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병신과 머저리 (4)
몬스터의 위험등급이 일정 임계를 넘어가게 되면 그들의 외형은 대체로 거대해진다.
그리고 그 거대해진 덩치는 인간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흉측함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몬스터들 중에서도 그 외형이 기괴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종족이 바로 식물종 몬스터들이다.
지금 전장에 난입해 든 몬스터들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폭발열매 ‘기름코코넛’> -등급: A+ / 특성: 풀, 맹독, 하수인, 잠복, 변온, 살금살금, 흙장난, 자폭, 유폭
-서식지: 그린헬 초입
-크기: 12m
-굵은 야자나무 위에 달린 열매가 언제나 목마름을 달래 주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당신과 당신 주변을 불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허공에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다.
만약 심한 갈증에 코코넛을 따려 한다면 그것의 겉면에 혹시 화가 난 사람의 얼굴 표정이 새겨져 있지는 않은지 꼭 확인해 보고 따야 할 일이다.
<교활한 식인뿌리 추격자> -등급: A+ / 특성: 풀, 맹독, 하수인, 잠복, 흙장난, 뺑소니, 킬 체인, 연쇄살인
-서식지: 그린헬 습지
-크기: 32m
-녹색 지옥에서도 유난히 위험한 구역을 굳이 꼽자면 그곳은 볕이 들지 않고 습한 곳이다.
그곳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생물이 살고 있기 때문.
식물이 평화롭고 온화하다는 선입견은 이 식물이 뿌리에 주렁주렁 휘감고 있는 뼈다귀들을 보는 즉시 깨어질 것이다.
이 기분 나쁜 뿌리는 늘 굶주려 있으며 길 잃은 동물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즉시 촉수를 뻗어 휘감아 죽인다.
상대가 도망간다면 (햇빛이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는 광기와 집요함을 보인다.
<융해끈끈이 ‘바디워시’> -등급: A+ / 특성: 풀, 맹독, 하수인, 잠복, 흙장난, 과식, 역류성 식도염
-서식지: 그린헬 ‘볕 드는 곳’
-크기: 10m
-끈끈한 입을 쩍 벌려 움직이는 것들을 삼켜버린다.
수술과 암술에서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그것에서는 지독하게도 쓴 맛이 나며 한번 접촉하는 순간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일단 달라붙게 한 먹잇감은 천천히 잎사귀로 휘감아 공처럼 감싼 뒤 그 안에서 녹여 먹는다.
먹고자 하는 본능만이 이 생물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기이며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먹이활동을 계속하다가 가끔 배가 터져 스스로 죽기도 하는 모양.
<고대 늪 도마뱀> -등급: A+ / 특성: 용, 야수, 하수인, 고속재생, 백전노장, 맹독, 역병, 변온, 지진
-서식지: 그린헬 ‘세계수의 뿌리’, 거인국
-크기: 18m
-발톱과 침에 해로운 세균을 디글디글 배양하고 있는 거대 도마뱀.
늪에 몸을 반쯤 파묻고 몇 날 며칠을 멍하니 있다 보면 몸에 이끼와 넝쿨이 껴 썩은 통나무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일단 먹잇감을 발견하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늪 밖으로 튀어나와 상대방을 물고 늪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채식주의자 크로커다일> -등급: A+ / 특성: 야수, 하수인, 파충류, 싸움광, 고속재생, 백전노장, 변온, 와류, 채식주의자
-서식지: 그린헬 야영지, 거인국
-크기: 15m
-평소 식물밖에 먹지 못해 신경이 늘 날카로워져 있는 맹수. 어쩌다 고기를 먹게 될 기회가 생기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린헬’의 반대편 숲 ‘레드헬’에 서식하는 ‘육식주의자 엘리게이터’와는 앙숙 관계이다.
지금 대군락지대로 몰려온 몬스터들은 약 다섯 종.
전부 다 그린헬 안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녀석들로 공략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희귀종들로만 제대로 모였다.
이 정도 엔트리라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던 천상계 랭커들도 버거워할 수준.
벌과 개미를 잡던 쪼렙 플레이어들이 견딜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아아아악! 살려 줘!”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폭발열매는 커다란 뿌리 두 줄기를 번갈아가며 발처럼 쿵쾅거렸고 그럴 때마다 넓적한 야자잎 밑에서 수류탄과 같은 폭발력을 가진 코코넛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주변이 불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교활한 식인뿌리 추격자는 이름 그대로 교활하게 덤불과 흙더미 밑에 숨어 플레이어들을 추격한다.
땅 밑을 파고들어와 발목을 낚아채고 그대로 흙 아래로 끌려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경악해야 했다.
융해끈끈이는 도망치던 이들이 그 존재를 가장 마지막에 알아챈 몬스터였다.
가만히 있어서 그냥 지형의 일부인 줄 알았던 것이 패인, 눈썰미 부족한 이부터 차례차례 헛된 죽음을 맞이한다.
고대 늪 도마뱀과 채식주의자 크로커다일은 둘 다 녹색 비늘을 가진 파충류로 공룡이 절로 연상될 만큼 커다란 덩치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번 날뛸 때마다 최소 다섯 명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그 커다란 아가리 안으로 꿀떡꿀떡 넘어가는 것으로 보아 놈들은 전투가 아니라 ‘식사’를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저렙 고렙을 가리지 않고 모든 플레이어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라인업.
“으아아아! 고인물이 경고할 때 떠났어야 했어!”
“조디악 이 새개끼!”
“제발 살려 줘!”
아까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하던 대머리 녀석은 채식주의자 크로커다일의 아가리에 물려 허공으로 딸려 올라갔다.
콰직-
날카로운 이빨이 갑옷을 부수고 그 안의 부드러운 것들을 왕창 으깨놓는 소리.
주변으로 골드와 아이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괴물을 상대로 방어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지.”
지금도 시시각각 포위망은 좁혀지고 있다.
전 방위를 둘러싸고 먹이활동을 하는 이 괴물들은 신나게 유저들을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그 구석은 바로 내가 있는 방향이다.
“고인물 씨! 도와주세요!”
결국 유저들은 내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흘끗 돌려 대군락지대 저편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날뛰고 있는 그린헬의 몬스터들은 대군락지대에 있는 벌과 개미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흡사 무서운 것을 대하듯, 설사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떨떠름한 기색으로 주춤주춤 물러날 뿐이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때, 한 유저가 내게 말했다.
“제발요 고인물 씨! 저 여기서 죽으면 템 다 떨궈요! 내일 거래처 사장님이랑 중요한 레이드 약속도 있는데 접속불가 패널티라도 받으면 신용거래에 문제도 생기고…… 그, 그래! 저 몬스터들 잡아 주시면 두당 천만 골드 드릴게요! 어때요!?”
게임 레벨은 낮은데 현실 레벨은 높은 이였다.
나는 이 지킬 것 많은 가엾은 중생의 부탁들 들어주기로 했다.
“앞으로 개미나 벌 학대하지 마세요.”
“……네?”
내가 어깨를 툭 치며 한 말에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안 잡을 거면 괴롭히지 말라고요. 뭐 문신을 새기네 다리를 떼네 이런 것.”
“아, 예! 예예! 알겠습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유저들이 머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움직였다.
…꽈악!
거꾸로 쥐었던 깎단을 제대로 쥐고.
* * *
이윽고,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다.
나는 폭발열매의 열매들을 모조리 추수해 버렸고 식인뿌리의 뿌리들을 전부 지상의 바위에 매듭지어 버렸으며 융해끈끈이의 끈끈이에 점액을 덮어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늪 도마뱀과 채식주의자 악어를 서로 싸움 붙여 버렸다.
결국 죽이지 않고도 몬스터 전원을 리타이어 시킨 셈이다.
레이드를 뛰어 잡는다면 족히 2시간 이상은 걸렸겠지만 무력화시키는 거야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자 맨 처음 내게 목숨을 애걸했던 유저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왜 몬스터들을 죽이지 않으시죠?”
나는 그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돈 낸다는 사람이 당신 하나밖에 없잖아요.”
“……네?”
“다들 묻어 가는 거 아닙니까, 당신에게. 나는 당신만 여길 뜬다면 이 몬스터들을 다시 풀어 놓을 겁니다. 그리고 얼핏 들었는데 조디악의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도와주기 싫어서요.”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앞다투어 돈을 모아 건네는 이들도 있었고 약삭빠르게 죽어라 도망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돈을 낸 이들을 한 장소로 모이게 했고 그들을 안전한 방향으로 도망시켰다.
그리고 돈도 안 내고 안전을 먹튀한 이들을 향해, 잡아 놓았던 몬스터들을 도로 풀어 주었다.
왜인지 아까부터 이 녀석들을 잡기 싫었던 차였는데 잘 됐다 싶다.
[캬-아아아아악!]
[시싯! 시시싯!]
[그르르르……]
몬스터들은 나를 피해 슬슬 도망가는 한편 먼저 달아났던 플레이어들을 찾아 재빠르게 그린헬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흠, 이것으로 해결.”
나는 픽 웃었다.
벌과 개미들의 몸에 담뱃불로 문신을 새기던 놈들, 그리고 그것을 낄낄 웃으며 방관하던 놈들에게 나름대로 작게나마 복수를 해 준 셈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꽤 큰 금액을 바치고 그 대가로 안전을 산 이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숲 너머로 사라진다.
강자에게는 참 정중한 태도들이었다.
“다음 웨이브 오기 전에 빨리들 가세요.”
뭐, 다음 웨이브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모든 이들이 싹 사라진 것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바스락!
그제야 풀숲에서 드레이크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윙크를 날리는 드레이크.
어째 낚시를 하는 솜씨가 날로 늘어나는 것 같다.
몬스터를 상대로나 플레이어를 상대로나 말이다.
그때.
“어진아, 저기…….”
윤솔이 흙무덤 저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흙무덤 위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
그곳에는 한 마리의 벌과 개미가 있었다.
잘려나간 더듬이, 떨어져 나간 다리, 멀어 버린 눈, 화상과 흉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몸.
쪼렙부터 고렙까지. 모든 인간들의 장난감, 희롱거리가 되었었던 이 두 벌레는 지치고 상처입은 몸으로 흙무덤을 넘어 어디론가 향한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것도 잊은 채, 서로가 서로의 몸을 부축하며, 앞으로 앞으로.
[……호애애앵.]
쥬딜로페가 그 모습을 보며 큰 눈망울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씁쓸한 표정으로 흙무덤 너머 두 벌레들을 바라본다.
“…….”
이윽고, 나는 뒤돌아서 두 벌레들을 등졌다.
그리고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무어라 딱히 정의해서 말하기 힘든 이 감정을 짤막한 한 마디로 일축했다.
“‘우리도’ 가자, 갈 길이 멀어.”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