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화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한 준비물들 (1)
2026년의 새해가 밝았다.
한국에서 제일 큰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1:54/조회 3/추천 0/댓글 0
얘들아 북대륙이 먼가 심상치 않다;;
하루에도 수만 개씩 올라오는 뻘글들 중 하나.
당연히 조회수도 별로 없고 추천수는 더 없다.
댓글 수도 0개로 무관심 그 자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1:54/조회 3/추천 0/댓글 0
얘들아 북대륙이 먼가 심상치 않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1:55/조회 10/추천 0/댓글 0
얘들아 북대륙이 먼가 심상치 않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1:56/조회 1/추천 0/댓글 0
얘들아 북대륙이 먼가 심상치 않다;;
.
.
똑같은 내용이 1분 단위로 게시판을 도배하자 슬슬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2:14/조회 125/추천 0/댓글 8
얘들아 북대륙이 먼가 심상치 않다;;
-갤에 니가 전세 냈냐 쉬벨레마~
-싸장님~ 어데 도배 왔십니꺼?
-알바 뭐하냐. 알바 자냐?
↳야짤은 금방 자르던데 ㄹㅇ 어그로는 그냥 두는거 보소;;
-얘북먼심 빌런 ㄷㄷㄷ
-니 집안사정도 심상치 않음. 뷰웅신아. 도배질 좀 적당히 해.
-북한 또 핵실험함?
-휴먼 미쳤습니까?
마침내 도배한 게시글의 수가 300개에 육박하고, 게시판의 모든 이용자가 그의 글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른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일반]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2:26/조회 817/추천 467/ 댓글 7
야 너네 요즘 북대륙 가냐???
-매크로 아니었네 ㅋㅋㅋㅋㅋㅋ 이 새벽에 도배하는 니 인생이 레전드다
-이거 물어보려고 도배한 거냐? 너도 참 대단한 새끼다
-북대륙 넘 레벨제한이 높아서 잘 안감;;
↳네다쪼. 그 정도는 아닙니다.
-북대륙 가혹한 설산만 넘으면 그냥저냥 파사할만함ㅇㅇ
-종종 감. 왜?
-꾸준글 추천준다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이피 124.91은 얼굴에 철갑이라도 두른 듯 계속해서 게시판을 도배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조회수가 1천을 넘었을 때, 그는 다시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
[HIT]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2:42/조회 1,495/추천 90/댓글 10
않이...내가 이번에 북대륙 좀 깊숙하게 들어가려고 했거든? 그래서 설산 넘어서 얼음평원 넘어서 좀 안쪽으로 진짜 깊숙하게 들어갔단 말야???
근데 거기서 이상한 거 봄.
-작작하라고 진짜...라고 하려고 했는데 뭐냐 이건?
-네 다음 자랑글;;
↳뭐가 자랑이야?
↳자기 북대륙 깊숙한 곳에서 사냥한다~ 나 그럴만한 레벨 된다~ 이거아님?
↳북대륙 요즘 장비만 잘 갖추면 누구나 감ㅋㅋㅋ어느정도 쪼렙쉨이길래 열폭이냐?
-북대륙 관련 게시글 아까부터 자주 올라오네? 왜 먼일있냐??
-뭐 봤는데ㅂㅅ아 말을해;;;
-사람을 빡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선생님 제발 당신의 인생을 사십쇼
-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봤는데?
그리고 몇 분 뒤.
-띠링!
사진 한 장이 업로드 되었다.
[HIT]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2:44/조회 2,875/추천 191/댓글 54
[첨부파일 1개]
-헐 이거 뭐냐????
↳????
↳?????
↳????
↳???
↳??
↳?
.
.
그것은 게임 내부에서 촬영한 스크린샷이었다.
스크린 샷의 내용은 간단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시야, 북대륙에서도 꽤나 깊숙한 곳인지 주변에는 온통 눈과 얼음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파르고 험준한 협곡과 거대한 얼음바위, 드넓은 설원의 끝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눈과 얼음, 바람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흰 세계를 뚫고 위로 우뚝 솟구쳐 오른 검은 것.
그것은 흡사 탑(塔)처럼 보였다.
옆에 보이는 산맥의 크기를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 틀림없었다.
[HIT]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2:44/조회 4,275/추천 289/댓글 72
늘 그랬듯 눈보라 뚫고 북대륙 넘어가는데...먼가 이상한게 보여서 찍어봤다.
진짜 이거 뭐냐??
-새로운 던전인가??
↳던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데?
↳거의 새로운 맵 수준;;
-이거 주작임ㅋㅋㅋ내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길 지나다니면서 사냥했는데 이런거 없었음ㅋㅋㅋㅋ
↳몇 개월 전이래매;;
↳저런 큰 건축물이 그럼 하루아침에 생겨나냐? 당연히 합성이지ㅡㅡ
-이거 합성 아닌거같은데??뽀샵흔적이 없다
-주작임. 내가 이 길 자주 지나다니는 npc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탑 본 적 없단다
↳나도 친한 npc한테 물어봤는데 걔는 봤다던데? 하루아침에 탑이 솟아나 있어서 기겁했다고...;;
↳헐? 나도 지금 그말듣고 다시 물어보고 온 참이다...그 npc도 봤다네...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다고...
.
.
댓글들이 슬슬 점화된다.
조회수가 엄청난 속도로 오르고 댓글들의 토론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직접 탑을 보러 간 이들까지 등장했다.
[HIT] <북대륙 근황이라는 놈 봐라>
ㅇㅇ(302.19)/2026.01.01./00:03:01/조회 9,875/추천 891/댓글 199
[첨부파일 1개]
레벨이 딸려서 먼 곳에서 스샷만 찍어왔다...진짜 있네ㄷㄷㄷ
-먼가 이상한데?? 던전이나 신규 맵이 추가된 건가?
↳그 정도면 아무리 GM이 방치형이라고 해도 공지 한번 띄울 법한데?
-뭐야 저거 진짜 주작 아님??
↳ㅇㅇ아님. 나도 봄. 날씨가 너무 나빠서 멀리서밖에 안보였지만ㅋㅋ
-혹시 누가 건설해놓은 거 아닐까?
↳ㄴㄴ그러면 맵 변경 감지돼서 24시간 뒤에 사라지게 됨
↳저거 벌써 며칠째 그대로 있다는데? NPC들 말 들어보면...
-탑 실제로 보면 진짜 겁나 크다.눈보라가 너무 세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만 가봤는데 그래도 한눈에 다 안들어옴.
↳구라좀작작치세요님아;;
↳진짜임. 인증 有
↳헐 진짜네ㅈㅅㅈㅅ 아니 근데 탑이 진짜 얼마나 큰거임???
-저런게 하루만에 뚝딱 생겨났다고???
.
.
댓글창이 뜨거워질 만도 하다.
하루아침에 북대륙에 솟아난 정체불명의 검은 탑.
그것은 GM이 추가한 것인지 자연발생한 것인지 유저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넓이로는 몇 개의 성채를 합친 것보다도 넓고 높기로는 그 끝이 하늘에 가 닿을 정도로 크고 광대하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때.
또 다시 글이 올라왔다.
아이피 124.91의 유동닉이 또다시 새 글을 올린 것이다.
[HIT]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3:02/조회 15,875/추천 778/댓글 195
[첨부파일 1개]
얘들아 지금 탑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ㄷㄷㄷ 첨부파일 봐라...
치솟는 조회수, 뜨거운 관심.
한 익명 아이디가 올린 새로운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공유된다.
사진은 또다시 게임 내부의 스크린 샷, 찍혀 있는 것은 전과 동일했다.
흰 눈과 얼음, 그리고 흐릿하게 찍혀있는 검은 탑.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탑의 밑부분에 희미하지만 사람의 형체 하나가 찍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 작게 찍혀서 몇 번이나 고화질로 확대를 하고 나서야 그것이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람이 누구냐는 의문이 쇄도하자, 글쓴이는 짧은 게시글을 올렸다.
[HIT] <북대륙 근황.jpg>
ㅇㅇ(124.91)/2026.01.01./00:03:11/조회 27,121/추천 1088/댓글 877
혹시나 고소당할까봐 힌트만 준다. 그는 이 날씨에도 알몸이었다...
그 뒤로 수많은 비슷한 게시글들이 각기 다른 유저들에 의해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나도 북대륙 가서 사진 찍었다ㄷㄷㄷ
-아 근데 눈보라 너무 세서 일정 거리까지밖에는 접근이 힘듬;;
-요즘 북대륙 날씨 한창 안좋을때인데.. 날 좀 풀리면 접근해봐야지~
-나는 동영상 찍었다! 칼업뎃한다!
-진짜 탑이 생겨났네???헐랭방구
-그리고 근처에 사람도 있음;;;누구지? 탑 만든 사람인가?
-누구겠음..이 날씨에도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딱 한명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있네ㅋㅋㅋㅋ
.
.
바로 고인물!
늘 기상천외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폭풍의 핵심!
그의 등장에 유저들은 저마다 기대와 불안, 추측과 토론을 벌이며 그의 행보에 주목한다.
-몬가...몬가 일어나고 있음...
-고인물 횽 거기서 뭐해????
-먼가 또 꾸미고 있는듯ㅋㅋㅋ
-저 날씨에 알몸,,, 고인물 당신의 냉기저항력은 대체;;;
-이 역대급 한파도 이겨버리다니...뜨거운 남자ㄷㄷㄷ...
-분석 간다. 저곳은 기후와 지형이 워낙 가혹해서 사람이 별로 없는 북대륙 중에서도 워낙 극한으로 추운 지역이라 유동인구 유난히 적다. 아무래도 저기서 뭔가 비밀실험을 하는 모양...
-ㅇㅇ이거맞음. 저 구역은 몬스터들도 레벨이 높고 사나워서 랭커들도 진입이 쉽지 않음.
-날씨라도 안 좋은 날에는 거의 폐쇄되는 구역이니 확실히 일을 도모하기에 좋지~
-고인물이 또 뭔가를 하려 한다, 대비하라 덜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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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많고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은 거대한 게임 커뮤니티.
몇 분 사이에도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며 그 전의 것들은 획획 묻힌다.
고인물이 만드는 ‘북대륙의 검은 탑’ 사건은 이런 격변의 흐름들 속에서 일부 사람들에 의해 짧게나마 왁자지껄 회자되었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