘러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아래에서부터 불어 올라온다.

    드넓은 광장에는 이빨 같은 종유석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벽에는 정체모를 고대 괴수의 뼈가 화석이 된 채 툭 불거져 나와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띠링!

    <히든 던전 ‘전쟁군주의 지하대분묘(地下大墳墓) 나락골(奈落抇)’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

    .

    더욱 더 깊은 곳에 도달하였다는 알림음이 뜬다.

    지하대분묘 나락골.

    나는 녹색 야광봉을 ㄱ자로 꺾은 뒤 이곳의 심층부를 비추어 보았다.

    눈앞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나 있었다.

    물이 있었다가 말라붙은 것처럼 보이는 웅덩이 앞에 아치형 모양의 동굴이 하나, 그 오른편 절벽 중앙에 육각형 모양으로 뚫린 동굴이 둘.

    “오! 여기는 되게 넓다! 이제 폐소공포에서 해방인 거야!?”

    “호오. 갈림길인가? 드디어 이 어둠도 끝이로군.”

    약간 뒤늦게 따라온 윤솔과 드레이크가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이르다.

    “맞아. 이제부터 좁은 길 때문에 고생할 필요는 없어.”

    내 말에 야광봉만큼이나 환하게 밝아지는 두 친구들의 표정.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이제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지.”

    그 말에 윤솔과 드레이크의 표정에서 미소가 걷혔다.

    척하면 척, 내 말 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쿵! …쿵! …쿵!

    위이이이이이잉!

    저 아래쪽, 두 갈래 길에 가득 고여 넘실거리는 어둠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땅이 울리는 소리, 공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는 소리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띠링!

    알림음이 떴다.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전쟁군주의 지하대분묘’를 지키는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떴습니다!]

    [‘함대(艦隊)’ 계급의 군단장들이 광장으로 올라옵니다!]

    .

    .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깎단을 빗겨 든 채 갈림길 앞에 섰다.

    녹빛으로 물든 광장에 긴 그림자 두 개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원래 흑막(黑幕)은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법.

    그런 흑막을 더욱 빛나게 해 줄 페이크 보스(Fake Boss), 중간지대의 괴물은 어느 무대에나 항상 존재한다.

    이윽고.

    끼긱- 끼기긱!

    묵직한 중장갑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대멸종의 어머니(Mother of All Mass Extinctions)’를 지키는 아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전쟁군주(The Two Warlords)의 충실한 가신이자 이곳 광장을 지키는 수문장.

    훗날 멸종의 계보를 기록할 사서(史書)에 최단 시간 내에 가장 빈번하게 이름을 올리게 될 두 마리의 지배종.

    그 흉명이 온 대륙과 바다를 진동시켜 용과 악마마저 덜덜 떨게 만들 정도였던 두 군단장.

    그러나 그 정도의 힘과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한낱 중간 보스에 머물러 있는 불가해의 존재.

    ‘크라브로(crabro)’와,

    ‘포르미카(formica)’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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