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87화 (687/1,000)

687화 정상에서 기다릴게 (7)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익숙한 알림음.

나는 무통증 협곡 외곽에서 조용히 로그인했다.

고개를 돌려 협곡 아래를 보니 내가 항아리 마라톤을 했던 높은 암벽에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밀지 마요!”

“차례차례 올라가!”

“나도! 나도 도전할 거야!”

마치 만리장성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시상식에서의 내 우승 소감 발표 이후 이 암벽등반 마라톤 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 어차피 몇 년 뒤면 등산 명소가 될 곳이긴 하지. 전문 셰르파들도 생기고.’

나는 눈을 감고 잠시 회귀하기 전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이 산을 올라가고 있노라면 닳고 닳은 등산 고인물들이 등산복을 입고 막걸리를 마시며 껄껄 웃고 있곤 했지.

‘헤이! 거기! 유! 유! 컴! 컴! 이리 컴! 와서 막걸리 한잔 해! 어른이 따라 주면 땡큐해야지 땡큐! 옳치 자자 돌아와~요~ 동백~섬에~ 우리아들이 이번에 서울대를 갔는데~~’

‘어어 뭐?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구? 아이구~ 금방이에요^^ 실 거리로 한 2,400미터만 더 올라가면 돼~ 총각~’

‘항아리 마라톤 참가요? 아, 셰르파 서비스요? 물론 되죠, 네네. 돈만 주시면 정상까지 슝- 모셔다 드립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제부터는 부부 등반객은 받지 않고 있거든요, 치정문제가 너무 많이 생겨서…….’

지금이야 물론 험난한 난이도 때문에 에베레스트 취급을 받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인물들에 의해 정복당해 동네 뒷산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인터넷 창을 열어 뉴스 기사들을 살폈다.

[기사] 초인기 스트리머 고인물, 대회 우승 후 사랑고백!? “당신에게 이 우승컵을 바친다.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화제의 그녀는 대체 누구? <바로보기☜>

[사진] 항아리 게임에서 MVP 트로피를 차지한 고인물(본명:이어진)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다.

[기사]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돌아와 줘.” 고인물 발언 일파만파, 한국 최고의 스트리머 장가가나!?

[사진] 항아리 게임의 우승 장면, 달에 착륙한 고인물 승리의 V사인~

[기사] 지난 00일 열린 마라톤 대회의 시상식장에서…… 우승 소감을 밝힌 이모씨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이 연일 화제에 올라…… 누리꾼들은 ‘사랑을 누구에게 바친 것이냐’, ‘어떤 여자인지 너무 궁금하다.’, ‘남자일 수도 있지 않냐?’, ‘누군지는 몰라도 부럽고 질투 나고 불쌍하다’, ‘나는 누군지 알겠다’, ‘바로 나야 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간만에 옷을 입고 시상식에 오른 이모 씨의 애절한 눈빛, 여심 저격!

[기사] 베일에 감추어진 고인물의 ‘그녀’는 누구? 관계자 曰: 뎀걸 H씨, 걸그룹 N의 리더 P씨, 같은 대회 참가자이자 외국인인 A씨 유력.

[사진] 고인물의 ‘그녀’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 네티즌 수사대들이 빅 데이터로 추론한 결과값으로 현역 인기 걸그룹 멤버부터 프로게이머, 방송인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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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달린 댓글>

-그곳에고인물: 고인물 형ㅠㅠㅠ어케 날 버리고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날 수가 이써! 넘행..

-별님두개: 저 이제 진급해서 별님세개됐어양~>0< 당신이 미필일 때 알았어야 했는데...

-이블라인: 않이;; 나도 모르는 새에 애인을 만들다니! 배신감 무엇?

-이등별: 원한다. 더 많은 정보. 더욱 더 힘세고 강한 정보!

-누워서보자: 뎀걸 홍영화, 프로게이머 아키사다 아야카, 걸그룹은 니아의 박보연인가??

-뇌섹남: 근데 그냥 냉정하게 따져서...같이 완주한 사람들한테 애정표현한거 아님?

-마실물: 나도 열애설 같지는 않은데;;

-삼편잡가: 나도 저 대회 참가해서 완주해봤는데...고인물 씨 심리 이해 됨. 열애설까지 날 정도는 아닌 듯?

-소라게: 좀 애매하긴 하다ㅋㅋㅋㅋ전여친한테 하는 말 아닌가? 돌아와 달라고...?

-베베꼬인: 열애설 아님 아무튼 아님... 왜냐면 나랑 사귐;;;

-타락천사: 시상식 때 아키사다 아야카의 시선이 조금 수상하긴 했음. 둘이 눈 마주치는게...꼭...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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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숨과 함께 기사가 떠 있는 스크린을 닫았다.

‘나는 이렇게나 멀리 온 당신에게 이 우승컵을 바친다.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베넷 포디의 명대사를 약간 베껴 온 소감.

그리고 나는 그 끝에 내 개인적인 감정을 덧붙였다.

‘정상에서 기다릴게, 꼭 다시 돌아와 줘.’

그것은 유다희가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했던 말이었다.

늘 ‘끝까지 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녀이기에, 그리고 나에게 ‘끝까지 가라’고 한 것도 그녀이기에,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MVP트로피를 들어 올렸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전진할 차례였다.

-띠링!

기사와 댓글 창을 끄자마자 새로운 스크린이 떠오른다.

<항아리 게임 완주 ‘끝까지 간다’ (1), (2), (3)… (10) 동영상에 따른 후원금 수익이 정산되었습니다>

<후원금 정산 신청 및 받은 내역 보기>

<정산받은 금액 합: 302,126,167 원>

<정산 신청 가능 금액: 302,126,167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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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짧게 암벽등반을 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들어왔다.

심지어 이것은 단 하루, 24시간 동안의 수익이니 앞으로 계속 들어올 금액을 추산하면 이의 두세 배는 되겠지.

반나절 바짝 일한 것치고는 분에 넘치는 대가이다.

그러나 열애설이 나간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기자들이 아주 로맨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라니.”

그러나 오해를 풀 여유까지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 일을 벌여야 하니까.

“……윌슨과 조디악이라.”

게임 세계 속에서는 여전히 이 둘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세계의 지배자 윌슨, 그리고 이 세계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병균 조디악.

이 시점에서 나는 그 둘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나의 이익과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때,

“어진아, 무슨 생각 해?”

옆에서 윤솔이 말을 걸어왔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레이크가 있었다.

“혹시 그때의 우승 소감 인터뷰 생각하나?”

“으음! 그건 우리끼리도 얘기를 해 봤는데…….”

내가 상념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자 드레이크와 윤솔이 내 어깨를 잡는다.

“어진, 나 역시도 한 명의 게이머로서 널……!”

“뭐예요! 아까랑은 결론이 다르잖아요, 드레이크 씨!”

“그만, 그만!”

도저히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 나는 두 손을 내저었다.

“너희 둘 다 아냐.”

“그게 무슨 말인가, 어진! 너 같은 게임폐인이 만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운동 아니면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맨날 보는 우리 둘 말고 누가 있어. 쥬딜로페는 아닐 거 아니야.”

드레이크와 윤솔이 제법 논리적으로 반박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아하는 사람 없어. 쓸데없는 걸로 힘 빼지 말자고.”

“그래, 어진. 우리 단둘이 있을 때 진실을 속삭이도록 하지.”

“무슨 소리예요. 어진이는 저랑 상담할 거예요.”

드레이크와 윤솔이 호호깔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쀼?]

어깨에 앉아 있던 쥬딜로페가 손을 뻗어 내 볼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탁!

나는 손을 들어 쥬딜로페의 손길을 치웠다.

내 차가워진 태도에 쥬딜로페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앵!]

쥬딜로페가 양 볼을 부풀리며 내 볼을 쿡 찍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슬쩍 피해 버렸다.

[호…호애앵! 호! 호! 호! 호앳!]

쥬딜로페는 계속해서 내 볼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극한의 마라톤 코스를 함께 거치며 호감도가 거의 MAX에 가깝게 올라간 이래 처음 있는 일인지라 쥬딜로페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이윽고.

[호애애앵-]

울먹이는 소리와 함께 발밑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토옥-

앙증맞은 이빨자국이 남아 있는 반들반들한 젤리.

쥬딜로페는 그 좋아하던 젤리를 오물거리는 것도 잊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나를 향해 물었다.

“어진아, 왜 쥬딜로페에게 그렇게 차갑게 굴어!”

“그렇다 어진. 애가 울먹거리지 않나.”

[인간. 뱀의 심장을 가졌군.]

귀여움에 눈이 먼 두 팔불출이 나를 힐난한다.

심지어 오즈 놈까지.

하지만 나는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시선을 유지했다.

일단 호감도가 오르면서 부쩍 응석받이가 된 쥬딜로페부터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부터는 진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감성적일 여유가 없어.”

내가 이렇게 진지해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기에 모두들 표정을 굳힌다.

그렇다.

내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일으킬 것은 2차 대격변.

실로 무시무시한 딥 임펙트(Deep Impact)!

1차 대격변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이 세계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내가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도 2차 대격변은 그 이전, 이후의 대격변들을 모두 통틀어서 가장 최악의 대격변이었다고 평가되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1차 대격변 때는 세상을 뒤집어 놓았었지. 지형을 크게 바꿈으로서 말야. 하지만 2차 대격변은 조금 다를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준비를 하자.”

갑자기 무슨 준비란 말인가?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의아함과 긴장을 담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세상을 멸망시킬 준비.”

본격적인 메인 스토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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